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55화 (55/352)

〈 55화 〉 54. 우기 1

* * *

‘쏴아 아아아...’

“하늘이 구멍 난 것 같구먼...”

우기가 시작되었다.

어제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비가오자 일을 못나가시게 된 호튼씨가 오랜만에 여관으로 술을 드시러 오셨다. 호튼씨 말 대로라면 작년보다 우기가 며칠 더 일찍 시작된 거라고 했다.

“우기 시작이 며칠이나 빠른 건가요?”

“작년보다 한 오륙일 빠른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어찌되었든 공사는 빨리 끝나서 다행입니다.”

“그러게 정말 다행 일세, 엘프들 거주지 공사가 생각보다 빨리 끝나서.”

“그러게요. 우기 전에 못 끝내면 어쩌나 했는데.”

우기를 앞두고 가장 문제였던 것이 엘프들의 거주 문제였다. 여관의 방은 손님들과 기사 몇 명, 그리고 이실리엘이 데려온 수호자 열 명으로 꽉 차버렸다.

이실리엘이 구출해온 엘프와 수인들 중. 상태가 심각했던 몇 명은 한나 아주머니 댁 빈방에 수용했으나, 나머지 대다수의 엘프와 수인들은, 여관 근처에 야영지를 꾸리고 생활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우기가 삼십일 정도 남은 상황에서 집을 지어 올릴 순 없었다. 비가오기 전 완성을 장담할 수도 없었고. 모든 엘프들이 사용할 집을 전부 지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사용하고 있던 삼각형 천막을 그냥 사용할 수도 없었다. 비가 오기 전 까지 엘프들이 사용하던 것은, 모험가들이 자주 사용하는 삼각형 천막이었는데.

전생으로 말하면 군에서 쓰는 에이형 텐트랑 비슷하게 생긴 천막이다. 다만 재질이 가죽이고 기둥을 나무를 잘라서 세운다는 것 정도가 다를까?

이 천막들을 비가 올 때 사용할 수 없는 이유는, 땅에 나무로 된 핀을 박아서 사면과 양쪽 지붕 모서리에서 내린 끈을 고정해야 하는데, 우기로 땅이 물러지면 박아 놓은 핀이 다 뽑혀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기가 오기 전 발레리 상단을 통해서 목재를 구입하거나, 벌목을 해 엘프들의 거주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것이다.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우기까지 30일 남은 시점에서, 도저히 엘프들을 전원 수용할만한 집을 지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할수없이 사면 기둥과 대들보만 올린 목재 구조물 몇 동을 빠르게 만들었다. 그리고 강변과 늪지대에서 대량으로 구해온 갈대 같은 풀을 엮어 지붕과 벽면을 만들었다.

전생으로 치면 원주민들이 살법한 집이지만, 우기 전에 이정도로 완성한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그나저나 그 아픈 엘프들은 어떤가?”

“상처는 거의 다 회복은 되었는데, 아무래도 마음의 상처가 큰 것 같아요. 사람만 봐도 힘들어하는 분들이 몇 분 있네요.”

“빌어먹을 새끼들!”

엘프들을 생각하면 화가 나시는지. 호튼씨가 먹던 술잔을 탁 내려두고는 욕설을 내뱉으셨다.

호튼씨도 모험가일 때 엘프 동료가 있으셨다고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처음 엘프들의 참혹한 모습에 보고는 엄청나게 분노하셨었다.

“곧 기운들 차리겠죠...”

그때 습기에 경첩이 좀 빡빡해졌는지. 여관의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열린 문 안으로, 방수가죽으로 된 후드를 푹 뒤집어 쓴 다섯의 엘프가 여관으로 들어섰다.

제일 앞의 엘프가 후드를 벗으니. 안에서 수호자들의 수장 로리엘의 얼굴이 나온다. 긴 녹색머리가 물에 흠뻑 젖어 얼굴과 몸에 찰싹 붙었는데, 그것이 미역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로리엘은 방수 가죽으로 만든 후드를 푹 눌러 썼음에도, 비가 하도 많이 와 그도 별로 소용이 없었는지. 머리를 비롯한 온몸이 흠뻑 젖은 상태다,

머리에서 물을 뚝뚝 흘리면서, 테이블에 앉은 나에게 다가와 로리엘이 말했다.

“러셀, 사슴 두 마리를 잡았는데, 한 마리는 마을 촌장 댁에 주고, 한 마리는 여관 앞에 끌어다 놨다.”

엘프들은 은혜를 잊지 않는다. 엘프들을 도와준 마을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며, 엘프들이 사냥해온 사냥감이나 채집 물을,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는 것이다.

마을도 망가진 논밭으로 식량사정이 그리 좋진 못했는데, 엘프들이 나누어준 사냥감이 큰 도움이 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게 때문에 아직 안돌아온 줄 알았더니. 사슴들은 돌아왔나 보네?”

“늪 돼지랑, 검은 물소도 흔적을 몇 개 찾았는데, 비 때문에 더 들어 갈수가 없었다.”

“그래, 오늘 같은 날 사슴 두 마리면 많은 거지. 수고 했어 비 맞아서 추울 테니까. 따듯한 수프 한잔씩 줄게, 벽난로 근처에 앉아서 일단 몸 좀 말리고 있어.”

내말에 로리엘을 포함한 다섯 엘프가 후드를 벗고, 벽난로 쪽으로 몰려가 활과 화살통을 내려놓고는, 갑옷을 벗어 말리기 시작했다.

