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부_39 (39/41)

애시당초 번서가 무공과 환술에 입문하게 된 계기를 제공해 준 [환마]갈천휘는 모종의 이유로 대왕실의 수배령이 내려져 있었다. 백무련의 련주인 유리부인 마옥령(瑪玉玲)까지 나서는 체포조가 결성되어 자산성 인근까지 쫒아간 일은 유명하다. 그러나 그 별명처럼 동에번쩍 서에번쩍 하는 통에 그를 붙잡는 것은 상당히 요원한 일이 되어 있어서, 몆해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도망 중이었다.

번서는 자신의 [조직]의 자리가 어느정도 잡히자 그가 거처인 해운곡을 방문하게 되었다. 한번 찾아오라는 그의 말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양주에 있는 해운곡은 번서의 고향이기도 하다. 마을 사람들은 거의가 그대로였지만, 그를 알아보는 이는 없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그는 얼굴을 비롯한 전신을 붕대로 칭칭 감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행하는 두명의 노예와 함게 옛 집을 찾은 그는 말끔하게 허물어진 집터만 남은 것을 발견하고 잠시 옛 기억을 되살렸다.

실로 귀양길에 오른지 거의 사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책 밖에 모르던 약관의 청년이던 번서는 이제 이십대 중반의 나이가 되었고, 나이와는 걸맞지 않는 경험과 관록을 지닌 악당이 되었다.

[아들아, 무슨 일이냐?]

기억하는 그의 부친의 모습은 언제나 서재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것이었다. 시선을 돌리면 그의 모친은 마루에 앉아 자수를 놓고 있곤 했다. 높은 관직에 오르면 한재산 모으는 것이 일반적이던 시기에, 혼자 청렴하기 그지없었던 부친은 관직에서 물러나서도 나라를 걱정했다. 그러나 그가 걱정한 나라는 그를 죽였고, 그의 가족을 파괴했다.

" 잊지 않겠습니다. "

" 네? "

" 아니다, 혼잣말이다. "

번서는 씁쓸하게 웃으면서 궁금해 하는 서봉과 예하랑을 데리고 집터를 뒤로 했다.

해운곡은 앞으로는 바다가 있었고, 뒤로는 만산(蔓山)과 날산(捺山) 이라는 두 산이 서 있어 그 사이의 계곡에 세워진 고을이다. 풍광이 수려하기 그지없지만, 동시에 지형이 난해하기 그지없다. 갈천휘의 암자는 만산에 있었는데, 그가 남긴 약도를 보고도 찾기가 대단히 어려웠다. 실제로라면 한시진 정도면 닿을 거리에 있는 그 작은 암자를 반나절을 넘게 고생한 끝에야 찾아냈을 정도다. 환술 같은 것은 쳐져 있지 않았다. 부지의 밖에 노예들을 세워 경계를 하도록 한 후, 그는 오두막 안을 들여다보았다.

" 음, 아직 돌아오시지 않았나 보군. "

암자라고는 해도 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절벽 위에 세워진 조그마한 오두막 비슷한 것이었다. 살림살이가 간소하기 그지없어서 번서는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머금을 수 밖에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확인을 마치고 가려는 그때 마당에서 인기척이 났다.

" 오랜만에 보는구만. "

마치 안개 속에서 빠져나오는 것 처럼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낸 갈천휘는 번서 쪽을 향해 지긋이 웃어 보였다.

" 어르신! "

황급히 예를 취한 번서를 보며 갈천휘는 껄껄 웃었다.

" 건강하신것 같아 다행입니다. "

번서의 인사를 받고 나서 갈천휘는 그를 아래위로 한번 쓰윽 훝어 보았다.

" 자네는 아직 그 지병을 고치지 못하였나 보군. "

" 네. 조금 개선되긴 했지만... "

" 음 여기서 이야기하기도 그러니까 안으로 들어가지. "

경계를 서던 노예들은 기척을 숨겼다. 예하랑이 포함된 노예들을 보여서 좋을 것은 없을 것이니 당연한 일이라, 미리 귀뜸을 해 놓고 있었다. 갈천휘의 암자에 들어간 번서는 탁주와 산나물 안주를 놓고 그와 마주 앉게 되었다. 한동안 근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후, 갈천휘는 옛날 일을 잠깐 언급했다.

" 유가촌의 사람들과 석매리의 원수를 갚은 것은 잘한 일이야. 그 다음 벌어진 일들에도 물론 연관이 있겠지? 듣자니 꽤 화려하게 해치웠던 모양이던데. "

" 하하하... 네 조금. "

" 겸손하기까지 하군. 좋은 일이야. 요즘 젊은이들에겐 부족한 것이지. 어떤가, 본격적으로 내 제자가 되어 볼 생각이 있는가? "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 번서는 갈천휘가 어떤 인물인지 안다. 무림 4대 고수로써 무공보다는 환술로 세상을 우롱할 수 있는 인물인 환마의 제자가 된다니 어찌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있겠는가? 번서는 그자리에서 제자의 예를 갖추었다.

