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14화 (14/352)

〈 14화 〉 13. 불청객

* * *

벨릭의 파티가 사냥을 나가고 5일째가 되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저녁때쯤 복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벨릭 파티를 위해 한나 아주머니 애니와 함께 점심때부터 방을 청소하고, 식재료를 좀 더 준비해 두었다.

초저녁이 되자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했는데 손님들도 직원들도 비가 내리니. 다들 홀에 모여앉아서 멍하니 비만 바라보고 있는 시간이 이어졌다.

모여앉아 내리는 비를 하염없이 바라보니 뭔가 기분이 센티 해졌다. 그때 브릴다가 나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다.

“인간, 에브리나가 그러는데 모험가 15년이나 했다면서! 재미난 이야기 해줘라!”

무슨 삼촌한테 옛날이야기 조르는 조카 포지션이 생각나 귀엽기도 하고, 그래서 음유시인들이 하는 이야기보다 만 배쯤 재미있는 동화를 한 가지 들려주었다.

동화 제목은 ‘인어공주’ 이곳은 오락거리가 없어서 음유시인이라는 놈들이 온갖 미사여구 다 동원해서 이야기를 해주고 돈을 받으며 살아가는데, 이야기 들어보면 별로 재미는 없다.

‘그런데 여기 사람들은 음유시인보다 내 이야기를 재미있어 하더라고?’

내가 몇 가지 전생 동화를 떠올려 여행 중에 친구들에게 몇 번 이야기해주었는데. 반응이 항상 좋았기에 이야기를 천천히 들려주었다.

“옛날 옛날에 어느 왕국에...”

그리고 결과는 여관 홀이 통곡의 장소가 되었다.

그 감정 표현이 적다는 다크엘프들마져 눈물을 뚝뚝 흘리며 거품이 된 인어공주를 슬퍼했다.

분위기가 너무 가라앉았기에 가만있기도 무엇해서, 비가 오면 밀가루 음식이 생각나는 것은 전생이나 지금이나 다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비 오는 날의 시그니쳐 음식인 부침개를 구워 홀로 내보냈다. 다들 바삭바삭 하고 고소한 맛이 마음에 들었던지. 굽기 바쁘게 부침개는 사라지고 나는 홀과 부엌을 오가면서 노릇노릇한 부침개를 바쁘게 배달했다.

“근데 인간, 이거 먹으니까 맥주가 생각난다. 맥주 얼마냐?”

브릴다가 부침개를 먹다 말고 맥주가 생각난다기에, 창고에서 작은 맥주를 한 통 가져와서 홀에 한 잔씩 돌렸다.

한나 아주머니와 애니도 맥주가 잘 어울리는 음식이라며, 연신 홀짝거리기 시작했다.

어지간하면 리젤다와 벨릭들이 도착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밖에 비가 오니 체온이 많이 떨어지지 않을까 싶어 마크에게 목욕탕 물을 먼저 데워두라고 시켰다.

마틴이 욕탕으로 향하자 내 여관 홀에는 여자 일곱만이 앉아서 부침개에 맥주를 먹고 있었다. 다크엘프 누님 두 명에 늑대수인, 여마법사, 중년여급, 성인여급, 소녀여급 까지.

‘응? 뭔가 엄청난 조합인데?’

일곱이 내가 해준 음식을 맛있게 먹는 걸 보면서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애니가 내 쪽을 보고는 말했다.

“러셀 표정이 변태 같아!”

애니에 말에 다들 웃음이 터졌고 나는 다음 부침개를 굽기 위해 부엌으로 향했다.

절대 도주한 것은 아니다.

그때 여관 문이 열리면서 비에 흠뻑 젖은 모험가 3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로브나 망토가 방수가 안 되는 건지 흠뻑 젖은 몸으로 내가 하는 인사도 들은 채 만 채로, 홀 가운데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한 놈은 덥수룩한 머리에 이마에 상처가 있었고 허리에 단검 두 자루가 매달려 있었다. 또 한 놈은 등에 방패를 빗겨 매고 있었다. 마지막, 놈은 창을 들고 있었다.

