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화 (16/93)

요녀 헬레나 2부 : 오스.. 1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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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헬레나가 그녀의 침실에 없었던 것이었다. 이제 내일이면, 헬레나는 에디르네의 황궁으로 들어간다. 

물론 그가 헬레나에게 자신을 그녀의 개인 호위병으로 임명하라고 지시하긴 했지만, 그게 반드시 마음대로 이루어진다는 보장은 없었다. 이곳은 유럽의 다른 나라도 아니고, 동방의 오스만 제국이었으니까.

그래서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밤을 최대한 화려하게 즐겨보려 했는데, 도무지 헬레나가 보이질 않는 것이었다. 헬레나의 시녀이자 최측근인 소피아조차 그녀의 행방을 몰랐다.

결국 한참 찾다가 포기한 라인하르트는 대신 소피아하고만 즐기기로 했다. 소피아는 헬레나 몫까지 대신하느라 20여 명의 사내들을 혼자 상대해야 했지만, 비명을 지르면서도 그녀의 눈은 즐겁게 웃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헬레나가 없는 헬레나의 침실에서 매우 원초적이고 질펀한 섹스 파티를 벌였다. 그런데 새벽이 되어서 다들 지칠 대로 지쳐 바닥에 널브러진 상태였을 때였다.

소피아의 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피아, 문 쪽으로 오세요.” 

소피아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주위에 누구에게도 그녀에게 말을 건 사람이 없었다. 이 방 안의 사내들 중 절반은 곯아 떨어졌으며, 나머지 절반도 정액을 너무 많이 쏜 나머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을 따름이었다. 

그 정액은 물론 소피아의 자궁과 식도를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그녀의 알몸과 백금발을 잔뜩 적신 상태였다. 그런데 누가 소피아에게 말을 건 걸까?

그녀가 어리둥절해 있는데 똑같은 목소리가 또 들렸다. 

“소피아, 뭐 해요? 얼른 문 쪽으로 오세요.”

그것은 분명 여성의 목소리였다. 이 침실 안에 여성이라고는 소피아뿐인데, 대체 누구지? 의아해하던 소피아는 문득 깨달았다. 이건 헬레나의 목소리였다!

순간, 소피아는 희뿌연 정액이 잔뜩 묻은 얼굴에 씨익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이해가 간 것이었다. 헬레나는 루시펠의 권속이라 마력을 쓸 줄 알았으며, 마법 도구도 여러 개 가지고 있었다. 

헬레나라면 멀리 떨어진 채로도 타인에게 들리지 않게 소피아에게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상황을 깨달은 그녀는 즉시 벌떡 일어나 침실 문 쪽으로 다가갔다. 이런 상황에서 특이한 움직임이었지만, 방 안에 가득한 병사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소피아는 그들의 공동 성노예였다. 그녀가 무슨 이상한 짓을 할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딱 한 명, 라인하르트만은 의구심을 느꼈다. 그는 소피아가 침실 문 앞에 선 것을 보자 눈을 깜빡거리다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이봐, 너, 뭘 하는 거야?”

라인하르트는 소피아의 어깨를 잡고 자기 쪽으로 돌리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침실 문이 벌컥 열렸다.

문 앞에 서 있는 것은 헬레나, 알몸의 헬레나였다. 그녀의 화려한 금발머리와 눈처럼 새하얀 피부, 미끈한 팔다리와 섹시한 S라인을 확인한 라인하르트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푸하하하, 너, 어디 갔었냐? 한참 찾았잖아.”

라인하르트는 두 팔 벌려 그녀를 안으려 했다. 하지만 그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녀의 바로 뒤에서 머리에 터번을 두르고, 오스만식 무장을 한 병사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 병사는 불문곡직하고 허리춤의 반월도를 뽑아 휘둘렀다. 라인하르트는 무언가 희끗한 선을 봤다고 생각했다. 그게 그가 이승에서 본 마지막 장면이었다. 

라인하르트의 목이 잘려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새빨간 피가 침실 바닥을 적셨다. 헬레나와 소피아를 건드렸을 때, 그는 자신의 인생이 이렇게 끝맺음지어지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꺄아아아악!”

