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10화 (10/352)

〈 10화 〉 9. 모내기와 이앙법

* * *

‘손님들은 이른 아침을 먹여두었으니. 저녁때까지 잘 것이고 나머지는 종업원 모녀들에게 부탁해두었으니. 마실 이나 가볼까?’ 하는 생각으로 여관을 나섰다.

여관을 나서는데 두 번째 태양이 떠올라 완연한 아침이 되었다.

내가 자리를 잡은 이 마을의 이름은 웜포트 인구는 150명쯤 된다. 가구 수는 25가구 정도 여긴 워낙 가족단위 생활을 하고 한 가족 구성원이 많으므로, 사람 수보다 집은 좀 부족한 편이다.

마을에 상점 같은 건 없고 내 여관이 이 마을의 유일한 상업 시설이다. 마을 사람들은 인근에 도시가 있기에 필요한 건 보통 도시로 구하러 가는 편이다.

사냥철인 가을과 초봄에 모험가들이 몰려들 때는 가죽이나 부산물을 먼저 구매하려고, 도시에서 상인들이 마차를 끌고 웜포트에 진을 치기도 한다.

웜포트는 그란 폴과 대 늪지 사이에 있지만, 도시 그란 폴의 영주는 대 늪지 쪽에 흩어져 생긴 작은 마을들에는 세금을 걷지 않는다. 대 늪지나 그 인근은 그 누구의 땅도 아니기 때문이다.

영주들이 소유하지 않는 이런 공백지(?白?)가 생기는 이유가 있다.

대 늪지 같은 지역은 몬스터와 마물들이 늪 깊은 곳에서 계속 태어나고, 생존경쟁에서 밀린 개체들은 늪 밖인 평원 쪽으로 계속 밀려 나온다. 대 늪지 같은 동부 화산지대 북부 대 수림 같은 지역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이런 곳과 인접한 영주들은 항상 크고 작은 피해를 보기 마련이기에, 이런 지역을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지를 방어해야 하는 자신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모험가들에게 세금 혜택을 주거나 편의를 봐주어, 모여든 모험가가 몬스터나 마물을 사냥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공백지(?白?)에 위치한 마을은 영주의 영토 밖에 세워졌기 때문에, 마을 주민이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그래서 위험도가 높다. 그 때문에 마을 내부에 자경단도 있고, 다들 웬만한 모험가만큼 몬스터나 마물을 상대하는데 이골이 난 사람들이 많이 거주한다.

저 멀리 걸어오는 호튼씨 처럼 말이다. 호튼씨는 경작지로 일을 나가는지. 한쪽 어깨에 무거워 보이는 포대자루를 매고 있었다.

예전에 잘나가는 용병이었다는데, 호튼부인 만나서 정착했다던가? 몬스터가 나타나면 예전에 사용하던 가죽 갑옷에 방패, 메이스를 들고 나타나는데. 모든 몬스터에게 동등하게 뚝배기 한 대씩을 선물해준다.

“호튼씨 안녕하세요?”

“여, 러셀 여관 문 다시 열었다며? 여관 수리하는 동안 술을 못 마셔서, 너무 힘들었네!”

한나 아주머니께 들은 바로는 할아버지 살아계실 때는, 매일 와서 술을 마셨다고 한다. 한나 아주머니가 여관을 팔고 떠나는 걸 가장 슬퍼하셨다나?

내가 한나 아주머니네 가족에게 호의를 베풀어서 그런지, 마을에 정착하는데 도움도 많이 주시고 나한테는 살갑게 대해주시는 분이다.

“그 언제라도 오세요. 맥주 정도야 제가 언제라도 대접할 테니까요.

“그래, 요즘 일할 때 맥주 생각이 간절했다고!”

“그런데 들고 계신 건 뭐죠?”

“아, 이거 말인가? 이거 볍씨네”

“볍씨요?”

“어, 그래, 이번에 쌀 좀 수확해 보려고 말이야.

쌀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이 세계에서 구할 수 있는 쌀은 전생에 먹었던 그런 차진 품종은 아니고, 인도나 동남아시아 품종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 밥맛은 뭐 나쁘지 않지만 경작이 가능한 곳이 적어, 그란 폴에서는 밀 한 포대를 사는 가격의 두 배를 내야만 쌀 한 포대를 살 수 있다.

