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8화 (8/352)

〈 8화 〉 7. 전투식량

* * *

멀리서 달려오던 에브리나가 리젤다의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마를 훔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헥헥... 아, 늦지 않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에브리나는 자연스럽게 마크에게 짐을 넘기고는, 마차에 남은 짐을 실어 올렸다. 심지어는 벨릭에게 짐을 넘겨받기를 종용하기까지 하며 마차에 재빠르게 올라타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그리고 리젤다에게 말했다.

“아, 자 나도 탔으니. 출발!”

마크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을 재촉해서 마차를 출발시켰다.

리젤다는 뒷자리에 에브리나를 보고 머리가 아파왔다.

자신의 홍보 대상 중에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사람이 고정파티가 없고 생각 없이 아무 말이든 잘하는 에브리나였는데. 이렇게 오늘 자신들을 따라가 버리면 홍보 효과를 전혀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저... 에브리나 오늘 우리랑 같이 가려고?”

“아, 응! 고블린을 한 마리를 발견하면, 재빨리 잡아라! 언제 두 마리가 될지 모르니까!”

에브리나는 모험가의 가르침을 언급하며 웃으며 대답했다. 고블린은 번식력이 뛰어나니 빨리 잡지 않으면 언제든 수가 불어날 수 있어, 빨리 행동하라는 가르침인데.

이런 상황에 쓰는 게 맞나 싶긴 한데. 뭐... 일단, 에브리나가 저래 버리면 말릴 수도 없기에, 황당한 표정으로 뒤를 힐끔거리는 마크에게 괜찮다는 손짓을 보냈다.

“근데 에브리나 돈은 얼마나 있어?”

“아, 나? 지금 한 25 동화쯤 있나? 일단 며칠 있어보고, 좋으면 길드 가서 돈 좀 더 가지고 오려고! 정말 그렇게 좋은 거지?”

모험가는 보통 일반인보다 더 큰돈을 번다.

그래서 도적이나 도둑질 소매치기의 표적이 되기 쉽다. 보통 큰돈을 모으게 되면 모험가 길드에 보관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마 에브리나는 돈 대부분을 길드에 보관하는 것 같다.

리젤다는 에브리나의 말을 듣고 머릿속으로 계산을 했다.

‘25 동화면 대충 12일 정도 있을 수 있으니 얘가 다시 라필드로 돌아가서, 홍보과가 나오려면 25 동화를 빨리 쓰게 해야 하니까. 마사지 자주 받으면서 장비관리까지 시키면 좀 더 빨리 마을로 돌아가겠지?’ 라는 생각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지금 뭘 하는 걸까?' 하는 생각과 함께. 아침에 출발할 때 러셀이 자신에게 손을 내밀며, 에스코트하던 장면이 생각났다.

지는 태양과 함께 괜스레 리젤다의 볼도 같이 물들었다.

리젤다는 북부 한 나라의 하급 귀족 출신이다.

하급 귀족의 작위는 본 작위 하나뿐이라서 그건 보통 후계자에게 상속되고, 자신 같은 셋째 딸은 성인이 되면 평민이 된다. 보통 돈 많은 상인이나, 같은 하급 귀족 가 후계자에게 시집을 가게 되지만 리젤다는 그런 것이 싫었다.

산악이 많은 북부는 산 곳곳에 숨어 사는 몬스터나 마물이 많고. 이런 몬스터나 마물을 상대하다 보니 북부는 무력을 숭배하는 성향이 강하다. 어릴 때부터 북부의 숲에 활동하는 엘프 레인저들의 멋진 모습을 보고 자란 리젤다가 궁수가 된 건. 어쩌면 자연적인 순서라고 할 수 있었다.

리젤다는 성인이 되자 자신에게 주어진 적지도, 많지도 않은 돈을 가지고. 가족을 떠나 모험가가 되었고 그렇게 이곳저곳을 떠돌다. 남부 평원 끝에 이곳에서 모험가 생활을 이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리젤다는 귀족다운 생활이 몸에 익은 터라. 처음에는 모험가 생활을 하는데 힘든 일도 많았다. 그중에서 인간관계에도 거친 모험가들에게 적응하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었다. 특히 리젤다는 남자 모험가들을 싫어했는데 예의 없고 무례한 모습이 그들을 경멸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모험가 출신이라는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여관 주인 따위가 왜 자꾸 생각날까?

말투는 자신감 넘치고, 특이한 어투로 말하며 흔하지 않은 검은색 머리를 가진 남자. 그리고 자신이 놀렸을 때는 순수한 모습을 보였지만. 벨릭 같이 무뢰한 인간들에게는 당당한 사람...

그런 생각에 잠겨있을 때 뒤에 앉아있던 에브리나가 리젤다의 목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아, 근데 리젤다, 어두워지면 쉬었다가 갈 거야?”

“어, 어? 그래 좀 더 가다가 어두워지면, 쉬었다가 가는 게 좋을 거 같긴 해. 왜?”

하늘은 마지막 해까지 지평선 너머로 떨어지려 해,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보통 이렇게 어두워지면 마차를 끌고 이동하기 어려워진다. 출발 전에 마크가 마차 앞에 양쪽으로 등불을 켜두었지만, 어두워지면 말이 겁먹기도 해서 이동하기가 힘이 드는 것이다.

“아, 그 괜찮으면 내가 힘 좀 쓸까? 응? 웜포트에 아침까지 도착할 수 있는데?”

“어? 어떻게?”

“아, 이렇게 말이지!”

