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45화 (45/352)

〈 45화 〉 44. 이실리엘과 리젤다의 만남

* * *

이실리엘이 나타나서 나의 목숨은 잠깐 유예를 얻었다.

이실리엘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화난 모습으로 벨과 로리엘을 다그치자, 다른 엘프들과 둘은 이실리엘의 모습에 어쩔 줄 몰라 하며, 자신들이 알아낸 사실을 조심스럽게 이실리엘에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나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로리엘이 말했다.

“러셀, 확실한 건가요?”

“응... 그... 미리 말 못해서 미안해...”

죄책감에 이실리엘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조용히 말했다.

이실리엘을 맞이할 때는 그녀에게 내색할 수 없었다. 그 멀리에서 날 찾아와 기쁨에 가득찬 그녀에게 다른 여자 이야기라니...

그간 잘 지냈느냐? 라든지 엘프 숲의 친구들이나 통역해주던 엘프의 안부를 물어보았다.

그 후에는 같이 왔던 수많은 엘프들 그러니까. 브라한의 말로는 악마에게서 구출해 왔다고 했던 그녀들 말이다.

브라한이 너무 비장하게 말하는 통에, 더 물어볼수가 없었다.

이들을 치료하는 데 필요한 물자를 꺼내오고, 마을 사람을 설득해서 야영지를 만들었다,

방을 배정하고 여행에 지친 사람들을 위해 목욕으로 피로들을 풀어주고 보니, 어느새 저녁이라

뭐 나도 식사 준비하고 그러다 보니 밤이었고, 이실리엘도 데려온 엘프와 수인들을 돌보느라, 정작 우리의 이야기를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였다.

“제 청혼은 그럼 거절입니까?”

“아참 처음부터 이야기를... 러셀 당신은 제가 당신께 예전에 청혼한 사실을 알고 있나요? 그러니까 제가...”

“아니... 알고 있어 이실리엘”

“옛? 그것을 어떻게?

“그... 알려준 사람이 있는데 말이지...”

“잠깐 둘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내가 이시리엘에게 조용히 말했다.

“안됩니다. 통역인 제가 없는데서는 한마디도 나눌 수 없습니다!”

벨이 이실리엘 앞으로 나서면서 외쳤다.

“어... 그래 그럼 통역 통역 말이지...”

로리엘도 나서서 말했다.

“죽음의 물레가시에 대한 의혹도 있기에 엘프 소의회를 소집한 상태였습니다! 이실리엘 높은 엘프이시어 부디 이 자리에서 의혹을...”

“죽음의 물레가시?”

이실리엘이 그게 무슨 소리냐며, 눈이 엄청나게 커져서는 되물었다.

잠시 로리엘의 설명이 이어진 후 대략의 사정은 들은 이실리엘이 말했다.

“일단 러셀 여기서 이야기해야 할 거 같은데, 엘프들의 소의회가 열렸다면, 높은 엘프인 나도 엘프의 위대한 법칙에 따라야 하니까... 미안해...”

그래서 그렇게 수많은 엘프들 앞에서 나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당신을 살리고 당신의 선물과 배려가 나를 힘들게 했다.

나는 당신에게 그런 것을 바란 것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당신이 부채감에 나에게 해주는 것들이 부담스러워졌다.

활을 받고 나니 더 큰 선물들을 해주려 할까 봐 길 떠나는 것을 재촉했다.

그렇게 남부에 와서 여관 주인이 되었다.

당신을 잊으려 아니 잊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여관으로 찾아왔다.

그 사람은 내가 당신에게 받은 활이, 청혼 선물이라는 걸 알려줬다.

그걸 거절하는 게 어떤 뜻인지도, 그리고 거절 받은 엘프의 미래도 말이다.

당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니 걱정이 되었다.

그럼에도 쉽게 연락을 할 수 없었다.

부채감으로 내 다리를 보며, 미래에도 힘들어할 당신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인간인 내가 죽은 후에 남겨질 당신을 생각해서도...

하지만 당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걸 또 참을 수 없어...

당신의 수배서를 보고 바보같이 연락했다.

그리고 그사이 그녀는 당신을 위해서 나에게 엘프어를 가르쳐 주었다.

당신을 만났을 때 다시는 실수 하지 말라고...

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나를 좋아하고 있음을 몰랐었나 보다.

결국에 죽음의 문턱에서 나에게 고백을 했다.

그리고 지금은 깊은 잠에 빠져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말 미안합니다.