“그래, 밀죽보다. 쌀은 맛도 좋고 식감도 좋지 않나? 중부왕국 귀족들은 요즘 쌀죽을 아침마다 먹는다고 한다지?”

“오... 그렇군요.”

“그래선지 중부왕국 쌀 가격은 지금 엄청 올랐다고 하더군! 재배만 하면 상인들이 무조건 밀보다 두 배 쳐준다니까. 이번에는 쌀을 심어보려고 하는 거지!”

“근데 볍씨는 어디 가져가시나요?”

“어, 이제 경작지에 뿌리려고 말이야~”

“넷? 그, 그냥 뿌리면 잘 자라나요?

“뭐 쥐랑 새가 절반 정도 주워 먹고, 뭐 남은 게 열리겠지 농사란 그런 것 아닌가? 허허”

호튼씨는 사람 좋게 웃어 보였다.

보통 평민들은 호밀이나 보리를 많이 재배하고, 쌀은 자주 재배하지 않기에, 아마도 이곳은 직파법(???) 이외에는 다른 방법을 모르는 것 같다.

야생 새나 쥐가 많은 곳인데 그러면 당연히 수확량이 떨어질 터, 나는 호튼씨를 여관으로 일단 안내했다.

“호튼씨, 제 고향에서는 벼를 키울 때. 그, 쥐나 새 때문에 좀 다른 방법을 썼었는데 맥주 한잔하시면서 들어 보시죠.”

“응? 다른 방법이라고? 뭐 좋은 방법이 있나?”

호튼씨는 다른 방법도 방법이지만 맥주에 더 솔깃하여 나를 따라 여관으로 들어왔다. 호튼씨 앞에 큰 잔으로 맥주를 한잔 따라주고 육포를 조금 꺼내 잘라서 안주로 주었다. 호튼씨는 오랜만에 마시는 맥주가 무슨 성수라도 되는 양, 양손으로 잔을 들고 감격했다.

“오... 그래! 이거지!”

“그래, 그 다른 농사 방법이라는 게 뭔가?”

“제가 자란 마을에서는 쌀을 키울 때 말이죠. 경작지에 직접 뿌리지 않고 새나 쥐가 없는 곳에서 키워서 어느 정도 자라면 옮겨 심었거든요. 물 채운 경작지에 하나하나 손으로 심는 방법입니다.”

나는 모네기와 이앙법(???)에 대해서 호튼씨에게 설명했다.

“옮겨 심는다고? 그래 괜찮은 곳에 작게 울타리 둘러서 새나, 쥐를 못들 게 하고 거기서 키운 걸 옮겨 심는다는 것이군? 근데 거기까진 좋은데 하나씩 심어야 한다고?”

“예, 좀 번거롭지만 세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농작물은 여럿이 가까이 자라면 서로 땅에서 영양분을 나누어 받아서 잘 자라지 못하죠.

그런데 하나씩 심으면 서로 거리를 둘 수 있기 때문에 그럴 염려가 없죠. 또 잘 못 자라는 걸 찾아서 먼저 솎아낼 수 있어서 좋습니다.”

“또 벼를 옮겨 심을 수 있을 때까지. 경작지에 다른 작물을 심을 수도 있고요.”

“오호 그렇군! 그런데 그 하나씩 심으려면 혼자서는 힘들지 않겠나?”

“예, 보통 저희 마을에서는 옮겨 심는 날. 다 같이 모여서 서로 돕곤 했죠.”

‘이걸 품앗이라고 했었지?’

초등학교인지 중학교에서 배웠을법한 내용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흠... 그렇단 말이지? 그럼 벼 심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서로 도우면 되겠군?”

“네, 아마 그러면 더 많이 수확할 수 있지 않을까요?”

“뭐 경작지 한두 군데서 시범적으로 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요,”

“음... 한번 촌장하고 상의해서 휴경지 한군데, 물을 채우고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군,”

호튼씨는 남은 맥주를 급하기 들이키고는 촌장과 상의해본다며, 볍씨가 든 포대를 어깨에 메고는 여관을 급하게 나갔다. 나중에 궁금한 게 있으면 다시 물어보러 온다는 말과 함께.

