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16화 (16/352)

〈 16화 〉 15. 도적떼

* * *

리젤다와 7명의 용병들이 마을길을 내달려 광장에 도착했을 때는, 멀리 보이는 마을 입구의 목책이, 마법사의 화염구에 라도 맞은 듯 구멍이 뻥 뚫린 채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구멍으로 도적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마을 입구와 가까운 집들은 갑작스러운 재앙에 손 쓸 틈도 없이 휩쓸리고 말았는지, 운 좋은 사람들은 광장 쪽으로 달려서 도망쳤으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도망가다 도적들에게 머리채를 휘어 잡히고는, 그들의 욕망에 번뜩이는 안광을 마주하고 있었다.

피와 비명이 난무했다.

용병들은 아무 말 없이 진형을 짜기 시작했다. 방패를 든 벨릭과 에우로나가 앞에 서고, 뒤를 창병인 마틴과 브릴다가 받친다. 좌우로 사제인 엠마와 아우로나가 서고, 제일 뒤 에브리나가 자리를 잡았다.

한 번도 다 같이 파티를 해보진 않았지만 각자 자신이 전투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알고 있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과 도적들이 뒤섞여 더 혼란이 가중되기 전. 전열인 벨릭과 에우로나 그리고 창병인 마틴과 브릴다가 앞으로 달려 나갔다.

벨릭이 도망치는 마을 사람을 쫓아 자신의 거리 안에 들어온 도적을 방패로 후려치자, 마틴이 재빠르게 달려 들어가 목덜미를 찔러 그놈의 목숨을 일격에 끊어냈다.

옆에 달려들던 놈은 에우로나에게 대검을 크게 휘둘렀는데, 에우로나가 방패로 공격을 빗겨내자 자세가 앞으로 허물어지며 넘어져 버렸다. 그리고 그 틈으로 브릴다가 놈의 등에 창을 찔러 넣어 놈을 침묵 시켰다.

앞에서 전투가 한창 일 때, 뒤에서는 에브리나가 어젯밤 여관에서 만들었던 화염구보다 더 큰 화염구를 만들어 내더니. 맹렬하게 회전시킨 그것을 목책에 뚫린 구멍으로 쏘아버렸다.

에브리나의 손에서 떠난 화염구는 맹렬하게 회전하며 날아가더니, 목책의 구멍으로 빨려들듯이 사라져 버렸다. 막 목책의 구멍으로 들어오던 도적 몇 놈이 폭발음과 함께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숯덩이가 되어버렸고, 몇 놈은 화염구가 폭발하는 충격에 사방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그때 세 발의 화살이. 두 번째, 마법을 준비 중인 에브리나에게 날아들었다. 연달아 쏘아진 세 개의 화살은 중급 레인저들의 기술인 삼연사(Triple Shot)였는데, 화살 세 발을 한 목표에 빠르게 쏘아 내는 것이었다.

자신에게 화살이 날아드는 것을 알고 있는 에브리나였지만 그녀는 눈도 깜짝하지 않고 계속 마법주문을 외웠다. 에브리나에게 날아든 세 개의 화살이 그 목적을 이룰 때 쯤. 엠마가 앞으로 달려 나가 방패를 들어 올려 날아들던 화살 세발을 튕겨내 에브리나를 보호했다.

그와 동시에 아우로나가 성물을 손에 쥐고 기도문을 외우자, 성물에서 흘러나온 검은 연기가 화살이 날아온 궤적을 따라 날아가더니. 화살을 쏘아낸 궁수 휘감았다. 궁수는 갑자기 목을 움켜쥐더니 순식간에 피부가 쪼그라들어 바짝 말라버리고는 앉아있던 목책 아래로 처박혀 버렸다.

