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 8. 아침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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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를 위해서 출발했던 손님들이 점심때쯤 돌아오겠거니 하고 자고 있었는데. 마차 소리에 잠을 깨고 말았다. 새벽이 어슴푸레 밝아 올 때쯤 무슨 마법을 부렸는지. 리젤다와 그 파티 원들이 탄 마차가 여관 앞에 선 것이다.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세수를 하고 내려왔다. 테이블에 리젤다의 파티와 처음 보는 오렌지 색 머리의 여자 하나가 앉아 있었다. 눈 옆에 눈물 점 때문에 약간 퇴폐미가 느껴지는 여자였는데 표정에는 ‘나 생각 없음’ 이라고 쓰여 있는 것 같았다.
마크가 마구간에 말을 매어두고 들어왔기에 좀 이르긴 했지만, 집에 가서 다른 분들을 보내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올 때 준비해준 옷을 꼭 입고 오라고 전달했다.
손님들에게도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잠시 기다리라고 이야기한 후 부엌으로 향했다.
고생하고 온 리젤다와 파티 원들을 위해서, 조금 이른 아침 식사를 준비하러 부엌으로 향한 것이다.
아침에 뭘 해주면 좋을까 생각하다. 한국인은 아침에는 밥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손님들은 한국인이 아니지만, '아무튼 아침은 밥이다!' 라고 결론을 내려 버렸다.
며칠 전 마을에 왔던 상인에게 말린 생선을 좀 사두었는데. 이걸 이용해서 이세계식 북엇국을 끓이면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침 무도 크게 자란 녀석이 있고 말이다. 텃밭에서 무를 뽑아온 후 한입 크기로 잘라서 기름에 넣고 달달 볶는다. 볶을 때 기름은 이곳에서 구할 수 있는 넛트류의 기름을 이용했다. 원래 들기름에 볶아야 맛있는데 들깨는 아직 못 찾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말린 물고기를 적당한 크기로 넣어 같이 볶다가 마늘을 넣고 물을 적당히 부어 준 후 푹 끓인다.
파는 없어서 샐러리로 대체했고 간은 소금으로 했다.
쌀은 깨끗하게 씻어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무쇠 냄비에 넣어 물량을 맞추고, 뚜껑을 덮어 준다. 냄비가 끓어오르면 화로에 불을 죽인 후 잔열로 뜸을 들인다.
내가 이곳에 정착한 이유 가장 큰 한 가지가 바로 이것이다. 대 늪지에 가까운 이 마을은 우측에 큰 강을 끼고 있는데 그 강이 대습지까지 흘러든다. 우기에 이 강이 주변으로 범람하고 우기가 끝나면 그 범람원들이 비옥한 옥토로 변한다.
이곳 사람들은 이곳에 경작지를 만들고 여러 가지 작물을 키우는 데, 그래서 이곳은 음식재료가 풍부한 편이다. 그리고 그 풍부한 식재료 중에 사탕수수랑 쌀이 자라는 것이다.
내가 이곳에 정착하는데 이점이 큰 부분을 차지했다.
전생의 기억이라는 게 항상 향수를 유발하는 건 아니지만. 쌀밥은 진짜 여관에서 쓰레기 같은 음식을 먹을 때마다 생각나곤 했다.
뭐 내가 한국인이었다고 김치 쌀밥이 항상 생각나는 그런 건 아니지만. 워낙 식생활이 끔찍하니 전생에서 가장 자주 먹던 음식이 떠오르는 것은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오늘 아침은 쌀밥이다.
이곳 사람들은 쌀로 보통은 죽을 만들어 먹는다. 쌀 자체가 좀 귀한 작물이고 귀족들이 특별식으로 요리해 먹을까? 평민들은 산지 이외에는 거의 먹을 수 없는 작물인 이유도 있다.
아침을 준비하다 밥과 국 두 가지만으로는 좀 부족하다 싶었다. 그래서 달걀 프라이도 인당 두 개씩 하고, 김치가 없으니 피클도 좀 잘라서 각자 접시에 올려주었다. 그리고 햄도 좀 잘라서 굽고 이 정도면 훌륭한 아침 식사 아니겠나?
