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32화 (32/352)

〈 32화 〉 31. 눈물과 의무

* * *

브라한 노스윙이 말을 달려 그란폴이 보이는 위치에 도착했을 때.

그란폴 옆을 지나는 강에서는 빨간 물결이 시작돼 도시로 밀려들고 있었고, 성 주변에 사는 농민들은 갑자기 시작된 재앙에 패닉에 빠져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성으로 밀려들고 있었다.

“저... 저것이...”

열 명의 기병들은 그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멍하니 바라봤다.

강에서 수없이 기어 나오는 그것은, 강에 가까운 작은 나루터와 주변 농지부터 빨간색으로 천천히 물들이며 느리지만 착실하게 성 쪽으로 밀려들고 있었던 것이다.

브라한과 열 명의 기사의 패닉은 오래 가지 않았다.

곧 열 기사 중 리더인 브라한이 외쳤다.

“북부는 무엇으로부터 인류를 수호하나?!”

“마물과 몬스터로부터!”

“농부들이 성으로 도망치지 못하고, 저것들에 쫓기고 있다! 북부의 용사들이여 가자!

열 명의 기사의 돌격이 시작되었다.

­­­­­­­­­­­­­­­­­­­­­­­­­­­­­­­­­­­­­­­­

“헉 헉 헉...”

“하... 젠장...”

리젤다를 포함한 다섯은 어제 게들을 발견한 후. 정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야영지로 달렸다.

하지만 야영지에 도착하자마자 거친 숨을 몰아쉬며 미친 듯이 물자를 챙겨야 했고, 다시금 마을을 향해서 걷거나 뛰기를 반복하며 밤새 쉬지 않고 이동해야 했다.

다행스럽게 게들이 빠르지는 않아, 장비와 물자를 회수해서 복귀 길에 오를 수 있었지만.

느린 대신 게들은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잠시라도 쉬고 있으면 멀리서 다가오던 게들이 금방 따라붙었고, 멀리 강 쪽에서도 붉은 물결이 시작되고 있었다.

어제 늪에서 후퇴 중에 만났던 늪지 트롤이나 리자드맨 십 여 마리들이, 자신들을 보고 덤벼들다가 어느새 다가온 게들에게 녹듯이 분해되는 것을 본 후.

이들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공포심은, 그들의 발이 멈추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 너무 졸리고 힘들어서 더는 못 걷겠어! 헥헥”

제일 체력이 약한 에브리나가 땅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벨릭이 아무 말 없이 나서 에브리나를 업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에브리나가 벨릭의 등 위에서 “고마워 벨릭...” 이라고 말한 뒤 바로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강에서도 이제 수십 수백 마리가 무리지어 기어오르는 것을 본 리젤다가 말했다.

“그... 헉헉... 마을은 괜... 괜찮을까?”

“킁! 글쎄? 러셀이 있으니까 괜찮지 않겠냐?”

지구력이 좋은 늑대 수인이라 비교적 상태가 좋은 브릴다가 대답했다.

지칠 대로 지친 다섯이 멀리서 마을 입구가 보이는 곳에 도착했을 때에는, 마을을 끼고 흐르는 강에서 시작된 붉은 물결은 곧장 마을로 들이닥치고 있었다.

“어? 이거 늦으면 마을로 못 들어갈 것 같은데?”

“달려! 입구가 막히면 못 들어간다!”

에브리나를 업은 벨릭과 셋이 질주를 시작했다.

넷이 마을과 가까워지는 속도보다 게들이 마을 입구 목책으로 밀려드는 속도가 더 빨랐기에, 이제 마을의 입구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마을 입구의 절반은 이미 밀려든 게들이 하나둘 쌓이고 있었다.

“아... 안 돼!!!”

리젤다가 다급하게 외쳤지만 어쩔 방법이 없었다.

그때 벨릭의 등에 업혀있던 에브리나가 눈을 떠, 벨릭에게 업힌 그대로 한 손에 화염 구를 만들더니. 게들이 몰려든 목책 입구를 향해 화염구를 던져버렸다.

“다! 다! 죽어버려!”

큰 폭발음과 함께 화염이 타오르자 입구로 몰려들던 게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물속에 생활하는 게인 만큼. 불에 그슬리자 기겁을 하고 물러난 것 같았다.

붉은 껍질이 더욱더 붉어지며 고소한 냄새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벨릭이 그 냄새를 맡고는 짜증나는 투로 외쳤다.

