〈 63화 〉 62. 실종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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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어난 강물위로 괴물에게 다리를 잡힌 러셀이 수면 위를 물수제비처럼 튕기며 끌려가고 있었다.
중급 물의 정령이 러셀의 전신을 휘감아 그가 충격을 입는 것을 막고, 한편으로 그가 숨을 쉴 수 있게 그를 수면위로 떠올려 산소를 흡입할 수 있게 해주었지만, 괴물의 힘이 너무 강력해 그 정도가 중급 물의 정령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보호였다.
그렇게 한참을 끌려가 강 하류 늪지 근처에 도착했을 때 중급 물의정령 안에 있던 러셀이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크... 크헉...”
러셀이 고통의 찬 심음을 뱉어냈다.
러셀의 전신이 두드려 맞은 것처럼 아파왔다.
‘윽...’
손과 손목을 움직여보았다.
‘아 움직인다.’
몸 상태는 나쁘지 않았는데 전신에 가해진 충격에 몸을 잠시 가눌 수 없었다. 자신을 둥그런 물방울로 감싸고 있는 것은 정령으로 보였는데 로리엘이나 이실리엘의 정령으로 보였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자 자신을 잡고 있는 괴물이 하류 습지 근처 맹그로브 군락에 몸을 숨기고는 엘프들에게 꽂힌 화살을 몸을 움찔거리며 뽑아내고 있는게 눈에 들어왔다.
어둠에 눈이 익어가던 러셀이 달빛을 조명삼아 자신의 다리를 움켜쥐고 있는 거대한 촉수를 살펴보았다.
‘빨판? 오징어? 문어? 강에? 문어? 오징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를 떠올려 보다가 러셀은 전생의 지식을 한 조각 꺼내어 한 가지 생각에 도달할 수 있었다.
‘문어 구나.’
전생에 게의 천적은 무엇일가? 라고 질문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다 한결같이 대답 할 것이다.
‘문어’라고 말이다.
도적떼의 늪지를 가로지르는 기행으로 시작된 작은 눈덩이는, 거대 게(Giant crab)의 대량번식 사태를 야기했고 거대 게의 대량 번식은, 그 게들을 먹고사는 게들의 천적이라고 할 수 있는 언덕 문어 (Hill Octopus)라는 심해의 마물을 불러들이고 말았던 것이었다.
언덕문어 (Hill Octopus)는 크라켄(Kraken)보다는 작지만 대양에서 활동하는 거대 두족류 마물이다. 대양에 사는 마물이 왜 얕은 강에 나타난 것일까?
언덕문어는 대양에서 활동하는 마물이지만 번식을 하기 위해서는 비교적 얕은 해안가를 찾는 편이다. 해안가는 작은 게들의 천국이라 새끼 문어들의 먹이가 아주 많은 곳이기 때문이다.
해변근처 얕은 바다에는 몇 마리의 준성체급 언덕 문어가 살고 있었다. 비교적 지능이 높은 문어들은 최근 대늪지 근처 해변에서 대왕 게들이 번식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근처에서 알 빠진 어미 게들이 잡히고 있었고, 흘러내리는 강물에서 죽은 새끼 게의 사체가 계속 떠내려 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새끼 게는 껍질이 부드러워 문어들이 아주 좋아하는 먹이이다. 껍질까지 모두 씹어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강 하류 근처에 사는 문어들은, 새끼 게의 냄새가 흘러나오는 강으로 올라가 새끼 게를 잡아먹을 수 없었다. 물이 너무 얕았기 때문이었다. 구불구불 흘러 침전물이 많이 쌓이는 이 강은, 기수역과 강 하류 사이가 얕은 모래로 이루어져 있기에, 몸집이 큰 두족류인 언덕 문어가 헤엄쳐 올라가기엔 너무 얕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느 종족에나 호기심 많은 모험가는 있는 법. 준성체 언덕문어 중, 세력 싸움에 밀려 체격이 가장 작았던 한 마리는, 결국 다른 포식자와 문어들을 피해 기수역(???)으로 숨어드는데 성공했던 것이었다.