큰 접시에 밥을 퍼 담고 달걀 두 개 올리고 옆으로 햄 올리고 적당한 그릇에 국을 퍼 담아 각자 앞에 놓아주니. 여섯이 또 어떻게 먹나 눈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먹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쌀밥은 달걀이나 햄이랑 같이 먹던지. 같이 준 수프에 말아먹으면 된다.”
다섯은 처음에는 어색해했지만 벨릭이 국에 밥을 말아 먹자, 다들 따라서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나는 의자를 하나 끌어와서 옆에 앉았다.
“그래 옆에 온 분은 손님인가? 며칠이나 묵을 건지?”
한창 눈을 감고 음식 맛을 음미하던 오렌지 색 머리의 여자 손님은, 급하게 입안에 음식을 삼키더니 웃으며 말했다.
“아, 전 에브리나라고 하고 아, 음식이 매우 맛있어서 헤헷... 그... 여긴 1박에 얼마인가요?”
“아, 그래 에브리나 반가워. 혼자 왔으니 개인실을 이용해야 할 거고 1박에 3 동화다.”
“네엣? 3 동화요?”
눈을 동그랗게 뜬 에브리나라는 오렌지 색 머리 여자가 리젤다를 바라보자, 리젤다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한번 묵어봐 3 동화는 너무 싸다는 생각하게 될 걸?”
리젤다가 옆에서 거들자 오렌지 색 머리 여자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품에서 동전 주머니를 꺼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동전 몇 개를 골라 나에게 준다.
“아, 그, 일단 3일만...”
“좋아, 위에 별 5개 방을 쓰면 되고. 식사 들 마치고 다들 피곤할 테지만 목욕 준비해 줄 테니 씻고들 자라고?”
내 목욕이라는 소리에 여자들은 눈을 빛내며 기대감을 나타냈는데, 옆에서 털북숭이놈이 자신은 그냥 자겠다며 씻는 걸 거부했다.
“저... 러셀형님, 저는 그냥 피곤해서 그냥 자겠습니다.”
“털복숭아?”
나는 벨릭을 애칭으로 지긋이 불러 주었다.
“아니, 형님, 이제는 벨릭이라고 불러 주시지...”
벨릭이 즉시 약간 불만 있는 말투로 투정을 했다.
‘그래 인마 내가 이름으로 불러 준다!’
“그래 벨릭아, 너 인마! 여자들이 냄새 나는 남자 제일 싫어하는 거 아냐?”
리젤다를 마차에 에스코트해 줄 때 리젤다가 부끄러워하자. 이 털북숭이 벨릭이 나를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봤던 걸로 봐서는 이놈 여자한테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이런 놈에게는 현실을 알게 해주는 게 좋다.
‘근데 신기한 게 이놈 매일 목욕하는데 왜 냄새가 안 빠지지? 좀 더 강력한 세척제나 향유가 필요하나?'
하는 생각을 하는데 벨릭 놈이 깜짝 놀라며 대답한다.
“옛? 아니 정말입니까?”
“너 인마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다가가서 말을 걸어야 하는데. 처음 보는 남자가 다가와서 말을 거는데 일단 냄새부터 난다? 이야기 듣고 싶겠냐? 인상부터 써지지 않을까?”
이 새끼 그런 말 처음 들어 본다는 듯이 다시 묻는데. 역시 이 털북숭이놈은 아직 인간이 되려면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벨릭이 나에게 되묻다가 건너편에 나란히 앉은 여자 셋을 향해서. 이게 맞느냐는 눈빛을 보내자 세 여자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냄새 나는 남자 딱 질색이긴 해요.”
“아, 벨릭이 좀 냄새나긴 해...”
“말할 가치도 없네. 머리는 이제 사람이 되어 가는데, 냄새는 아직 짐승이라니...”