먼 북부에서 나를 만나기 위해 당신이 이곳까지 왔는데...

기쁜 얼굴로 맞아주고 싶었는데...

그녀가 죽음의 문턱에서 고백했을 때 알게 되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한 것이 그저 나의 부상에 대한 부채 감이 아니라...

이미 그전부터 나를 사랑하고 있음에도 확신하지 못했던 자신이...

그저 단순한 계기로 당겨진 시위를 놓아버린 것 같이, 나를 사랑함을 고백했음을 말이다.

마치 그녀처럼...

이실리엘 정말 미안합니다.

당신의 고마운 사랑을 이런 상황으로밖에 맞을 수 없는 나를...

“어머니 대신 저에게 활과 시위를 만들어 주시겠습니까? (Mimil Esol Am Medora Medore Mani Mir)”

내가 흐르는 눈물로 고백하자 이실리엘이 넋 나간 표정을 짓는 것도 잠시, 그녀는 내가 활을 받아 주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기쁨에 벅찬 얼굴로 나를 안아 들었다.

그리고 내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예~ 천 년이라도... 영원히...”

이실리엘이 중부 대륙어로 대답했다.

그 광경에 벨과 모여 있던 엘프들이 모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잠시 후 엘프의 소 의회는 피해자 이실리엘을 밖으로 끌고 나왔다.

그들 말로는 피해자의 이야기도 들어봐야 한다나?

몸도 성치 않은데 괜찮으냐고 물어보았는데, 괜히 혼나기만 했다.

반은 내 책임이라나...

그리고 같은 처지인데, 왜 너는 안 아프냐는 그런 말도 들었다. 하...

엠마도 걱정돼서 따라나왔는데, 아픈 사람을 풀밭에 그냥 눕히자 움찔하는 모습을 보이다 엘프들의 눈빛을 보고는 얌전해졌다.

이실리엘이 리젤다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무언가 하려고 하자 벨이 갑자기 달려들어 이실리엘을 저지했다.

“잠깐! 뭘 하려는 건지 물어봐도 괜찮아? 이실리엘?”

“응 지금 샌드맨을 불러서 꿈속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가서 데리고 나와야 하니까...?”

“흠... 그럼 나랑 잠깐 이야기 좀!”

벨은 이실리엘을 끌고 가서 무엇인가 한참 이야기하더니 이실리엘을 풀어주었다.

그리고 이실리엘이 샌드맨이라 것을 불러어, 그것을 무릎 위에 올리고 조용히 눈을 감더니, 무릎 꿇은 채로 고개를 살짝 떨구고는, 그대로 조용히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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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젤다는 깎아지는 벼랑에서, 피눈물의 엘프 대신 계속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비명을 질러대며 끝나지 않는 벼랑에서 끊임없이 말이다.

계속되는 고통과 비명에 다 포기하고, 이제 이것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쯤...

갑자기 풀밭에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저 앞에 한 나무가 서 있다.

자신을 괴롭히던 그 꿈이 아니었다.

리젤다는 엄청난 높이를 자랑하는 나무로 조금씩 조금씩 다가갔다.

나무를 올려다보는데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려온다.

“아름답죠?”

“어?”

거기에는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가진 한 엘프가 서 있었다.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빛 머리카락. 리젤다는 그녀가 누군지 한순간에 알 수 있었다.

“제가 누군지 아시겠나요?”

“이... 이실리엘님...”

“네 저 이실리엘 롱윈드는 높은 엘프이며 세계수를 수호하는 수호궁수로 리젤다 윈터폴을 뵙습니다.”

리젤다는 이실리엘의 인사에 어쩔 줄 몰라 한다.

“괜찮아요. 이리와 앉으세요.”

나무둥치를 권하는 이실리엘의 권유에, 리젤다가 다가와 앉는다.

“저기...”

“말씀하세요 리젤다.”

“죄... 죄송합니다.!”

사죄와 함께 무릎을 꿇어버린 리젤다는, 그 앞에서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제 제가... 그... 그러면 안 되는데... 제가... 그러니까...”

이실리엘이 일어나 리젤다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인간이나 엘프나 사랑 앞에서는, 다 어리석어지나 봅니다.”

“혹시 제가 러셀을 만난 이야기 러셀에게 들으셨나요?”

리젤다가 눈물범벅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이실리엘이 말한다.

“아마 자세한 것 못 들으셨겠죠? 제 이야기를 한번 들어주세요.”

