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51화 (51/352)

〈 51화 〉 50. 발레리 루테니아 4

* * *

아침식사 후 잠깐의 여유시간에 식료품 현황을 확인하려 창고로 내려왔다.

창고 문을 열자 내부의 선반에는, 허브와 소금으로 염장하고 훈연한 햄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천장 버팀목에 걸려있는 소시지들에서는, 기름기가 바닥으로 방울져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한쪽에는 귀리나 보리 밀 같은 곡물이 포대에 담겨 줄지어 쌓여있고, 여러 광주리에는 말린 채소가 종류별로 담겨있다. 그리고 창고 제일 안쪽에는, 와인과 맥주가 담긴 오크통이 줄지어 쌓여 올려 있었다.

“와아... 많네요.”

이실리엘이 그 모습을 감탄 한 듯이 말한다.

“뭐... 여관이니까”

천천히 재고를 확인한다.

며칠 전부터 엘프들이 사냥해온 고기를 이용해, 햄이나 소시지를 만들고 있기에, 육류는 식량 확보가 잘되고 있는데, 곡물, 채소가 문재였다.

“음... 보리, 귀리, 밀 3가지는 그란폴에서 좀 매입하기로 하고, 문재는 채소인데”

“주변에 농지가 많이 상했더라고요?”

이실리엘도 마을을 둘러보면서 주변 밭을 한번 보았던 것 같다.

“아 얼마 전에 게들 때문에... 그래서 당장 채소를 구할 수가 없네...”

“대수림 같으면 저희들이 버섯이나 야생허브, 식용식물들을 채집할 수 있을 텐데요.”

엘프들은 농사를 짓지 않는다.

자연적으로 달린 열매나 곡식은 취하지만, 직접 식물을 심거나 하진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버섯이나 허브, 식용식물 채집에 아주 능숙한 편이다.

“음... 그리고 또 부족한건 없나요?”

“물고기를 좀 잡아서, 말리거나 훈제해두면 좋을 것 같긴 해.”

“물고기 말인가요?”

“응 강에 물고기는 많은데. 깊진 않지만 유속이 빠른 편이라서 그물은 불가능하고, 낚싯대로 한두 마리야 잡아 올릴 수 있겠지만, 우린 많은 양이 필요하니까.”

“물고기는 제가 잡을 수 있어요!”

“이실리엘이?”

“네!”

“그럼 오후에 물고기나 잡아볼까?”

“좋아요!”

필요한 물건을 기억하며, 창고 문을 닫고 나온다.

열쇠로 문을 잠근 후. 이실리엘의 손에 부끄럽지만 창고 열쇠를 쥐어 준다.

“이건...?”

“그, 내가 예전에 살던... 살았던 아무튼 그, 그곳에서는 혼약을 하면, 그 아내에게 남자 통장... 아니 그 창고 열쇠를 맡기거든...

집안 살림을 여자에게 맡긴다는 뜻이랄까... 남자는 그 주로 밖에서 일하고, 여자들이 집안 살림을 하니까 말이지...”

아직 혼약을 한건 아니지만, 뭐 일단은 한 지붕에 살고 있고 또 할거니까...”

나는 그 말을 마치고, 손에든 열쇠를 꼭 쥔 이실리엘을 두고, 혼자 계단을 부리나케 올라와버렸다.

하, 전생에 가장들이 와이프한테 통장을 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뭔가 마음이 싱숭생숭 했다. 허탈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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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실리엘은 러셀이 손에 쥐어준 열쇠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러셀이 열쇠를 자신의 손에 쥐어주면서 한 말을 곱씹어 보았다.

“아내... 살림... 맡긴다...”

이실리엘은 세계수 가지를 처음 의장님에게 받을 때가 생각났다.

엘프 대의회장 중앙, 수호자의 전통 복장을 입고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자신에게, 의장님이 푸른 세계수의 가지를 전달하면서 하신 말씀.

“이실리엘 롱윈드여 이제 당신에게, 우리 엘프들의 수호를 맡깁니다.”

그 가지를 떨리는 손으로 양손으로 받아 냈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에, 가슴이 벅차올랐었다.

지금! 그 벅찬 가슴이 재현되는 것 같았다.

이실리엘은 열쇠를 ‘꾸욱’ 움켜쥐며 다짐했다.

아내로서! 여관 살림을 수호 할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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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프의 눈물 여관에서 상쾌한 아침을 맞이했다.

준비된 물로 세수를 하고 식당으로 내려가 깔끔하게 차려진 식사를 했다.

차려진 음식을 자신이 원하는 만큼 마음대로 먹는 것이라는데.

따듯한 새알과 우유에 적셔 구운 빵, 수프, 베이컨, 소시지, 치즈가 준비된 깔끔한 아침이었다.

달콤한 잼을 곁들여 먹은 아침은 정말 훌륭했다.

또 특이하게 허브 향을 낸 따듯한 차도 한잔씩 주었는데.

조금은 기름질 수 있는 입맛을 마지막에 깔끔하게 만들어주는 기분 좋은 차였다.

행복에 미소를 떠올리며 발레리는 자신의 일탈(?)에 만족했다.

옆에 호위도 얼굴에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아가씨 저희도 고생을 많이 했으니 이 정도는 괜찮겠지요? 후훗”

“하 진짜 한 몇 달 푹 있다 갔으면 좋겠다.”

발레리는 아침을 먹고 야영지에 들렀다가, 아침 일찍 멜빈 아저씨가 상단 원들을 이끌고, 상류로 올라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발레리가 생각 못한, 가죽 관리할 인원 4명을 남겨두고 말이다.

어제 조금은 양심에 찔려 생각 못한 부분까지. 챙겨준 아저씨였다.

