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 22. 이실리엘 롱윈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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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실리엘 롱윈드 그녀의 이름이다.
엘프 사회에서 정점의 위치인 높은 엘프이고, 더군다나 세계수를 수호하는 수호엘프인 그녀는 지금 태어나서 처음으로 세계수가 있는 대 수림을 벗어나고 있었다. 도망(?)간 반려를 찾아 나서야 했기 때문이다.
이실리엘은 숲을 벗어나며 처음 그 남자를 만났을 때를 생각했다.
엘프어는 한마디도 모르면서 엘프들의 숲으로 들어온 사람... 그는 처음에, 대 수림으로 혼자 들어와 야영을 했다.
엘프들은 그가 처음에는 자살 희망자인 줄 알았다.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저러는 건가? 수많은 몬스터와 마물들이 살아가는 대 수림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건가?
처음 경고하러 찾아간 엘프들은 그와 한마디도 못하고 돌아왔다. 그가 엘프어도, 북부 왕국어도 거의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체 어디서 왔기에 북부 왕국어도 할 줄 모르는 인간이 대 수림에 들어온 건지. 결국 중부 대륙 어를 할 줄 아는 엘프를 찾아 그를 다시 만나러 갔다.
분명 경고를 하러 찾아갔는데. 찾아간 엘프들은 어찌 된 영문인지 그와 활쏘기 시합을 하고, 드워프처럼 취해서는 그를 마을로 데려왔다. 초대까지 해서는 말이다.
나는 높은 엘프이며 세계수의 수호자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했다. 중부 대륙 어를 할 줄 아는 엘프에게 그가 온 목적을 통역시켰더니. 그는 정신 나간 소리를 했다.
“세계수를 가까이에서 만져보고 싶다. ”
‘만져보고 싶다고?’
다들 그 이야기를 듣고 남자가 미친놈인 줄 알았다. 그 말은 곧 엘프 여자와 결혼하고 싶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세계수를 아무 때나 만질 수 있는 건 장로들이나 나 같은 수호자 그리고 몇몇 높은 엘프 들 뿐이다. 보통 일반 엘프들은 결혼하여 두 영혼이 세계수 아래서 하나가 되기를 영원한 나무 앞에 맹세할 때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의식은 단순한 짝짓기나 번식행위와 같은 몸만을 섞는 행위와는 다르게, 영혼까지 완전히 하나가 됨을 의미한다.
아주 고결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 남자는 엘프들 만 살고 있는, 엘프 마을 한가운데로 들어와 엘프와 세계수 앞에서 하나가 되는 의식을 치르고 싶다는 말을 한 것이다.
“엘프를 면전에서 모욕하는 건가?”
몇몇 자매들은 불같이 분노해 활을 쏘려 했다. 다만 통역을 맡은 엘프가 인간이 우리의 문화를 몰라서 그런 것 일 수도 있고, 엘프들은 결코 초대된 손님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니 일단 그를 지켜보기로 했다.
애초에 통역을 맡은 엘프도 중부 대륙 어는 능숙하지 못하다고 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그의 정신 나간 발언과 생긴 것만 아니라면 엘프라고 해도 믿을 만큼. 웬만한 엘프보다 활을 더 잘 쏘는 그의 실력 때문에 남자는 잠정적 위험한 자로 분류되었다.
그래서 결국 세계수의 수호자인 내가 남자에게 감시로 따라붙게 되었다.
세계수의 수호자요. 정령 궁수인 내가 말이다.
이 남자는 자신을 따라다니는 내가 안내역인 줄 아는 건지. 중부 대륙어로 무엇인가를 많이도 물어보았다. 통역이 없을 때는 거의 대답을 못 해줬지만 말이다. 하지만 뭐가 그렇게 재미있고 즐거운지. 대답을 해도 못해도 웃는 그 남자를 그냥 유쾌한 남자라고 생각해 버리기로 했다.
한 달 넘게 남자를 따라다니면서 신기한 점도 발견했다. 애초에 인간들은 엘프를 잘 구별하지 못한다는데. 이 남자는 엘프들의 얼굴과 차이점을 명확하게 구분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눈치도 빠른지 엘프의 예법도 곧잘 따라 했다.
그렇게 매일매일 둘이 숲과 마을을 같이 다니는 나날이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남자와 함께 여자아이 하나가 사라져 온 마을이 난리가 났었다. 엘프 레인저들이 소집되고 감히 마을의 여자 아이를 납치해간 남자에게 분노했다.
설마... 남자가 이상하긴 했어도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는데 믿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나에게 보여준 모습은 가식이란 말인가? 화가 났다.
엘프를 납치하는 자는 사살이다.
그런데 나는 레인저들에게 남자를 생포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남자의 변명이라도 들어보고 싶었다. 그렇게 나의 명령에 모여든 엘프들이 남자를 찾아 나서기 직전. 남자가 여자아이를 안고 마을로 들어섰다. 무슨 일을 당한 것인지 흙과 풀잎을 뒤집어쓰고 말이다.
왼손도 부러져 덜렁거리고 있었다.
통역을 통해 물어보니. 한밤중 지붕 위에서 별을 보고 있던 남자는 혼자 마을을 나서는 여자 아이가 걱정 되어 뒤를 밟았다고 했다. 그리고 벼랑에서 꽃을 따던 아이가 발을 헛디뎌 벼랑 아래로 떨어지자 그를 구하려다 같이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고 했다.
얼마 후 아이가 깨어나 달이 뜬 날에만 핀다는 달 바라기를 따러 갔었다가 벼랑에서 떨어져 정신을 잃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남자의 이야기는 사실이었다. 마을의 모든 엘프들은 엄청난 부끄러움을 느꼈다.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그 사실을 확인하고 내 마음의 떠오른 안도하는 감정은, 분명 소녀가 무사히 돌아온 것 때문이겠지?