“씨발! 게가 진짜 맛있기는 한가 보네 냄새 진짜...!”

그리고 어디선가 화살이 한발 두발 날아오더니. 게들의 껍데기가 무슨 갓구운 빵인 것처럼 뚫어내며, 주변에 움직이던 게들을 한둘씩 침묵시키기 시작했다.

“형!!! 형님!!!”

벨릭이 울먹거리며 러셀을 찾았다.

그때 목책의 문이 살짝 열리고 열린 틈으로 검은 피부의 엘프 둘이 나오더니. 마을 입구에 도착한 넷을 향해 소리쳤다.

“빨리! 안으로!”

넷이 헐레벌떡 안으로 뛰어들자 목책이 곧 닫혀버렸다.

다섯은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는데, 엠마와 에브리나는 눈물 콧물 범벅으로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

“허윽 얼마나 무서웠다고요!”

“아~ 진짜 이게 뭐야 갑자기! 우앙~”

리젤다는 땀을 뻘뻘 홀리며 주저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누군가 수건과 물주머니를 내밀었다.

그걸 받아들고 고개를 들자 리젤다의 앞에는 러셀이 웃고 있었다.

“러... 러셀...”

“다녀왔어?”

러셀의 얼굴과 함께 러셀의 따듯한 목소리를 들은 리젤다는 뭔가에 이끌리듯 그대로 러셀을 안고, 엠마, 에브리나와 함께 마을을 울리는 삼중주를 시작했다.

“흑... 흑흑 끄윽... 이대로 죽는 줄 알고... 흑... 너... 너무 무서웠어요...”

리젤다의 포옹에 손을 어쩔 줄 몰라 하며, 어색해하던 러셀은 같이 울던 엠마 에브리나와 브릴다에게 매서운 눈총을 받고는, 조용히 리젤다의 머리를 쓰다듬어 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울먹거리며 형님을 찾으며, 러셀에게 달려들던 벨릭이 셋에게 끌려간 것도 모르고 말이다.

­­­­­­­­­­­­­­­­­­­­­­­­­­­­­­­­­­­­­­­­

성안에서는 패닉에 빠진 영주 에드먼드 발트를 뒤로하고 용병, 모험가 길드 그란폴 지부로 돌아온 부 길드장 헤럴드는, 그 시간 도시에 흩어져 술을 퍼먹고 자빠져있는 용병들을 끌어 모으려 애쓰고 있었다.

“어차피 성이 뚫리면 다 뒈지니까! 술 퍼먹고 여관에 자빠져있는 새끼들 다 깨워서 길드로 끌고 온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지금이 점심이 지난 후라는 것이었다.

웬만한 모험가 놈들은 다 일어나 있을 것이기에 길드에서 아침부터 술 퍼마시던 놈들의 엉덩이를 후려 차, 다른 놈들은 찾아오라며 밖으로 내쫓았다.

그리고 비교적 정신이 멀쩡한 놈들을 추려서 성문으로 내보냈다.

“병신들아 어차피 성문이나 성벽이 뚫리면 다 뒈진다.

성문에 피난민이 몰려들고 있을 거다! 나가서 시간이라도 끌어! 알겠나?”

“아니 씨 발! 용병이 무슨 공짜로 일을...!”

불만을 말하던 놈은 헤럴드에게 머리통을 처맞고 그대로 고꾸라져버렸다.

“접수원 마리! 그란폴 용병 모험가 수칙 1조 3항!”

“그란폴에 용병 모험가로 등록한자는 몬스터로 인한 영지의 위협 시, 영주의 소집 하에 징집될 수 있다! 켁켁...”

밤색머리 주근깨 아가씨가 헤럴드의 지시에, 소리를 있는 힘껏 지르고는 목을 켁켁거렸다.

“불만 있는 새끼들은 용병패 반납하고 꺼져라! 다시는 그란폴에서 이 짓거리 못하게 해주마! 다! 따라와라 내가 직접 지휘한다!”

살기등등한 부 길드장 헤럴드가 자신의 할버드를 들고 성문 쪽으로 달려 나가자, 은 등급 용병들이 말없이 그 뒤를 따라 달려나갔다. 눈치를 보던 철 등급 나무 등급 용병들도 그 뒤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단 말인가, 모험가나 용병들이 영주에게 직접 지불하는 세금이 없는 대신. 대 늪지와 가까운 그랄폴은 몬스터 침입시, 영주가 용병을 강제로 징집할 수 있는 것이다.

