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27화 (27/352)

〈 27화 〉 26. 이실리엘은 공부중

* * *

벨 윈터폴은 북부 5 왕국 중 검가로 이름이 높은 윈터폴 공작가의 여식이다.

윈터폴 공작가. 북부 대산맥과 대수림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마물과 몬스터로 부터 대륙을 수호한다는 사명 아래 모여든 기사들이 세운, 북부 5 왕국 연합의 한축을 담당하는 아주 전통 있고 오래된 검가이다.

하지만 그런 윈터폴 가문에서 태어난 벨이지만 태어날 때부터 몸치에 가까운 절망적인 신체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가문의 전통대로 모든 자녀가 5세 때부터 시작하는, 가문의 검술 훈련을 그녀는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었다. 수시로 넘어지기 일 수였던 그녀에게는, 부모가 보아도 검술훈련은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윈터폴 공작가의 특징인 파란머리의 이 귀여운 외모의 소녀에게도 재능이 한 가지는 있었는데. 그것은 언어 습득력이 말도 안 되게 빠르다는 것. 어릴 때 말이 좀 빠르긴 했지만 그게 무슨 대수냐고 생각했던 부모를 깜짝 놀라게 했던 것은 그녀의 9세 때 일이었다.

대수림에서 방문한 엘프 사절에게 유창한 엘프어로 인사를 하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통역이 실수한 부분을 아버지께 알려준 일 때문이었다. 부모의 기억으로는 분명 그녀가 엘프어를 배운 것은, 그녀가 8살 때 3개월 정도 식객으로 있었던 엘프가 가문에서 묵었던 시기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그녀의 재능을 발견한 부모들은 여러 가지 언어를 그녀에게 습득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그 결과 그녀는 북부 왕국의 외교자리에 비공식적인 통역으로 항상 참여하는 인물이 되었다.

그런 그녀가 달랑 호위 두 명을 대동하고 국왕 직할령에 있는 숲 속의 오솔길을. 요 몇 달간 며칠에 한 번씩 오가야 했던 이유. 첫 태양이 뜰 때 출발했지만, 벌써 두 번째 태양이 떠오를 때야 저 앞에 보이기 시작한 작은 마을에 방문하기 위해서다.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헉헉. 그... 이것도 이제, 어느 정도 적응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녀는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닦으며, 숨넘어갈 것 같은 목소리로 자신의 호위인 에빌경에게 말했다.

태어나서 격한 운동이라고는 가끔 뒷 정원 산책이 다였던 그녀는, 이곳을 처음 방문할 때에는 목적지까지 반도 오지 못하고 호위들에게 안겨 이동할 수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실신하기 직전이지만 목적지가 저 눈앞에 보이는 것이다.

애초에 귀족인 그녀라면 말을 타면 될 일이지만 자연적으로 생긴 오솔길은 나뭇가지가 이리저리 길을 막기 일 수였고, 길을 좀 정리하고 가지를 쳐야 말을 타고 편하게 오갈 수 있을 것인데. 저 앞에 마을에 계신 분들이 나무에 상처를 입히는 것을 아주 극도로 싫어하시기에, 이렇게 걸어서 밖에 이동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와 호위 둘이 접근하자 근처 나무에서 갑자기 두 명의 인형이 뛰어내렸다.

“꺄앗!”

그 바람에 놀란 그녀가 소리를 지르자 나무에서 뛰어내린 두 명 중 한 명이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대체 언제쯤 놀라지 않을 건가요?”

“그... 그러게요. 왜 저는 올 때마다 놀랄까요?”

항상 비슷한 장소에서 경계를 서고 있는 고위 수호자인데. 왜 자신은 매번 놀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옆에 에빌경도 칼에 무심코 손이 간 걸 보니. 자신만 그렇지는 않다는 사실에 다소 안심하는 벨이었다.

엘프는 그녀의 말에는 대꾸하지 않고 땀에 흠뻑 젖은 그녀를 확인하더니. 귀찮은 듯한 손짓으로 손등에 바람에 정령을 불러내어 땀에 흠뻑 젖은 그녀의 몸을 말려주었다.

“항상 고맙습니다.”

“그래 얼른 가봐 아까부터 기다리고 계시니까.

벨은 엘프의 말에 종종걸음으로 마을로 들어섰다.

마을이지만 마을이라기에는 작은 규모인 오두막 5채가 전부인 이곳은 몇 달 전에 급하게 만들어진 곳이다. 그럼에도 오두막의 이끼라든지 넝쿨 식물이 오두막을 자연스럽게 휘감으며 자라고 있어, 아주 오래된 느낌을 자아내는 특이한 곳이었다.

그중 한 집 앞에 도착해 문 앞에 서자 몇 달 전이 불현듯 생각났다.

모험가가 저지른 실수에 세계수의 수호궁수 한 명과 열 명의 고위 수호자가 국경에 나타났다는 소식에 왕국 전체가 난리가 났던 그 일 말이다. 동맹국인 북부 5왕국 전체가 비상을 선포하고 국경의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때. 이어진 소식은 그들을 경악에 빠뜨리기 충분했다.

세계수의 수호궁수의 남편이 납치되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는 진짜 북부 5왕국이 전운에 휩싸이기도 했다. 감히! 어느 놈이 엘프 연합의 무력의 정점이라는 세계수의 수호궁수의 남편을 납치했단 말인가?

