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57화 (57/352)

〈 57화 〉 56. 우기 3

* * *

에밀과 쥐를 잔뜩 잡아온 저녁. 우리는 입구 옆 테라스에 앉아서 내리는 비를 보며 운치(?) 있게 쥐 가죽을 벗기는 중이었다.

쥐는 무척 맛있다며 사냥 나가기 전부터 노래를 부른 에밀 이었는데, 잡아온 쥐를 보니 참을 수 없었는지. 여관에 돌아오자마자 어떻게 먹을 거냐고, 몇 마리 줄 거냐고 하기에 다 같이 요리를 해서 먹기로 한 것이다.

에밀이 엘프들과 요 며칠 토란과 싱싱한 허브를 많이 캐다놔서. 토란으로 매쉬토란(?)을 만들기로 하고, 쥐는 가죽을 다 벗겨서 허브에 재워 꼬치구이를 하기로 했다.

내 요리 계획을 듣고 에밀과 엘프들도 신이 났는지 거들어준다기에, 여관 앞에 쏟아둔 쥐들을 그 자리에서 손질하고 있는 것이다.

쥐는 머리를 자르고 팔다리를 끊어서 뒤집으면 가죽이 홀랑 뒤집어진다. 그리고 잘라진 목으로 내장을 꺼낸 후 ‘쭉’ 당기면 손쉽게 고기와 가죽을 분리할 수 있다. 나는 내가 하던 방법으로 쥐를 손질했는데, 한 마리를 손질하고 두 번째 쥐를 손질하려는데 에밀이 나에게 물었다.

“러셀, 근데 머리는 왜 잘라?”

“어? 아니, 가죽도 분리하기 쉽고 머리는 안 먹으니까?”

“뭐?! 머, 머리를 안 먹는다고?”

에밀은 뭔가 못들을 말을 들었다는 것처럼 눈이 휘둥그레져서 말했다.

“어...? 왜? 엘프들은 머리도 먹어?”

“아니, 쥐에서 제일 맛있는 게 머리인데... 엄청 고소하다고!”

에밀 주위에 둘러앉은 엘프들도 고개를 주억거리며 에밀의 말에 긍정했다.

“아니, 보통 그 머리는 잘 안 먹잖아? 나도 머리는 좀 꺼려지더라고?”

“아쉽다. 그럼 머리만 따로 떼어서 나한테 주면 안 돼? 나중에 구워먹을래...”

그녀의 의견에 같이 쥐를 잡으러 갔던 엘프들이 얼굴에 미소를 띠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평원엘프 들은 대체 평소에 뭘 먹는 거지?’

“아, 아니, 안될 건 없는데...”

“그래? 그럼 이제 머리는 다 우리 꺼내?”

에밀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그래 너희가 필요하면. 다, 다 줄게... 고기도 특별한 경우 아니면 너희끼리 먹어도 괜찮아. 난 가죽이 중요하니까.”

“그래도, 그럴 순 없지 쥐머리를 받는데. 은혜도 모르는 엘프가 되고 싶진 않다구.”

‘어... 쥐머리 주면 은혜가 되는 거냐?’

뭔가 평원엘프의 식문화에 대한 심각한 호기심이 들었다. 그래서 에밀에게 물었다.

“평원 엘프들은 보통 뭘 먹고 살아? 엘프들은 농사를 짓지 않잖아?”

“아 평원에 사는 엘프들은 채집이랑 사냥을 주로 하지, 평원에도 은근히 찾아보면 먹을 게 많거든. 평원에 있는 돌 그늘에 피는 버섯도 있고 허브나 들꽃도 많고 그리고 사냥한 가죽으로 다른 부족들과 거래를 하기도 하고.”

“사냥은 보통 뭘 많이 잡는데?”

“사냥은 뭐 들소나, 멧돼지, 자고새, 메추라기, 꿩, 늑대 같은 것들?”

“그 엘프들은 원래 숲을 사랑하고 나무 좋아하고 그런 거 아니야? 평원 엘프들은 왜 평원에서 사는 거야?”

