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 51. 발레리 루테니아 5
* * *
러셀은 지금 짜증이 많이 나있다.
지금 눈앞의 발레리라는 여자 때문이다.
분명 백단목을 사고 싶다는 그 열화와 같은 눈빛과, 정신 나간 얼굴을 보았을 때는, 아! 호구하나 물었구나 하는 기쁨에 차 있었다.
그래서 이실리엘의 방까지 데려와, 다른 물건도 구경시켜 주었고 말이다.
그중에 제일 작은 조각을 골랐을 때는 실망할 뻔 했지만, 그 여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가격은 자신의 예상을 아득히 초월하기 충분해. 실망했던 자신에게 욕을 할 뻔했다.
‘바보 같은 놈!’이라고...
그녀의 마지막 말이 없었으면 말이다.
“그... 근데 그 제가 지금 그 많은 돈을 다 가지고 있지는 않아요.
그래서 그 일단 제가 가지고 있는 돈 먼저 받으시고...
저희 상단이 또 몇 주 있으면, 오니까 그때도 좀 더 드릴게요!
그리고 그 잔금은 좀 나중에...”
러셀은 좀 짜증이 났지만 정중하게 말했다.
“그 우리도 돈이 급해서 말이지. 얼마나 줄진 모르겠지만...”
“잠. 잠시 만요!”
그녀는 벌떡 일어서더니. 문을 열고 나가서는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대기 시작했다.
“마리나! 마리나! 어디 있어!”
그녀는 잠시 후 숨을 몰아쉬며 작은 주머니를 한 개 들고 왔다.
그리고 나와 이실리엘이 앉아있는 탁자에 그것을 쏟아냈다.
쏟은 탁자위로 빨간, 파란, 초록색의 찬란한 빛이 반짝였다.
‘오우!’
“그... 헉헉... 환전하기 좋... 좋은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입니다.”
발레리의 불타는 듯한 붉은 귀밑머리에, 물방울이 한두 방울 떨어져 내리고, 숨을 몰아 쉴 때 마다 가슴에 채운 단추들이 비명을 질러대는 게 눈에 들어온다.
‘저거 터지는 거 아냐?’
러셀은 그녀의 옷이 심각하게 걱정되었다.
“그 마법공방이나 연금공방에서, 헉... 헉... 못해도 하나 10금화는 받을 겁니다. 헥헥...
그 돈이 급하시다면 이걸로 쓰시고, 부족하시면 후...우...
저희 상단이 되돌아 올 때, 이거 두 배만큼 더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 남은 잔금은 저희 상단이 서부에 복귀해서, 받아서 다시 가지고 올 것입니다.”
“그 남은 잔금을 가지고 온다는 보장은 어떻게 하지?”
러셀이 의심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건! 제가 직접 여기 남아있을 겁니다!
저 루테니아 상단의 후계자 발레리 루테니아가! 직접 지급을 보증하겠습니다!”
‘오 역시 상단의 후계자였나?’
지금 눈앞에 펼쳐진 보석은 어림잡아 20여개 200골드정도이다.
애초에 저 여자가 말한 대로 대금화 200개면 1000금화다.
두 배를 더 준다고 했으니. 다해서 600금화정도이고 남은 금액이 400금화 나쁘지 않은 거래이다.
100금화만 있어도 건물 다 올리고 엘프들이 나중에 어찌될지 모르겠지만 충분하게 후원해줄 수 있다.
아주 만족스러운 거래였다.
발레리는 항상 거래를 할 때나 흥정을 할 때 아버지의 가르침을 떠올리려 애쓴다.
그의 아버지는 그의 스승이요. 목표이기 때문이다.
러셀과 이실리엘이 다량의 백단목을 보여줬을 때, 그녀는 진짜 깜짝 놀라버렸다.
상인이 냉정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었으니까 말이다.
더군다나 엘프의 얼굴을 보니. 가격을 흥정할 마음도 사라졌다.
자신의 아버지도 아마 그 상황이라면 자신과 다를 바 없었을 것이라 자기 위안도 했다.
그렇지만 현재 구매할 돈이 부족해도 이 거래를 반드시 성사시키리라 다짐했다.
예전에 발레리가 아버지께 물었던 것을 떠올렸다.
“아버지 근데 개인적으로 욕심도 나고, 상회에도 필요하다면 역시 상회의 이익을 먼저 생각해야겠죠?”
“발레리야, 상인은 자신과 상회의 목적이 상충한다면 어느 한쪽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란다.”
“그러면요?”
“둘 다 포기하지 않고, 둘 다 만족시키려 노력해야지.”
그래서 발레리는 러셀에게 당당하게 말했다.
“제가 직접 여기 남아있을 겁니다! 저 루테니아 상단의 후계자 발레리 루테니아가! 직접 지급을 보증하겠습니다!”
사심이 많이 담긴 거래였다.
아직 그녀는 상회에서 일만하기에는, 철부지 아가씨였던 것이다.
발레리와의 만족스러운 거래를 끝내고, 점심에 간단한 간식을 만들어 손님들에게 돌렸다.
그리고 기운을 차린 리젤다와 엠마, 이실리엘, 애니, 벨을 데리고 낚시를 나왔다.
벨은 요즘 며칠 심심한지 매일 테이블에 머리를 처박고 앉아서는, 이실리엘 일하는 걸 쳐다보고만 있기에 데리고 나왔다.
얼굴에 딱! 봐도 ‘나 심심함’ 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기 때문이다.
