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34화 (34/352)

〈 34화 〉 33. 그래! 쓰레기가 되자!

* * *

그란폴의 굳게 닫힌 성문과 성벽 주변으로 게들이 몰려들었으나, 게들이 가파른 성벽을 오를 수는 없었다. 목책이라면 발톱을 찍어 오르겠지만 돌 벽은 그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주변 피난이 완료되자 성 주변에는 게들의 먹이가 될 만한 생물이 없어, 게들은 성벽을 빙글빙글 돌며 먹이를 찾다 몸이 말라오자 다시 강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일단의 소란은 금방 잦아들었다. 주민의 성내 피난이 완료되자 영주의 병력과 헤럴드가 이끄는 용병들은 성내로 후퇴하고, 브라한과 아홉 명의 기사도 이들과 함께 성내로 물러났다.

조금 후 굳게 닫힌 성벽 너머 늪지에서 먹구름이 몰려들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용병 길드에서 북부에서 온 열 명의 기사들과 헤럴드가 만났다. 의뢰의 내용을 긴급하게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서 오시죠. 북부의 방패들이여.”

“미안하지만 용건부터 해결해야겠군. 성 밖이 소란스럽긴 하지만 말이네... 북부 5 왕국과 높은 엘프의 의뢰를 확인하러 왔네! 의뢰를 확인한 자는 누군가?.”

“아 그럼... 의뢰주 확인을 먼저”

“여기 있네.”

브라한이 의뢰계약서와 인장을 전달하자, 헤럴드가 그것을 꼼꼼히 확인하고는 말했다.

“확인했습니다.”

“그래, 의뢰 대상을 찾은 사람은 누군가?”

“의뢰대상이 직접 연락을 해 왔습니다.”

“오! 그분께서 직접!!!”

“신분은 확인 한 건가?”

“예 한쪽 다리를 저는 것 이름과 여관주인이 일치합니다.”

헤럴드의 말에 북부 기사들이 흥분해 환호했다.

“그래 그럼 그분은 지금 어디 계시나?”

“그... 이곳에서 하루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웜포트라는 작은 마을에 계십니다.”

“그래, 그럼 어서 출발을!!! 혹시 안내역을 고용할 수 있을까?”

브라한이 마을까지의 안내역을 구하려 물었지만 목적을 이룰 수는 없었다.

“지금은 힘드실 겁니다. 밖의 게들을 헤치고 가야 하기도 하고, 또한 그 마을도 거대 게들에게 습격 받고 있다고 합니다.”

“뭐라?! 다들 서둘러라! 잠깐도 지체할 수 없다!”

브라한이 습격 사실에 깜짝 놀라 기사들에게 명령하자. 다른 기사들도 급하게 몸을 돌려 밖으로 향하려 했다. 그 뒤로 헤럴드의 말이 들려왔다.

“지금 그곳에도 많은 게가 몰려들고 있다고 길드 소속 마법사가 연락을 해왔습니다. 더군다나 웜포트까지는 강을 따라 하루거리. 게들이 강 주변에 흩어져있다면, 지금 병력으로는 거기까지 가는 것조차 힘드실지 모릅니다.”

“그래도 가야 한다! 북부의 흥망이 여기에 걸려있다!”

“예? 그... 무슨?”

북부의 흥망이 걸려있다는 브라한의 말에 부 길드장 헤럴드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지만 브라한은 거기에 대답하지 않고 말했다.

“그렇다면 용병을 고용할 수 있는가? 웜포트 까지 최대한 많이 부탁하네!”

“그것도 지금은 불가능합니다. 몬스터에게 본 도시가 습격 받을 시. 모든 용병은 영주의 휘하에 들어와야 하니 영주님의 허락 없이는 불가능 합니다.”

“이런 낭패가...”

브라한의 뒤로 도열한 아홉 명의 기사 중, 남색 머리의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남자가 앞으로 나오더니 브라한에게 말했다.

“브라한 내일이면 삼개 조가 더 도착할 것이네! 그들과 합류하면 우리만으로도 충분하네! 하루만 쉬었다 출발하는 것은 어떻겠나? 전마도 하루는 쉬어주어야 할 것이네?”

“에반... 내일이면 너무 늦을 것이네, 가는데 하루라 하는데... 그분께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다면...”

