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 34. 어? 처남?
* * *
벨릭이 무엇이 그렇게 분한지 분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러댔다.
“크윽! 씨발 용도 아니고 전설의 마수도 아니고! 나 벨릭이 게 따위에게!!”
짐승 같은 놈이라 그런지 같이 고생한 다른 넷은 다 실신해있는데. 악을 바락바락 지르면서 아직도 게에게 어디서 주웠는지 모를 창을 찔러대고 있었다. 벨릭의 몸에는 게의 뿔이나 집게에 걸려 긁히거나 찔린 상처가 뺴곡 하게 나 있었고, 온몸이 피투성이인 벨릭의 뒤로 이미 쓰러진 엠마와 에브리나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다크엘프 둘은 서로 꼭 안고 여신께 기도를 드리며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다. 주변 집 지붕 위에는 마을 사람과 릴리아나 누님 애니와 한나 아주머니 등이 올라가 마을과 자신들의 마지막을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그렇게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들의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을 때, 멀리서부터 말발굽 소리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까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던 저음의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부~웅~~~ 부~웅 부~웅~~~ 부~웅~~~ 부~웅 부~웅~~~”
지축을 울리는 군마들의 말 발굽 소리와 함께 기사들의 함성이 절망에 빠진 마을 사람들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인간을! 몬스터로부터!”
그 소리에 부둥켜안고 슬픔의 눈물을 흘리던 사람들의 눈물이 희망과 기쁨의 눈물로 변해 흐르기 시작했다.
“기! 기사다! 구조대가 왔어! 와아아아아악!”
“엉~ 엉~ 엉~ 살았어!!!”
“죽음의 여신께서 역시, 이런 명예롭지 못한 죽음을 허락 하실 리 없었습니다. 언니!
이삼십 명으로 이루어진 기사들은 첫 번의 돌격으로 강가와 마을 사이를 양단해버렸다. 밀려드는 전마에 도망갈 곳을 찾던 게들이 게였던 것으로 변해버리자, 마을과 강가 사이는 게들의 잔해만이 흩어져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첫 번의 돌격 후 기사들은 말머리를 돌려 두 갈래로 흩어졌다. 열 명의 기사들이 마을 입구를 찾아 도는 것으로 보이기에 벨릭을 향해 소리쳤다.
“벨릭! 기사들이 입구로 온다! 입구를 열어야 해!”
“네, 형님! 자! 다 갑시다! 여기만 밀고 가면 됩니다!”
“갑시다!”
벨릭이 마을 사람들과 아직 서 있는 모험가들을 끌고 선두에서 게들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지붕 곳곳에 올라가 있던 여자와 아이들도 쇠스랑이나 막대를 주워들고는, 사람들의 대열에 참여해 다 같이 마을 입구로 게들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조금만! 앞으로 조금만!”
“힘을 냅시다! 조금만 더!”
그때 마을 광장에 엠마와 같이 널브러져 있던 에브리나가 비틀비틀 일어나더니. 평소보다 좀 작은 화염구를 만들어내 벨릭의 앞으로 쏘아 보내고는 그대로 완전히 바닥에 처박혀 버렸다. 에브리나의 화염구로 몇 마리의 게들이 박살나고 주변의 게들이 열기에 사방으로 흩어지자, 벨릭과 마을 사내 몇 명이 악을 쓰고 달려들어 목책 입구까지 게들을 밀어붙였다.
“조금 조금만 더!”
사람들이 목책 입구로 다가가자 기사들이 밖에서 목책을 말과 철퇴를 이용해 두드리고 있었는데, 쿵쾅거리는 소리에 목책이 흔들리고는 있었지만, 얼마 전 수리한 목책은 튼튼함을 자랑하는지. 열릴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큭... 젠장! 우리들이 더럽게 튼튼하게 만들었나 봐,,,”
목책을 수리했던 목수들이 욕설을 내뱉으며 웃었다.
마을 사람 전원이 마을 입구로 밀려들자. 게와 사람이 뒤엉겨 난장판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마지막 기운을 내, 게의 입을 찌르거나 긴 막대기로 게를 뒤집어 배를 깨버렸다. 하지만 게들도 최후의 저항을 하듯, 마을 사람 몇몇의 팔이나 다리를 집게로 잡아 큰 상처를 내어 마을 입구가 피로 물들었다. 그런 혼전의 와중에 벨릭이 결국 한쪽 다리가 게에게 잡힌 상황에서도 이를 악물고 목책에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한쪽 다리에 매달린 게를 질질 끌고 벨릭은 목책의 걸쇠를 밀어 올렸다.
“끄아아아악!”
비명과 함께 문이 벌컥 열리고 십여 명의 기사들이 말을 타고 마을로 난입했다. 기사들은 능숙한 솜씨로 사람들을 피해 말을 움직여 철퇴로 마을 안에 흩어져있던 게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밖에서도 비슷한 숫자의 기사들이 마을에서 강으로 도망치는 놈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살... 살았다! 으아아아악!”
“흑흑흑흑... 어흐윽...”
마을 사람들과 용병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마을 내부의 게들이 기사들과 마을 주민에게 정리되고, 주저앉은 용병들과 마을 사람들이 상처를 보살피고 있을 때 기사들이 말에서 내려 주민들에게 무엇을 묻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 중 하나가 나와 리젤다가 있는 지붕을 가리키자 기사들이 곧 내가 있는 곳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내가 있는 지붕 아래서 한쪽 무릎을 꿇더니.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일어서 나를 향해 말했다.