" 많이 부족합니다만, 제자로 받아주신다면 성심을 다해 따르겠습니다. "

" 과한 예절은 그만두게, 닭살 돋으니까. 난 제자를 들이려는 거지 노예를 들이려는게 아니야. "

[노예]라는 단어에 뜨끔하는 번서였다.

그날부터 번서는 [환마]갈천휘의 정식 제자로써 그에게 보다 더 깊고 넓은 환술의 경지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다. 그의 노예 중에 갈천휘의 이목을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예하랑 하나 뿐이기에(그나마도 멀찍이 떨어져서 경호했다), 당분간 그녀가 번서의 전담 경호원이 되었다. 물론 교대도 없이 24시간 내내 그런 격무를 시킬 수는 없으므로, 그녀가 잘 때는 그녀를 제외한 다른 모든 노예들 중 가장 실력이 좋은(이를 위해 작은 무예 경연을 열어야 했다) 당여월과 교대를 해야 했다.

이미 번서가 환술의 기초를 알고 능숙하게 쓰고 있었기 때문에, 갈천휘는 보름동안 보다 더 고급의, 정말로 [환마]로 자처할 수 있을 정도의 영역에 달하는 환술을 사용할 수 있는 가르침을 제공했다. 그 가르침은 꽤나 엄격했지만, 그만큼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그가 새로운 단계의 기초에 안정적으로 진입했을 즈음, [그 일]이 터졌다.

날이 좋은 아침이었다. 번서는 갈천휘가 가르쳐 준 축지술을 연습하느라 산봉우리와 오두막을 반복해서 오가는 중이었는데, 축지술은 이론상 황국의 남단에서 북단까지도 한번에 이동할 수 있지만(가진 도력에 따라 최대 거리가 제한된다), 한번에 모든 도력(道力)을 소모하기에 사용하고 나면 도력이 회복될 때 까지 쉬어야 하는 단점이 있었다. 그가 산봉우리에서 쉬고 있는데 멀리 아랫쪽에서 내려다 보이는 오두막이 검붉고 불길한 기운에 뒤덮였다. 축지술을 쓸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번서는 경공술을 써서 어렵사리 절벽을 내려왔다.

붉은 안개와 같은 기운은 실제로도 강렬한 독성을 가진 일종의 안개였다. 마침 예하랑이 당여월과 교대해 쉬러 간 시점이었기 때문에 부지의 경계를 지키던 당여월부터 찾아야 했다. 다행히 그녀는 번서가 시키는 대로 그와 관련된 일이 아니면 나서지 않았기에 무사했다. 하지만 갈천휘는 아니었다.

" 스승님! "

번서가 당여월과 함께 갈천휘의 오두막에 도착했을 때, 그는 한명의 젊은 여인과 대치하고 있었다.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 지나치게 창백한 하얀 피부 위에 걸치고 있는 옷조차 검은색이었고, 무기도 날이 새카만 검이었다. 그녀는 번서와 당여월 일행읗 흘끗 보더니, 귀찮다는 듯이 손을 한번 흔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여기저기서 붉은 안개가 뭉쳐서 인간의 형상을 갖추었다.

" [마혈시(魔血屍)]라는 요물이다! 상처를 입지 않도록 조심해라! "

번서가 은색의 막으로 자신을 감싸며 물러서는 동안, 당여월이 양손에 검을 들고 앞으로 나섰다.

카카캉!... 카가가가각!... 

번서의 노예가 되기 전에, 당여월은 창천교 내에서도 짝을 찾기 힘든 검사였다. 그리고 그 실력은 그때보다 나아졌으면 나아졌지 퇴보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노예가 되기 전보다 훨씬 더 고강한 내공을 가지게 된 지금은 오히려 훨씬 강해졌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그런 그녀가 휘두르는 검에는 어지간한 바위 정도는 그대로 가를 수 있는 파괴적인 힘이 실려 있다.

게다가 당여월은 토끼를 잡을때도 전력을 다하는 호랑이 타입이다. 그말인 즉슨, 첫 일격부터 전력을 다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녀의 전력을 다한 첫 일격이 화려한 불꽃과 함께 튕겨 나갔다. 물론 당여월의 검에 실린 힘에 그것 역시 멀찍이 튕겨나갔지만, 그런 것이 수십마리가 달려드는 것이다. 번서의 등골이 순식간에 서늘해졌다. 그는 다른 노예들을 부르기 위해 영서를 날리려 했지만, 주변을 둘러 싸고 있는 붉은 안개가 영서를 집어삼켰다. 그것 역시 환술이었던 것이다.

