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부_31 (31/41)

배 두척이 망가졌고, 원래부터 위장이었기 때문에 외강탄으로의 여행은 보류되었다. 번서는 며칠 동안 수적들을 터는 금여화의 복수에 동참한 후, 다시 월영포로 돌아갔다. 그 후로 거의 반년간은 별일없는 평온한 일상이 지속되었다. 창고지기로서 일을 하면서, 그는 조금씩 월영포구를 중심으로 주변으로 인맥과 정보망을 넓혀 갔다.

왕실 내부에 대한 정보망도 조금씩 넓혀갔음은 물론이다.

황국의 대왕성에서 일하는 [관인]은 두가지 부류가 있다. 내관(內官)과 외관(外官)이다. 내관은 왕실의 여성들에게 봉사하는 임무를 말하고, 외관은 정무를 보는 관료다. 내관 중에서 남자는 궁인(혹은 궁시), 여자는 궁녀로 부른다. 궁인은 모두 거세된 환관이며(자의든, 타의든), 궁인과 궁녀 모두 왕실 여성들의 개인적인 시중부터 잡다한 사무나 왕실 자녀의 교육(주로 후궁소생의 보모역) 등을 도맏는다. 때문에 왕실 여성들과 자주 접촉하며, 떄문에 왕실 내부의 사정에 대핸 누구보다 정통하게 된다.

중시인 금추춘은 그런 중시 중에서도 지금 현재의 권력의 [실세]와 가까웠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정보의 양과 질에서 다른 일반적인 내관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는 비록 그 정보를 자발적으로 제공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번서에게 필요한 만큼은 뱉어내게 되었다.

물론 천성이 면종복배의 재능을 타고난 소인배니만큼, 금추춘은 번서에게서 벗어날 수단을 찾기 위해 여러가지로 궁리하고 손을 쓰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중에 가장 필수적인 일이 고독의 해약을 찾는 것이다.

원래 고독이라는 것이 기생충의 일종이라 일반적인 해독제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 대신, 알맞은 방법만 안다면 어렵지 않게 구제할 수 있다. 존재하는 거의 모든 고독에는 해약이 존재하며, 사실 그중 대부분은 한가지 약재로 구제할 수 있다.

바로 구충제다.

황국에서는 이미 독성을 가진 약초를 조합한 범용 구충제가 널리 보급되어 있었다. 물론 이 약은 몹시 독해서 몸에 해로우며(아이가 잘못 먹으면 중독되어 사망할 정도), 대상이 되는 고의 종류에 따라 용법(먹을 것인가 혈관에 직접 투입 할것인가 등등)이나 사용량을 달리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즉 구충제를 과다복용했을 경우에는 중독사할 위험이 있고, 너무 적게 복용하면 고를 발작시켜서 되려 사용자가 구제를 당하는 경우가 벌어진다.

이런 저런 이유로 고독을 제거하기 위한 정보를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고독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다른 누군가를 고용하는 것이다.

번서는 의술에 조예가 깊긴 하지만 고독술사로는 초보다. 그리고 그나마 그 고독술도 급조한 임시 변통이거나 후에 악산라가 가르쳐 준 것이다. 악산라는 유능한 고독술사였지만, 최고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녀가 자랐던 대산맥의 밀림에는 아직 황국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그녀보다 훨씬 더 능숙한 고독술사가 많을 것이었다.

금추춘은 원래 고독술사를 고용해 썼었고 고급 정보에 밝은 자이다 보니, 번서가 심은 고독의 해결법을 찾아내는데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것은 조금만 생각해 보면 금새 깨달을 수 있는 이치라, 이미 악산라로부터 그런 정보를 입수하기 전, 고독을 심었을 때 부터 번서는 자신이 심은 고가 오랫동안 지속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래서 마침내 금추춘이 자신에게 심어진 고독의 해법을 찾아냈을 때 그는 이제 반격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 상황을 미리 예견하고 있던 번서의 생각은 달랐다.

