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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26/93)

요녀 헬레나 2부 : 오스.. 2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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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림은 황후만 13명에 첩이 수백 명이다. 언제든 그가 취할 수 있는 하렘 내의 하녀들도 수천 명에 달했다. 어디 그뿐이랴. 절대권력자인 술탄이니 미녀를 구하려 든다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셀림은 주변에 절세미녀들이 수두룩한 데도 도무지 여색을 탐하지 않았다. 그가 여성과 동침하는 걸 봤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 그가 고자라는 소문이 돌 만 했다.

또한 술탄이 너무 허약해서 제대로 정사를 돌볼 수 없다보니 실제 정치는 재상인 소콜루와 태후 나디야가 맡고 있었다. 

하렘 안의 나디야와 하렘 밖의 소콜루가 서로 협력해서 대제국을 이끌어가는 것이다. 그러니 나디야의 권위와 권력은 더욱 막강해질 수밖에 없으리라. 현재 오스만 제국 황궁 내에서 나디야의 권세는 일반적인 태후보다 훨씬 더 센, 가히 무소불위의 수준이었다.

그러니 마음 놓고 헬레나에게, 아무리 ‘신삥 며느리’라고는 해도 역시 대제국인 펜트 제국의 황녀인 헬레나에게 채찍질을 가한 것이리라. 하렘의 여성들뿐 아니라 하렘 밖의 군대와 관료에게도 나디야의 권력이 미쳤다.

또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나디야는 종종 하렘 밖으로 외출하곤 했다. 하렘 바깥에 애인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요새 정치권력을 누리는 맛에 푹 빠진 나디야가 그것을 더 마음껏, 더 강하게 휘두르기 위해서였다.

본래 하렘은 금남의 구역, 술탄 외 사내의 출입이 금지된 것과 함께 하렘에 속한 여성들의 외출도 금지돼 있었다. 

아예 술탄의 여자들과 다른 남성의 접근을 원천 차단함으로써 술탄의 여성들, 그녀들의 정절이 더럽혀지는 걸 막기 위한 규율이었다.

사실 평소에는 나디야도 이 규율을 잘 지켰다. 평소 재상 소콜루와 나디야가 서로 연락할 때는 소콜루 집안의 하녀가 하렘으로 찾아오곤 했다. 

나디야에게 소콜루의 편지를 전해준 뒤 다시 나디야의 편지를 받아서 소콜루에게 전달하는 게 그녀의 역할이었다.

그리고 무언가 중요한 의논 사항이 있을 때는 소콜루의 아내이자 나디야의 배다른 딸인 아이샤가 찾아오곤 했다. 

나니댜와 아이샤는 친모녀 관계가 아님에도 친모녀처럼 친했다. 짧은 금발머리에 루비빛 눈동자를 지닌, 고양이상 미녀 아이샤는 여자이면서도 구중궁궐과 제국 정부 모두를 휘어잡는 여걸 나디야를 동경했다.

삼십대 중후반의 나이에도 완벽한 관리를 통해 여전히 전성기의 미모를 자랑하는 데다 지위 높은 남성들이 그녀 앞에서 벌벌 떨게 할 만큼 강력한 권위와 권력을 자랑하는 나디야는 아이샤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나디야도 단지 예쁠 뿐 아니라 우수한 마법사이기도 한 아이샤를 끔찍이 아꼈다. 그는 여자로서 보기 드물게 똑똑하고 마법 재능까지 뛰어난 아이샤를 귀여워했다. 

그녀들은 서로를 마주할 때마다 자신들의 의견 교환이 이 대제국을 움직인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자신들의 강력한 권력에 흐뭇함을 느끼면서 서로 깔깔대고 웃곤 했다. 아이샤는 배다른 남동생이자 병약한 셀림을 안타깝게는 느끼면서도 동시에 경멸했다.

하지만 역시 하렘 안에만 틀어박혀서는 취득되는 정보가 부족하거나 명령의 전달에 의한 시차로 일이 꼬일 염려가 있었다. 

그래서 나디야는 종종 하렘 밖으로 행차해서 직접 정사를 챙기는 것이었다. 그녀는 하렘의 규율을 어길 때에는 늘 이런 사정을 방패막이로 내세웠다. 

하지만 나디야가 겉으로 이야기하지 않은 속내는 자신이 지닌 막강한 권력을 피부로 느껴보고 싶은 것이었다. 

재상 소콜루를 비롯해 오스만 제국의 난다긴다 하는 권신들이 그녀 앞에서 허리를 깊숙이 숙이고, 설설 기며 눈치를 볼 때마다 나디야는 진한 쾌감을 느끼곤 했다.