“어둠 속에 흐려진 시야여! 세 개의 태양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밝아져라! 어둠의 시야!”

에브리나는 어둠의 시야 마법으로 주변 사람과 말의 시야를 밤에도 대낮처럼 볼 수 있게 만들었다. 바뀐 시야에 놀란 말이 잠시 멈추고 마크도 깜짝 놀라 고삐를 당겼지만, 잠시의 소란 끝에 마차는 다시 출발할 수 있었다.

“아니, 뭘 하려면 한다고 말을 해야지. 에브리나!”

벨릭이 뒤에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헤헤 아, 미안~ 미안~ 쉬었다가 간다기에... 나는 빨리 가고 싶어서...”

마차는 그렇게 밤의 어둠 속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에브리나의 마법을 본 엠마까지. 그런 좋은 방법이 있었느냐며 말에게 체력 회복의 축복을 틈틈이 걸자. 말들은 피로를 모르고 달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왔을 때 리젤다 일행은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마을까지는 아직 절반 정도 남았고 배낭에서 육포나 꺼내 먹어야 하나? 하는 생각할 때 뒤를 돌아보고 마크가 말했다.

“저... 식사들하고 가실까요?”

“응? 먹을 것이 있어?

리젤다도 마침 배가 고파 오고 있었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되물었다.

마차가 길가에 멈춰 섰다.

마크가 익숙한 손놀림으로 솥을 준비하고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방에서 러셀이 출발할 때 준 것 중 하나를 꺼냈다.

리젤다는 그것을 보자 출발할 때 경황이 없어서 잊고 있었지만, 그가 마크에게 저것을 넘겨주면서 했던 말이 생각났다.

‘윗부분을 자르고 내용물을 끓는 물에 넣고, 충분히 끓여서 양이 많아지면 먹으라고 했지?’

러셀이 준 그것은 쥐 같은 작은 설치류의 가죽을 통으로 묶은 것이었는데. 다리와 꼬리 엉덩이 부분이 꼭꼭 묶여 있어서 물이 들어가거나 안에 내용물이 쉽게 상하지 않는다고 했다.

속은 무엇이 가득 차서, 꼭 보면 머리 없는 작고 배가 볼록한 설치류를 닮은 듯 보였다.

나이프로 윗부분을 살짝 도려내자. 무엇인가가 마크의 손으로 조금 쏟아졌다. 재빠르게 냄비 위로 가져가서 내용물을 끓고 있는 물속으로 탈탈 털어냈다. 그러자 고소한 향이 나기 시작했다.

러셀의 말대로 국자를 넣어서 휘저어 가면서 물이 부족하면 물을 조금씩 더 넣으면서 끓이기 시작하자, 양이 금방 여섯이 먹어도 충분할 만큼 늘어났다. 마크가 조금 떠서 맛을 본 다음 소금을 꺼내서 간을 했다. 그리고 마차에서 대접을 꺼내와 각자에게 내용물을 배식했다.

리젤다가 첫 수저를 떴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었다.

분명 죽인 것 같은데 귀리와 보리, 말린 채소와 고기가 조화롭게 들어 있었고, 그것을 끓이자 무엇보다 맛있는 음식이 되었다. 귀리나 보리는 보통 익으려면 한참을 끓여야 했지만 분명 잠깐밖에 익히지 않았는데. 러셀이 무슨 마법을 부렸는지 귀리나 보리가 아주 잘 익은 상태였다.

배고플 때 아주 빨리 따듯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니, 얼마 전까지 늪에서의 식사가 다시금 떠올랐다.

보통 사냥을 나가면 사냥한 동물을 해체해서 굽거나 삶아 먹는다. 가지고 간 육포나 소시지, 햄, 빵 등은, 아무리 아껴먹어도 얼마 안 되어 떨어지기 마련이고. 결국은 사냥한 동물이나 물고기 또는 늪에서 딴 딸기, 야생열매, 허브 등을 이용해서 적당히 때우게 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빵같이 부피가 크고 소시지 햄 같이 무게가 많이 나가는 식자재들은 많이 챙겨 갈 수도 없다. 무게가 많이 나가면 싸울 때 둔해지게 되고. 거점을 만들어 물건을 넣어 두더라도 아무도 없을 때 야생 동물이나 아인 또는 마물들이 냄새를 맡고 와서, 거점에서 식량을 먹어 치우는 경우도 자주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앞에 있는 이것은 가죽으로 꽁꽁 싸매어져 있었고. 냄새도 거의 나지 않고 부피도 작고 무게도 그렇게 많이 나가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재료로 이런 맛을 낼까?

리젤다는 뜨거운 음식을 후후 불어가면서 정말 맛있게 먹었다. 그렇게 한참을 먹다가 주변을 확인해 보니 다른 파티 원들도 자신과 다를 바 없었다. 아주 정신없이 그리고 맛있게 음식을 먹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따듯한 걸 먹자 해가 떨어져 느껴진 쌀쌀함은 온대 간대 없이 사라지고 이마에 조금씩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하... 언니 러셀 그분은 정말! 여관을 수호하는 신의 사도일까요?”

엠마가 연신 수저를 입에 가져가며, 신성모독과 신앙 사이에서, 외줄 타기 발언을 하고 있었다.

“아, 근데 이 음식이 뭐야? 엄청나게 맛있는데?”

에브리나가 연신 입으로 스푼을 가져가며 물었다. 마틴이 대답했다.

“그거 러셀님 말로는 “전투식량” 이라고 하시던데요?

이세계 첫 전투식량이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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