둘의 고민을 듣던 헤럴드가 말했다.

“내일 출발하시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듯합니다. 지금 그 마을에는 은 등급 모험가 열두 명이 현재 주둔 중이라, 그때까지는 충분히 버텨낼 것입니다.”

헤럴드에 말에 마음이 조금 놓인 브라한이 웃으며 말했다.

“오!!! 은 등급 용병이 열두 명이나 주둔하고 있다고? 아니 어찌? 설마 의뢰인을 지키려고 부 길드장 자네가 손을 써 둔 것인가? 부 길드 장 제법 눈치가 있군! 혹시 그분을 안전하게 구출하게 된다면, 자네의 노력을 잊지 않고 후하게 사례하겠네!”

브라한이 좀 오해를 하긴 했지만 헤럴드는 아무 내색도 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럼 다른 분들이 도착하실 때까지 쉬시지요. 주민들의 성내 피신으로 숙소를 구하기 힘드실 듯 하니. 숙소는 저희가 제공하겠습니다. 좀 전의 은혜도 갚을 겸...”

“그러지 고맙네!”

“마리! 기사님들 숙소 안내해 드리게!”

“옛 부길드장님!”

밤색머리 주근깨 접수원 마리가 달려와 북부 기사들을 숙소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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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도착한 삼개 조 열다섯 명의 기사와 합류한 북부의 기사 스물다섯명은 아침이 밝자마자 성문을 열고 웜포트를 향해 질주를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던가.저 멀리 목적지인 웜포트 마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침 일찍 그란폴을 출발해 말을 바꿔 타며 멈추지 않고 달려왔기에 정오가 조금 지났을 때 목적지인 웜포트 마을을 눈앞에 둘 수 있었다.

멀리서 바라본 웜포트 마을은 마지막 저항을 하고 있는 듯 보였었다.

강을 따라 늘어선 목책에는 구멍이 뚫려 게들이 쏟아져 들어가고 있었고, 목책 여기저기에는 마을 주민이 아직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지만 그런 저항을 비웃기라도 하듯. 목책을 타고 오른 게들이 마을 주민들의 저항을 뚫고 목책 안쪽으로 비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목책에서 밀려난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근처의 집 지붕으로 밀려났다. 지붕을 따라 오르는 게들을 향해. 마을 주민들 몇몇이 격렬하게 저항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도 길지 않으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브라한 노스윙은 동료와 기마용 말을 나무에 묶어두고 북부에서 데려온 전투 마에 갑주를 씌우고 돌격 준비를 시작했다.

몇 달간 긴 여정이었고 그들의 목표가 저 마을 안에 있었다.

마음은 급했지만 서두르지는 않았다.

지금 저들을 구할 사람은 자신들밖에 없기 때문이다.

잠시 후 모든 준비가 끝나고 자신의 말에 오른 브라한이 자신의 마상용 철퇴를 어깨에 걸치며 말했다.

“에반! 돌격 후 목책 주변은 열다섯 명을 이끌고 네가 지휘해라! 나머지 열 명은 나를 따라 마을 안쪽으로 돌입한다.!”

“알았다 브라한!”

남색머리에 날카로운 눈매의 남자가 브라한의 말에 오른손을 들어, 왼쪽 가슴의 눈꽃 문장을 두드리며 대답했다.

브라한이 철퇴를 뽑아들고 전방을 가리키며 크게 외쳤다.

“북부의 사나이들이여! 우리가 죽을 곳은 어디인가?”

“북부의 얼어붙은 대지!”

모든 기사들이 대답하듯 외친다.

“북부의 대지가 아닌. 남부에서 죽을 멍청이는 없겠지?”

브라한의 말에 기사들이 다 같이 웃는다.

양각 나팔을 불어라! 북부의 사나이들이 왔음을 알려라!”

“부웅~~~ 부웅 부웅~~~ 부웅~~~ 부웅 부웅~~~”

“부웅~~~ 부웅 부웅~~~ 부웅~~~ 부웅 부웅~~~”

양의 뿔로 만든. 묵직한 소리를 내는 북부 특유의 나팔이, 남부의 벌판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늘어선 스물다섯명의 기마병이, 웜포트를 향해 쐐기대형으로 천천히 돌격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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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웅~~~ 부웅 부웅~~~ 부웅~~~ 부웅 부웅~~~”

저음의 기묘한 나팔소리가 몰려든 게들과 전투를 벌이는 사람들의 함성과 비명 사이를 뚫고 낮게 깔렸다.

