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 16. 엘프의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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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로라와 에우로라는 검은 호수 다크엘프다.
검은 호수 다크엘프를 지칭할 때. 앞에 검은 호수는 어떤 특정 지역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죽음의 여신을 모시는 다크엘프들이 모여서 마을을 만들고, 죽음의 여신의 사제가 있는 곳에는 작은 검은 연못이 생겨난다.
그리고 마을에 사람이 늘어나고 여신의 신도가 늘어날수록, 죽음의 여신이 내려주는 신성력도 증가하는데, 그러면 연못이 조금씩 커지기 시작한다.
즉, 다크엘프들이 사는 곳에 어둠의 신성력이 충만하면 충만할수록 연못의 크기도 커지고, 그것이 결국에는 호수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죽음의 여신을 섬기는 다크엘프 마을에는 검은 연못 정도는 어디에나 있고, 호수는 큰 규모의 마을에 생기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이 호수가 무한히 커지는 것은 아니라서, 호수의 성장이 멈추면 다크엘프들은 분가를 해서 작은 마을을 세우게 된다.
100여 년 전 아우로라와 에우로라가 아직은 어린 다크엘프일 때. 그들은 부모님을 따라 분가해 작은 마을에 살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부모와 같이 분가를 위해 따라 나온 다크엘프들이 실수한 것이 한 가지 있었는데, 그들이 북부 대 수림 근처의 엘프 영역에 너무 가까이 마을을 세운 것이었다.
충돌은 피할 수 없었다.
몇 번의 충돌이 있고 엘프들이 정중하게 세계수의 신성력이 충만한 이곳에, 죽음의 여신의 신성력은 숲을 병들게 하니. 다크엘프들에게 이전을 부탁했지만 호전적인 다크엘프들에 의해 부탁은 묵살되고 찾아왔던 전령은 살해되었다.
그리고 그날 밤 그것이 찾아왔다.
엘프나 다크엘프는 둘다 정령에게 사랑을 받는다. 엘프는 빛과 자연 그리고 원소의 정령들에게, 다크엘프는 어둠과 죽음, 원소의 정령들에게 말이다.
에우로라 아우로라는 그날 미친 듯이 분노하는 자연의 정령력을 처음 느꼈다. 자신들을 항상 포근하게 감싸주는 어둠과 죽음의 정령들이 아닌.
미친 듯이 분노하는 자연의 정령력.
그리고 자신들의 부모와 어른들의 머리 위로, 동등한 분노한 자연의 정령력이 쏟아져 내렸다.
화살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말이다.
세계수의 수호자. 그중 궁수들 그것은 활을 든 재앙이다.
엘프 중 세계수의 신성력과 정령력 두 가지 이질적 능력의 적합도가 한계를 넘은 자들. 그리고 그런 자 중에 활을 극도로 수련하여 극의에 달한 자, 엘프 내에서도 극소수 존재하는 그들이 찾아왔다.
찾아온 것은 단 한 명 이었다. 애초에 세계수를 지키기 위해서 세계수 주변에서 자리를 뜨지 않는 이들인데.
에우로라 아우로라의 마을은 운이 나빴다. 전령으로 왔던 자가 세계수의 수호 궁수의 동생이란 사실을 몰랐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모든 마을 사람이 순식간에 사망하고, 둘만 남아 검은 연못가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을 때. 그것이 찾아왔다.
손에는 미친 듯이 요동치는 자연의 정령력을 뿜어내는 활을 들고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말했다.
“어른들은 전부 자연의 품으로 돌아갔단다. 너희는 가까운 다크엘프 마을로 데려다 주마”
둘은 바들바들 떨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화살이 부모와 어른들의 머리 위로 쏟아지기 전. 자신들의 온몸을 휘감아 대던 그 분노한 자연의 정령력, 그것이 그들에게 강렬한 트라우마로 남겨졌기 때문이다.
자신들은 여러 마을을 거쳐 예전에 살던 다크엘프 도시의 사촌들에게 인계되었지만, 남겨진 트라우마는 그들이 다크엘프 마을을 떠나 그곳과 가장 먼. 이곳 늪지에 자리를 잡게 하였다.
엘프의 정령력만 느껴지면 몸이 굳어지는 둘은, 엘프들이 비교적 흔한 그곳에서는 살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남부에 자리 잡고 십여 년이 지났는데, 한동안 잊고 살아가던 그것이 오늘 전투 중에 느껴졌다. 날뛰는 광기의 자연의 정령력 말이다. 어릴 때 느꼈던 그것보다. 더 농밀하게 온몸을 핥아대는 그것을 말이다.
그것을 느꼈을 때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다시 살아났다.
“죽을 거야! 죽는다. 죽어버린다! 아무도 살지 못해! 세계수의 수호 궁수가 온다! 분노한 자연의 정령력이 쏟아져 내린다! 도! 도망쳐!!! 꺄아악!”
아우로라와, 에우로라는 그렇게 정신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지금 내 여관에서,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심문을 당하고 있다.
아니 왜 이게 이렇게 된 거지? 난 아무것도 잘못 한 게 없는데 말이야...
도적들을 처리하고 한참 상황을 보다가 이층복도 창문을 통해 지붕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1층 홀로 향했다.
여기까진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1층 홀로 내려오자마자 리젤다와 엠마, 브릴다, 에브리나가 에우로아와 아우로라를 업고 1층으로 들어왔다.
‘아니 재들 왜 실신해있지? 아까 분명 다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넷은 둘을 테이블에 눕히고는 엠마가 뭔가 기도하자 빨리 정신을 차리긴 했는데. 나를 보고 바들바들 떨어대는 통에 여섯 여자에게 붙잡혀서 질문의 홍수를 맞이하는 중이었다.
