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녀 헬레나 2부 : 오스.. 2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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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제국이라 해도 펜트 제국 황제와 오스만 제국 술탄의 권력은 그 차이가 컸다. 펜트 제국 황제는 절대권력자라기보다는 귀족연합체의 수장이란 표현이 더 어울리는 위치였다.
지방 영주들의 힘이 센 것은 물론 수도에 머무르는 궁정 귀족들의 눈치도 봐야 했다. 오랫동안 펜트 제국 황제에게는 여러 귀족들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하는 고도의 정치력이 요구됐었다.
그걸 잘하는 황제가 뛰어난 황제로 칭송받았다. 잘하지 못하면, 귀족들에 의해 강제로 끌어 내려지거나 심지어 암살당하기도 했다.
약 7만에 달하는 동방 원정군의 충성을 바탕으로 귀족들을 어느 정도 입 닥치게 만든 조나단이 오히려 특수한 케이스라고 해야 하리라. 현재 조나단은 펜트 제국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권력이 강력한 황제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 조나단조차 오스만 제국 술탄 앞에서는 달 앞의 반딧불 수준이었다. 오스만 제국은
“술탄 외에는 전부 다 노예.”
라는 격언까지 존재할 정도로 술탄의 권력이 절대적이었다. 일반 평민이나 병사들뿐 아니라 고위 귀족이나 장군들까지 모두 술탄 앞에서는 꼼짝 못했다.
술탄의 궁정에서는 어제까지만 해도 떵떵거리던 명문가 출신 재상이 하루만에 목이 잘리고, 전 재산을 몰수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지방 영주들도 까불다가는 순식간에 토벌당하곤 했다. 조나단이 동방 원정군이라는 막강한 무력으로 귀족들을 억누르는 방식을 오스만 제국은 이미 수백년 전부터 시행했다.
오스만 제국 최강의 무력 집단은 술탄의 친위대인 예니체리 군단이었다. 누구든, 고위 귀족이나 대영주라 해도 술탄의 눈밖에 나는 순간, 즉시 예니체리 군단에게 토벌당했다.
그러니 다들 벌벌 떨면서 술탄의 비위를 맞출 수밖에 없었다. 술탄과 만나는 자리에서는 귀족들도 바닥에 바짝 엎드려 고개를 조아렸다.
그들은 술탄의 발에 입을 맞추면서 미리 준비해온 산더미같은 금화, 보석, 예술품, 미녀 등 조공물을 바치곤 했다. 그러면서
“이 재물은 본래 제 것이 아니라 모두가 폐하의 소유일 뿐이옵니다.”
라고 말하곤 했다. 제국에 존재하는 모든 인명과 재산이 술탄의 소유인 나라. 술탄 앞에서는 모두가 일개 노예나 다름없는 처지의 나라. 그것이 오스만 제국이었다.
그러니 국가의 모든 부가 술탄에게 쏠릴 수밖에 없었고, 그 술탄의 처첩들이 기거하는 하렘의 궁전들이 호화롭게 꾸며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잠시 침실을 둘러보면서 그 생각을 하던 헬레나는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아니, 오히려 오스만 제국식이 펜트 제국식보다 헬레나의 마음에 더 쏙 들었다.
음탕한 암캐란 점만 제외하면, 헬레나도 사치스럽고 화려한 삶을 꿈꾼다는 점에서는 다른 여자들과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녀의 그런 삶을 위해 힘없고 이름 없는 평민들이 위정자에 의해 얼마나 쥐어 짜이던지 그녀에게는 관심 없는 문제였다.
그녀는 이 제국의 황후였다. 그리고 모든 아내들이 그렇듯 술탄의 아내인 황후도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남편의 권력과 재력을 나누어 누릴 수 있는 자리였다.
그 뒤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눈을 감으면 그만이었다. 헬레나는 새삼 오스만 제국에 시집오게 된 게 무척 잘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침실 구석구석을 구경하던 헬레나는 중앙의 원형 침대 위에 몸을 던졌다. 그녀는 깃털처럼 가벼웠지만, 그녀의 몸이 닿자마자 침대가 아래로 푹 꺼졌다.
그만큼 침대가 푹신했다. 또한 그 침대는 탄력이 넘쳤다. 헬레나의 S라인 육체를 자신의 품 속 깊숙이 받아들였다가 다음 순간, 허공으로 튕겨올렸다.
“꺄악!”
헬레나는 작은 비명을 지르면서 잠시 침대의 멋진 탄력을 즐겼다.