또한 나디야는 지독한 이중인격자로 유명했다. 그녀는 술탄이나 외부인들, 특히 사내를 대할 때는 언제나 우아하고 교양있는 귀부인처럼 행동하곤 했다. 봄바람처럼 부드럽고 따스한 태도를 보이고, 상냥한 목소시로 대화했다. 

그러나 여자들, 하렘의 여자들 앞에서는 태도가 싹 변하곤 했다. 굉장히 엄격하고 날카롭고 사나운 여성으로 돌변한다.

나디야는 육식동물처럼 사납게 여자들을 몰아붙이고, 자기 마음대로 트집을 잡아서 아주 잔인한 형벌을 내리곤 했다. 

그녀가 헬레나에게 채찍질을 가한 데에는 그 정도로 지독한 성격도 한 몫 했다. 아니, 사실 채찍질로 끝난 건 그나마 헬레나가 황후라고 봐준 것이었다. 나디야의 잔혹한 형벌 때문에 죽거나 장애인이 된 여성들도 흔했다. 

그래서 하렘의 여성들은 남자 앞에서만 우아한 척 하는 나디야를 끔찍하게 싫어했다. 하지만 그녀의 권력이 너무 막강하다 보니 다들 찍소리 못한 채 따르고 있었다.

이런 저간의 사정에 대해 하녀장이 자세히 이야기해주자 헬레나는 비로소 돌아가는 일이 이해가 갔다. 하지만 이제야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게 야속하기도 했다. 헬레나가 그런 의향을 담아 눈을 치뜨자 하녀장은 송구하다는 태도로 답했다. 

“죄송합니다. 태후 마마께서 마마와 술탄 폐하에 대한 인사가 끝나기 전까지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말라고 엄명을 내리셔서요.”

그러니까 나디야는 아무것도 모르는 ‘신삥 며느리’를 좀 가지고 놀고 싶었다는 뜻이리라. 그렇다면, 굳이 하녀장을 야단칠 까닭은 없었다. 어차피 헬레나가 모든 걸 알았다 해도 나디야는 무슨 핑계를 잡아서라도 그녀에게 채찍질을 가했을 것이다.

그보다 헬레나는 지금 얻은 정보를 잘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중궁궐이 원래 마굴같은 곳이긴 하지만, 현재 오스만 제국의 하렘은 상상 이상으로 초 막장에 악마의 소굴 그 자체였다. 

하지만 싫지는 않았다. 이렇게 그로테스크하고, 에로틱한 마궁은 도리어 헬레나의 취향이었다. 온갖 음모를 꾸미는 헬레나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 미소는 너무나 아름다우면서도 또한 숨 막힐 만큼 사이했다.

그날 밤, 헬레나는 나디야의 부름을 받아 그녀의 침실로 향했다. 하녀장의 이야기를 들어둔 그녀는 오늘 밤 자신을 부르리란 걸, 그리고 그 목적도 짐작하고 있었기에 미리 철저하게 준비해둔 상태였다. 

호화로운 금발머리는 풀어헤쳐서 반짝거리는 보석으로 장식했다. 그녀의 구불거리는 황금색 머리칼은 어깨 근처에서 치렁거렸다. 그 머리칼이 한 번 펄럭일 때마다 밤하늘에 황금 가루가 휘날리는 듯 했다.

언제나 아름다운 얼굴은 화장까지 완벽했다. 에메랄드빛 눈동자와 오똑한 코, 붉은 입술에 더해서 엘프처럼 뾰족하고 긴 귀가 임팩트를 더했다. 

오프숄더형의 원피스 드레스를 입었기에 어깨 부분이 시원하게 드러났다. 그 드레스는 가슴 부위도 젖꼭지만 살짝 가리는 수준이라 젖가슴 윗부분과 그 사이의 굴곡까지 훤히 보였다. 옆으로 난 끈이 양 팔에 걸려 있어서 은근히 더 야시시한 분위기를 발했다.

특히 검은색 원피스 드레스는 헬레나의 새하얀 피부와 대비돼 더 에로틱한 분위기를 자아냈으며, 몸에 딱 달라붙는 스타일이라 그녀의 섹시한 S라인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치마 부위는 무척 짧아서 엉덩이만 살짝 가리는 수준이었다. 타이트한 검정 치마 아래로 길고 늘씬한 다리가 쭉 뻗어나갔다. 다리 끝쪽의 은색의 하이힐, 그 굽은 어질어질할 만큼 높고 날카로웠다.

헬레나의 아름다움과 섹시함을 최대한 강조한 모습이다. 그녀는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미와 색기가 완벽하게 표현된 것을 확인하고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그녀는 황후라기보다 고급 창녀라 어울리는 그런 옷차림으로 나디야의 궁전으로 향했다.

태후전에 도착하자 즉시 가장 안쪽 깊숙한 곳의 침실로 안내됐다. 역시나 일이 예상대로 돌아가자 헬레나는 빙긋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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