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5화 (5/352)

〈 5화 〉 4. 노숙

* * *

리젤다의 파티는 길드에서 나와 근처 주점으로 향했다.

두 달간의 여정을 축하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통 오리 두 마리와 새끼 양 반 마리 그리고 맥주 한 통을 시켰다. 잠시 후 기름기 흐르는 오리와 양고기가 먹음직하게 차려졌다.

“오늘은 먹고 죽자고!”

벨릭의 외침과 함께 식사가 시작되었다. 식사 내내 리젤다의 호기로운 행동은 파티원들의 안줏거리가 되어 주었다. 호크의 당황한 얼굴이 넷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크하하핫! 호크, 그 새끼, 얼굴 진짜!”

“리젤다 누님, 배짱 한번 두둑한데요?”

“언니, 진짜 멋있었어요!”

“아...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냥 먹자.”

리젤다는 약간 귀가 붉어진 상태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지만, 자신이 왜 그랬는지. 다시 생각해 봐도 모를 일이었다.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식탁 아래를 내려다보니. 자신의 반짝이는 장화가 자신을 비추고 있었다. 아주 과도하게, 미칠 듯이 반짝여 자기 얼굴까지 비추는 장화….

리젤다는 두 달간의 대 늪지 사냥으로, 너무 지치고 말았었다.

전사인 벨릭이나 마틴은 모르겠지만 궁수인 그녀와 사제인 엠마는, 진짜 두 달간의 늪지 노숙 생활로 육체와 정신이 피폐해지는 경험을 했다. 잘 때도 질척거리는 늪지 한편에 방수 처리된 가죽을 깔고 선잠을 자야 하는 생활. 거기에 불침번까지 보너스로 제공되었기 때문이었다.

벨릭과 마틴이 라필드로 복귀해서 쉬자는 걸 길바닥에 드러누워 도저히 더 이상은 못 가겠으니. 끌고 가라며 투정을 부려 근처 작은 마을로 향한 것도 도저히 더는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서 만난 특이한 여관 주인….

자신들의 가슴에 있는 은 등급 모험가 배지를 보고도 전혀 겁먹은 기색 없이. 벨릭에게 털북숭이라며 놀려대던 그 모습. 2 동화면 다른 여관의 두 배 가격이지만, 호기로운 여관 주인의 모습에 호기심 반 기대감 반으로 숙박을 결정했다.

그리고 방으로 올라갔을 때 조금 놀라고 말았다. 정말 깨끗한 방에 허브 냄새가 은은하게 났다. 아마도 이나 빈대를 쫓기 위해 박하 향을 뿌려 둔 듯했다.

더군다나 침대의 매트는 적당하게 푹신했고, 등을 찌르는 지푸라기를 막고 포근한 느낌을 위해선지. 두꺼운 털가죽 위로 방수 처리된 가죽 한 장을 더 올리고, 마무리로 맨 위는 깔끔하게 세탁된 흰 천으로 쌓여 있었다. 이불에서는 은은한 허브향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이어진 목욕. 두 달간의 피로가 사라지고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하마터면, 엠마랑 둘이 탕 속에서 까무룩 잠이 들 뻔했다.

저녁 식사는 어떠했나? 자신이 모험가로 활동하며 그동안 여관에서 먹어왔던 그 음식들은 음식물 쓰레기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위 귀족이긴 했지만, 귀족 집안의 자녀로 가족들과 생활할 때 먹었던 음식도 그 정도로 정성을 쏟지는 않았는데. 리젤다는 자신이 다시 귀족이 된 것 같았다.

식사와 함께 제공되었던 달콤한 포도주는 그런 리젤다의 기분을 좀 더 고조시키기 충분했고, 정말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다. 그리고 식사 후 쏟아지는 졸음 속에서 잠들기 전 아무 생각 없이 장비 손질을 부탁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 리젤다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장비 손질은 그냥 늪에서 묻은 진흙이나 털어내는 정도라 생각했고. 어제 목욕과 식사가 너무 훌륭해서 속는 셈 치고 맡긴 것인데. 아침에 받아본 둘 장비의 상태는, 이전 상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게 손질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무기나 방패, 단검은 기름을 잘 먹여 닦아서 광을 냈는지. 아주 반질반질하고 번쩍번쩍 광이 났다.

심지어 가죽 갑옷은 오래 사용하기도 했고 이번 사냥 때 늪지에서 수분을 먹고 마르는 것을 여러 번 반복해서 그런지. 경화가 너무 심해 안감이 너무 딱딱한 감이 있었는데. 이것이 아주 부드러운 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여관 주인이 새것처럼 만들어 준다는 말이 그냥 농담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리젤다가 놀란 얼굴로 아침 식사를 위해서 1층으로 내려왔을 때. 아침을 보고 리젤다는 다시 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녁이야 맛있는 식사를 해 주었지만 아침까지 기대하지는 않았는데. 식감 좋은 소시지에 달걀 프라이와 콩 수프, 따듯하게 데운 염소젖에, 처음 보는 납작한 보리로 만든 빵이 있었는데. 여기에 여관 주인 러셀은 꿀까지 뿌려주었다. 완벽한 아침 식사였다. 귀족으로 가족들과 생활할 때도 몇 번 먹어보지 못한….

아니, 어쩌면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엠마는 옆에서 연신 감탄을 내뱉으며 러셀을 찬양하기까지 했다.

“언니 저는 이제 러셀님이라고 부를래요….”

