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녀 헬레나 2부 : 오스.. 2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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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는 매저키스트였다. 그녀는 사내에게 복종하는 걸 즐겨 했으며, 그렇게 굴종하는 자신을 느끼면서 은근한 쾌감을 느끼곤 했다.
그렇기에 아까 여성인 나디야 앞에서와는 달리 사내인 술탄 앞에서는 순종적인 자세를 취하는데 전혀 위화감이 들지 않았다. 사실 이미 술탄의 부하에 불과한 예니체리 군단장 투르구트와 부단장 살루크에게
“주인님.”
이란 표현을 쓰면서 아양을 떤 전례가 있는 헬레나였다. 술탄에게 고개를 깊이 숙여 성노예처럼 굴종하는 것쯤은 하나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때문에 태사의 근처에 도달했을 때, 술탄이 슬며시 발을 내밀자 헬레나의 거침없는 동작이 이어졌다.
그녀는 술탄의 신발을 벗기더니 그 맨발에 입을 맞췄다. 이어 혀를 내밀어 할짝할짝 핥았다. 그러자 술탄은 신기한 듯 말했다.
“호오, 넌 서방의 황녀라고 들었는데.......... 하긴 이곳에 오기 전에 태후전에 들렀겠지. 어마마마께 잘 교육받았나 보구나.”
그것은 사실과 달랐지만, 헬레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기분 좋은 듯 암코양이처럼 갸르릉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계속해서 술탄의 발을 핥았다. 사내의 발가락을 입에 넣어 빨아주기도 했다.
그 봉사가 기특했는지 술탄은 특별히 배려했다.
“좋아, 잘하는군. 고개를 들라.”
헬레나는 얼굴을 들었다. 은혜에 감사드린다는 듯 비굴하면서도 음탕한 미소를 아름다운 얼굴에 가득 지은 채 그녀는 사내를 올려다봤다. 매저키스트인 그녀에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자세였다.
그녀가 자신의 남편이자 오스만 제국의 지배자인 술탄 셀림을 가까이서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가까이에서 본 셀림은 전혀 대제국의 지배자같은 위엄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이는 이십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키도 중간쯤은 되어 보였다. 그런데 너무 깡말랐다. 팔다리는 여자처럼 가느다란 데다 몸에 근육은커녕 살집조차 없었다.
그야말로 뼈밖에 없다고 해도 될 정도로 비쩍 마른 신체의 소유자였다. 최소한 젖가슴과 엉덩이에는 살집이 통통한 헬레나보다 훨씬 심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대제국의 술탄이니 먹는 것에 구애받지 않을 텐데, 대체 왜 이렇게 난민처럼 마른 걸까? 헬레나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따지지는 않았다.
대신 다른 상상이 그녀의 몸을 달아오르게 하고 있었다. 그녀처럼 눈부신 미녀를 보고, 마음이 동하지 않는 사내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그녀가 이토록 정성껏 봉사를 해주고 있지 않은가?
헬레나는 이대로 셀림의 바지까지 벗겨주고, 그의 페니스를 빨아주는 상상을 했다. 펠라치오를 통해 우뚝 선 페니스를 그녀의 보지에 꽂아 섹스를 한다.
그것도 바로 이 자리에서! 다른 수많은 여성들 앞에서 유일한 사내를 차지하는 쾌감은 분명 대단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여성으로서 최고의 매력을 자랑하는, 승리감을 만끽하는 순간이었으니까.
그러나 헬레나의 상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렇게 아름다운 헬레나가 열심히 봉사하면서 아양을 떨었는데도 셀림이 반응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는 마치 목석처럼 헬레나의 예쁜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다가
"그만 물러가라."
라고 명했다. 헬레나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지만, 감히 술탄의 앞에서 경거망동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조아려 인사한 뒤 조용히 물러났다.
자신이 궁전으로 돌아오고 난 뒤 헬레나는 즉시 하녀장을 불러 이것저것 물었다. 하녀장은 숨김없이 대답했다.
서방과 달리 동방에는 일부일처제의 풍습이 없다. 아니 오히려 여러 여성을 거느리는 걸 남성의 능력을 재는 척도로 활용하곤 했다.