그리고 긴 이실리엘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러셀과의 데이트(?) 별구경 아이를 구해온 러셀의 모습 의심했던 바보 같은 자신...

“분명 저는 러셀을 그가 나를 뱀의 왕에게서 구해주기 전부터 사랑하고 있었는데, 제 마음을 인정하지 못했죠.”

“아마 리젤다도 러셀이 저의 청혼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알기 전부터, 그를 사랑하고 있었을 겁니다.”

“다만 인정하지 못했거나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그리고 지금도 인정하고 있지 못한 겁니다.”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비난받더라도, 러셀을 포기할 수 없음을...”

이실리엘이 그렇게 말하자 리젤다가 황망한 표정으로 울부짖었다.

“아니 아니..”

“그.. 그게 그게 아니고...”

그리고 이실리엘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마음을 견딜 수가 없음을...”

“흑... 엉...”

리젤다가 긴 울음으로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이실리엘이 리젤다를 품에 안고 말하기 시작한다.

“지금 당신의 마음이 당신의 육체를 찔러, 당신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어요.”

“당신이 죽는다면 러셀이 저를 사랑할까요?”

“반대로 제가 죽는다면 러셀이 당신을 사랑할까요?”

“아마 러셀은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남겨진 저희 중 하나를 거두겠지만, 저희는 그가 평생 고통 속에 사는 걸 지켜봐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 그게...”

그래 러셀은 그럴 것이다.

자신이 아는 러셀은 가벼워 보이지만 다정하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구하는 그런 사람이니까 말이다.

“제가 러셀을 언제부터 사랑하고 있었는지, 제 사랑이 러셀이 제 목숨을 구해 준 데서 비롯된 게 아닌 것을, 러셀에게 가르쳐준 당신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사랑이 당신을 통해서 구원받았습니다.”

“엘프는 은혜를 잊지 않습니다. 은혜는 은혜로 피는 화살로...”

“목숨을 구해준 것으로 시작된 사랑이라고, 의심하는 러셀에게 확신을 준 것은 당신입니다.”

“이제 제가 당신에게 은혜를 갚게 해 주시겠습니까?”

“그러니 일어나세요.”

“이제 우리는 운명으로 묶여 둘 다 행복해지든지 둘 다 불행해지든지. 둘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이실리엘 당신은 무엇을 고르겠습니까?”

“뭐... 제 인간 친구는 이렇게 말하라고 하더군요.”

이실리엘이 짐짓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네년! 감히 내가 없는 틈에 내! 남편을 꼬여내려 하다니!”

“지엄한 북부의 율법대로 창녀의 낙인을 찍어 추방함이 마땅하나!”

“감히 정실의 위엄에 도전하지 않고, 첩으로서 의무를 다한다면! 너의 지위를 보장할 것이야!”

이실리엘은 그 말을 하고는 혀를 빼물어 세상에서 제일 깜찍하고 귀여운 요정의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렇게 꿈이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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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젤다가 눈을 떴다. 그간의 잠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이

“리젤다 보여?”

나는 리젤다의 몸을 여기저기 살폈다.

“러 러셀...”

“이 이실리엘님은?”

일어나자마자 이실리엘을 찾는걸 보니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보다.

“저는 여기 있습니다. 리젤다.”

“네... 넷...”

이실리엘이 대답하자 리젤다가 바짝 긴장한다.

괜히 눈치 없이 리젤다 한 테 뭔가 물어봤다가 또 엘프들에게 혼날까 싶어 조용히 있기로 했다.

그냥 조용히 엠마를 불렀다.

며칠 침대에서만 누워있어서 몸을 추슬러야 하니. 리젤다를 방으로 옮기고 수프를 끓여서 올리겠다는 이야기 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벨이 달려와 이실리엘에게 무엇인가 물어보았다.

“이실리엘 내가 시킨 말은 했어?”

“응! 했다!”

이실리엘이 귀여운 표정을 지으면서 말한다.

“잘했어! 역시! 내가 이래서 따라온 거라니까!”

“원래 백마를 탄 기사님 주변에는 여자들이 많아서 서열 정리를 해줘야 해!”

“알겠어? 나중에 결혼식 하고도 방심하면 안 돼 알았지?”

“여자들은 항상 기사님을 노린다구!”

벨의 어긋난 지식이, 여기 이세계의 한 엘프와 한 여자 그리고 한 남자의 영혼을 구원해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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