사제로 검소한 식사만 했을 그녀에게 이런 음식은 확실히 대단한 것이리라. 하급 귀족이었던 자신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말이다.

러셀의 여관 서비스에 하나부터 열까지 미칠 듯이 감동했던 그녀는, 퇴실할 때 그가 전달해준 자기 부츠를 보고 완벽하게 넋이 나가고 말았다.

자신의 긴 부츠는 아주 맑은 호수처럼 모든 것을 반사하고 있었다. 멍한 얼굴로 부츠를 받아들었다. 부츠를 자기 다리에 신고 조심스레 밖으로 한 걸음 걸었을 때. 길에서 먼지가 올라오자 리젤다는 화들짝 놀라며, 다시 여관 입구로 한걸음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부츠를 신고 라필드까지 걸어간다고 생각했을 때. 잠시 정신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정신이 들었을 때는 벨릭에게 자신은 무거운 부산물을 들고 더는 걸어갈 수 없으니. 마차를 알아보라고 호통을 치고 있었다.

마치 소녀가 새 신발을 처음 신고 아까워서 걷지 못하겠다는 모습으로 말이다.

벨릭은 반대할 법도 한데 아무 말 없이 마차 편을 알아봐 주었다.

마침 도시로 향하는 마차가 있었고, 그 마차비용으로 5 동화를 주었지만 아깝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리고 멀어져가는 여관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여관이 점으로 사라져 없어질 때까지. 그렇게 여관 쪽만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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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젤다는 파티 원들과 신나게 먹고 마신 후 쉬기 위해서 여관을 찾았다. 사냥이 끝나면 넷이 매번 묵는 그 여관이었다. 여관 주인에게 4 동화를 주고 엠마와 둘이 같은 방에 들어갔다. 매번 묵는 여관이고 아무것도 다를 바가 없을 텐데, 여기저기 거미줄이 쳐진 방의 상태와 꺼진 매트리스.

그리고 엠마가 침대에 앉자 올라오는 곰팡내에 확 인상이 써졌다. 옆의 엠마를 보자 엠마도 인상을 쓰면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이상한 느낌에 침대 모서리를 보자, 빈대 한 마리가 앙증맞은 몸통을 드러내면서 뽈뽈뽈 기어서 자신에게 오고 있었다.

“힉!”

모험가 생활 중에 빈대는 수없이 보았고, 여관이라면 당연히 있는 녀석들인데. 왠지 소름이 끼쳤다.

아무 생각 없이 내려놨던 짐을 다시 들고 일어서자, 반대편에서 엠마가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히 말을 걸어왔다.

“그, 언니, 저희가 항상 사냥이 끝나면 휴식하잖아요?

그, 짧게는 한 주 길게는 한 달까지?

그, 이번에는 일단 두 달 쉬기로 했으니까 말인데요….

그, 쉬면 꼭 라필드에서 쉴 필요가 있을까요?

그, 생각해 보면 하루거리인데 그 어제 묵었던 여관이….

그, 또 가격이 비싸긴 한데 저희가 이번에 좀 벌었기도 하고….

그, 장기 숙박이면 좀 깎아주시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 뭐 돈을 아껴야 하긴 하는데 말이죠.

그, 모험가는 쉬면서 컨디션을 조절하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고….

그, 그때 언니가 그러셨죠?

그, 그러니까….”

엠마는 무슨 기도문을 읽듯이 빠른 속도로 이야기했는데, 다른 내용은 다 필요 없고 딱 한 가지만 중요했다.

“엠마….”

“네? 넷?”

“가…. 가자!”

리젤다와 엠마는 부리나케 짐을 들고는 방문을 열고 나왔다. 그리고 문밖에서 어정쩡한 자세로 각자의 짐을 들고 서 있는 벨릭과 마빈을 보았다. 넷은 서로 바라보기만 하고 그렇게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그때 벨릭이 침묵을 깨고 말했다.

“크흠…. 그, 해가 져서 성문이 닫혔을 테니까 긴급 의뢰로 가자”

벨릭의 말에 리젤다가 신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벨릭은 나한테 고마워해야 할 것 같아”

“무슨 말이지 리젤다?”

“내가, 네 뒤통수를 자주 때리는 바람에, 네 머리가 이제 사람다운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 같아.”

“뭐라고?! 아, 아, 아니. 귀 좀 놓고!”

리젤다는 벨릭의 귀를 잡아끌고, 부리나케 계단을 내려갔다.

여관 주인에게 4 동화를 환불받는 것도 잊지 않았다. 급한 일이라는 핑계로 말이다.

넷은 성문으로 향했다.

경비를 서고 있는 경비대원에게 가슴의 은 등급 모험가, 용병 배지를 보여주면서 말했다.

“긴급 의뢰다!”

은 등급 모험가부터는 긴급 의뢰 시에 밤에 닫힌 성문으로, 나갈 수 있는 특권이 부여되는데. 이것을 이용한 것이었다. 경비대원은 아무 말 없이 성문 한편에, 작은 문을 열어 넷을 성 밖으로 내보내 주었다.

성 밖으로 나온 넷은 대 늪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벨릭이 가방에서 발광석 등을 꺼내서 등불을 켜고 앞장서며 말했다.

“근데 이렇게 걸어가면 내일 밤이나 도착하는 거 아니야?”

“아침까지 기다렸다가 마차 타고 갈 걸 그랬나?”

“난, 그 방에서 절대 아침까지 못 기다릴 것 같아요!”

엠마가 힘차게 고개를 저으면서 끔찍한 소리를 들은 것처럼 말했다. 리젤다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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