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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27/93)

요녀 헬레나 2부 : 오스.. 2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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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관처럼 넓은 나디야의 침실 안은 자욱한 향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향을 들이마시자 달콤한 향기가 느껴져 기분 좋았다. 하지만 동시에 머릿속이 몽롱해지고, 보지에 열이 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부용 향이로군.’

헬레나는 하녀장한테 들은 아부용 향이란 걸 깨닫고는 아름다운 얼굴에 사이한 미소를 지었다. 나디야, 그 이중적인 성격의 여자에게 잘 어울리는 향이라고 해야 하리라.

아부용, 그것은 의료용 마약의 원료였다. 본래는 환자의 정신을 몽롱하게 해 외과 수술에서 아픔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용도로 쓰인다. 

심한 질병에 걸린 환자가 고열, 기침 등의 고통을 잊고, 업무에 집중하기 위해 아부용을 이용하기도 했다.

다만 아부용의 효과가 그것만은 아니었다. 아부용은 정신을 몽롱하게 하면서 성감대를 민감하게 하는, 즉, 최음제로서의 효과도 있었다. 

술탄의 모후인 태후는 남편이 죽었으니 평생 수절해야 한다. 설령 섹스하고 싶어도 어차피 하렘에 사내라고는 아들인 술탄뿐이니 그 대상이 없다. 

그런데 그 태후의 침실에 최음제인 아부용 향이 가득하다니, 이게 어찌된 일일까?

그 때, 자욱한 향 너머로 오만한 목소리가 들렸다. 

“헬레나냐? 가까이 오너라.”

은쟁반 위에 옥구슬을 굴리는 마냥 맑고 청아한 목소리, 그러면서도 높고 날카로운 그 목소리는 분명 나디야의 목소리였다. 

헬레나는 망설임없이 소리가 난 곳을 향해 걸었다. 그녀의 하이힐 칼굽이 바닥에 스쳐 또각또각 소리를 냈다. 아까 나디야에게 채찍질까지 당했건만 두려움보다는 오히려 묘한 기대감이 더 컸다.

침실 한복판에 커다란, 자정 스무 명이 누워도 될 만큼 커다란 원형 침대가 있었다. 나디야는 그 원형 침대의 한쪽 끝에 옆으로 길게 누운 자세였다. 

그녀는 여전히 한쪽 팔로 머리를 괸 채 옆으로 누운 자세로 헬레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찰랑이는 스타사파이어빛 머리칼에 감싸인, 달걀형의 얼굴도 굉장한 미모였다.

다만 그 옷차림이 낮과는 비교하기 힘들 만큼 야하고 민망했다. 나디야는 푸른색 상의와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우선 상의는 민소매 유형이라 미끈하고 가느다란 팔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어깨에만 얇은 띠가 걸쳐져 있을 뿐이었다. 

게다가 무척 짧아서 젖가슴만 간신히 가릴 뿐, 배를 그대로 드러냈다. 덕분에 그녀의 급격하게 꺾어지는 허리와 배꼽이 그대로 보였다.

치마는 더했다. 푸른색 치마는 얼핏 보기엔 무릎 아래로 내려갈 만큼 길었지만, 허리까지 길게 옆트임이 나 있었다. 

치마가 서로 연결된 부분은 허리 부위의 아주 조금뿐이라 정강이는 물론 허벅지까지 훤히 드러나 보였다. 그녀의 다리는 철사처럼 가느다랗고, 미끈했다. 그 완벽한 미를 자랑하는 다리의 끝에는 황금색 끈 샌들이 신겨져 있었다. 

물론 샌들의 굽은 지극히 높고 날카로웠다. 그 늘씬하고 섹시한 몸 곳곳에 목걸이, 귀고리, 반지, 팔찌, 발찌 등 악세사리들이 그득했다.

그야말로 한 나라의 태후라는 위치에 어울리지 않는, 지나친 미와 섹시함의 조화였다. 그 차림새는 태후라기보다 차라리 고급 창녀라고 해야 옳으리라.

나디야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에 돌아다니면서 그녀의 시중을 드는 여성들도 모두 노출이 심한 옷차림이었다. 또 달콤한 아부용 향의 영향 때문인지 여자들의 얼굴도 모두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헬레나는 하녀장이 말해준 정보대로임을, 그리고 자신의 짐작대로임을 확인하고는 속으로 미소지었다. 노출이 심한 그녀의 차림새도 이 자리의 분위기에 완전히 어울렸다. 

나디야는 이중인격자로 유명했는데, 그것은 우아한 척하면서 실제로는 사납고 잔인한 성격만을 가리키는 지적은 아니었다. 사내 앞에서 우아하고 교양 있는 척하는 것과 별개로 그녀는 또한 지독한 변태였다.

