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녀 헬레나 2부 : 오스.. 2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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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등장하자마자 투르구트와 살루크를 비롯한 예니체리 군단 병사들은 즉시 그 자리에 한 쪽 무릎을 꿇었다. 헬레나와 소피아를 창녀처럼 다룰 때와는 전혀 다른, 무척이나 정중한 자세였다.
“태후 마마, 예니체리 군단장 투르구트가 인사드립니다.”
투르구트가 수염 가득한 입술을 열어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을 듣자 헬레나의 회초리처럼 날씬한 몸이 움찔했다. 태후라고? 그럼 이 여자는 그녀의 시어머니에 해당하는 여성이란 뜻이었다.
헬레나와 소피아는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눈앞의 여성을 훑어봤다. 태후라면, 분명 현 술탄의 어머니다. 그리고 현 술탄 셀림의 나이는 스물한 살로 알려져 있다.
이 젊디젊은 미모의 여성, 얼핏 보기에는 이십대 중반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만큼 어려 보이는 미녀가 벌써 스물한 살이나 된 아들이 있는 유부녀라고?
실로 놀랠 노자였다. 눈앞의 여성의 나이가 아무리 적게 잡아도 삼십대 중후반이란 뜻인데, 그 나이에 저 정도 미모를 유지하는 것은 엄청난 일이었다. 엘프도 아니고, 헬레나처럼 마력을 쓴 것도 아닌데 말이다.
타고난 미모도 미모지만, 아마 그간 열과 성을 들여 관리해왔을 것이다. 과연 훌륭한 네일아트가 그려진 길고 뾰족한 손톱과 발톱만 봐도 그녀가 최고 수준의 관리를 받고 있음을 짐작케 했다.
“오랜만이에요, 투르구트경. 이번에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목소리마저 은쟁반 위에 옥구슬을 굴리듯 맑고 청아했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말투,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우아하고 격조 높아서 교양 있는 상류층 여성임을 한눈에 짐작케 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마마. 소인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투르구트는 다시금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그러다가 문득 시선을 들더니 아직도 멍하니 서 있는 헬레나를 보고는 성난 눈초리로 눈짓했다.
그제야 헬레나는 흠칫했다. 그녀는 이 오스만 제국의 황후였다. 비록 투르구트, 살루크 등에게 한낱 성노예 취급을 받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겉으로는 제국 전체를 뒤져도 짝을 찾아보기 힘들 만큼 고귀한 신분이었다.
하지만 그 귀한 신분도 눈앞의 여성, 스타사파이어빛 머리칼에 나이를 짐작하기 힘든 외모를 소유한 절세미녀 앞에서는 빛이 바래진다.
그녀는 헬레나의 시어머니이자 오스만 제국의 태후, 이 거대한 궁정에서 가장 높은 신분의 여성이었으니까. 헬레나가 유일하게 절대 복종해야 할 신분의 여성이 그녀였다.
헬레나는 눈치가 빨랐다. 그녀는 재빨리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소피아를 비롯해 다른 헬레나의 시녀와 하녀들도 그녀의 뒤를 따랐다.
“처음 뵙겠습니다, 태후 마마. 소녀 펜트 제국의 황녀 헬레나라 하옵니다.”
스타사파이어빛 머리칼에 헬레나에게도 크게 뒤지지 않을 만큼 멋진 S라인 몸매의 여성, 오스만 제국의 태후는 헬레나의 눈치 빠른 행동에 기분이 좋은지 봄바람처럼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당신이 헬레나로군요. 역시 소문대로 태양이 빛나는 듯한 환상적인 미모네요. 같은 여자로서 너무 부러울 정도에요.”
“처, 천만의 말씀입니다, 태후 마마. 마마에 비하면, 태양 앞의 달처럼 보잘것없을 따름이에요.”
헬레나는 공치사를 늘어놓았지만, 10% 가량은 진심이었다. 그만큼 이미 20대 나이의 아들이 있다기에는 태후의 미모가 너무 굉장했다.
헬레나 본인이야 물론 루시펠의 비호를 받아 1천 년 이상, 오히려 엘프보다 더 긴 세월 미모를 유지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여자들은, 특히 지금 이십대 초반의 한창 프라임 타임인 실비아라 해도 과연 삼십대 후반까지 저 정도 수준으로 유지가 가능할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호호, 말이라도 고맙네요. 내 이름은 나디야에요. 앞으로는 나디야라고 불러주세요.”
오스만 제국의 태후, 나디야는 우아하고 상냥하게 헬레나를 대했다. 그것은 최상류층 여성으로서 한 점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고 교양 있는 태도였다.
사양하는 헬레나에게 거듭 나디야라고 불러줄 것을 권해 대답을 끌어낸 그녀는 다시금 투르구트를 비롯한 예니체리 군단 장병들을 치하했다. 이어 헬레나에게 자신을 따라 하렘으로 들어오라고 권했다.
하렘은 오스만 제국 술탄의 처첩들이 기거하는 곳이라고 했으니 앞으로 헬레나와 소피아 등의 거처도 이곳이 될 터였다.