“아 평원부족이 궁금하구나. 하긴 러셀은 이실리엘님 사시는 세계수 있는 곳에도 가봤다고 했지.”

에밀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평원엘프들도 나무를 사랑하지만, 중앙에 인간 왕국에 막혀서 남부 평야에 고립된 엘프 부족들이 숲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평원에서 살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엘프들은 농사를 짓지 않지만 평원엘프들은 과실수를 심고 키운다고 했다.

“나무를 키우는 건 아주 숭고한 행위니까 남부 유명한 포도 산지나 과일이 유명한곳은 대부분 평원 엘프들이 키운 과일이라고”

“엘프는 농사 안 짓는 거 아니었나?”

“나무는 심어서 베거나 잘라내어 버리는 게 아니니까. 백년이고 이백년이고 그 자리에서 자라잖아.”

“그래? 그럼. 에밀이 우리 여관에도 과일나무좀 심어줘 큰 사과나무 같은 걸로. 매년 엄청나게 열려서 따먹으면 좋게 말이지.”

“어? 저, 정말?”

“그래 여관에 큰 사과나무 같은 거 한그루 서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항상 했거든. 멋있을 것 같아 사과도 따먹고”

내말에 에밀과 엘프들은 엄청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손질하던 쥐들을 내던지더니, 비를 맞으며 자신들의 숙소로 달려가며 뭔가를 외쳐대기 시작했다.

“뭐... 뭐지.”

뭔가 말을 실수한 것 같아서 엄청난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데, 밖의 소란을 들었는지 여관의 문이 열리고 이실리엘이 머리를 내밀었다.

“앗! 러셀, 언제 왔나요?”

나를 본 이실리엘이 아주 반가워하며 다가왔다.

“어, 이실리엘 좀 전에 왔어 쥐 좀 손질하고 있었어.”

나는 손에 쥐를 들어서 이실리엘에게 보여주었다.

“아, 이게 그 쥐군요, 귀엽게 생겼네요. 그런데 같이 나갔던 다른 엘프들은 다 집으로 간 건가요?”

“어? 아니. 여기서 쥐 손질하는 것 도와주다가. 이야기 중에 평원 엘프들은 과일 나무를 심는다고 해서, 내가 우리 여관에도 과일나무 한그루 심어달라니까. 갑자기 다 같이 달려가 버렸어.”

내가 영문 모를 행동에 난감하다는 듯 말하자 이실리엘이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평원 엘프들에게 나무를 심어달라고 했다고요??”

이실리엘의 질문에 갑자기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나는 이실리엘의 반응에 혹시라도 뭔가 큰 잘못을 했을까 싶어 이실리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거 또 무슨 청혼으로 귀결되는 건 아니겠지?’

“그... 내가 무슨 큰 실수 한건 아니지?”

“아뇨, 실수는 아니에요. 그. 아마 엘프들이 착각을 한 것 같네요.”

“착각?”

“네, 평원엘들에게 나무를 심어달라는 건 가족이 되어달라는 말이에요.”

“그... 그게 청혼 아니야? ”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아니 무슨 엘프들은 이렇게 결혼 암시가 많은 건데!’

“아뇨, 평원엘프들에게 가족이 되어달라는 건. 이 마을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도 된다는 말이에요. 같은 부족원이 되어달라는 의미니까. 러셀은 제 반려니까 아마 저의 부족이 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아! 높은 엘프인 이실리엘의 부족이 되어서 기뻐서 달려 나간건가?”

“아, 그리고 아마도 여기서 살고 있다가 몸이 다 나으면, 각자 알아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네요. 자신들이 마을에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었나 봐요.”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 마을에서 받아준걸 상처 치유할 때 까지만 으로 생각했나보구나.”

하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비교적 촌락들이 혈연인 경우가 많고 마을에 들어가서 주민이 되는데도 엄청나게 까다로운 이 세계의 특성상, 아무 조건 없이 마을 주민으로 받아주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니까 말이다.

나는 에밀 때문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심했다.