“무슨 소리지?”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게들을 밀어내던, 긴 남색머리의 그녀가 조금 비틀대는가 싶더니. 목책 아래로 꺼지듯 떨어져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리... 리젤다!!!”

절룩이는 다리를 끌고 쓰러진 리젤다에게 도착하자, 목책 여기저기서 긴급한 외침이 쏟아진다.

“더! 더 이상은 안 돼! 다들 물러납시다!”

“마을 안쪽으로! 아이들과 여자들은 지붕 위로 빨리!”

사람들이 목책에서 물러나자. 목책 위로 게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리젤다를 안아 들었다.

‘가볍다.’

제법 무게가 나가는 가죽 갑옷을 입었음에도 그녀는 가벼웠다.

그녀의 남색 머리카락이, 절룩거리며 움직이는 나에 맞춰 출렁인다.

내가 손에 감아준 붕대는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고, 손끝에서 핏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녀의 상태는 틈틈이 확인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상태가 심각하다고 그렇다고 그녀를 쉬게 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라니...

가슴한편에 불편감이 올라온다. 그녀가 나를 좋아하고 있음을 얼마 전 알 수 있었다. 키스를 받았는데 모른다고 하면, 그건 천하에 바보이거나 나쁜 놈이거나 아닐까? 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알고 있음도, 쉽게 그녀의 마음을 허락할 수는 없었다.

저 멀리 어딘가에서 또 다른 그녀도 자신을 찾아오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를 안고 사다리를 이용해 근처 지붕으로 올라갔다.

지푸라기로 된 푹신한 지붕 위에 그녀를 눕혔다. 지붕 경사면으로 떨어지지 않게, 목을 안아 내 다리에 뉘었다.

땀을 닦던 수건에 수통의 남은 물을 부어, 물을 흠뻑 적셔 쓰러진 그녀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왠지 울어버릴 것 같았다. 눈에 맺히는 이슬을 꾹 억눌러 참았다.

차가운 물수건에 그녀의 눈이 파르르 떨리더니. 잠시 후 눈이 천천히 떠졌다. 뭐라고 말해야 하나 잘 잤느냐고 해줄까? 웃으면서? 아니면...

하지만 그건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그녀의 손이 힘겹게 천천히 올라오더니. 떨리는 손으로 내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그녀의 손에서 시작된 핏물이 내 뺨에도 조금씩 흐른다.

그녀의 눈을 바라보자 그녀가 힘겹게 입을 열어 나에게 말했다.

“러... 러셀...좋아해...”

그리고 꺼진 촛불처럼 정신을 잃고 만다. 입가에는 무엇이 그리 좋은지. 미소를 떠올라 있었다.

그녀의 미소를 보며 생각했다.

그녀는 정말 고마운 사람이라고...

그녀의 고백으로 나를 향해 오고 있는 또 다른 그녀의 진심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사소한 몇 번의 부딪침과 별거 아닌 교류 속에서도, 조금씩 나를 향한 마음을 키워간 리젤다는, 자신이 죽는지도 모른다는 상황 앞에서, 간신히 자신의 마음을 나에게 전달할 용기를 내었다.

나를 향해 오고 있는 그녀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나를 향해 커져가던 마음이 내가 그녀의 목숨을 구해주고 대신 죽어가던 그 순간, 놓쳐버린 화살처럼 나에게 쏘아진 것일 뿐임을 말이다.

내가 그녀의 목숨을 구해준 부채감 따위가 아니라 말이다.

그녀를 조심히 품에 안았다. 그리고 정신을 잃은 그녀의 귓가에 조용히 말해주었다.

“고마워...”

이제야 확실하게 둘의 마음을 확인하고 인정하게 되었다.

이 순간 둘의 마음이 내 오해와 우유부단함을 넘어 이제 정확히 내 마음에 닿아 버렸던 것이다.

둘의 마음을 어떡해야 할까?

그래 어쩌면 그냥 쓰레기가 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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