아우로라가 궁수에게 빨아낸 붉은 생명력을 띈 기운이 에우로라에게 날아갔다. 생명력을 전해 받은 에우로라의 전신에 불길한 붉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전신이 붉게 빛나는 다크 엘프가, 오른손의 메이스로 자신의 히터실드를 쾅쾅 두드리자, 달려들던 도적들이 그 불길한 모습에 움츠러들고 말았다.

용병들이 분전하는 가운데 상황을 파악한 마을 안쪽에 집들에서, 사내들이 저마다 각자 무기를 들고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촌장도 가죽 갑옷 상의를 입고 한 손에 곤봉을 들고는 광장으로 내달렸다.

그때 에브리나의 다음 주문이 완성되었는지 에브리나의 머리 위로 반투명한 얼음 창 대여섯 개가 생성되었다. 원소 마법이 특기인 에브리나가 다음 마법으로 준비한 얼음 창(Ice Spear)을 구멍으로 몰려드는 도적 때를 향해 다시금 쏘아냈다.

냉기를 풀풀 흘리는 얼음의 창이 이젠 다 떨어져 나간 목책 입구로, 흉흉한 기세를 내뿜으며 뭉쳐 들어오는 도적들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하지만 그것이 선두의 도적에게 직격되기 직전. 갑자기 반투명한 막이 도적들 앞을 감싸더니. 에브리나의 얼음 창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모두 깨져 나갔다.

“아! 뭐, 뭐야!”

에브리나는 이번 마법으로 네댓 명쯤 더 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는데. 마법이 무산되자 짜증이 나버렸다.

그때 도적들 사이로 검은 로브를 입은, 대머리의 중년의 마법사 하나가 천천히 걸어 나온다.

“귀여운 것들이 많은걸? 마법이 제법 매서운데. 하나 그 정도 마법으로는 어림없지! 너는, 오늘 밤 내가 친히 마력을 빨아주마! 크흐흣”

“흑마법사!”

타인의 마력을 흡수한다는 말에, 에브리나가 움찔하며 말했다.

아군의 수가 부족해서 선두 몇 놈을 빨리 잡아내려 했더니. 흑마법사의 방해가 들어와 버리고 말았다. 자신의 마법을 쉴드 마법으로 상쇄시킨 걸로 봐서는, 결코 자신의 아래로 보이지 않았기에, 에브리나는 다음 수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마법사들끼리의 대치가 시작되었다.

근처 집의 지붕 위 경사면에 아슬아슬하게 숨어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리젤다는, 곧바로 힘껏 당겼던 시위를 놓았다. 화살은 빠르게 날아가 흑 마법사의 머리를 꿰뚫기 직전에, 갑자기 뒤에서 튀어나온 버클러에 맞고 힘없이 튕겨 나갔다.

버클러를 든 놈은 빨간 머리에 왼손에는 버클러 오른손에는 메이스를 들었는데. 화살을 튕겨내고 그대로 앞으로 달려가, 마주 달려오던 벨릭을 향해 메이스를 휘둘렀다.

벨릭이 방패를 들어 메이스를 막아냈는데. 방패와 메이스가 충돌했다고 볼 수 없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 충격에 벨릭이 에브리나가 서 있던 자리까지 굴러 와 처박혔다.

“뭣?”

놀라는 것도 잠시. 놈은 이어서 옆의 에우로나에게 달려들었다. 에우로나는 자신의 특기를 살려 놈의 메이스 공격을 히터 실드로 슬쩍 빗겨냈는데, 그 한수로 직격으로 들어오는 충격을 감소시킴과 동시에 놈의 자세를 완전히 무너트려 놈의 허점이 드러나 버리게 만들었다.

마틴과 브릴다가 기회를 포착하고 동시에 놈에게 창을 찔러 넣었지만, 놈은 무너진 자세 그대로 왼손의 버클러로 벨릭의 창을 튕겨내고, 브릴다의 공격은 몸을 뒤틀어 슬쩍 피해버렸다.

한차례 공방을 주고받은 넷은, 서로 한 발짝씩 뒤로 물러났다.