분명 길드에 가입하거나 활동을 등록할 때, 한 번씩 주입해주는 사실인데 저런 헛소리를 하는 놈들을 보니. 헤럴드는 이 소동이 끝나면 길드를 한번 물갈이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성문으로 뛰었다.

헤럴드가 도시 입구에 도착했을 때. 이미 도시를 두르고 있는 성벽 위로 많지는 않지만 영주의 사병들이 도열해 성 밖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고, 성 입구로 쏟아져 들어오는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넘어지거나 깔려 길을 막거나 구르는 등 아비규환이 이어지고 있었다.

성문 입구를 지키는 경비대들이 질서를 회복해 보려 하지만, 난장판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성문입구에서 대기하던 말을 탄 기사들도 밀려드는 사람들에 어찌하지 못하고 난처한 표정으로 서 있을 뿐이었다.

헤럴드는 성곽으로 뛰어 올라갔다. 영주의 사병 중 몇몇 지휘관들이 인사를 해왔지만, 헤럴드는 바로 성벽 끝으로 달려가 외부 상황을 확인했다.

멀리 몰려오는 게들이 벌써 성벽 근처까지 다다랐고, 사람들은 공포와 패닉에 넘어지고 구르다 게에게 다리를 잡혀 울부짖거나, 끌려가서 게 때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런데 저 멀리서 열 명의 기병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기사들은 거대 게의 새끼들을, 남김없이 마상 철퇴로 깨부수고, 전마로 밟아 깨 낙오한 사람들을 구조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헤럴드가 모험가들에 외쳤다.

“로프!!! 로프를 가져와라!!!”

모험가들이 모은 로프를 엮어 성벽 아래까지 로프를 내렸다. 헤럴드를 시작으로 모험가들이 하나둘 성벽 아래로 내려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헤럴드의 모습을 본 영주의 사병들이 곧 로프를 몇 줄 더 내리자. 성문 앞에서 대기 중이던 기사 몇과 사병들이 거기에 합류했다.

병사들과 용병들을 도열시키고 돌격하려는 그때, 로프로 내려온 기사한명이 다가와 투구를 올리곤 웃으며 헤럴드에게 말했다.

“헤럴드경 이렇게 같이 또다시 싸울 기회가 생기는군요?”

“뭐야 애송이 루크인가? 기사는 그만 둔지가 언제인데! 경은 무슨 경!”

용병 모험가 길드 그란폴 지부 부 길드장은 항상 발트가의 퇴역 기사들이 맡았다. 세금을 우대해주고 발트가가 길드와 거래한 대가였다.

헤럴드가 몇 해 전까지 발트가의 부 기사 단장이었던 사실은 도시 주민이라면 대부분 아는 사실이었고, 현 부기사단장인 루크가 그렇기에 아는 척을 한 것이었다.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돌격! 기마들 쪽으로 게들을 밀어붙여라!”

헤럴드는 제대로 대꾸도 하지 않고 병사들과 용병들을 돌격시켰다.

늘어선 병사들이 카이트 실드로 벽을 세우고는 달려들어 게들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게들이 낮은 체고를 이용해 방패 벽 아래로 기어들자, 그 틈으로 핏물과 병사들의 비명이 솟구쳤다.

“끄아아악! 내 다리! 내 다리!”

“아아악~!”

“이런 병신들 방패 더 내려! 이런 것까지 설명해줘야 하나?”

헤럴드의 옆에 있던 기사가 사병들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무너진 방패 벽 사이로 모험가들이 달려들어, 게들을 철퇴 같은 둔기로 깨부숴 그들을 구해냈다.

“검을 든 새끼들은 아가리를 찔러라! 아가리 안쪽에 심장이 있다!!

아가리를 통해서 몸통 중간까지 찔러야 한다!”

검으로 등껍질을 내리치던 병사와 용병들에게 헤럴드가 외치자, 창이나 검을 들 용병이나 병사들이, 재빨리 게들의 벌린 입으로 창과 검을 쑤셔 박아대기 시작했다.

그때 손에든 마상 철퇴를 휘둘러 사방으로 게의 다리를 휘날리며, 선두의 기마병이 자신들의 앞에까지 말을 몰고 달려왔다.

천천히 가까워지는 그의 가슴을 본 헤럴드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눈꽃의 기사! 북부의 방패들이 어떻게 여기에?!”

“일단 소란부터 정리하시죠!”

기사가 다시 말을 몰아 게들에게 다시 달려들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