“러셀, 그 활은 어떻게 된 거죠!? 아무리 러셀이라도 범죄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일단 활을 제게 주세요! 반드시 확인해봐야겠습니다! 아... 아니! 이렇게 쉽게 주신다고요?”
“러 러셀님! 그것은 무엇인가요? 역시! 백금패 용병이신가요? 맞죠? 그렇죠?”
“아~ 러셀 뭔데? 너무 멋있어서 소름 돋아버렸어!”
“인간! 무엇이냐! 이 평원늑대 부족의 브릴다 강한 수컷의 씨를 받고 싶다!”
‘아니 멍멍아 그거 아니야 절대 아니야...’
“이... 인간 맞으십니까? 혹시 에... 엘프? 아니지 그 활은... 그럼... 그... 부인께서는? 아니, 그런데 인간이 그 활을 쓰실 수 있다니... 그게 무슨?”
아우로라는 나를 유부남을 만들고 있고, 아우로라 옆에 에우로라는 동생을 끌어안고는, 바들바들 떨면서 나를 보고 눈물만 흘리고 있다.
‘아니, 내가 뭐, 너희들에게 무슨 큰 잘못했냐? 하... 뭐지?’
리젤다는 북부에서 생활할 때 몇 번 본적이 있다. 세계수의 수호 궁수를 말이다. 그리고 그들이 든 활을 말이다.
그리고 지금 러셀이 자신에게 잠깐 준. 이 활은 그녀가 예전에 동경하던 그 활이 분명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절대 자신이 착각할 리는 없는 것이다. 자신의 꿈이고 자신이 바라 마지않던 것인데, 결코 절대로 틀릴 수가 없었다.
활대는 흡사 살아있는 나무를 잘라 만든 듯. 아무런 가공도 거치지 않은 것처럼 잎사귀가 몇 장 붙어있고, 활줄은 아름다운 황금색으로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크기는 장궁 보다는 작고, 단궁 보다는 훨씬 큰. 엘프들이 주로 사용하는 크기의 전형적인 활이다.
저 활대는 분명 세계수로 만들어졌을 것이고, 활시위는 엘프의 머리카락이리라.
그리고 황금색 머리카락은 고위 엘프 혈통만이 가질 수 있는 것, 결국 저 활은 고위 엘프이면서, 세계수의 수호 궁수인, 엘프 사회 최상위지위와 계급을 가진 자의 활인 것이다.
엘프의 활은 엘프 여성들만이 만든다. 엘프 여성은 성인이 되면 머리카락을 엉덩이 정도까지 기르는데 꼬아서 활시위를 만들기 위해서다.
세계수에서 태어났다고 알려진 엘프들은 반은 살아있는 생물이지만, 절반은 정령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장수한다.
물질계의 법칙에서 반은 벗어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니 반 정령인 요정의 머리카락은, 쉽게 상하지 않으면서 신축성이 뛰어나, 활시위로는 최상위라고 보면 된다.
만약 구할 수 있다면 말이다.
보통 엘프의 남자는 어머니에게 첫 활을 선물 받고, 결혼 전까지 어머니가 만들어준 활시위를 쓰지만, 결혼을 하면 배우자가 만든 활과 활시위를 사용하게 된다.
엘프의 프러포즈는 남자든 여자든 누가 해야 한다는 법은 없는데. 남자가 청혼할 때는 어머니가 자신에게 준 활을 배우자가 될 사람에게 주면서, “제게 새 활과 활시위가 필요합니다. 만들어 주시겠습니까?” 라고 말하고. 여자가 남자에게 줄 때는 “어머니 대신 이제 제가 활과 활시위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한다.
그리고 결코 자신이 만든 활을, 자식이나 남편이 아닌 타인에게 선물이나 양도하지 않는다. 엘프 여성이 남성에게 활을 선물한다는 것은 청혼할 때와 자식에게 줄 때뿐이고, 만약에 원치 않게 활을 빼앗기거나 한다면 정절을 빼앗긴 것처럼 수치로 여긴다.
그리고 어떤 미친놈이 엘프를 죽여 머리카락을 잘라 활줄로 쓰다 걸리면, 모든 엘프들의 공적이 된다.
그러니까 러셀이 저 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범죄를 저질러 엘프를 죽이고 활을 빼앗았거나, 엘프에게 청혼을 받았거나 둘 중 하나이다. 그런데 엘프에게 청혼을 받았으면 배우자가 있어야 하는데, 러셀은 혼자이니 당연하게 러셀의 범죄에 무게가 실리는 것이다.
근데 세계수의 수호 궁수를 죽일 수 있는 힘이라고? 아무리 러셀이 백금등급이라도 그건 이해할 수 없었다. 수백 년 활을 연마한 세계수의 수호 궁수는, 궁수의 반열에 놓기에는 전혀 이질적인 존재인 것이다.
더군다나 자신이 활을 일단 내놓으라고 했을 때, 자신에게 손쉽게 활을 넘기는 것이. 이 활의 의미를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러셀이 저 활을 제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
‘이 세계수의 수호 궁수의 활로 그 기술을 쓸 수 있다고?’
이야기로만 들어본 그 기술. 머리에 정확하게 쏟아져 내린다는 화살의 비.
‘그거 엘프 밖에 못 쓰는 거 아니었나? 사람이 정령에게 사랑받을 수 있나? 아니, 정령력을 그렇게 받고 사람이 살아있을 수 있나?’
“러셀 이 활은 어디서 난 건가요? 이 활을 주신 분은 대체 누굽니까? 이 활을 받은 의미는 제대로 알고 있는 겁니까?”
리젤다는 미친 듯이 질문을 쏟아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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