그렇지만 제일 작은 언덕문어도 기수역 앞에서 강하류를 바라보며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물이 얕아서 더 위로는 올라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도 가도 못하고 며칠간 기수역에 고립된 상황에서, 간절한 문어의 마음을 신들이 알아주기라도 했는지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강물의 수량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문어는 기수역 모래톱을 간신히 건너 강 하류로 올라갈 수 있었다.
강 하류 안쪽에 안착한 문어는 매우 기뻤다. 확실히 이곳은 큰 게의 새끼들이 무척이나 많았기 때문이었다. 게 잔치가 벌어졌다. 그렇게 매일 문어는 포식을 이어갔다. 하지만 문어의 기쁨도 잠시 게들이 조금씩 줄어들더니 이제는 하루에 한두 마리 이외에는 잡을 수 없게 되어 버렸던 것이다.
좀 더 상류로 올라가야했다.
문어는 거센 물살을 헤치며 상류로, 상류로 오르기 시작했다. 상류로 오르길 한참 강가에 반짝이는 무엇인가가 눈에 들어왔다. 그 화려한 빛에 이끌려 문어는 쏜살같이 다가가 그것을 낚아챘다. 그리고는 수면에 그것을 강하게 패대기쳐 버렸다. 사냥감의 저항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수면을 강타하는 충격에 그것은 기절해 버렸는지 아무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발끝의 맛을 느끼는 감각에서 그것에게서 흘러나오는 기름진 피 맛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 맛에 문어는 뇌 속에 발광 산호들이 빛을 뿌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입에 넣었을 때 문어는 처음으로 풍미라는 걸 미낄 수 있었다.
‘맛있다!’
이 맛있는 음식을 더 찾아야 했다. 근처를 한참 찾아봤으나 더는 찾을 수 없었는데, 얼마 기다리지 않아 아까 한 놈을 잡았던 곳에 다시 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팔을 뻗어 놈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처음에 잡았던 대로 놈을 수면에 패대기쳤으나 성게 놈들의 가시 같은 것들이 자신을 사정없이 찌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주 뜨거운 가시에 찔리자 맹렬한 고통이 전신으로 전해왔다.
‘이것들은 가시가 있는 종족이었나?’
문어는 이러다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겠다 싶어. 잽싸게 뭍으로 물을 뿜어내고는 손에 움켜쥔 것을 끌고, 하류 쪽으로 물총을 뿜어대며 헤엄치기 시작했다.
롱 윈드 핏줄은 바람의 정령들과 계약하지 않는다. 계약은 타인과 맺는 것. 세계수아래 같은 핏줄이나 마찬가지인 ‘롱 윈드’는 바람의 정령들의 친구이자 형제, 자매였기 때문이다.
이실리엘이 번개를 사방으로 뿌리는, 바람과 구름의 미녀에게 감싸여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맹렬한 속도로 마치 번개가 치는 것처럼 하류로 쏘아지듯 날아가 버렸다.
로리엘을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후로 에알라? (Húro ëala) 폭풍의 정령?”
주변에 있던 다른 엘프들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바람의 정령들중 분노의 화신이 이 땅에 강림한 것이다.
“그래, 그러니까 반려가 있는데. 아직 세계수에서 하나가 된 건 아니라고? 그런데 강가에서 뭔가가 잡아갔다고?”
“네! 맞아요! 빨리!”
아니, 롱 윈드 핏줄을 이어갈 수컷이 잡혀갔다고? 엘프의 특성을 알고 있는 실리아는 이실리엘에게서 느껴지는 분노를 당연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니 그녀 자신이 그녀보다 더 분노하고 싶었다.