엘프들이 많다보니. 매끼 많은 식량이 필요했고, 그렇기에 가죽 판매가 다 끝나고도 로리엘과 수호자들은, 다섯 명씩 두 개 무리로 나누어 틈틈이 식량 확보를 위한 사냥을 하고 있었다.

벽난로 앞, 부산한 엘프들을 뒤로하고 재빨리 부엌으로 이동했다.

큰 무쇠냄비에 가득 끓고 있는 따듯한 수프를, 나무 컵에 하나씩 담아 다섯의 엘프에게 하나씩 가져다주었다.

어제부터 비가 오기에, 밖에서 사냥을 하는 친구들의 속을 따듯하게 해주기 위해서, 마시기 좋게 조금 묽게 끓인 수프였다.

따듯한 스프를 받아든 엘프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호로록, 아... 따듯하다.”

로리엘이 스프를 한 모금 먹더니.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다른 엘프들도 수프 첫 모금을 입에 머금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때맞춰 애니가 수건을 한 장씩 가져다주면서 말한다.

“감기 안들 게, 잘들 말리세요.”

“고맙다 애니.”

로리엘이 애니에게 감사를 표한다.

그때 다시 여관 문이 삐거덕거리며, 엘프 네 명이 여관으로 들어왔다.

엘프들은 큰 토란잎을 엮어 만든 우비와 모자를 썼는데, 그 모습이 자못 귀엽게 보였다. 그중 한 엘프가 머리에 뒤집어쓴 큰 토란잎으로 만든 모자를 벗고는,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그녀의 머리도 로리엘처럼 흠뻑 젖어있었는데, 싱그러운 풀밭 같은, 초록색 머리카락이 볼에 엉겨 붙어 물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러셀, 세 군데나 확인해봤는데, 비가 계속 와서 버섯은 다 물러버렸어. 숲 딸기는 어떻게든 찾았는데, 물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 맛이 별로야.

토란은 잔뜩 캐왔어 그리고 싱싱한 허브도 좀 따오고, 근데 비 때문에 수량이 계속 줄 것 같아서 걱정이네.“

이 친구는 구출된 엘프 중에 비교적 몸 상태가 양호했던 에밀이라는 엘프로, 건강을 회복하자마자 구출된 엘프들을 모아서, 채집을 나서겠다고 했던 친구다.

기운을 차린 평원엘프 몇 명을 데리고, 비교적 괜찮은 양의 채집 물을 매일 확보해주는, 아주 고마운 친구이다.

“어. 그래, 수고했어. 너희도 와서 앉아. 따듯한 수프라도 한잔씩 해”

엘프들은 로리엘의 옆 테이블로 이동해 자리를 잡으려다. 로리엘과 수호자들을 발견하고 서로 인사를 한다.

“어, 안녕하세요. 로리엘님”

“어. 그래, 에밀. 오늘은 어때?”

“네, 비가 와서 엉망이에요. 앞으로 두 달은 비가 올 텐데 걱정이네요. 늪지랑 강 쪽은 어떤가요?”

“이제 슬슬 동물들이 돌아오더라고, 게들이 가끔 보이긴 하는데 따로 있는 게들은 별로 안 무서우니까.”

“다행이네요. 사냥이라도 할 수 있어서, 버섯은 이제 다 물러버렸고 야생 열매는 비 때문에 전부 맛이 없어져 버렸거든요.

토란은 아직 더 찾을 수 있겠지만, 다른 건 비가 그치기 전에는 힘들 것 같아요. 저희는 그래서 쥐라도 잡아야 하나 생각중이에요.”

“쥐...?”

로리엘이 쥐라는 말에 당황해 다시 물어본다.

“네, 평원에 사는 쥐인데. 그 이만한데...”

에밀이 자신의 손으로 쥐의 크기를 표현하자 로리엘이 움찔한다.

“그걸... 잡는다고?”

“네, 굴에 수십 마리씩 모여 살아서, 잡기도 쉽고 고기도 아주 맛있어요. 원래 보통은 마을에서 아이들이 몰려다니면서 간식으로 많이 잡는데...”

내가 수프를 가져와 에밀과 채집을 나갔던 엘프들의 앞에 한잔씩 놓아주자, 이야기가 잠깐 멈췄다.

평원엘프들이 수프를 한 모금씩 목으로 넘기고는 미소를 떠올리며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해왔다.

“러셀, 정말 고마워 따듯하다.”

“어, 그래 무슨 이야기 중이었는데?”

“아! 그러니까 내일부터는 쥐를 잡아보려고.”

“아. 그 평원에 사는 그거 말이지?”

얘들이 말하는 쥐라는 건. 내가 전투식량 포장으로 사용하는, 그 설치류를 말하는 거다. 평원에 굴을 파고 살아가는 놈들인데 생긴 건 쥐라기보다는 꼬리 없는 다람쥐에 가깝다. 항상 통통하게 살이 쪄서 맛있기도 하고.

“그거 근데 잡기 어렵지 않나? 워낙 재빠르니까.”

“아, 그거는 원래 비 오는 날이나 우기에 잡는 거야.”

“우기에?”

“응. 원래 평원에 살다보면 그놈들이 여기저기 헤집고 다니면서, 버섯이나 허브 같은 것 못쓰게 만드는 경우가 있어서, 근처에 보이는 건 잡아줘야 하거든.”

나도 만들어둔 전투식량이 다 떨어져서, 가죽이 필요하긴 했는데 급격히 호기심이 올라온다.

“러셀도, 쥐 고기 좋아해?”

“아니, 나는 고기보다 가죽에 관심이 있지.”

“가죽에?”

“그, 쥐 잡는 거 따라가 볼 수 있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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