본격적인 술법 전투는 번서로써는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수수께기의 여인과 갈천휘의 전투는 그로써도 새로이 보는 경지였다. 게다가 그것이 술법과 무공을 혼합한 전투라는 것도 그에게는 엄청난 공부가 되는 사실이었다. 사실, 갈천휘는 그의 노예인 예하랑의 [후배]에 해당하고 게다가 그가 가르쳐 준 술법이 그녀를 속이기 전까지는 전혀 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번서는 그의 실력에 약간의 의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천하 사대 고수]라는 것이 허명이 아님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었다.

갈천휘는 환술은 물론이고 무공 실력도 예하랑에 비해 전혀 뒤쳐지지 않는 실력이었다. 물론 그런 갈천휘를 밀어붙이고 있는 검은 옷의 여인의 실력도 번서를 놀라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두명의 실력은 백중세에 가까웠다. 다만 실력은 백중세였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무공이나 환술은 성격이 완전 정반대였다. 갈천휘가 빛이라면, 그녀는 어둠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술법으로 불러들인 괴상한 강시까지 부려서 번서 일행을 물러서게 만들고 있었으니, 전력을 갈천휘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떻게 될지 생각하기도 싫어지는 일이 될것이다.

솔직하게 번서는 아직 그들의 싸움에 끼어들 실력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대신 강시를 물리치는데 집중했다. 그리고 그의 환술은 이 괴상한 붉은 안개 속에서 제대로 발휘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 일은 그와 지금 동행하고 있는 당여월의 몫이 되었다. 재미있는 일은, 당여월이 아무리 전력을 다해서 베어도 그저 금속성 섬광과 함게 물러날 뿐이던 강시가, 번서가 자신의 도력을 그녀의 칼에 불어넣자 마자 베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것은 마치 불타는 종이 인형처럼 허공에서 불타며 사라졌다.

" 좋아, 이대로만 하면... "

그러나 번서는 말을 끝마칠 수 없었다. 강시 하나가 반쪽이 나자, 갈천휘를 상대하던 여인이 이쪽으로 시선을 한번 돌리더니 손짓 한번으로 똑같은 강시 한무리를 허공에서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어지간한 당여월조차 안색이 바뀔 정도였다. 그러나 이제 번서는 해결방법을 알아냈다. 그리고 그는 응용할 줄도 아는 남자였다.

" 여월, 넌 격검을 쓴다고 했었지? "

" 네 주인님. "

" 그럼 예비로 가지고 다니는 검이 있겠군. "

" 타핫!... 허리에 두개, 다리에 짧은걸로 두개 있습니다. "

" 하나 하나 쓰기엔 이놈들이 좀 많지? "

" 네?... 네!... "

충분한 내공이 있다면, 물체를 어느정도까지 컨트롤 할 수 있다. 격검이나 비검술, 심지어 검강까지, 기가 물리적인 힘을 가지고 현실세계에 영향을 끼치게 만드는 방법은 많다. 그리고 그 방법 중에는 물체를 폭발시키는 방법도 포함된다.

모든 그릇에는 거기 담길 수 있는 한계량이 있듯이, 모든 물질에는 거기에 기가 담길 수 있는 한계량이 있다. 그리고 그 입계점을 넘으면, 보통은 망가지거나, 휘거나, 심지어 녹을수도 있다. 그러나 내공량과 그것을 다루는 기량이 충분하다면, 기로 가득찬 물체를 마치 도화선에 불이 붙은 폭탄처럼 변하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당여월은 그러기에 충분한 내공과 기량, 그리고 실전 경험까지 갖추고 있었다. 번서의 짧은 질문에 담긴 내용을 깨닫자 마자, 그녀는 그가 기대했던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행동을 개시했다.

폭발하도록 기가 가득 담긴채 당여월의 손에서 던져진 단검 두자루가 강시들 사이를 가르고 지나가는 동안, 번서는 거기에 자신의 도력을 실었다. 그리고 도력까지 담긴 단검은 그가 원하는 효과를 발휘했다.

콰콰쾅!!!....

" !!!... !!!... "

인간의 귀로 들리지 않는 영역의 비명이 울려 퍼지며, 열대여섯 정도 되는 강시가 한순간에 화려한 누더기가 되어 붉은색 불꽃과 함께 허공으로 사라졌다. 거기에는 검은 옷의 정체불명의 여자도 의외라는듯이 눈꼬리를 치켜올렸고, 마치 귀찮은 벌레를 쫒듯이 다시 손을 휘두르려 했지만, 이번에는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리지 않았다. 수세에 몰리는 듯이 보였던 갈천휘가 그 짧은 순간을 좋치지 않았던 것이다.

