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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화 (76/93)

요녀 헬레나 2부 : 오스.. 7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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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이셀라의 나신이 큰 충격으로 비틀거렸다. 순간적으로 눈앞이 노래졌다. 그랬다. 지금 그녀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이었다. 게다가 몸 전체에 정액, 애액, 체액, 키스 마크 등 섹스의 흔적이 그득했다.

이런 꼴로 타인들 앞을 돌아다닌다?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왕비 처소의 하녀들과만 만난다 해도 그녀들 모두 깜짝 놀라서 뒤로 수군댈 것이다. 그리고 그 수군댐의 파도가 다른 곳으로 넘실거리는 순간, 이셀라의 평판은 땅에 떨어지게 된다.

“오 마이 갓! 왕비 전하가 궁전의 정원에서 한밤중에 알몸으로 돌아다녔대.”

“그것도 보지에서 정액을 질질 흘리고 있었대. 국왕 폐하와 그런 곳에서 몰래 섹스할 리는 없으니 틀림없이 딴 사내랑 한 거야.”

“말도 안 돼! 그게 진짜야?”

“틀림없어!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 걸.”

“이럴 수가, 좀 활달하고 정열적이기는 해도 정절을 더럽히는 여자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딴 사내랑 섹스하고, 게다가 부끄러운 줄도 모른 채 알몸으로 정원을 돌아다니다니, 완전히 창녀나 할 짓 아냐?”

“그러게, 왕비 전하가 그렇게 음탕한 여자인 줄은 몰랐는데, 나도 충격이야.”

“그냥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겠지. 대체 얼마나 많은 사내가 그녀의 보지를 침습했을지 누가 알겠어?”

벌써부터 이런 웅성거림이 귀를 울리는 것 같았다. 이셀라의 붉은 입술이 부르르 떨렸다. 안 돼! 안 돼! 그런 꼴을 당하고는 살 수가 없었다. 그런 소문이 나면, 그녀는 그야말로 자살하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으리라.

한동안 멍하니 서 있던 이셀라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이런 상황에서도 화사하게 빛나는 그녀의 루비빛 머리칼이 펄럭거렸다. 

“저........”

이셀라는 무언가 말을 꺼내보려 했다. 그런데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뇌리는 곤죽이 된 상태라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혹시 하는 마음에 그녀의 옷이 어디 있나 찾아봤지만, 절망감만 더 깊어졌을 뿐이었다. 그녀의 드레스는 물론 브래지어와 팬티도 이미 조각조각 찢어져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뿐이었다. 

이미 옷이라고 할 수도 없는 그런 의류 조각들은 몸에 걸칠 수도 없었다. 이셀라는 그녀가 처한 답답한 상황에 서러움만 복받쳤다. 

“흑!”

마침내 이셀라는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그녀의 커다란 눈망울에 달린 눈물이 당장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았다.

하지만 사내는 얼음으로 만든 심장의 소유자인지 절세미녀의 울 것 같은 표정에도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차갑게 대꾸했을 뿐이었다. 

“왜? 무슨 할 말이라도 있나?”

그 한 마디에 이셀라는 무너져 내렸다. 안 그래도 후들거리던 그녀의 다리는 더 이상 버틸 힘을 잃었다. 그 자리에 힘없이 주저앉은 이셀라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흐느껴 울었다. 

자신의 신세가 어쩌다 이렇게 망가진 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서러움이 복받쳐 눈물만 터져 나왔다.

그러나 무정한 사내는 그녀의 울음을 단지 구경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제정신이 들자 이셀라도 이대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옷조각을 주워 대충 눈물을 훔친 후 일어나 조나단에게 다가갔다. 알몸으로 사내 앞에 서는 게 부끄러웠지만, 이미 다 보인 몸이라며 스스로를 달랬다.

이셀라가 바로 앞에 서 있는데도 사내가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하자 결국 그녀는 자신이 수치심을 무릅쓰고 나설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그 자리에 얌전히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사내를 올려다보며 애원하듯 말했다. 

“폐하, 절 도와주세요. 제발, 제발...........”

황당한 일이었다. 그녀를 이 꼴로 만든 게 바로 이 사내였다. 조나단은 그녀를 마음대로 농락한 끝에 마침내 강간해서 정절을 깨뜨렸다. 뿐만 아니라 옷까지 다 찢어서 어디로 갈 수도 없게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 이셀라는 그녀를 이렇게 처참한 꼴로 만든 사내에게 도와달라고 애원하고 있는 것이었다. 스스로도 처참했다. 굴욕감 때문에 그녀의 알몸이 파르르 떨렸다.

그러나 또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이셀라를 이런 구렁텅이에 빠뜨린 게 조나단이었지만, 또한 그녀를 최악의 상황에서 구해줄 수 있는 이도 조나단뿐이었다.

절대적으로 숨겨야 하는 그녀의 비밀을 아는 사람이 조나단뿐이었으니 도움의 손길도 그에게 청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이셀라는 굴욕감을 씹으면서 다시 한 번, 더 애절한 목소리로 부탁했다. 

“제발, 제발, 절 도와주세요......... 도와주시기만 하면,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다 할 테니, 제발..........”

그러자 비로소 조나단이 반응했다. 그는 피식 웃으면서 이셀라의 눈물 글썽이는 아름다운 얼굴을 내려다봤다.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정말인가?”

생각해보면 굉장히 위험한 발언이었다. 여성의 몸으로 이런 약속은 함부로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셀라는 조나단의 발언에 불안감을 느끼기보다 오히려 환영했다. 그녀는 즉시

“예, 폐하,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다 할게요. 제발, 제발........ 절 구해주세요.”

라고 애원하면서 고개를 여러 차례 끄떡였다. 조나단도 벌거벗은 상태였지만, 그는 사내였다. 그가 돌아다니나 알몸인 걸 들켰다 해도 다들

“어디서 여자 하나 먹었나 보네.”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길 것이다. 이셀라로서는 눈물이 날 만큼 억울한 시추에이션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것이 사내와 여성의 차이였다.

그것보다 조나단은 그렇게 쉽게 돌아다니면서 옷을 구해올 수 있다는 것이 이셀라의 희망이었다. 그것만이 그녀의 구원이었다. 

이셀라의 목줄을 쥐고 있음을 확인한 조나단은 흡족하게 웃었다. 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 

“그럼 이 자리에서 앞으로 내 성노예가 되겠다고 맹세해라. 넌 날 주인님으로 모시면서 오직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는 거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이셀라는 입을 딱 벌렸다. 지금 그녀의 옷을 갈기갈기 찢고, 강간해서 이런 처참한 꼴로 만든 게 바로 조나단이었다. 

그런데 그 추잡한 강간범이 마치 은혜라도 베푸는 듯 오만한 자세를 취하면서 자기를 주인님으로 섬기라고? 그 뻔뻔함이 기가 막혔다.

게다가 이셀라는 네일린 왕국의 왕비였다. 조나단이 아무리 펜트 제국의 황제라고는 하지만, 둘 사이는 동급이라고 봐야지, 누가 위라고 할만한 신분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고귀한 신분의 여성에게 다른 사내의 성노예가 되라고? 이건 정말로 어처구니없는 요구였다. 이셀라는 당장 일어나서 사내의 뺨이라도 쳐야 옳았다.

그런데, 그런데........ 이셀라는 그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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