“뭐야? 이거 대가리를 깨 버리려고 했는데! 제기랄! 여기 은 등급이 왜 이렇게 많아?”

빨간머리는 짜증이 난다는 듯이 욕설을 내뱉었다.

“저년이 감히 내 머리에 화살을! 오늘 밤에 화살보다 굵은 것을 박아 넣어주마!”

그때 화살을 날린 리젤다를 향해 욕설을 내뱉던 흑마법사 뒤로, 도적단의 간부로 보이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마을 주민들도 무기를 들고 몰려들어 용병들의 주변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 머저리 같은 새끼들. 정찰도 제대로 못 하고, 여관에 모험가가 몇 명 있나 확인하라고 했더니? 죽기직전까지 두들겨 맞고 와? 시발 은 등급 8명? 라필드 모험가 길드에 있는, 은 등급 1/5이 여기 있다고?”

마을로 들어선 놈 중 커다란 할버드를 든 덩치 큰놈이 욕설을 내뱉으며 말했다. 놈의 머리는 불에 그슬려 있었는데 에브리나의 마법에 약간 피해를 당했는지. 에브리나를 보고 이를 갈아대며 말했다.

하나 둘씩 목책의 구멍으로 들어오던 도적들의 행렬이 끝날 때 쯤. 모여든 마을사람들과 용병을 보고는, 이미 들어와서 근처 집을 약탈하던 놈들까지 마을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10여 명이 죽었음에도 인원은 30명이 넘어 보였고, 그중에 절반은 최소 은 등급으로 보였다.

그때 도적 떼 가운데서, 두목으로 보이는 놈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래, 어젯밤에 우리 애들을 귀여워 해줬다고?”

“뭐, 워낙 머저리 같아야지? 전 용병이 아니라 전 고블린인줄?”

벨릭이 이죽거리며 상대를 도발했다.

“뭐~ 넌 어차피 되질 테고 옆에 예쁜 년들이 아주 많네?”

놈은 주변을 한번 슥 훑어보더니 말했다.

“다크엘프 두 년은 오늘 밤 내 것이다! 나머지는 너희에게 줄 테니 밤새 귀여워해줘라! 가자!”

“남자는 다 죽이고! 여자는 광장에 꿇어 앉혀라!”

놈이 자신의 부하들을 독려하며, 동시에 엄청난 기운을 끌어올리며 달려들었다. 그 흉흉한 기운에 마틴이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금, 금... 등급...”

마틴의 말에 마을 사람들에게서 절망 섞인 침음이 흘렀나왔다. 오늘 저들을 막지 못하면, 남자는 모두 죽고 여자들은 험한 꼴을 피할 수 없으리라... 촌장은 이를 악물었다.

도적들이 밀려오고 있었다.

“크아아아아악...!”

몰려오던 도둑들과 용병들의 전열이 잠시 격돌 했는데, 갑자기 마틴이 비명을 지르며 허물어져 내렸다. 깜짝 놀란 용병들이 마틴쪽을 바라봤는데 바닥에는 마틴의 왼팔이 떨어져 있었고, 팔이 잘린 자리에서 엄청난 피를 뿜어내며 땅을 구르고 있는 마틴이 시야에 들어왔다.

“마! 마틴! 이 씨발 새끼들!”

처박혀있던 벨릭이 그 모습에 분노에 차 도적의 대장에게 돌진했지만, 빨간 머리에게 메이스를 다시 처맞고 근처 집 벽에 다시금 처박혔다.

브릴다가 벨릭에게 다가가는 빨간 머리를 막아서며 달려들었다. 브릴다와 빨간 머리의 혈투가 시작되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리젤다가 마틴을 구하기 위해 활을 쏘아내 두목을 뒤로 물러나게 하자, 엠마가 와들와들 떨면서 마틴의 잘린 팔을 들어, 잘린 자리에 대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에브리나도 둘에게 쉴드 마법을 걸어 주었다. 지금 붙이지 못하면 마틴은 영원히 외팔이가 될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 엠마를 지켜야 했다.