그리고 만약 누군가 나처럼 이세계에 태어난다면 꼭 조언을 해주리라 다짐했다.

이세계에 태어난 당신을 위한 지침서, ‘엘프들이랑 엮이지 마! 스쳐도 청혼이야!’

얼마 후 진정된 에밀과 엘프들이 복귀하고, 이실리엘이 엘프들은 이미 도착할 때부터 마을에 받아들여졌음을 설명하자 에밀과 엘프들은 엄청 기뻐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감격하며 ‘은혜 갚는 엘프’가 된다는데 까치도 아니고...

잠깐의 소동 끝에 쥐 손질을 끝내고 저녁 준비를 했다.

일단 쥐 고기는 깨끗하게 씻어서 소금과 신선한 허브와 마늘을 다져 올리브유와 약간의 와인으로 재워둔다.

토란은 장갑을 끼고 껍질을 벗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토란의 미세한 가시들 때문에 손이 짓무르거나 간지러워질 수 있는데, 여긴 요리용 장갑은 구할 수 없으니. 토란을 살짝 데쳐서 껍질을 까기로 했다.

팔팔 끓는 물에 토란을 집어넣고 몇 분 데친 후, 막대기로 토란을 쿡쿡 찔러본다. 토란껍질이 잘 벗겨지면 준비완료. 토란을 꺼내 깨끗한 물에 행군 후, 슬슬 문지르기만 해도 벗겨지는 토란의 껍질을 깨끗하게 벗긴다.

그리고 다 벗긴 토란을 물에 넣고 충분히 삶은 후 꺼내어 으깬다. 여기에 버터와 아침에 짠 염소젖, 소금을 넣어서 간을 한 후 싱싱한 허브를 다져셔 넣으며 매쉬토란 완성!

잘 재운 쥐 고기는 꼬챙이에 꿰어 숯불에 올려서, 앞뒤로 노릇하게 구워낸다. 꿀과 소금 허브를 섞은 소스를 구우면서 살짝 살짝 발라준다. 매일 끓이고 있는 따듯한 스프에 빵 한 조각, 쥐 고기와 매쉬토란을 올리면 오늘 저녁식사 준비 끝!

잔여불씨에 에밀과 엘프들을 위해서 쥐머리도 살살 구워준다.

입벌린 쥐들이 나를 노려본다. 다 익은 눈알이 툭툭 터지는데...

‘맙소사...’

이쪽세계에서 삼십년을 산 나도 이건 조금 꺼려지는 모습이다.

요리가 끝나고 저녁시간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요리를 대접했는데 쥐는 한 사람당 두 마리정도 돌아갔다. 뭐 양이 많지는 않았는데 맛은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우와! 형님, 이거 왜 이렇게 고소하죠?”

“그래, 맛있으면 너도 놀지만 말고 나가서 에밀이랑 쥐나 잡아와”

“에이, 형님 제가 언제 놀기만 했다고.”

벨릭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테이블에 앉은 로리엘이 눈에 들어왔다. 쥐 고기를 접시에서 가장 먼 곳에 밀어두고 다른 음식만 먹고 있는 로리엘의 모습에 장난기가 올라왔다. 그래서 로리엘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로리엘 맛있게 먹고 있어?”

“으... 응 러셀, 마, 맛있네.”

“어? 로리엘 쥐 고기 왜 손도 하나도 안댄 거야? 입맛이 없어? 그래도 내가 맛있게 해봤으니까 한입만 먹어봐.”

나는 통통한 뒷 다리를 하나 쭉 찢어 로리엘의 입에 가져다댔다. 로리엘은 쥐 고기가 입에 닿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우와아아악” 이라는 수호자에 어울리지 않는 비명을 지르며 위층으로 도망쳤다.

벨릭과 다른 손님들이 그 모습에 웃음을 터트렸다.

“에밀, 쥐 고기 더 먹어. 로리엘은 입맛이 없나보네”

신나게 달려온 에밀이 쥐 고기를 재빠르게 가져가버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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