“러셀님이십니까?”
북부 기사로 보이는데 평민인 나에게 존칭을 쓰는 게 뭔가 이상해 어색하게 대답했다.
“네? 그... 그렇습니다만?”
“북부기사 브라한 노스윙을 포함한 스물다섯명의 눈꽃의 기사 높은 엘프이신 이실리엘님의 명을 받고 도착했습니다!!”
‘헐...’
나는 그의 말을 듣고 뒤를 쳐다봤다. 누워있는 리젤다가 보였다.
리... 리젤다야 나 어떻게든 해보려고 마음먹었는데...
그 전에 저분들한테 어떻게 될지도 모... 모르겠다. 기사들이 내가 발로 차 밀어두었던 사다리를 다시 지붕에 대주었기에 리젤다를 안고 사다리를 내려왔다. 그때 외부를 정리하던 기사들이 전장 정리가 끝났는지 마을 중앙에 말을 세워두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들도 내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경의를 표하며 말했다.
“에반 화이트힐, 세계수의 자녀인 높은 엘프의 반려이신 러셀님을 뵙습니다.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였습니다!”
너무나도 이 상황이 어색해 재빨리 말했다.
“그 일어나시죠. 덕분에 살았습니다. 제가 감사를 드려야 할 처지인데...”
“아닙니다! 높은 엘프이자 세계수의 수호자이신 이실리엘님의 반려께서는, 말씀을 편하게 해 주시지요.”
일어난 기사가 헬멧을 벗어 허리에 끼자. 날카로운 눈매와 남색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내 품에 안긴 리젤다와 그 기사를 번갈아가면 한 번씩 바라보았다.
‘음... 북부의 기사, 남색 머리, 날카로운 눈매...’ ‘음... 설마 아닐 거야 그치?’
‘에이 설마? 그치?’
그러나 나의 그런 마음속 외침을 비웃듯. 그 남색 머리의 기사가 내 품에 들려있는, 리젤다의 모습을 보더니.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리젤다!?”
‘하... 시바 인생... 어질하다 진짜...’
내 허탈한 표정에 기사들이 무슨 영문인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 어... 처남? 형님? 하...
리젤다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정오의 태양이 떠오르고 있을 때였다.
리젤다가 정신을 차리고 옆을 보자 침대에는 엠마가 죽은 듯 누워있었다. 가슴이 전혀 움직이지 않기에 깜짝 놀라 조심스럽게 코에 손을 가져다 대니 아주 조용한 숨결이 느껴졌다. 리젤다는 피식 웃고는 세숫물이 담긴 통으로 손을 가져가자 벗겨진 손에서 짜릿한 통증이 느껴진다. 살짝 인상을 쓰면서 얼굴을 조심스레 씻었다. 차가운 물이 얼굴에 닿자 좀 더 정신이 들었다.
어제 분명히 쓰러진 기억은 나는데 갑옷도 다 벗겨져 있었고 몸도 누군가 닦아 준건지 피와 땀이 사라져 있었다.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자 현기증이 나 옆에 벽을 짚고 말았다.
심한 갈증이 느껴져 탁자를 보았지만 물병은 보이지 않았다. 아래 내려가서 물이라도 한잔 마실까 싶어 천천히 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 나가자 복도 끝 계단에서 러셀이 올라오는 게 보였다.손에는 물병과 컵을 들고 있었는데 리젤다를 보자 화들짝 놀라 그것들을 복도에 던져버리고는 절룩거리며 달려왔다.
“괜찮아? 리젤다?”
‘어? 러셀이 이상했다.’
한 손으로 내 손을 잡더니. 머리를 짚어서 열을 확인해보고는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좀 더 누워있어야 하지 않아?”
러셀의 행동에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왜지? 왜 이렇게 다정하지?’
‘무슨 일이 있었나?’
‘아... 아...?’
끊긴 기억 조각조각 난 기억이 이어 붙어지며 조금씩 떠오른다. 그리고 불현듯 한 단어가 기억났다.
‘러... 러셀...좋아해...’
‘화악...’
얼굴이 활화산처럼 물들며 열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가슴은 터질 것처럼 뛰어댄다. 내 반응에 러셀이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왜! 왜 이래? 열! 열이!”
러셀은 그대로 나를 안아 들더니 재빠르게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러셀의 품에서 좋은 냄새가 났다. 가슴이 아까보다 더 빠르게 뛰는 것 같았다. 러셀은 내 침대에 다시 나를 눕히더니. 걱정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리젤다 잠깐만 기다려 사제 불러올게. 알았지?”
뒤돌아 달려 나가려던, 러셀의 손목 옷깃을 꾹 잡았다.
“그... 괜찮아...요... 가... 가지 마세요.”
“어? 아니야 열이 나면 몸이 어디가...”
내가 고개를 도리도리 젓자 러셀이 침대 옆에 살포시 앉는다. 그리고는 몸을 숙여 그 큰 가슴으로 나를 부드럽고 따듯하게 안아주었다. 러셀의 따듯한 품과 좋은 냄새에 푹 빠져들었다.
옆 침대에서 엠마가 두 눈을 부릅뜬 채,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