셋은 여관으로 들어오면서 연신 욕설을 뱉으며 홀 중앙에 자리를 잡았다.

“아, 젠장 이거 웬 비야! 늪지대도 엿 같은데 비까지 쳐오네! 하...”

“시발, 그러니까. 내가 다른 날 오자고 했잖아!”

“아니, 그게 우리 마음이냐? 그냥 비가 오더라도 어쩔 수 없지!”

세 놈은 자리를 잡자마자 한 놈은 젖은 망토를 짜내어 물을 여관 바닥으로 그대로 흘리고 있었고, 다른 한 놈은 진흙이 잔뜩 묻은 발을 테이블에 올리고 반쯤 뒤로 기대었다. 그리고 마지막 놈은 신발을 벗어서 물을 여관 바닥에 따라내기까지 하고 있었다.

내 심기가 점점 더 불편해 질 때쯤.

“야 주인, 여기 맥주랑 저녁 가져와 봐”

이마에 흉터가 있는 덩치 큰놈이 반말을 찍 뱉으며 주문을 했다.

내가 한마디 하려고 하자 애니가 재빠르게 일어나 잠시만 기다리라며, 그놈들에게 말하고 나를 끌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러셀 모험가는 거치니까 조심해야 해. 일단 음식 해줘. 내가 내갈게.”

애니가 웃으면서 나를 다독이며 말했다.

애니의 모습에 화를 한번 삭이고 내가 내 인생에 결코 만들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영원의 스튜를 만들기 시작했다.

다듬고 남은 채소와, 음식물 쓰레기 버리려고 모아둔 걸 솥에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그사이 애니가 맥주들 들고 나가서 서비스했다.

놈들이 맥주를 한두 잔씩 비우고. 내가 끓인 영원의 스튜라고 쓰고 돼지죽이라고 읽는 음식과, 창고 안에 방치되어있던 곰팡이 난 빵을 대충 잘라서, 애니에게 가져다주라고 큰 접시에 담아내어 놓았다.

애니가 내가 만든 음식을 보고, 씩 웃으면서 테이블로 향했다.

나는 오늘 도착할 벨릭 파티에게 줄 따듯한 러셀표 특제 스튜를 이어서 준비하려고, 재료를 다듬기 시작했다.

그때 홀에서 애니의 비명이 들렸다.

“꺄악! 왜! 이러세요!”

“이년이 크흐흣. 얼마냐니까?”

“와하하핫!”

내가 급하게 홀에 들어서자. 애니가 창잡이의 허벅지에 강제로 앉혀져 있었고, 창잡이의 한쪽 손이 애니의 가슴을 우악스럽게 주무르고 있었다.

내 눈앞이 붉게 물들었다.

“야 니들 뭐하냐?”

내 말에 이마에 흉터가 있던. 단검을 찬 놈이 미소를 지으며 일어나 걸어왔다.

“이거 다리병신이 여자들 많다고, 영웅이라도 되고 싶으셨나? 크흐흐”

놈이 나에게 천천히 걸어오더니. 내 멱살을 잡아 올렸다.

그사이 창잡이 놈은 애니를 테이블 위에 엎드리게 하고는 치마를 걷어 올리고 있었다.

“히익! 안... 안 돼! 러... 러셀!”

애니가 내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었다.

터질 듯한 분노를 참으며. 내 멱살을 잡은 놈의 팔을 오른손으로 곽 잡아 움켜쥐고,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동작 그만. 니들 여기서 한 발짝만 더 나가면, 오늘 살아서 못나간다?”

내가 놈의 팔을 쥔 손에 힘을 꽉 주자. ‘콰드득’ 하고 뭔가 바스러지는 소리가 들리며, 놈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때였다. 여관 문이 벌컥 열리더니. 물에 흠뻑 젖은 벨릭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짐을 옆에 내려놓더니 말했다.

“형님! 저희 왔습니다. 밥...좀?”