소피아가 깜짝 놀라서 비명을 지르자 헬레나가 재빨리 그녀의 알몸을 안으면서 달랬다. 

“괜찮아요, 소피아. 이분들은 우리를 해치진 않을 테니까. 그냥 잠깐 구경하면 돼요.”

소피아는 불안한 눈동자로 헬레나를 바라봤지만, 그녀가 안심하라는 듯 웃어보이자 일단 숨을 고르면서 고개를 끄떡였다. 

그래도 알몸이 파르르 떨리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불안해 하면서 헬레나의 품 속으로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러는 사이 일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오스만 군의 복장을 한 병사 십여 명이 침실 안으로 뛰어들더니 닥치는 대로 반월도를 휘둘렀다. 

침실 안의 사내들도 병사들이었지만, 지금 그들은 무기도 없었으며, 모두 벌거벗은 상태였다. 게다가 섹스를 너무 오래 즐긴 나머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그에 반해 적은 모두 완전무장한 병사들이었으니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순식간에 펜트 군, 한 때 헬레나의 호위병이었던 병사들은 모두가 저민 고기로 변했다.

투르구트는 침실 문 앞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 헬레나의 침실 안에서 라인하르트와 호위병들을 학살하는 병사들은 모두 예니체리 군단 소속 병사들, 그의 부하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그의 심복이라 할 수 있는 최정예병이었다.

헬레나를 성노예로 삼은 투르구트는 라인하르트를 비롯해 그간 헬레나 및 소피아를 가지고 놀던 펜트 병사들을 제거해 버리기로 한 것이었다. 

하늘에 두 태양이 필요 없듯이 한 성노예에게 두 ‘주인님’도 필요 없었다. 헬레나와 소피아를 독차지하고 싶은 그에게 라인하르트 등은 방해물일 뿐이었다.

한편 투르구트의 바로 옆에서 헬레나도 한껏 즐겁게 웃고 있었다. 그녀에게도 라인하르트는 더 이상 쓸모가 없는 폐기물이었다. 에디르네에 도착할 때까지 그녀의 보지를 심심하지 않게 해줄 도구로 잘 써먹었으니 이제 폐기할 차례였다. 

그리고 헬레나에게는 혼자서 그렇게 할 만한 힘이 있었다. 그녀는 현재 알몸이었지만, 그 사슴처럼 길고 가느다란 목에는 여전히 아이리스의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루시펠의 마력이 더해진 아이리스의 목걸이는 그녀와 혼연일체가 된 상태라 인간의 힘으로 그녀의 몸에서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악마 멤노크의 힘을 쓰는 조나단이었기에 헬레나에게서 아이리스의 목걸이를 빼앗아 그녀를 일개 무력한 여인으로 만들 뻔한 거지, 평범한 인간들에게는 불가능했다.

그리고 아이리스의 목걸이를 착용한 헬레나는 최고위급 전사보다 더 강했다. 그녀와 무력으로 맞먹을 만한 강자는 전 세계를 뒤져도 조나단을 비롯해 몇 명 되지 않았다. 

즉, 라인하르트 등 평범한 병사들 20여 명 정도는 방심한 틈에 기습하면, 충분히 제거할 수 있었다. 그러나 헬레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는 그녀의 기질 때문이었다. 천상 여자인 헬레나는 손에 직접  피를 묻히는 걸 즐겨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타인의 손을 빌리는 차도살인을 더 좋아했다. 

그리고 지금 헬레나의 부추김에 의해 라이하르트와 펜트 군 병사들이 투르구트와 오스만 군 병사들에게 학살당하고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헬레나가 제일 좋아하는 구도였다. 그러니 만족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일방적인 학살이 끝났다. 소피아는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가 가지 않아 주위를 두리번거리기만 했다. 소피아가 예니체리 군단 병사들을 불안한 눈동자로 바라보자 헬레나는 풋하고 웃었다. 

“호호, 소피아, 걱정할 필요 없어요. 우리의 새로운 주인님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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