엘프의 특성상 잡혀간 수컷이 죽으면 다시 다른 수컷을 사랑하지 못할 테고, 그러면 사랑스러운 롱 윈드의 핏줄이 한 가닥 영원히 끈긴 다는 자연스러운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감히 어느 간 큰놈이 이런 방법으로 롱 윈드에 핏줄에 손을 대려 하다니.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간다!”
이실리엘의 몸을 휘감은 폭풍의 정령 실리아는 그대로 강을 따라 하류로 쏘아지듯 날아갔다. 저 멀리서 느껴지는 롱 윈드의 정령력을 품은 중급 물의 정령을 목표로 말이다.
하류로 쏘아지는 실리아의 구름으로 된 육체가 새까만 먹구름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변으로 굵직한 번개들을 쏘아대며 날카로운 바람들이 강 주변을 사정없이 갈아버리기 시작했다. 그 위력에 구불구불한 강줄기가 실리아의 이동을 따라 일직선으로 변할 정도였다.
그것은 중간 땅의 재앙이었다.
얼마 되지 않아 실리아는 강 하류 맹그로브 숲 근처에 숨어있는 놈을 발견할 수 있었다. 놈은 동그란 물방울을 입안으로 우겨 넣으려고 하고 있었는데. 그 안에 남자하나가 들어있었다.
그 모습에 경악한 실리아가 주변의 모든 물을 바람으로 밀어버려 한순간 놈이 있던 맹그로브 모래톱을 뭍으로 만들어버렸다. 주변으로 밀려난 물들이 사방 늪과 습지들을 때 아닌 물난리로 만들고 생물들이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언덕문어는 갑자기 일어난 일에 화들짝 놀라 세로로 된 동공으로 하늘을 바라봤는데, 거기는 분노한 표정의 번개를 뿜어내는 정령과 자신이 다리로 잡고 있는 것과 비슷한 생물이 공중에 떠있었다.
그리고 날카로운 바람이 불어오더니 먹이를 잡고 있는 다리가 뚝 하고 끊어 져버렸다.
“쿠아아아악!”
문어가 비명을 질렀으나 자신의 다리에 붙들려 있던 먹이는 공중으로 유유히 떠올라 저들 옆으로 가버렸다.
“러셀!” 이실리엘이 다시찾은 러셀을 애타는 목소리로불렀다.
“이, 이실리엘? 이게 무슨...”
현재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던 러셀은 하늘에 펼쳐진 엄청난 광경에 넋을 놓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데 그때 이실리엘이 눈물을 흘리며 러셀의 품안으로 날아들더니 러셀의 입을 맹렬하게 덮쳐왔다.
“러셀, 걱정했어요!”
“츄우웁”
러셀을 다시 잃을까봐 걱정이 되었던 이실리엘은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폭우가 쏟아지는 새카만 하늘, 사방으로 번개가 줄기줄기 뿌려지는 천재지변을 배경으로 한명의 높은 엘프와 한명의 인간의 키스가 공중에서 펼쳐졌다.
이실리엘의 품은 숲속 같은 싱그러운 향기가 났고, 입술은 먹어본 어떤 음식보다 부드럽고 달콤했다. 러셀은 생각했다. 이런 상이라면 문어의입에 다시 들어갔다 나오는 것도 괜찮겠다고 말이다.
둘은 눈을 감고 키스에 빠져들었다.
엄청난 사건 후에야 겨우 할 수 있었던 둘만의 첫 키스였다.
그때 분노에 찬 음성이 배경음 같이 울려 퍼졌다.
“감히! 네놈이! 롱 윈드의 핏줄에 손을 대려 하다니!”
실리아의 분노에 찬 번개가 문어를 사정없이 관통하기 시작했다.
줄기줄기 뿌려진 번개에 언덕 문어의 신체는 곧바로 새빨간 색으로 변하고 곧이어 사방으로 고소한 냄새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대늪지에 문어 요리 한상이 차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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