" 그래, 이제 더이상 해독제가 궁하지 않다는 말이렷다... "

번서를 따라다니던 서봉과 예하랑에 의해 때려눕혀진 것은, 궁내부 소속의 궁녀들. 그중에서도 감찰부에 속한 고수들이었다. 신분을 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황국에서 공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공인의 경우, 꼭 청사 초롱이 새겨진 공무패(옥으로 만든다)를 소지하고 있어야 한다. 옥패에 새겨진 초롱의 숫자는 하나부터 다섯까지 있고, 숫자가 많을수록 더 임무가 중하며, 각지의 관아와 항구, 역참으로부터 더 많은 지원(주로 말와 배 등 교통수단과 손발이 되어 줄 병졸들)을 받을 수 있었다. 번서를 습격한 여자들이 가지고 있는 옥패의 초롱은 세개였다.

공무패를 소지한 여고수, 그것도 일을 번서가 저녁 산책을 하던 도중에 2인 만으로 기습해 왔다. 그것은 공무패를 사용할 수 없는 뒤가 구린, 혹은 비밀리에 처리해야 하는 임무 중이라는 이야기다. 관인들, 그 중에서도 군인들은 이런 식으로 일하지 않는다. 그들은 일의 모양새를 따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는건 대왕궁에 속하는 자들, 즉 궁녀 뿐인데, 궁녀들 중에서 이정도로 무예가 고강한 자들을 키우는 곳은 한군데 밖에 없다.

소위 왕의 여인들의 개인적 필요에 의해 보내지는 자객들. 궁내부 감찰들인 것이다. 그리고 번서에게 궁내부 감찰을 보내 올 정도의 인물이라면 한명 뿐이다. 어렵지도 않는 추리였다.

쓰러진 여자들은 미운 인상은 아니었지만, 번서의 기준에 맞을 정도의 미인들도 아니었다.

" 주인님, 어떻게 할까요? "

막 두자루의 쇠채찍을 소매 안에 갈무리한 서봉이 번서에게 물어 왓다. 방금의 짧은 전투가 결코 쉬운 일전은 아니었다는 증거로 그녀의 숨은 약간 거칠어져 있었다.

" 무공을 폐하라. 노예로 삼을 가치 까지는 없다.  "

" 존명. "

서봉에게 뒤처리를 맏긴 후, 예하랑의 은밀한 호위를 받으며 골목을 빠져 나온 번서는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이미 금추춘은 예하랑을 보았다. 그런데 그가 눈이 없다면 모를까, 예하랑의 실력을 보고도 번서를 제거하기 위해 고작 궁내부 감찰 두명 만을 보내 왔다면, 그건 그가 지능이 개보다 못하다는 결론이 난다. 그럴리는 없다.

" 예하랑. "

" 네 주인님. "

" 금추춘이 네 실력을 제대로 봤느냐? "

" 아뇨. 제가 나설 것도 없었습니다. 여월 동생이 워낙 솜씨가 좋았는지라... "

당여월만 봤다고 해도 허술하긴 마찬가지다. 당여월은 자기 칼에 맞는 자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무정한 손속 때문에 실제 실력보다 두배는 강해 보이기 떼문이다.

" 실력을 떠본 것인가?... "

" 네? "

" 금추춘이 보냈다면 허술하기 짝이 없는 일이 아니냐. "

" ...그렇군요. "

" 분명 저 여자들은 미끼고, 다른 녀석이 있겠... "

거기까지 말한 순간 번서의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자신의 배. 당여월은 자신의 창고를 지키고 있었으니, 거기에는 국무령을 비롯해 악산라, 국무향, 진소아 등이 있었다. 국무령은 몰라도 악산라는 아직은 무인으로써는 초보고, 국무향과 진소아는 말할것도 없이 전투력이 없다. 상대가 고독에 대해 대비가 되어 있고 당여월을 충분히 제압할 정도의 전력을 상정하고 있다면, 국무향으로는 위험하다. 번서는 급히 영서(靈翅: 환술로 만든 전서구를 말한다)를 날려 당여월을 배로 보내고 서봉에게 뒷처리를 마치는 대로 따라오라는 말을 남기고 나서 예하랑을 데리고 배로 향했다.

.

.

.