‘아저씨 죄송해요! 그렇지만 첫 상행은 너무 힘들다고요!’

마음속으로 아저씨께 전달되지 않는, 미안함만 외칠 뿐이었다.

야영지에서 다시 여관으로 와 여관 앞에 착착 쌓여있는 엘프들이 밤새 잡아온 가죽을 확인했다.

늑대가죽 다섯 장, 사슴가죽 두 장, 돼지가죽 한 장 다들 털에 윤기가 흐르는 것이 아주 괜찮은 가죽으로 보였다.

더군다나 엘프들이 잡은 가죽은 흠집하나 없이 정말 완벽했다.

가죽이 화살구멍 하나 없이 이렇게 완벽하다니. 발레리는 러셀과 거래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엘프들의 사냥실력이 워낙 출중하니. 화살로 귀나 눈알을 맞춰서, 가죽을 전혀 손상 없이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가죽 활용도가 더 높은 것은 뻔한 일이기에, 나중에 러셀에게 가격을, 더 잘 쳐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상단 원들에게 가죽을 다 운반할 것을 지시하고, 근처 그늘에서 낮잠이나 잘까 하는 생각을 하며, 주변을 배회하고 있는데.

앞쪽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지금 돈이 급하거든, 당장이라도 팔아야 하는데. 북부에서는 지금 돈을 받을 수가 없으니까 말이야.”

“그럼 저희가 마법사를 데리고 와서 마법 문으로 왕국에 다녀오겠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오래 걸린다는 거라니까?

수도까지 몇 주일 텐데 우기가 오기 전에 엘프들의 천막을 다 집으로 바꾸는 건 불가능해도, 내 헛간 한 동이나 최소한 우기를 버틸 수 있는 기둥세운 천막으로라도 바꿔야 한다고.”

이번 주 안에는 공사가 들어가야 하는데.

이실리엘도 나도 고마운 마음도 있고 또 당연히 팔아주고 싶은데.

전부 북부만 기다릴 수 없다고”

발레리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다가갔다.

북부 기사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브라한이라는 기사와, 여관주인 러셀이 무엇인가를 이야기 하고 있었다.

자신이 나타나자 둘은 이야기를 멈췄는데/

“그... 안녕하세요. 러셀씨? 하... 하...”

러셀이 갑자기 반갑게 말을 걸었다.

“아! 마침 잘됐네. 발레리양도 상인이지?”

“예... 그렇죠... 뭐 지금은 가죽을 사고 있지만 저희는 원래 귀중품을 취급하는 그... 서부에서...”

“그럼 이런 것도 사주나?”

러셀이 뭔가를 주머니에서 하나 꺼내 하늘로 던졌다가 받아냈다.

발레리의 고개가 하늘로 그 물건을 따라서 올라갔다 내려왔다.

‘그러니까 저게 흰... 희고 하얀...’

러셀의 손이 펴지고 손안에 물건이 드러났다.

주변에 자신의 색 이외에는 다 불결하다고 주장하는 듯. 순 백색의 희고 아름다운 네모난 조각이 말이다.

“어!?”

“그... 그게...”

“백단목이라는데 취급 안하나?”

발레리는 이 여관에서 아버지가 말씀하신 머리로 이해 못 할 신비한 일들을 많이 겪고 있었다.

그렇기에, 여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지만, 지금 이순간은 정말 아무생각이 안 들었다.

저 백단목 처럼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버렸으니까 말이다.

“히끅...”

발레리의 입에서 참을 수 없는 딸꾹질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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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발레리와 러셀, 이실리엘은 이실리엘과 벨, 로리엘이 묵고 있는 방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이렇게 둘러앉은 이유는, 발레리가 러셀이 보여줬던 백단목을 사고 싶다고 말하자. 러셀이 이실리엘과, 발레리를 이곳으로 데려왔기 때문이다.

이실리엘이 사람 두 손에 가득 찰 만큼 크기의 가죽 주머니를 열어 테이블에 쏟자, 안에서는 열 조각이 넘는 백단목 조각들이 굴러 나왔다.

“이... 이, 이렇게나 많이?”

엘프들은 이걸 파는 물건이 아니라고 잘 팔지도 않거니와, 2­3년에 한두 조각 나오면 난리 날 이 물건이 이렇게 많이 있다니...

“왜... 왜 이렇게 많... 많이...?”

이실리엘이 그말에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러셀을 만나러 인간 세상에 나오려는데...

인간 왕국에서는 그...

인간들이 쓰는 돈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요.

그런데 언젠가 백단목이 인간들한테 돈으로 팔린다는 말을 들어서...

그... 집에 있는 걸 한줌 쥐어서, 가지고 나왔는데...”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저 순수한 웃음이라니...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은 미소를 애써 떨쳐내고, 발레리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후우 후우... 잠시만 심호흡... 제가 솔직히 이걸 다 사지는 아니, 다살 사람이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저는 이거.”

제일 작은 조각을 골라낸 발레리였다.

발레리가 슬쩍 보니 러셀이 실망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이걸 사고 싶은데... 그 가격은 100 대금화? 어? 120?”

자신의 말을 듣고 러셀의 표정이 놀람으로 물들었는데, 앞에 이실리엘은 그저 순수한 미소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자신이 가격을 조금씩 조정해도 그저 순수한 미소만 짓고 있는 이실리엘의 모습에, 발레리는 양심에 무한한 가책을 느꼈다.

“그... 그래요 200대금화로 하죠...”

발레리는 생각했다.

가격 흥정의 달인이라는 아버지도, 저 엘프 앞에서는 결코 승리를 장담할 수 없으리란 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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