“끄아아아악!”

내 멱살은 잡은 놈이 비명을 지르는 것과 동시에, 벨릭의 뒤로 따라 들어왔던, 리젤다가 자신의 가방을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치더니. 재빠르게 화살을 날려 애니를 내리누르고 있던 놈의 손목에 화살을 박아 넣었다.

첫, 비명을 따르듯. 다른 놈들의 비명이 연달아 울렸다.

그리고 테이블에 앉아있던 에브리나의 손에 마법의 기운이 가득 담긴 화염구가 빛을 드러났고, 반대편에 앉아있던 암흑사제 아우로나의 손에서 흉흉한 검은 기운이 흘러넘쳤다.

브릴다는 테이블을 박차고 뛰어오르더니 날카롭게 세운 발톱을, 마지막으로 남은 방패 병의 목덜미에 박아 넣었다.

엠마는 이어서 뛰어 들어와 내 멱살을 잡고 비명을 지르는 놈에게 달려들며, 분노한 목소리로 외쳤다.

“감히!”

동시에 오른손의 건틀릿을 꽉 움켜쥐고는, 놈의 턱을 향에 사정없이 박아 넣었다. 놈은 턱이 뭉개지며, 몸을 파들파들 떨며 주저앉았다.

에브리나가 손안에 화염구를 맹렬하게 회전시키면서 스산하게 말했다.

“아, 밖에 끌고 나가서 태울까요?”

옆에서 에우로라가 발목에서 흉흉한 검은 빛을 내는 단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는 옆에 동생에게 말했다.

“내 동생 아우로라여, 오늘 밤 죽음의 여신께 세 악인의 영혼을 제물로 올릴 수 있겠구나!”

“네 언니, 영광된 날입니다.”

아우로라가 대답하며 손에서 이름 모를 검은 기운을 더욱더 진하게 뽑아내었다.

여자들의 살기등등한 모습에 한나 아주머니와 애니가 실신해버리고 말았다.

벨릭과 마틴의 도움으로 한나 아주머니와 애니를 집으로 옮기고, 무력화된 쓰레기들을 속옷만 남기고 벗겨서 꿇어 앉혔다.

그때서야 에우로라, 아우로라가 리젤다 엠마들과 인사를 나눴다.

“워... 우리 없는 사이에 무서운 손님이 늘었네? 강아지랑?”

벨릭의 말에 브릴다가 벨릭의 등에 매달리며, 벨릭의 귀를 물어뜯으며 외쳤다.

“뭐! 강아지? 오늘 강아지의 매서운 이빨을 느끼게 해주마!”

“으악! 얘 좀 말려줘!”

귀를 물어뜯기며 벨릭이 죽는시늉을 했는데. 생각보다 사이가 나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둘은 내버려두고 마틴이랑 놈들의 소지품을 뒤졌다. 마틴이 놈들의 소지품을 뒤지다가, 동패를 꺼내 들고 어이없는 투로 말했다.

“뭐야 이 새끼들 동 등급이잖아?”

“너무 거침이 없어서 최소 은 등급은 되는 줄 알았는데?”

처음 용병생활 시작하면 목패, 위로 철패, 동패, 은패, 금패 순으로 올라가는데. 은패정도 되어야 피지컬이 인간에서 벗어나기 시작하기에, 너무 거침없이 범죄를 저지르는 모습에 최소 은패는 되는 줄 알았는데. 고작 동패라니 ‘얘들 뭘 믿은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야 니들 대체 뭘 믿고 그런 거냐?”

브릴다와 레슬링이 끝났는지, 목에 브릴다의 침을 여기저기 바른 벨릭이, 비교적 상태가 양호한 창잡이 놈의 머리통에 솥뚜껑만한 주먹을 쿵쿵 박으며 말했다.

“크윽, 그...욱... ”

“하긴, 너네 같은 애들이 무슨 생각이 있겠냐?”

벨릭의 말에 나도 리젤다도 엠마도 웃어버렸다.

“아! 아니! 왜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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