지붕에서 계속 전장 전체를 살펴보던 리젤다가 이상함을 느낀 건 그때였다.

벨릭을 치료하고 있는 엠마를 지켜줘야 할 에우로라, 아우로라가 이상했다. 둘이 꼭 껴안고는 주저앉아 덜덜 떨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니 왜!?”

리젤다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정도에 전의가 꺾일 다크엘프들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더군다나 암흑 사제인 아우로라는 정신마법이나 공포에 대한 내성도 높고, 피가 흐르는 전장에서의 죽음은 다크엘프들에게는 명예로운 일일 텐데 말이다.

그때 힘겹게 입을 열고, 아우로라가 처절하게 외쳤다.

“다...! 다! 도망가! 모, 모두 비참하게 죽는다! 저, 저 괴물이 저게... 왜... 여기까지!”

아우로라에게 안긴 에우로라는 이미 실신했는지. 눈에서는 눈물을, 입에서는 침까지 줄줄 흘리며 허물어지려 하고 있었고, 아우로라는 언니를 꼭 껴안고 울부짖었다.

“크흐흐흣! 귀여운 년들 그래 그래야지. 그래야 죽이지 않고 오래오래 귀여워 해주지!”

도적단의 두목은 신이 나서 외쳤다. 그 외침에 도적들도 신이 났는지 같이 웃어대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리젤다는, 이상한 것을 한 가지 더 발견해 냈다.

아우로라가 보고 있는 것은 도적단의 두목이 아니라, 자신들이 온 방향 그러니까 러셀의 여관이었다. 마치 거기에 무엇이라도 있다는 듯이 말이다.

그때였다. 도적단 두목의 머리 위에 깃털 달린 뭔가가 쑥! 자라났다.

브릴다와 대치하고 있던 빨간 머리의 머리 위로도 쑥!

신 나게 웃던 흑마법사의 머리 위로도 쑥!

다 같이 웃어대던 도적들의 머리 위로도 하나씩 쑥! 쑥! 쑥!

뭔가 마법처럼 도적들의 머리 위로 하나씩 하나씩 말이다.

아우로라는 그 모습을 보더니 온몸을 파들파들 떨어대며, 정신이 나간 것처럼 허겁지겁. 언니의 방패를 들어 힘겹게 자신들의 머리 위로 올렸다. 그리고는 허물어지는 언니를 자신의 몸으로 미친 듯이 덮으려다, 같이 실신해 버리고 말았다.

잠시 후 머리 위에 뭔가가 다 같이 자라난 도적들은, 신나게 웃어대다가 한순간 다 같이 갑자기 입을 닫더니. 그 자리에서 허물어지듯 쓰러져 버렸다.

리젤다도, 바들바들 떨며 마틴을 치료하고 있던 엠마도, 벽에 처박혔다 일어난 벨릭도, 빨간 머리와 대치하고 있던 브릴다도, 갑자기 일어난 영문 모를 일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마을 사람들도 갑자기 일어난 일에, 아무런 반응도 못 하고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멈춰버렸다.

리젤다는 그 모습을 보고 지붕 아래로 뛰어내려 쓰러진 두목 앞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쓰러진 두목의 머리를 보았는데, 도적들의 머리 위로 자라난 것은, 자신이 쓰는 것과 비슷한 화살 한대였다.

그것이 뒷부분의 깃털만 남게, 아주 깊숙이 꽂혀있었다.

“아니, 이게 대체...”

화살이 어디선가 날아와 전원의 머리에 남김없이 꽂히면서, 흡사 화살이 머리에서 자라난 것 같이 보인 것이었다.

옆에 다가온 벨릭이 어이가 없다는 눈빛으로, 두목의 머리통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다 같이 자신들이 묵고 있는 여관을 바라보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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