" 이 [환마]를 상대하는데 한눈을 팔아서야 쓰나! "

촤아악!!

옷자락이 길게 찢어지며, 선명한 붉은 피가 치솟아 올랐다. 상당한 양이었고 여자의 표정이 잠깐 일그러졌지만, 그뿐이었다. 핏방울을 허공에 흩날린 다음 곧바로 아무일도 없었다는듯이 태연한 표정으로 되돌아가 환술과 검을 써서 갈천휘를 몰아붙였다. 아니 방금전보다 훨씬 더 사나운 기세로 몰아쳤기 때문에 갈천휘의 손발이 잠시 어지러워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부상을 당한건 공격하는 쪽이다. 어떤 괴물이라도 출혈이 계속되는 상태에서 전투를 계속할 수 없다. 움직이면 상처는 아물지 않으며, 하물며 전투 같은 격렬한 행동을 한다면 출혈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상대가 상대니만큼 처음 얼마간은 태연할 수 있겠지만, 그것도 시간의 문제다, 그리고 수적인 우세조차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부상까지 당하고 전투를 계속하는 것은, 아무리 천하 제일의 고수라도 자살행위일 뿐이다.

그리고 천하제일의 고수라도 자살행위는 하지 않는다. 무공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죽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살아 남아야 천하 제일인 것이다.

휘이이이잉!!!...

그녀는 몆초식을 더 날렸지만, 급격히 손발이 어지러워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큰 초식을 한번 더 날린 후에, 독기가 포함된 강렬한 폭풍이 몰아쳤다. 어찌나 강했던지 독기에 면역에 가까운 번서조차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바람이 사라졌을 때, 번서는 마당에 주저앉아 있는 갈천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신비로운 여자는 도망치고 없었다.

" 스승님! "

번서가 급히 달려가 부축하려는 것을, 갈천휘는 손을 들어 막았다.

" 그만, 더이상 다가오지 마라. "

" 네?... "

잠시 숨을 몰아쉬고 침을 삼킨 후, 갈천휘는 번서를 바라보았다. 시선이 마주친 후 번서는 불현듯 갈천휘 주변에 희미한 붉은 아지랑이 같은 것이 일렁거리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환술을 집어삼키는 괴상한 붉은 안개에 중독되어 있었던 것이다.

" 그래, 네가 본 대로다. "

"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

갈천휘는 씁쓸하게 웃었다.

" 내가 가르쳐 준 것들은 잊지 않고 있겠지? "

" 네... "

" 초막의 중간 기둥... 주춧돌 사이에 네게 남기는 물건들이 있다. 그리고 내 신발도 너에게 남기마. 방금 그 계집아이... 진서연(辰瑞淵)이 원하는게 내 신발이었거든. "

갈천휘는 쇠로 된 나막신을 신고 있었는데, 그것을 발을 써서 하나씩 번서 쪽으로 날렸다. 엉겁결에 그것을 받아 드는 번서 앞에서, 갈천휘는 다시 한번 자세를 흐트러트리더니 검붉은 피를 왈칵 토했다.

" 스승님! "

" 그만, 누구든 언젠가는 헤어지기 마련이지 않느냐... 오늘은 그 계집아이가 속아서 도망갔지만, 그녀석도 천문을 볼 줄 아니까 조만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너를 노릴게야. 그리고 너는 아직 그녀의 상대가 아니다. 실력이 될 때 까지는 숨어 지내야 할게야. "

번서의 안색은 창백했지만, 갈천휘는 씨익 웃어보이기까지 했다.

" 이제 네가 환마(幻魔)다. 무거운 짐을 떠넘기고 가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나는 네가 어떻게든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 ... "

" 난 제자복이 없었지만, 마지막 제자는 제대로 고른 것 같아 안심이다. 잘 있거라, 제자야... "

순간 갈천휘의 몸에서부터 하얀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그를 중독시킨 붉은 안개에는 전염성이 있다. 그것을 자신이 가진 최후의 도력을 짜내어 소멸시킨 것이다. 섬광이 사라진 후, 그의 자리에는 그가 걸치고 있던 소박한 무명 옷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 스승님... "

번서는 그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는 절규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갈천휘는 환마라 불리우는 환술의 대가이며, 별자리까지 잠시 붙들어 둘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갈천휘를 죽인 고수다. 직접 남아있지는 않겠지만, 주변에 눈과 귀를 남기고 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몸을 숨기 전에 갈천휘가 죽었다는 사실을 누설한다면 그의 유언을 어기는 셈이 될것이다.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그는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갈천휘가 지목해 준 장소에서 감색 비단에 싸인 꾸러미 하나를 파 냈다. 

그 꾸러미를 당여월에게 들린 후, 번서는 경공을 발휘하여 자리를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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