그렇게 놀다가 문득 헬레나는 아까 투르구트가 주고 간 쪽지를 떠올렸다. 그녀는 품 속에 고이 접어 넣어둔 쪽지를 꺼내 읽었다.
쪽지 안의 내용은 매우 짧았다.
"하렘에 술탄 외 남성의 출입은 절대 엄금사항이다. 하지만 만일을 대비해 하렘에서 바깥으로 통하는 비밀통로가 있다고 한다. 너는 그 비밀통로를 알아내서 내게 연락해라."
란 글귀가 전부였다. 하지만 그 내용은 몹시 충격적이었다. 헬레나는 정신없이 쪽지를 읽고 또 읽었다.
오스만 제국 술탄의 하렘이 금남의 구역이란 사실은 아까 이미 들었으니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외 두 가지 사실이었다.
하렘에 외부로 통하는 비밀통로가 있다. 이건 엄청난 사실이었다. 잘 이용하면, 그곳으로 헬레나나 그녀의 동조자들이 몰래 드나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이용해 음모를 꾸미는 것도 가능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뿐만 아니라 본인에게 연락하라는 투르구트의 지시는 더더욱 의미가 깊었다. 그것은 투르구트가 헬레나에게 매우 강한 미련을 지니고 있다는 증명이었다.
황후와 섹스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당연히 처형이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투르구트는 비밀통로만 알 수 있다면, 헬레나와 섹스하기 위해 하렘으로 몰래 숨어들어오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그만큼 헬레나의 아름답고 섹시한 육체, 그리고 기가 막힌 명기인 보지에 투르구트가 홀딱 빠졌다는 뜻이었다. 또한 아름답고 고귀한 여성을 자신의 성노예로 부릴 수 있다는 점에도 큰 매력으로 다가왔으리라.
헬레나는 쪽지를 찢어 버리면서 피식 웃었다. 투르구트의 이 정도로 강한 미련은 앞으로도 쓸모가 많으리라. 문득 하나의 음모가 헬레나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악랄하고 비열한 음모는 순식간에 그녀의 머릿속에서 확산됐다.
그 때였다.
"황후 마마, 태후 마마께서 찾으십니다."
궁전의 하녀 한 명이 침실 밖에서 고했다. 헬레나는 점점 구체화되던 음모를 일단 잘 접어서 머리 한 구석에 집어넣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스만 제국의 태후 나디야는 이 하렘에서 제일 신분이 높은 여성이었다. 헬레나에게는 시어머니에 해당하니 절대 거역할 수 없는 인물이기도 했다.
헬레나는 최측근 시녀 소피아아 함께 나디야가 보낸 마차를 타고 그녀의 궁전으로 향했다. 나디야의 궁전은 헬레나의 궁전보다 몇 배는 더 크고 화려했다. 어찌나 사치스럽고 화려한지 눈이 멀어버릴 것 같았다.
그 사치스러움과 화려함은 곧 나디야가 지닌 권력의 거대함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헬레나는 새삼 술탄의 모후라는 지위가 하렘에서 얼마나 강력한지 실감했다.
안내를 받아 내실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자 태평양처럼 넓은 방 중앙에 있는 의자에 나디야가 옆으로 누워 있었다.
그 의자는 일반적인 의자와 달리 등받이가 없었으며, 대신 옆으로 매우 길게 뻗어 있는, 독특한 형태의 의자였다. 고급스러운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그 위에는 푹신한 천이 깔려 있었다.
나디야는 그 의자 위에 옆으로 길게 누운 자세였다. 다리를 쭈욱 뻗고, 손으로 머리를 받쳤다. 그녀의 뒤에는 두 명의 하녀가 서서 그녀의 어깨와 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실제 나이는 서른여섯 살이지만, 겉으로는 스물여섯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나디야다. 늘씬하면서도 굴곡진, 완벽한 몸매를 자랑하는 그녀가 그렇게 누워 있으니 몹시 요염해 보였다. 나디야를 보면서 헬레나는 괜히 가슴이 설렜다.
질투나 부러움은 아니었다. 타고나길 천하절색으로 태어난 데다 루시펠의 세례를 받으면서 진짜 엘프처럼 긴 수명과 영원한 젊음을 지니게 된 그녀다. 게다가 더 섹시한 매력과 환상적인 펠로몬을 뿌리게 됐다.
헬레나는 실로 미로서는 그 극한을 찍은 여자였다. 나디야가 아무리 나이를 잊은 아름다움을 자랑한다고 해도 헬레나에게는 어림도 없었다. 그러니 그녀가 부러울 리는 없었다.
헬레나는 순간적으로
‘먹음직스럽다.’
는 상상을 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