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42화 (42/352)

〈 42화 〉 41. 잠든 리젤다.

* * *

이실리엘은 마차에서 나와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기사들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녁 해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기 직전. 피를 뒤집어쓴 기사 몇 명이 말을 끌고 되돌아왔다.

그들이 아무 말 없이 남작의 성에서 끌고 온 말을 마차에 연결하자. 고요하게 펼쳐진 평원 위로 마차가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마차에 오른 이실리엘이 옆을 보았다.

자신의 인간 친구 벨이 아무것도 모른 채 색색 잠이 들어 있었다. 참혹한 광경을 벨에게는 보여줄 수 없어서, 며칠 전부터 잠의요정(Sand Man)을 이용해 벨을 재우고 있었다.

벨의 머리를 살짝 쓸어준다. 자신의 작은 인간 친구는 저 멀리 보이는 인간의 성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이나 했을까?

그렇게 머리를 쓸어 주다 보니. 잠시 후 마차가 피로 깔린 붉은 융단을 밟고 마을 광장에 도착했다.

사방에 밝혀진 횃불이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엘프 몇몇이 불의 정령을 불러내 주변을 조금 더 밝히자, 수십의 엘프들과 수인 몇 명이 모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그 참혹한 모습에 눈살이 찌푸려질 법도 한데, 엘프들은 아무 말 없이 그들에게 다가가, 우물에서 물을 떠다 먹이거나 상처를 돌봐주기 시작했다.

이실리엘에 그들에게 다가가자, 이실리엘을 확인한 한 엘프가 놀라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엘란타니 니마리에)! 세계수의 첫째가지, 첫째 잎사귀, 첫째 꽃잎에 영광을!”

그렇게 첫 엘프가 소리치자 다른 엘프들이 이실리엘을 확인하고, 다 같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실리엘이 저 앞을 보니 꿇어 앉혀진. 두 명의 인간과 늘어선 기사들이 보였다. 엘프들을 뒤로하고 그들에게 다가간다.

“너 너희 감히 아무 이유 없이 남작의 영지를 습격하고 영지민을 학살하다니! 국왕의 군대가 절대로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영주는 꿇어 앉혀 진 채 소리를 지르다가 이실리엘을 보자 멍한 표정으로 말한다.

“에... 엘프 무.. 무슨 엘프가...?”

“세계수의 첫 번째 딸, 첫 번째 가지, 첫 번째 잎사귀, 첫 번째 꽃잎인 높은 엘프인 이실리엘 롱윈드가 엘프들을 대표해 당신에게 엘프들의 핏값을 받으러 왔습니다.”

“무... 무슨 개소리를! 감히 엘프 따위가! 영주를 핍박하다니!”

영주는 악에 받쳐 소리를 바락바락 질렀다.

“다 영지민을 위한 일이었을 뿐이야! 엘프 몇 마리 잡아 죽이고 팔았기로서니. 영주의 성에 쳐들어와 양민을 학살하다니! 국왕의 분노가 너희들에게 향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소리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실리엘이 말한다.

“당신의 죄로

땅은 당신에게 소산을 내어주지 않을 것이며

불은 당신을 위해 온기를 내어주지 않을 것입니다.

물은 당신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지 않을 것이며

바람은 더는 그대를 위해 불어주지 않을 것입니다.

떠나십시오. 당신의 죄 탓에 모든 정령이 당신을, 거부할 것입니다.

고통 속에서 떠돌다 비참하게 죽어갈 것이며, 세계는 당신의 영혼조차 거부할 것입니다.“

이실리엘의 말이 끝나자 뒤에서 이실리엘을 지켜보던 엘프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엘프어로 무엇인가 소리치기 시작했다.

로리엘이 나서서 무슨 말일지 궁금해하는 기사들에게 말한다.

“같은 엘프를 죽인 엘프 같은, 수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극악무도한 범죄자를 추방하는 형벌이다.

이제 저놈은 물도 마시지 못하고, 땅에서 나는 그 어떤 것도 자신의 손으로는 먹지 못한다. 영원히 떠돌다 메마른 대지에서 죽어도, 땅이 그를 거부할 거야, 정령이 그의 주변에서 완전히 떠나갈 거야.”

“내가 되돌아와 너희를 모두 도륙할 것이야!!!”

묶은 줄을 풀자 영주는 욕설을 내뱉으며 달려 성 밖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이실리엘이 다시 엘프들에게 다가가자, 기운을 차린 수인들이 무릎을 꿇고 있는 행정관을 바라보며 이실리엘에게 말했다.

“은인이여! 우리가 우리의 손으로 저놈의 피를 직접 취하는 것을 허락해 주시길!”

이실리엘이 고개를 끄덕이자. 흥분한 수인들이 짐승이 되어 달려들었다.

행정관의 비명이 길게 울려 퍼졌다.

떠나는 마차 행렬 뒤 남작의 성채에 살아 움직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날뛰는 불의 정령이 모든 걸 살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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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는 순결과 자애 교단의 사제로 어릴 때 순수한 신앙심으로 인정받아 사제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순수한(?) 신앙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어, 특별한 일이 없으면 새벽에 일어나 기도를 드리는 것을, 하루의 시작으로 삼고 있다.

그렇기에 오늘도 첫해가 뜨기 전, 새벽같이 일어나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는데, 건너편 침대에서 신음이 들려왔다.