이실리엘은 나에게 딱 붙어서 떨어지질 않고, 로리엘은 며칠 전까지 낮에 항상 잠만 자더니. 이젠 사냥을 다닌다고 코빼기도 볼 수가 없을 테니. 벨을 상대해줄 사람이 없는 것이다.
현재 벨의 공식적 위치는 여관손님이 아닌 이실리엘의 손님인데.
내 입장에서는 식객 정도인 것이다.
그래도 소의회에서 이실리엘을 데려온 게 벨이라니. 멍하니 여관에만 박아둘 수는 없는 일이고, 북부 공작의 딸이라는데, 이실리엘과 같이 허드렛일 시킬 수도 없고 말이다.
원래는 이실리엘과 둘이 나오려고 했는데.
이실리엘이 낚싯대를 든 나를 보고는 그건 두고 광주리를 가져오라고 했다.
그리고 사람도 많이 필요하다고?
나는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다크엘프 둘은 나만 보면 슬쩍 자리를 피하고, 에브리나는 마법 연구 중인지 자기 방에서 안 나오고 있고, 브릴다는 잠자는 중이고, 호크네 파티 원들은 어제 도시에 다녀온다고 갔으니. 팔다친 마틴과 훈련중인 러셀을 제외하고, 한가한 사람 총출동인 것이다.
우리는 큰 광주리를 3개나 들고 강변에 모여섰다.
“이실리엘 이제 뭘 하면 되는데?”
“음... 이제 기다리시면 되요.”
“뭘?”
내가 ‘이게 뭔 소리지?’ 하는 생각에 말하자, 뒤에 있던 엠마가 강 쪽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어? 저... 저거?”
엠마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에서, 강물이 수면위로 꼭 풍선같이 부풀더니. 이쪽으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수면위로 풍선같이 부푼 그 큰 물방울 안에는, 커다란 고기 한 마리가 빙글빙글 헤엄치고 있었다.
그 물방울은 강변까지 와 물고기를 슬쩍 풀밭에 올려두더니 사라졌다.
“오... 이게 엘프들이 물고기 잡는 법인가?”
엘프 마을에 있을 때도 보지 못한 진풍경이었다.
“물의 정령들이 도와주면 물고기를 쉽게 잡을 수 있거든요.”
이실리엘이 웃으면서 말했다.
물고기는 한 마리 두 마리씩 강변으로 던져지고 있었고, 물고기 풍년에 다들 신이 났다.
그중 엠마가 제일 신나서 외쳤다.
“러셀님 이거 몇 마리만 여기서 구워먹으면 안 돼요? 너무 맛있을 거 같아요!”
“안될 건 없지?”
애니가 품안에서 단도를 꺼내 능숙하게 물고기를 손질하고, 엠마와 리젤다가 재빨리 마른 나뭇가지들을 찾아왔기에, 우리는 한자리에 모여 물고기 구이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 강변을 보고 있던 이실리엘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읏... 커요!”
“뭣?”
우리들은 그 소리에 이실리엘 쪽으로 몰려갔는데, 이실리엘이 뭔가 힘에 겨운지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때 저쪽 멀리, 강 건너편쯤에서, 커다란 물방울이 솟아올랐다.
처음에는 크기가 가늠돼지 않았는데, 그것이 가까울수록 다들 입이 떡 벌어졌다.
“어...?”
“어... 어...?”
조금씩 다가오던 그것은 점점 커지더니. 강변에 다 다다랐을 때는 다들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것은 사람보다 더 큰 메기였던 것이다.
강변에 거의 다 왔을 때 이실리엘이 힘에 부친 지 소리쳤다.
“흣 안되겠어요. 저는 운디네랑은 그러게 친하지 않아서! 다들 피해요!”
이실리엘의 외침과 함께 거의 강변에 다다른 메기는 수면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리고 그 지느러미를 파닥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람보다 큰 메기가 지느러미를 파락 거리자, 거기서 생긴 물살은, 몰려있던 우리들에게 그대로 흠뻑 쏟아지고 말았다.
“촤아아아아악~~~~~”
“꺄앗!”
“꺄아악!”
“으아앗!”
이실리엘, 리젤다와 엠마, 애니, 벨 그리고 나까지 여섯은, 잠시 후 물을 흠뻑 뒤집어쓴 꼴이 되고 말았다.
“푸하하...”
풀밭에 드러누워 그냥 웃어버렸다.
한참을 웃다가 일어나 앉았는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여자들을 쳐다보자 다들 새빨간 얼굴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애니 빼고...
“아, 안 돼, 러셀 이쪽 보면 안 돼!”
“오우야!”
나는 화들짝 놀라서 재빨리 뒤돌았지만
“봐! 봤지!?”
벨과 엠마의 뾰족한 목소리.
그리고 이어지는 애니의 목소리
“두 마님들은 러셀님이신데 부끄러워 하시다뇨!
자자 제가 나뭇가지를 다시 주워와 불을 피울 테니.
러셀님은 두 분이 감기에 걸리지 않게 꼭 안고 계세요!”
그리고는 내 품에 이실리엘과 리젤다를 쏙 넣어주고, 윙크를 하고는 나뭇가지를 가지러 뛰어갔다.
목과 귀 얼굴까지 빨개진 두 분 덕뿐인지 아주 후끈했다.
“아... 따듯하다 그치?”
내 품에 안겨 있던 두 분이,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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