나디야는 지독하게 변태적인 성욕의 소유자로 여자들과의 섹스를 즐겼다. 사실 그녀는 지금이야 오스만 제국의 태후라는 고귀한 신분이지만, 본래는 노예였다. 선대 술탄이 그녀를 노예상으로부터 사들인 것이 나디야가 하렘에 들어온 시발점이었다. 

정확한 출생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북방이란 설이 유력하다. 전쟁에 패해서 노예가 됐다거나 시골에서 살다가 인신매매 조직에 의해 납치됐다거나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확실한 건 없다.

분명한 사실은 그녀의 미모에 눈독을 들인 노예상이 처녀성을 소중히 유지한 채로 오스만 제국의 수도 에디르네로 데려왔다는 것이었다. 

그 노예상의 정성은 빛을 발했다. 삼십대 중반이 지난 지금에도 그녀와 미모를 겨룰 짝을 찾기 힘든데, 한창 싱그러운 나이인 십대 초중반에는 어떻겠는가? 선대 술탄은 그녀를 보자마자 홀딱 반해서 즉시 비싼 값을 치르고 샀다. 그리고 하렘으로 데려와서 하녀로 삼았다.

하렘에 있는 여성들의 계급은 크게 태후, 황후, 첩, 시녀, 하녀로 나누어진다. 그러나 그것 중 태후 외에는 별로 의미 있는 구분은 아니었다. 

하렘의 여성들은 결국 술탄 앞에서 전부 노예일 뿐이었다. 황후나 일개 하녀나 술탄 앞에서의 처지는 똑같았다. 술탄은 그녀들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었으며, 황후라도 하루만에 하녀로 삼을 수 있었다. 

헬레나처럼 한 나라의 황녀 출신을 그 정도로 대하기는 힘들지만, 사실상 감금이나 다름없는 수준으로 유폐시키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그리고 하렘의 여성들이 술탄의 손짓 하나에 운명이 달라진다는 건 반대로 비천한 하녀에서 높은 지위로 출세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나디야는 그렇게 출세했다. 선대 술탄이 그녀를 산 건 단지 허드렛일을 시키려한 게 아니었기에 첫날부터 밤시중을 들게 했다. 

나디야는 단지 미모가 뛰어날 뿐 아니라 처녀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섹스 기술도 빠르게 익혀서 선대 술탄을 기쁘게 했다.

특히 그녀의 보지는 그야말로 명기였으며, 입딸과 손딸도 수준급이었다. 질투가 난 하렘의 여성들은 나디야의 천성이 음탕해서 저렇게 섹스를 잘하는 거라고 뒷담화를 하기도 했다. 

그것은 분명 사실이긴 했지만, 어쨌거나 나디야는 사내를 기쁘게 할 줄 아는 여자였다. 나디야와의 잠자리에 만족한 선대 술탄은 거의 매일 밤 그녀를 찾았다. 그녀는 순식간에 하녀에서 시녀로, 그리고 시녀에서 첩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아이를 잉태하면서 마침내 황후의 자리에까지 오른 것이었다. 단지 술탄의 총애를 받는 것만으로 비천한 노예 태생 여성이 영예로운 황후가 될 수 있다. 

가문을 중시하는, 동시에 귀족 연합체적인 성격이 강한 펜트 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오스만 제국에서는 그것이 상식이었다.

게다가 나디야는 운까지 좋았다. 나디야는 아들을, 현재의 술탄인 셀림을 낳았다. 선대 술탄은 자식 운이 없었는지 아들들을 전부 병과 전쟁으로 잃은 상태였기에 새로운 아들이 태어난 걸 굉장히 기뻐했다.

이로써 하렘 내에서 나디야의 지위는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을 만큼 탄탄해졌다. 다른 여성들도 부러움과 질투를 표하면서도 감히 나디야에게 덤빌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귀한 가문의 아가씨도, 외국의 왕녀도 술탄의 후계자인 아들을 낳은 여성 앞에서는 빛이 바래질 뿐이었다.

그리고 셀림이 비록 병약하긴 했으나, 다행히 죽지 않고 술탄의 위에 오르면서 나디야는 마침내 태후, 이 하렘의 절대권력자로까지 올라선 것이었다. 

게다가 셀림이 죽지만 않는다면, 병약한 점은 권력을 사랑하는 그녀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부분도 있었다. 덕분에 나디야는 하렘의 여성들 사이에서의 권력뿐 아니라 대제국의 정치권력까지 손에 쥘 수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삼십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청상과부가 된 것만은 나디야처럼 음탕하고 색을 밝히는 여성에게 역시 힘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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