“흑... 흐윽... 아 아니에요. 제가... 제가...”

“제가, 제가, 잘못했어요...”

엠마는 기도 중 리젤다의 신음과 비명에, 벌떡 일어나 리젤다에게 다가갔다.

리젤다는 엄청난 땀을 흘리며, 온몸을 떨어대고 있었는데, 엠마가 리젤다를 급하게 깨우자 지친 모습으로 눈을 떴다.

“헉... 헉... 에, 엠마...”

“리젤다 언니 왜? 왜 그래요? 어디가 아파요? 이 땀 봐!”

“어떻게 해, 질병치유를 해볼 테니까. 가만 계세요.”

“아니야 괜찮아 그냥 무서운 꿈을 꾼 거 같아...”

“아! 가만있어요!”

엠마는 강제로 리젤다를 눕히고는, 급하게 기도문을 외워 리젤다를 치료했다.

안색이 좀 더 돌아오는 것이 보이자. 엠마가 말했다.

“안 되겠어. 러셀님한테 말해야지!”

“제발 그것만은... 엠마야 제발 러셀이 걱정하는 거 싫어 진짜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리젤다의 호소에 엠마가 말한다.

“한 번 더 이런 일 있으면, 러셀님한테 바로 말할 거에요! 알겠죠?”

“그래 알겠어. 고마워...”

엠마는 리젤다의 이마를 수건으로 닦아주고는, 다시 기도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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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제발 형님!!!”

“안 돼 돌아가!”

“아 제발...”

지금 벨릭이 내 앞에서 이렇게 빌어대는 이유?

그것은 게 요리를 그만 먹게 해달라며 빌고 있는 것이다.

아니 나도 마음은 알지. 근데 애초에 게들이 밭이고 논이고 텃밭이고 다 작살을 내놔서...

지금 창고에 있는 말린 채소랑 곡물 같은 걸로 최대한 메뉴를 뽑아내곤 있지만...

하 요즘에도 몇 마리씩 잡히는 게들 때문에, 주변에 짐승도 눈에 잘 안 띄고, 내가 그렇게 극도로 혐오하는 영원의 게 스튜나 끓여 대고 있으니...

기사들은 별말 없긴 한데, 내 여관에, 내 음식에, 길들여진 벨릭은 참을 수 없나 보다.

“알았어... 하, 다음 식사는 내가 한번 준비해볼게.”

“끼 야호!”

벨릭이 환호한다. 창고의 저장된 음식을 풀어서라도 먹을만한 걸 좀 만들어야겠다.

솔직히 게 나도 질리기도 하고...

벨릭이 사라지고 테이블을 치우려고 하는데 테이블 위에 남겨진 음식이 보인다.

“누가 남긴 거지? 벨릭은 아닐 건데?”

혼잣말을 하며 곰곰이 생각해본다.

아까 같이 먹은 사람이 엠마랑 리젤다인데 엠마가 살이 쪘느냐고 하더니 엠마인가?

생각 없이 테이블을 치우고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나 엠마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 않은 일들이 무슨 일을 불러올지 생각지도 않은 채 말이다.

다음날 아침 아침을 먹던 리젤다가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우욱... 우욱...”

다른 테이블에서 아침을 먹던 날카로운 인상의 남색 머리 남자가 황망한 눈동자를 떨어대며 나를 쳐다본다.

'어허! 아냐! 절대 아냐! 이... 이 사람 무슨 큰일 날 상상을...'

“어 언니!?”

옆의 엠마가 깜짝 놀라 리젤다를 확인하기에 나도 달려가 보았다.

리젤다가 삼켰던 음식을 다 토해내고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엠마를 안고 있었다.

“왜 이래? 무슨 일이야?”

“아니 며칠 전부터 음식도 잘 못 드시고...”

“뭐 며칠?”

“아니 그게 처음에는 그냥 잠을 잘 못 주무...”

소란에 그녀의 오빠까지 달려왔다.

“리젤다 무슨 일인 것이냐?”

엠마에게 안겨있는 리젤다의 턱을 돌리자 피폐해진 얼굴이 드러났다.

다크서클은 이미 시커멓게 내려앉았고 입술도 바짝 말라있었다.

“왜이래?!”

나는 재빨리 그녀를 안고는 2층 방으로 올라가려 했다.

“제가 안겠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오빠가 내가 다리를 저는 것을 보더니. 자신이 리젤다를 안겠다고 한다.

하지만 리젤다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니. 그녀의 오빠가 조용히 물러났다.

2층으로 올라가 그녀를 눕히고 상태를 확인했다.

엠마가 급하게 질병치료를 해도 차도는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네요. 제가 신성력이 높진 않아도 돌림병이 아닌 이상에야...”

“최근에 뭐 이상한 것 없었어?”

“아뇨 그냥 최근 자다 깨는 걸 좀 반복하는 거 같았는데?”

“포션을 먹여볼까?”

“질병 치유포션이 있나요?”

“어 혹시 몰라 사다둔 2개 있어”

나와 엠마가 정신없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에 리젤다가 말한다.

“러, 러셀 그냥 피곤해서 그래... 좀 쉬면 나을 거야...”

“나 그냥 조금만 잘게...”

그렇게 잠시 쉬겠다며 잠든 그녀는 그날 깨어나지 못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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