그렇게 그 남자는 미친놈에서 마을의 손님으로 손님에서 친구가 되었다.
통역에게 밤에 자지 않고 돌아다닌 남자의 죄를 물어 남자가 밤에 보았다는 별을 셋이 같이 보았다. 밤에 엘프마을의 비밀을 본 것은 아닌지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셋이 본 별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하지만 즐거운 날도 잠시였고 그날이 찾아왔다.
대 수림 깊숙한 곳에서 뱀들의 왕이라 부르는 샤쿰벨라가 마을로 쳐들어온 날 말이다. 녀석은 왠지 모르게 흥분한 상태로 무차별적으로 마을을 공격했다. 지능이 높은 뱀의 왕이 짐승같이 엘프들을 공격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습격의 날 그 남자는 주저 없이 엘프들과 함께 싸웠다.
처음 통역을 맡았던 엘프에게 당신의 일이 아니니 도망가라고 말하고, 그것을 통역하라고 했는데 그 남자는 웃으면서 중부 대륙어로 무엇인가 말했다. 통역을 하는 엘프는 나에게 말했다. ‘친구가 위험한데 어떻게 혼자 도망 치냐’고 했다고? 저 뱀이 뭔지 알고 하는 소릴까?
싸우는 내내 남자가 신경 쓰였다.
바보같이 나는 그러다가 실수를 하고 말았다. 세계수의 수호 궁수인 내가 어이없이 샤쿰벨라가 뿜어낸 독을 한 모금 마시고 만 것이다. 잠깐 정신을 잃어 나무에서 떨어졌을 때 아래는 샤쿰벨라가 끌고 온 에키젤이 아가리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끝이었다.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났다. 그 남자가 어디선가 바람처럼 달려와 나를 받아 낸 것이다. 높은 엘프로 태어나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감정 ‘절망’ 그리고 ‘안도감’이 동시에 나를 찾아왔다.
남자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입에서 고통에 찬 신음을 흘러나온다.
남자는 오른 다리를 에키젤에게 내어주고 말았다. 남자의 오른쪽 발목의 힘줄이 녹아내리는 게 보였다. 내 표정을 보고 남자가 힘겹게 입을 열어 억지로 웃어 보였다. 그리고 중부 대륙어로 나에게 한마디를 남기고는 중독되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내가 정신을 차리고 에키젤의 머리통을 쏘아죽이고 남자를 끌고 물러난 사이에, 이 일을 듣고 달려온 장로들이 샤쿰벨라와 정신교감을 시도했다. 그리고 뱀의 왕의 도난당한 알을 찾아주는 것으로 일은 일단락되었다. 알을 훔쳐갔던 인간 모험가들은 엘프들에게 붙잡혀 샤쿰벨라의 밥이 되었다.
그날 사건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그 남자가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는 숙소로 찾아갔다.
그 남자가 나를 받아내고 에키젤에게 물린 순간 나는 어떤 표정을 지었던 것일까? 그남자는 내 표정을 보고 어떤 말을 했던 것일까?
그가 한 잊을 수 없는 말이 기억나 나를 따라온 통역에게 물어봤다. 내 이야기를 듣고는 그 엘프가 슬픈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다행이라는 뜻이라고...
‘다행이다...’
다행이라니! 다행이라니! 멍청한 인간 같으니! 이 인간은 미친놈이 확실했다.
‘무엇이 다행이란 말인가!’
‘나를 받아내고 자신은 목숨이 오가는 위험해 처했는데!’
‘자신의 목숨이 소중하지 않다는 말인가 이 남자는?’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그런데 왜 나는 화가 날까?
나도 모르게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왜 눈물도 날까?
고통 속에 신음하는 남자를 보고 있자니 지금까지 남자와의 일들이 하나둘 생각났다. 그 남자와 함께 여러 곳을 다니던 나날들. 통역과 내게 많은 말을 했지만 통역이 반쯤은 통역할 수 있었을까?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웃음이 얼굴에서 떠나지 않던 남자.
애초에 엘프의 말을 한마디도 못하면서 이 깊은 곳에 이 남자는 왜 온 것일까?
진짜 엘프 반려를 구하기 위함인가?
엘프 노예가 성노예 중 가장 비싸기에 가끔 엘프를 잡으러 오는 인간 노예상인들이 있다고 했는데, 보통은 엘프 레인저들에게 머리에 바람구멍이나 대 수림의 거름이 되곤 한다.
‘이 남자도 그런 인간인가?’
‘그... 변태라고 했던가? 그걸?’
‘근데, 그런 변태가 목숨을 걸고 나를 구했다고?’
이해할 수 없었다.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남자를 마을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하루 반나절이나 걸려 장로인 할머니를 찾아갔다. 엘프 사회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 중 하나인 할머니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날. 아니, 그 남자를 처음 본 순간부터 그의 이야기를 할머니에게 쏟아냈다.
나를 대신해 에키젤에 물리고,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는 그...
나대신 죽음을 향해 발을 디디며, 바보 같은 말을 하던 그...
어찌 보면 인간 남자 중에서도 지능이 낮은 건 아닌지, 걱정되는 그...
지금도 나 대신에 죽음의 문턱을 오가는 그...
마지막 말을 할 때는 나는 할머니를 붙잡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할머니가 조용히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셨다.
“시간이 멈춘 우리 높은 엘프에게는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우는 삶을 사는 ‘타오르는 한 인간의 영혼’은 무척이나 아름답게 보일 수밖에 없단다.?”
“아가야... 너는 사랑에 빠진 게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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