" 무령! "

" 아... 주인님. "

일전에 당여월의 국무령에 대한 평가는, [탄검술이 본격적으로 펼쳐지면 그녀보다 고수라도 충분히 곤란할 수 있다]였고, 그녀는 정말로 그렇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번서가 배에 도착했을 때, 갑판에는 이미 열댓명의 복면 여인들이 쓰러져 있었다. 한결같이 급소에 일검을 맞고 쓰러진 것이 국무령의 솜씨였다. 다만 국무령은 침입자들을 완전히 물리치지는 못했고, 허벅지와 옆구리에 각각 한자루씩의 비도가 깊숙히 박혀 있었다. 그 상태로 그녀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악산라를 지키는 위치에 서 있었는데, 배에 올라온 번서를 보자, 그때까지도 엄중한 태세를 취하고 있던 그녀의 긴장이 급격히 풀어졌다.

휘청거리는 그녀를 받아서 안자, 국무령의 눈이 급격히 흐려졌다.

" 주인님...저는 노력... "

" 지혈하고 나서 나중에 이야기 하지. "

혈도를 쳐서 국무령을 지혈시키고 쉬도록 해 준 다음, 번서는 천천히 돌아 일어섰다.

십여명이 뱃전 여기저기 쓰러져 있었지만, 갑판에 아직 십여명, 그리고 일부러 번서를 통과시켰는지 부두에도 야행복에 복면 차림을 한 여고수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 국내부 감찰들이 다 출동한 것인가? "

" 오호, 눈썰미가 대단하군... "

은색의 복면에 궁장을 입은 여인이 대장인듯 했다.

" 황국 대왕실의 이름으로, 너는 오늘 말살된다. "

" 탐관오리의 명령을 따르는 암캐들 주제에 폼 잡기는... "

번서의 지적이 정곡을 찔렀는지, 은색 궁장의 여인의 면사 밖으로 드러나 있던 눈썹이 일그러졌다.

" 닥쳐라, 이 역적놈!... "

캉!...

언제 던져진 것인지도 모를 정도의 속도로 쏘아져 날아온 비도를 예하랑이 풍진을 들어 막았다.

" 오호...? 제법 한가닥 하는 녀석이 있군. "

그 말을 들은 예하랑의 입가에 걸린 것은 다름아닌 실소였다.

" 주인님, 어떻게 할까요? "

" 국무령이 두군데 부상을 입었으니, 똑 같이 두군데씩 부러뜨려라. "

" 존명. "

목소리가 동시에 세군데서 들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궁내부 감찰들이 돌아 보았을 때, 항구의 입구에는 이미 무기를 꺼내 든 상태의 서봉과 당여월이 서 있었다. 그리고 번서의 옆에서 하늘색의 섬광이 번쩍이며 뱃전을 물들였다.

" 으악!... "

" 컥!... "

" 아윽!... "

비명조차 짧았다. 모두가 일파의 종사급 여자들이다. 거기에 예하랑은 그 일파의 종사들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무림을 주름잡았고, 현재의 백무련이 생겨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살아있는 전설이다. 아무리 궁내부 감찰들이 대단한 재주가 있다 한들, 무예를 하기 위해 태어난 듯한 번서의 노예들, 특히나 예하랑을 당해낼수는 없었다. 갑판 위에 있던 자들은 비도를 날려온 지휘관을 포함해 모두 제대로 반항한번 해보지 못하고 모조리 두군데씩 부러진 채 갑판 위에 나뒹굴었다.

그동안 번서의 몸은 은색의 광채로 뒤덮였다. 그의 술법 중 하나로, 피부를 강철처럼 바꾸는 것을 발동해 노예들이 자신을 돌볼 필요 없이 나음껏 날뛰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을 아는 노예들 역시 번서의 안전을 걱정하지 않고 마음껏 솜씨를 발휘했음은 물론이다. 돚대 위에 몰래 올라 앉아 있었던 궁내부 감찰들이 쇠뇌를 써서 번서를 노렸으나 그들이 쏘아 낸 화살들은 모조리 그 은색의 장막에 막혀 튕겨 나갔다. 그리고 그들이 두번째 공격을 가할 기회는 없었다.

역시나 예하랑이 제일 빨랐다.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속도를 발휘해 갑판 위에 서 있던 궁내부 감찰들의 팔다리를 둘씩 부러뜨린 다음, 동생들의 솜씨를 보겠다는 듯이 번서의 옆에 돌아와 서 있었다.