때문에 서방에서는 신분 높은 남성들이 첩을 두더라도 비밀스럽게 하는 것과 달리 동방에서는 귀족 남성들이 대놓고 수십 명의 첩을 거느렸다. 오스만 제국의 술탄쯤 되면, 첩만 수백 명에 달한다.
특히 술탄에게는 또 다른 특권이 인정됐는데, 첩뿐 아니라 정실까지 여럿 거느릴 수 있었다. 즉, 오스만 제국에서는 펜트 제국과 달리 황후가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었다.
이는 정치적인 이유도 있었다. 오스만 제국처럼 술탄의 권력이 막강한 나라에서는 그 최측근일수록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황후가 단 한 명이라면, 그 황후가 속한 가문이 외척이 되어 호가호위를 하고 다닐 위험이 높았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아예 황후를 여러 명으로 정해버린 것이었다. 그러면 외척도 여럿이 되니 그 힘이 분산되어 강한 힘을 지니지 못할 테니 말이다.
그래서 현 술탄인 셀림도 하렘에 속한 하녀가 수천 명에 첩이 수백 명이며, 정실, 즉 황후만 해도 무려 13명이나 됐다. 헬레나는 13번째 황후인 셈이었다.
헬레나는 그제야 왜 셀림이 '새로운 황후'란 표현을 썼으며, 나디야가 그녀를 우습게 보고 깔아뭉개면서 무려 채찍질까지 가한 건지 이해가 갔다.
황후가 13명이나 되니 그 중 한 명에 불과한, 게다가 신참인 헬레나 따위야 태후인 나디야 입장에서는 우스워보였을 것이다.
또 황후가 여럿이니 여자들로 이뤄진 사회인 하렘에서 황후들은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이곳에서 가장 강력한 여성은 태후, 즉 술탄의 모후였다.
본래 술탄이 바뀌면, 전임 술탄 재임 시절 하렘에 있던 여성들은 모두 밖으로 내보낸 뒤 새로운 여성을 들여 하렘을 채우는 게 관례였다.
대개 현 술탄은 전임 술탄의 아들이니 아들과 아버지가 구멍 동서가 되는 패륜을 막으려면, 그게 당연했다.
다만 딱 한 명의 여성, 현 술탄을 낳은 모후만은 하렘에 남는다. 그리고 그녀가 태후가 되어 모든 권력을 움켜쥐는 것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황후는 여러 명인 데 반해 태후는 단 한 명뿐이니, 그 희소성과 힘의 집중도가 남다를 수밖에 없으리라.
황후의 권력을 낮추려고 노력한 결과로 태후의 권력은 더더욱 막강해지는, 아이러니컬한 결과를 낳은 것이었다.
또 오스만 제국에서 술탄의 권위는 실로 무시무시했다. 대귀족이나 재상 등 높은 벼슬아치라 해도 술탄 앞에서는 반드시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고, 무릎걸음으로 걸어야 했다. 오직 술탄이 허락할 때에만 고개를 들거나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러니 고작 하렘의 여성들 따위야 술탄 앞에서 얼굴도 못 드는 게 당연했다. 첩이나 황후라 해도 말이다.
단 한 명의 여성, 오직 태후만이 술탄 앞에서 서 있는 게 허용됐다. 그렇다 해도 항상 술탄에게 존대하면서 인사할 때는 허리를 깊이 숙여야 했지만 말이다.
아울러 현 술탄인 셀림에게는 한 가지 특이점이 있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무척 병약해서 열 살이 될 때까지 침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다들 머지않아 죽을 거라고 예상했다.
운 좋게 십대 후반까지 살아남아서 술탄이 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건강이 좋지 못했다. 겨우 침대는 벗어났으나, 하렘 밖으로는 아직 한 걸음도 나가지 못했다. 다른 술탄들처럼 직접 군대를 이끌고 싸운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조나단 등의 동방 원정이 꽤 유리하게 진행된 것도 사실 셀림이 하렘에만 처박혀있다 보니 오스만 제국이 그 웅후한 군사력을 제대로 활용 못 한 덕도 있었다.
그 때문에 셀림이 그토록 깡마른 것이었다. 여전히 그는 식사보다 섭취하는 약의 양이 더 많다고 했다. 게다가 병 때문에 고자가 됐다는 설도 파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