뭐, 쌀농사 잘되면 나도 좀 더 저렴하게 쌀을 구할 수 있고, 자주 쌀을 먹을 수 있어서 좋긴 한데. 근데 자세한 지식 아니고 이런 단편적인 지식으로 모내기 추천했다가 잘 안 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도 한편으로 들었다.

이따 저녁에 엠마 일어나면, 기도 좀 부탁해야 할 것 같다.

사제와의 신성한 기도를 생각하고 있는데. 팔에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져 깜짝 놀라 옆을 보니 애니가 내 팔을 끌어안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러셀, 요즘 나를 자꾸 피하는 거 같은데?”

“응? 애... 애니, 아니야 누가 널 피한다고 그리고 인마! 그리고 내가 나이가 너보다 얼마나 많은데 어? 러셀씨도 아니고 러셀이라니!”

“우리 사이에 자꾸 그럴 거야? 러셀, 나 서운하게?”

“아니, 우리 사이가 무슨 사인데?”

“러셀, 여자 부끄럽게 만드는 남자. 매력 없어?”

“아니, 그게 왜! 부끄러운데...”

애니와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데, 옆에 한나 아주머니가 우리를 보고 웃으며 지나갔다.

“아... 아니, 한나 아주머니 그게...”

“하, 모르겠다...”

테이블에 앉자 애니가 빵과 치즈 아침에 짠 염소젖과, 얼마 전 늪에서 따온 열매로 만든 잼을 차려주었다.

“러셀 많이 먹고 힘내? 남자가 바깥일 하려면, 잘 먹어야 한다고 했어~!”

이젠 거의 남편 대하듯 말하는 애니를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바라보며, 챙겨주는 점심을 아무 생각 없이 먹었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말이다.

저녁 시간이 되자 손님들이 하나둘씩 일어났다.

“혀, 형님 저 괜찮은가요? 자고 일어났는데도 피부가 아픕니다!”

벨릭은 얼마나 때를 박박 밀었는지. 볼이 아직도 발그레한 상태였다. 그래도 더 이상 냄새는 나지 않아서, 울상인 벨릭에게 한마디 해주었다.

“뭐든지 쉽게 되는 건 없거든?

여자들도 예뻐지기 위해서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냐?

“너! 인마 귀족 아가씨들은 코르셋 같은 거 입으면, 밥 먹고 소화도 잘 안 되고 그런 다더라! 그러니까 엄살 그만 떨고 테이블에 앉아있어! 밥 먹으면 기분 좋아지니까”

“넵... 형님...”

벨릭은 울상을 지으면서 테이블에 앉았다.

뒤로 창잡이 마틴과 엠마, 리젤다가 1층 홀로 내려왔고 마법사 에브리나가 마지막으로 내려왔다.

에브리나는 날 보자마자 양손으로 내 손을 잡더니 초롱초롱한 눈으로 말했다.

“아~ 러셀씨라고 했던가요? 그 서비스 마사지 너무 감사했습니다.”

“어? 어... 그래 그 마사지는 좋았나?”

“네! 아, 진짜 그건 뭐죠? 피로가 다 풀리는 느낌이었어요!”

“뭐 근육의 피로를 풀어주는 거니까 말이지. 맘에 들었다니 다행이네”

에브리나가 말을 와다닥 쏟아내는 통에 말을 하는 중에도 손을 놓지 않았다는 사실을 몰랐는데. 옆에서 리젤다가 헛기침을 하는 바람에 손을 붙잡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크흠! 크흠!”

나는 깜짝 놀라서 황급히 손을 놓았는데, 에브리나는 왜 그러냐는 눈빛으로 말을 이어갔다.

“아침도 너무 훌륭했어요. 그, 아침에 먹은 그 쌀도 매우 좋았고! 이런 곳이 있었다니! 하, 정말 여길 몰랐던 제 인생 손해 본 느낌이었어요!”

“어... 어? 그래?”

“네, 네! 진짜 리젤다도 이런 좋은 곳 알았으면, 빨리 말해줄 것이지!”

“그... 그래 부디 푹 쉬다가 가라고~”

잘못하면 더 붙잡혀 있을 것 같아서 나는 재빨리 말을 끝내고, 저녁을 준비하기 위해 부엌으로 향했다.

오늘 저녁은 피자나 만들어 먹어야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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