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59화 (59/352)

〈 59화 〉 58. 우기 5

* * *

마리나와 발레리는 지금 여관 자신들의 방에서 바짝 긴장한 채, 차렷 자세로 러셀 앞에 서있었다. 러셀 옆에 있는 테이블 위에는 그녀들의 소지품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쌓여있고, 러셀은 그 옆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들을 위아래로 살펴보고 있었다.

지금 그녀들이 이렇게 그녀들의 전 재산을 러셀 앞에 쌓아올린 채로 바짝 긴장하고 있는 이유, 그것은 ‘외상’ 때문이었다.

러셀은 발레리의 돈이 없다는 말에 혹시 외상은 없나 확인해 봤는데 당연히(?) 있었던 것이다.

러셀은 얼마전 이실리엘에게 곳간 열쇠를 맡겼고, 리젤다에게는 저번 주에 여관의 금전 거래 장부를 주어 수금과 금전관리를 맡겼다. 원래 이실리엘에게 다 주어야 하겠지만 엘프인 이실리엘은 계산에 밝지 않았고.

이실리엘에게만 곳간 열쇠를 준게 못내 마음이 걸리기도 했기에, 하급 귀족이었다는 리젤다에게 준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리젤다가 여관의 전반적인 금전 거래를 맡아서 하고 있었는데, 내가 장부를 넘겨준 시점에서 장기 숙박 손님들의 여관비가 선불이 아닌 후불이라고 리젤다가 착각하여, 마리나와 발레리의 한주 비용이 계산이 안 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러셀, 미안해요. 여관... 여관살림을 꼭 지켰어야 했는데.”

뭔가 큰 임무를 실패한 것 같은 얼굴로 절망감에 빠져 이실리엘이 말했다.

“아니요, 이실리엘님 제가 러셀에게 확인을 했어야 했는데 제 실수입니다.”

이실리엘의 그 모습에 리젤다는 너무 부끄러워하며 자신의 책임이라며 이실리엘을 달랬다.

“아니요, 리젤다, 여관살림을 책임지는 것은 저이니 다 제 잘못입니다. 제가 확인했어야 했는데.”

러셀이 서로 자신의 잘못이라는 귀여운 두 분의 어깨에 손을 하나씩 올리고는 두 분의 눈을 바라보며 강한 어조로 말했다.

“아냐, 보통은 돈을 안 받으면. 왜 안 받는지. 먼저 와서 물어보고 돈을 내지 않겠어? 이실리엘, 원래 누군가를 속이면 속인 사람이 나쁜 거야! 속은 사람은 피해자가 되는 거지. 당연히 돈을 줄 거라고 믿었던 리젤다를 속이고 이실리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사람이...”

“나. 쁜. 거. 지!”

외상을 확인한 러셀은 둘이 있는 방으로 다시 돌아왔다.

외상이 많지는 않았다. 숙박비 40동화, 매일매일 오일마사지 40동화, 장비관리 20동화 딱 1은화 였다. 매일 여관 풀코스를 즐기셨는데 장비는 왜 매일 관리 받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실리엘이 뭐만 권하면 고개를 끄덕이던 애들이니 러셀은 한편으로 이해는 갔다.

러셀은 그래서 둘을 세워두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러셀은 둘에게 일단 겁을 잔뜩 주기로 했다. 인생은 실전임을 알게 해주기 위해서 말이다.

“나는 아주 관대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지.”

“내가 여기서 쫒아낸다면, 둘은 하루 종일 굶으며 그란폴로 걸어가서... 아... 가는 길에 오크나 리자드맨을 만날 수도 있지. 우기니까 리자드맨들이 길을 습격할 확률이 높겠군.”

“아무튼, 그렇게 살아서 그란폴로 간다면 뭘 해야 먹고 살수가 있을까? 짐에 돈 되는 게 하나도 없던데? 뒷골목에서 몸이라도 팔아야 하려나?”

둘은 러셀의 이야기에 눈이 엄청난 크기로 확장되며 입으로 손을 막으며 아무 말도 못하고 멈춰버렸다.

“아 그렇군. 내가 상단에 또 잔금을 받아야하니... 쫒아낼 수도 없는 건가? 결국 돈을 안내고 두 명이 여덟 달을 무료로 여관을 이용하시겠다는 건데.”

“대충 계산해도 순수하게 숙박비만 16은화가 넘어... 하하 이거 참... 나의 호의를 이런 식으로 되돌려 줄줄은...”

“죄... 죄송합니다. 어, 어떻게든...”

발레리가 엄청나게 미안해하며 말했다.

“어떻게? 이미 이야기 했지만 몸이라도 팔겠다는 건가?”

“아, 아가씨를 모욕하지 마십시오. 다 제 불찰입니다. 돈주머니만 제대로 확인했어도!”

옆에서 마리나가 자신의 잘못이라며 자책하면서 말했다. 그래도 발레리를 감싸려는 게 인성은 나쁘지 않아 보였다.

“뭐 좋아 그럼 어쩔 수 없어. 나는 관대한 사람이고 둘을 쫒아낼 수도 없으니. 우리 여관에서 밥값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겠어? 직원으로 고용되어 자신의 숙박비 만큼 일하는거지. 나도 땅 파서 장사 하는 건 아니니까”

“넷? 직원이요? 여, 여급 말인가요?”

“아, 아가씨 그냥 제가 어떻게든!”

발레리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는데 마리나가 자신이 어떻게든 해보겠다며 나섰다.

“발레리를 대신해서? 뭘 할 수 있을까? 외상대금으로 무기도 옷도 다 압수할 예정인데?”