벨릭이 새빨개진 얼굴로 "아! 씻으면 될 것 아니야!" 라고 외치자 입안에 밥풀이 사방으로 튀어서 날렸다. 반대편에 앉아 있던 세 여자는 밥풀세례를 받고는 소리를 빽 지르며, 벨릭을 끌어내 집단 구타하기 시작했다.
“내, 내! 음식!”
“내, 음식 어쩔 꺼야?!”
“아, 그만... 그만... 하라구!”
두들겨 맞는 벨릭이 들을지 말지는 모르겠지만, 벨릭을 향해 외친다.
“넌 오늘 꼭 때 밀어라? 안 밀면 여관에서 쫓아낸다! 대체 매일 씻는데, 왜 냄새가 날까?”
한참 구타가 이어지고, 놔두면 애 하나 잡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셋의 음식을 적당히 리필 해 벨릭을 구원해 주었다.
일련의 소동이 끝나고 내 회심의 역작 메이드 복을 입은 세 여자가 들어왔다.
“오! 셋 다. 잘 어울리는데?”
좀 고급스러운 느낌의 여관을 운영하려면 유니폼이 필수일 것 같아서, 전생의 기억을 살려 메이드 복을 만들었다. 다른 옷도 많겠지만 '남자의 로망은 메이드복 아닌가?' 아니라는 새끼는 다 위선자다! 아무렴!
어설픈 그림 실력으로 대충 그림을 그려서 한나 아주머니께 보여 드렸었다. 그걸 토대로 긴치마와 앞치마, 프릴도 넣고 한나 아주머니와 애니 셋이 머리를 맞대고, 여러 번의 착오 끝에 결국 만들어낸 것이다.
한나 아주머니와 애니는 옷이 다 만들어졌을 때 옷이 예쁘다고 난리였다. 평민들은 옷 한두 벌 가지고 계속 입는데. 때가 쉽게 타서 평민들은 잘 입지 않는 흰 천과 고급스러운 검은 천으로 옷을 만드니. 이곳 일반인들 눈에는 무척 예쁜 옷으로 보일 것이다.
메이드 복을 차려입은 셋을 보면서 역시 메이드 복은 진리라는 생각했다. 나는 한나 아주머니와 딸들에게 손님들의 목욕과 뒤처리를 부탁했다.
에브리나는 마사지를 서비스해주라고 했고, 벨릭은 한나 아주머니랑 애니 둘이 들어가 피부가 벗겨질 때까지 때를 밀어 주라고 지시했다.
물론 돈은 따로 받고 말이다.
손님들이 식사를 다 하고 위층으로 사라진 후. 잠시 뒤 리젤다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1층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마을에서 홍보한 내용을 정리해서 알려주었다.
“그러니까. 오렌지 머리가 파티 없이 혼자 활동하니까 홍보에 좋은데. 가끔 저렇게 생각 못 한 돌발 행동을 해서, 이곳까지 따라온 거라는 거지? 거기까지 생각해서 행동할 줄은 몰랐는데? 역시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있다니까?”
내 말에 리젤다의 볼이 붉게 물들였다.
“어차피 마을에 한번 다녀온다고 했다니까. 그전에 여러 가지 서비스하면 되겠지. 뭐, 아무튼 수고했어. 리젤다양 보고까지 해주고. 고마워요?”
내가 장난스러운 어투로 말하자. 리젤다가 새침하게 대답하고 위층으로 사라졌다.
“그...뭐, 칭찬받으려고 한 건 아니고. 그, 일단 맡은 일이니까. 보고 드린 것뿐 이에욧.”
;리젤다는 눈매는 날카로운데 하는 행동은 귀엽구나 이게 그 전생에 츤데레 그건가?' 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의 상상 속에서는 리젤다와의 결혼과 가족계획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때 목욕탕 쪽에서 벨릭의 비명이 들려왔다.
“아 아니 여길 왜들어 오시는...!”
“네? 러셀형님이? 네? 쫓아낸다고요?”
“아악! 악! 아니 이거 피부 벗겨지는 거 아닙니까?”
벨릭의 비명과 함께 한나 아주머니와 애니의 웃음소리가 마을로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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