여기까지는 이상할 게 없기에 헬레나도 일어나서 나디야가 있는 곳, 하렘 안으로 발을 디뎠다. 눈앞에서는 벌써 나디야가 아까의 호화로운 마차에 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었다. 투르구트와 살루크 등은 하렘의 대문 바로 바깥쪽에 무릎을 꿇은 채 꼼짝도 않는 것이었다. 당연히 자신의 거처까지는 호위해줄 줄 알았던 헬레나는 의아한 나머지 나디야의 마차와 투르구트를 번갈아보면서 망설였다.
특히 방금 전까지도 마차 안에서 섹스를 한 탓에 보지가 아직도 뻐근하고, 자궁 안에 사내의 정액이 남아 있는 점이 헬레나를 더 망설이게 했다.
하지만 투르구트는 헬레나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대신 그는 망설이는 그녀를 보더니 피식 웃으면서 다가왔다.
투르구트는 일부러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는 척 하면서 헬레나에게 속삭였다.
“하렘은 금남의 구역이야. 술탄 외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 난 따라갈 수 없으니까 어서 너희끼리 들어가라.”
그리고 동시에 헬레나의 손에 슬며시 종이쪽지 하나를 쥐어줬다. 헬레나는 흠칫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나디야 주변에 호위하는 사람들, 심지어 마차를 모는 마부까지도 모두 여자였다. 정말로 저 광활한 공간에 남성은 술탄 한 명뿐이란 말인가?
여하튼 더 이상 망설일 수는 없었다. 더 끌다간 괜히 주변의 의심을 살 우려가 있었다. 어느새 나디야의 마차가 출발했으며, 하렘 안에서 그것 못지않게 호화로운 마차가 헬레나 쪽으로 다가왔다.
아마도 헬레나가 탈 마차이리라. 그 마차에서 내린 여성 마부와 하녀들이 헬레나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결국 헬레나와 소피아는 그녀들의 안내대로 마차에 올랐다. 따그닥, 따그닥 소리를 내면서 사라지는 마차의 뒷모습을 투르구트는 음흉한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었다.
오스만 제국 황궁의 하렘은 엄청나게 광활한 공간이었다. 하렘 내에 궁전과 전각만 오십 채가 넘었다.
때문에 헬레나는 하렘 내에서 나온 마차를 타고도 한참을 더 달리고 나서야 자신의 궁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미리 연락이 가 있었는지 궁전에서는 헬레나를 맞을 준비가 완벽히 갖춰진 상태였다. 마차가 멈춰서자마자 수십 명의 하녀들이 달려 나와 헬레나를 맞았다.
이어 간단히 요기를 한 뒤 헬레나는 목욕을 했다. 100명도 더 들어갈 수 있을 듯한 거대한 욕탕을 혼자 점령한 채 하녀들의 정성어린 봉사를 받았다.
헬레나는 물론이고, 목욕을 돕는 하녀들도 모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이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헬레나의 나신은 특히 더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S라인의 몸매는 완벽했으며, 피부는 꿀을 바른 듯 부드러웠다.
그 화려하고 섹시한 미에 하녀들은 모두 넋을 잃고 칭찬했다. 헬레나는 고개를 살짝 쳐든 채 오만하게 웃었다. 그녀에게는 흔한 일상이었다.
목욕을 끝낸 뒤 향유를 바르고, 새로운 옷까지 챙겨 입고 나자 헬레나는 잠시 쉬고 싶다며 하녀들에게 물러날 것을 명했다. 하녀들은 모두 정중히 허리를 숙이면서 뒷걸음질로 사라졌다.
헬레나는 주변에 사람이 사라지자 슬며시 자신의 침실을 둘러봤다. 침실은 무척이나 넓고, 호화스러웠다.
거의 연병장만큼 넓은 침실 중앙에 거대한 원형 침대가 놓여 있었다. 그 원형 침대만으로도 사람 스무 명은 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침실 바닥에 깔린 페르시아 융단은 무척 푹신하고, 따스했다. 아름다운 그림이 잔뜩 수놓아진 그 페르시아 융단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품이었다.
어디 그뿐이랴! 그 넓은 침실의 사방 벽에는 값비싼 명화와 태피스트리가 잔뜩 걸려 있었으며, 침실 곳곳에 우아한 원목 가구와 화려한 보석 장식품들이 그득했다. 향유를 어찌나 많이 뿌렸는지 침실 안에 그윽한 향기가 한껏 감돌았다.
도대체 돈을 얼마나 많이 들이부었는지 상상도 안 갈 만큼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침실이었다. 하렘 자체가, 그리고 헬레나의 궁전도 아름답고 화려했지만, 이 침실은 그 모든 부가 집중된 듯 했다.
펜트 제국의 궁전이나 침실도 화려했지만, 오스만 제국에 비하면 발뒤꿈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저 호화로운 장식들에 쏟아부은 돈이 대체 얼마일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침실을 구경하면서 문득 헬레나는 펜트 제국을 떠나기 전에 오스만 제국에 대해 간단히 들어둔 사실 몇 가지를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