그녀의 칼은 1 은화보다는 비싸겠지만 대체 어디 가서 팔아온단 말인가?

"크흑..."

“그리고, 나는 아무에게나 내일을 맡기진 않아. 유능한 사람만 알맞은 자리에 고용한다는 원칙이 있지. 여급도 아무하 는게 아니라고. 그러니 둘이 어떤 사람인지 들어보고, 고용을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하겠어.”

나는 의자 팔걸이에 손을 올리고 깍지를 낀 손을 턱밑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자 그럼 각자 자신의 소개부터 해보지.”

“소개요?”

“그럼, 나한테 자신은 어떤 재능이 있으니 써달라는 그런 것 말이야. 아니면, 그란폴로 가겠어? 아참 쫒아내진 못하니 당장 비오는 데 밖에서 노숙이라도 해야 하나? 지급보증을 위해서 되도록 내가 확인 가능한 위치에서?”

“그리고 나도 둘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들어보고 어디에 써야하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여관 여급도 괜찮다면 상관없겠지만 여급은 이제 충분해서 말이지.”

마리나가 나의 말을 이해했는지 갑자기 앞으로 한걸음 나서며 큰소리로 기운차게 외쳤다.

“이, 이름은 마리나입니다. 나이는 26세! 그 상단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은, 은급 상위 용병이었습니다. 무, 무기는 오른손 쇼트 소드와 왼손 단검을 씁니다!

마리나의 소개에 경쟁하듯 발레리가 외쳤다.

“이, 이름은 발레리 루테니아, 루테니아 상가의 후계자...”

“어허, 아니지, 아니야. 나는 발레리 양이 어떤 사람인지가 궁금 한거지. 그 배경이 궁금한 게 아니야. 다시!”

발레리가 몸을 움찔하며 말했다.

“네 넷!”

“이, 이름은 발레리 나이는 20세 그, 글을 읽고 쓸 수 있습니다. 계산도 잘하고... 그, 아 맞다. 상회에서 일을 해봐서 물품 매입이나 판매도 잘 할 수 있습니다!”

역시 러셀이 생각했던 대로 발레리는 인재였다. 발레리가 자신이 글을 읽고 쓸 수 있음을 어필하자 다시 옆에 있던 마리나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저, 저도. 글을 읽고 쓸 수 있습니다!”

그러자 다시 발레리가 이를 꼭 물더니 마리나 보다 앞서 나서며 말했다. 갑자기 묘한 경쟁이 붙어버렸던 것이다.

“저, 저는 노래도 부를 수 있고 춤도 출 수 있습니다! 그 예전에 그 상단 소속 주점에서 무희로 일해본적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발레리가 했던 것은 무희가 아니고 가희지만 아무도 확인 못할 과거를 조금 부풀린다고 해서 지금 무엇이 큰 문제겠는가.

발레리는 후계자가 되기 전 노래에 재능이 있음이 알려졌었다. 서부 주점에서는 가희들이 노래를 부르거나 무희들이 춤추는 게 자연스러운 모습인데, 발레리가 가희들의 노래들을 곧잘 따라 부르다보니 자연스럽게 주변에 알려지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상단, 소속 주점에서 가희로 일을 잠시 했었는데 당시에 인기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이름 있는 가문 처자가 춤까지 추는 건 허락되지 않아서 노래만 불렀지만 말이다. 아버지 몰래 무희들에게 춤을 배운 것은 비밀이었다.

“오...! 무희!”

러셀이 감탄하며 외쳤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크~ 역시 가슴도 크고 몸매도 좋더라니. 무희라...’

러셀의 감탄에 발레리는 안심했다. 이 자리에서 자기가 잘하는 걸 이야기 하다 보니, 여긴 여관이고 술도 팔고 서부의 주점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신이 가희로 일했던 사실을 이야기 하면 러셀이 좋아 할 거라 생각해 말해봤는데, 역시나 러셀이 감탄을 하며 좋아하는 모습에 발레리는 오른손을 꿈 움켜쥐었다.

러셀이 여관에서 공연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옆에 마리나가 다시 외쳤다.

“저... 저는 그 힘도 쌔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 가, 가슴도 큽니다.!”

압박경쟁 면접 중에 마리나가 견디지 못하고 자충수를 두고 말았다. 지는 게 싫었는지 좀 멀리 가셨다.

러셀은 생각했다.

‘아니, 마리나양 그... 옆을 보고 이야기 하세요.’

“제... 제가 더 큽니다!”

역시나 발레리가 조금 빨개진 얼굴로 이겼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마리나는 지지 않고 자신의 장점을 말하려고 했지만 말문이 막혔는지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어찌할 줄 모르게 되었지만 말이다.

“저... 저는... 저는...”

발레리가 마리나의 어쩔 줄 모르는 모습에 결정타를 박아 넣었다. 해맑은 얼굴로 자랑스럽게 외치고 만 것이다.

무의식중에 잠재되어 있던 자신의 최대 장점을 말이다.

“저는 아직 ‘처녀’입니다!”

그리고 아주 만족스러운 승리의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황망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마리엘을 확인하고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닫고, 그녀의 머리카락만큼 붉은 얼굴로 비명을 지르고 말았지만 말이다.

“꺄아아악!”

찢어지는 비명과 함께, 8개월짜리 단기계약 여관 일꾼 두 명이 구해진 순간이었다.

한명은 여관호위 (기도?), 한명은 비서로 말이다.

고용 조건은 쓰던 방을 계속 사용할 수 있고 여관 서비스도 마음껏 사용할 수 있으며, 한주 열흘 중에 하루는 쉴 수 있다는 것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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