그동안 항구에서는 한층 더 잔혹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무리도 아니다. 예하랑의 주특기는 피를 보는 일이 드문 권각법이었지만, 당여월은 검이라는 피를 보는 무기를 쓰고 있었고, 서봉에 이르러서는 무기가 아니라 [흉기]라고 불러도 그리 위화감이 들지 않을 두자루의 강철 채찍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강철 채찍은 달빛을 반사하는 차가운 은색의 광망들로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 동시에 공기를 찢는 무시무시한 파공성과 닿는 곳마다 튀어오르는 피와 살점, 그리고 비명으로 지상을 물들이고 있었다.

부우우웅!... 드드드득!... 퍼버벅!...

" 으아악!... "

" 꺄악!... "

어쨌든 서봉이 쓰는 철편이라는 것이 사람 키의 두배에 달하는 길이의, 손잡이를 제외한 전체가 칼날로 이뤄진 굵은 사슬이다. 맞은 자리에 끔찍한 형태의 상처를 남기는 것은 물론이요, 행여나 살에 박힌 채로 쓸리기라도 하면 뼈까지 드러나는 상처를 남기는 정도는 예사다. 게다가 무겁기 그지없는 중병기라 보통의 검 따위는 수수깡처럼 부러뜨려 그 파편까지 상처에 더한다.

정확히 급소만을 찔러 목숨을 빼앗는 손속의 무정함으로 당여월이 노예 중에 필두라면, 서봉은 그 무기 덕에 가장 현란한 잔혹함을 연출하는 역할이었다. 보기만 해도 질리는 광경을 연출하며 광전사처럼 달려드는 그녀의 앞에 버티고 설 자들은 드물었다. 대장까지 예하랑의 손에 붙잡힌 것을 본 자객들은 파리떼 처럼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치기 시작했다.

" 쫒지 마라. 이 계집을 감금실에 가두고, 주변을 치워라. "

" 네 주인님. "

예하랑과 서봉을 번을 세운 다음, 번서는 국무령을 돌보기 위해 돌아섰다.

악산라는 단순히 타박상에 의식을 잃은 정도에 불과했지만, 국무령의 부상은 엄중했다. 번서는 그녀를 선실로 데려간 후 본격적으로 치료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본격적으로 지혈을 했다. 그 다음은 아직도 몸에 박혀 있던 비도를 제거하고, 쇠독이 오른 살과 뼈를 긁어 내고 봉합하는 작업이 뒤를 이었다. 그동안 국무향은 오랜만에 번서의 마비약을 듬뿍 마시고 취해 있었다. 의식이 있었다면 단말마의 고통을 경험했을 것이니 그렇게 한 것이다. 악산라는 깨어나자 마자 번서의 조수를 자처했다.

" 국언니가 날 살리느라 이리 되었다... "

눈물을 줄줄 흘리며, 악산라는 미안해 했다. 번서가 국무령에 대한 외과적인 치료를 끝내고 봉합된 상처 위로 금창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은 후, 회복을 위한 탕제를 달여서 먹이는 동안 내내 악산라는 번서의 손발이 되어 그가 필요한 것을 즉시즉시 구해 오는 것으로 그를 도왔다. 그리고 국무령에게 탕제를 먹인 후에 볼보는 일도 자처했다. 번서는 악산라를 좀 더 자세히 진찰해 보고 나서 이상이 없다고 진단하고 그녀가 바라는 대로 하게 허락했지만, 곧 자신의 용무를 돕게 하기 위해 다시 그녀를 호출했다. 

국무령 옆에 국무향이 자리를 잡고 앉는 동안, 악산라를 동행시킨 번서는 포로를 감금해 두는 감금구역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아직도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던 은색 궁장의 포로의 부러진 팔을 비틀었다. 번서의 명령대로, 그녀는 예하랑에 의해 양팔이 부러져 있었다.

우드득...

" 으아악!!!... "

비명을 지르며 포로가 깨어나는 것을 보며, 번서는 악산라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 고. "

어떤 고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이다. 진소아의 의지와 반해 몸을 조종하고, 결국은 그녀를 폐인으로 만든 고를 말하는 것이다. 잠들어 있는 상태의 고가 들어 있는 작은 옥병이 조심스럽게 건네어진 다음, 번서는 포로의 턱을 제압해 입을 벌린 다음 그 옥병을 통채로 털어넣으려 했다.

" 주... 주인, 그러면 죽는다! "

악산라가 팔을 붙들고 말리지 않았다면 정말로 죽든 말든 실행했을 것이지만, 그녀가 팔에 매달린 덕에 간신히 이성을 찾았다. 고를 병째로 입에 집어넣는 대신, 그는 다시 한번 부러진 팔을 붙잡아서 비틀었다.