통신수정으로 긴급회의를 진행 중이던 북부 5왕국의 왕들은, 그 사실을 듣자마자 분노에 몸을 떨어야 했다.

대체 어느 놈이냐?

아니 단체냐?

아니면 왕국 소속이냐?

북부에 그런 미친놈은 없을 것이니 만약 남부나 동부 또는 서부 왕국이라면, 5왕국의 군대를 일으켜 원정이라도 가야 한다는 다소 미친 의견에, 나머지 넷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했다.

그것은 다행스럽게 촌극으로 끝났지만, 그들이 북부 왕국을 가로질러 남부까지 이동한다는 말에 국왕들은 기겁하고 말았다. 저 용도 사냥할만한 전력이 걸어서 대륙을 가로지른다니...

그리고 병신 같은 모험가나 도적들이 저들에게 저지를 무뢰한 행동으로 일어날 일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더군다나 미의 절정이라는 엘프족. 그 엘프족 중 가장 미색이 뛰어다니는 높은 엘프이자 세계수의 수호 궁수이다. 엘프 성노예를 좋아하는 어리석은 중남부귀족 나부랭이나 그 철부지 자식들, 또 엘프를 노예로 부리고 있는 왕국들, 노예상인들이 그녀를 만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중부나 남부 대륙 몇 나라는 지도에서 사라지지 않을까?

북부 왕국의 시작이 북에서 밀려오는 몬스터와 마물을 막아내 인간들을 수호한다는 거룩한 희생으로 시작된 것이기에, 북부의 왕들은 엘프들이 중남부를 가로지르는 것을 방관할 수 없었다.

결국 북부 5왕국의 왕 중. 가장 발언권이 약한 크람 국의 국왕이 눈물을 머금고 대표로 그녀를 만났다.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있는 반려를 무작정 찾아 나서는 것보다. 일단 왕국에서 인간의 문화와 언어를 배우며 기다리면, 모든 능력을 동원해 그를 찾아내서 알려주겠다는 그의 간곡한 부탁.

그리고 위치가 특정되면 궁정 마법사들을 동원해 마법의 문을 열어주겠다는 약속으로, 그녀를 이곳에서 멈춰 세웠고 이곳 국왕 직할지 숲에 그 거처를 잠시 마련해 준 것이다.

그리고 언어 선생으로 벨이 선택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엘프어와 중부대륙 어 둘 다 뛰어난 인물이 흔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또한 여자가 봐도 아름다움에 가슴이 뛰는데 남자가 선생으로 왔다가 실수라도 하면, 그건 그냥 실수로 끝나는 일이 아닐 것이다.

벨은 그때 생각에 가슴을 한번 쓸어내리고, 체력이 약한 벨이 첫 방문 빼고는 한 번도 투정도 싫은 내색도 하지 않고 이곳을 방문하게 하는 이유인. 이 문 너머에 있는 엘프에게 자신이 도착했음을 알렸다.

“저... 이실리엘님 벨입니다.”

중부 대륙어로 말하자. 똑같이 제법 유창한 중부 대륙어가 문 안에서 흘러나왔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자 마른 이끼로 채운 아늑해 보이는 침대와, 고사목으로 만든 것으로 보이는 투박한 테이블과 의자가 있는 방이 보였다. 그리고 그 의자 중 하나에 반투명한 하늘색 꽃잎으로 된 치마와 윗도리 그리고 나뭇잎사귀로 만든 긴 부츠를 신은 엘프가 자신을 맞이했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온 빛에 머리카락이 황금빛으로 찰랑거리며 반짝이고, 같은 색의 속눈썹에서는 빛 알갱이가 부서져 흘러내리는 듯 한 착각을 자아내는 존재!

그녀가 자신을 향에 미소를 지어 올리자 벨은 몇 달간 힘들었던 고생길이 행복의 길로 변하고, 여기까지 걸어오느라 힘들었던 자신의 육체가 어디선가 기운을 끌어내 활력을 돌게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순간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어 무심코 엘프어로 인사를 하고 말았다.

“(세계수의 첫 번째 자녀께 평안을...)”

상대방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웃으며 벨을 나무라는 투로 말한다.

“안 돼요, 벨~, 저희 둘이 있을 때는 중부 대륙 어만 쓰기로 했잖아요?

그때서야 벨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맞다 그녀는 그녀의 아름다운 제자와 약속을 한 것이다. 그녀의 반려를 만났을 때 다시금 같은 잘못을 하지 않게 언어에 익숙해지려고, 자신과 둘이 있을 때는 중부 대륙어로만 이야기를 나누기로 말이다.

“그, 그렇죠... 제... 제가 자꾸 깜빡깜빡 하게 되네요...”

저 아름다운 미소를 대할 때 마다 점멸하듯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매번 약속을 까먹고, 엘프어로 인사를 하게 되는 자신이 한심해 지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당연할지 모른다 생각하는 벨 이었다.

벨은 멋쩍은 웃음을 흘리면서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반대편에 앉았다.

그리고 문을 연 순간부터 지금까지 숲길을 걸어올 때보다 더 격하게 뛰는 심장을 느끼며, 잠깐 이 엘프가 사랑한다는 인간 남자에 대한 상상해 보았다.

한 줌 미소만으로 자신의 심장을 고장 나게 해버리는 이 엘프가 사랑한다는 그 남자는, 강철 심장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상상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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