우드득!...

" 아악!!!... 아그그그그그!!!...  "

이번에 팔을 비튼 것은 뼈를 맞추기 위한 것이다. 뼈를 제대로 맞춘 후 부목을 대 주고 나서, 번서는 잠시 심호홉을 했다. 치미는 격노를 제어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옥병을 악산라에게 돌려준 다음, 마비침을 꺼냈다.

목표는 목과 머리의 혈. 통각을 증폭시키는 뇌의 혈에 하나, 전신을 마비시키는 목의 혈에 하나. 목의 혈에 꽂힌 마비침의 효과는 빨라서, 고통에 몸부림치기 시작하려던 여자의 몸의 움직임이 멎었다. 그 상태로 그때까지 걸치고 있던 옷을 완전히 찢어 내 알몸으로 만들었다.

" 휘유~.... "

악산라가 휘파람을 불었다. 면사 위로 봤을때는 잘 보이지도 않았거니와, 지금까지 국무령의 부상 때문에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지만, 포로는 대단한 미인이었다 피부는 백설기가 생각날 정도로 하앴고, 얼굴은 달걀이 떠오르는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눈은 크고 깊었으며, 눈썹은 초승달형으로 우아하게 휘어 있었다. 코는 곧았고, 옆에서 보면 이마에서부터 콧망울까지 눈섭과 같이 초승달이 생각나는 각도로 우아하게 휘어 있었다. 분명하게 붉은 색으로 빛나는 입술은 작고 도톰했고, 이는 하얗고 가지런했다. 광대뼈나 턱도 두드러지지 않아서 전체적으로 보면 마치 소녀같은 인상이었다.

게다가 체구도 작고, 가슴도 번서의 기준에서는 빈유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작았다. 약간 야위었다 싶은 근육질의 몸은 들어갈 곳은 들어가고 나올 곳은 나와 있어 여자다운 형태를 잃지는 않았지만 이런 몸과 얼굴 때문에 정말로 소녀같다는 인상을 주었다. 번서의 노예 중 가장 어려서 종종 어린애 취급을 받는 악산라보다 연하로 보였을 정도다.

그리고 지금은 잠든 것처럼 보이지만, 무슨 일을 당하는 지 자각도 있을 것이다. 번서의 마비침이 제압한 곳은 자율신경을 제외한 모든 신경을 제어하는 부분이라 의식은 멀쩡할 것이고, 당연하지만 고통도 느낄 수 있다. 이것에 통각을 제어하는 혈을 건드려 둔 덕에, 부러진 팔로부터 치미는 고통은 적어도 수백배 부풀려져 전달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번서가 생각한 최소한의 처벌이다. 원래라면 고문하고 정보를 빼낸 후로 본보기로 죽일 생각이었지만, 그 아름다움 덕분에 번서의 생각이 바뀌어 목숨은 건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기분이 아직 완전히 풀리지는 않았으니, 노예가 되는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 돌아가자. "

" 네 주인. "

악산라는 번서를 얌전히 따르며 두려움과 기쁨을 동시에 느꼈다. 국무령이 엄중을 부상을 당한 것이 그녀의 주인을 이렇게도 격노하게 만들었다. 격노한 주인님은 무섭지만, 노예니 뭐니 해도 소중히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국무령이 그렇다면, 같은 노예인 자신도 그렇게 소중하게 여겨질 것이다. 자부심과 기쁨이 그녀의 가슴 속에서 뭉클거리며 피어올랐다. 그녀는 번서의 팔을 끌어안고 얼굴을 부볐다.

" 왜 그러느냐? "

" 주인님... 악산라, 많이 사랑한다. "

진지하다기 보다는 강아지 같은 그 모습에, 번서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리고 악산라의 허리를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 너는 내 애완동물이야. 내 허락없이 죽지 마라. "

" 응...  그렇다, 주인의 애완동물, 악산라 행복하다. "

아직은 존대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단어의 용법조차 약간 이상한 어투였지만, 악산라의 마음은 충분히 전달되었다. 그리고 번서는 악산라가 더욱 더 행복감에 취하도록 그녀의 허리를 끌어 안은채 자신의 침실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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