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부_30 (30/41)

  

번서는 금추춘이 태후 윤씨의 측근 중 하나라는 이점을 최대한 이용할 생각이었지만, 황국의 태후쯤 되면 자타칭 측근이 한둘이 아니니 만큼 금추춘도 유사시에 버리기 아까울 정도로 중요한 패는 아니었다. 단지 부패한 외척을 비호하고 있는 태후이니만큼, 그 옆에 있으면 접근할 수 있는 자원과 정보의 크기가 다를 뿐이다. 번서는 금추춘을 통해 그 정보와 자원에 접근할 것이다. 그가 요구한 보상이라는 것도 그런 접근의 일환이었다.

황국의 왕실은 돈이 모이는 곳이다. 지방으로부터 거둬들인 조세들이 경도의 세창(稅昌)에 모일 뿐떠러, 주변의 각국에서 보내 온 예물들도 대왕궁의 왕실 창고 안에 모여 있다. 그중에는 내공을 증진시켜주는 각종의 영약들, 진귀한 무기들, 그리고 심지어는 무공 비급까지있었으니, 대왕궁의 왕실 창고는 무림인들에게도 보물창고였다.

번서가 금추춘에게 요구한 것은 그 창고의 물품 목록이었다. 자신의 목숨이 달린 일이엇던만큼, 금추춘은 이 임무를 필사적으로 성공시켰다. 번서는 자신보다 무림에 대한 경험이나 연륜이 훨씬 높은 예하랑에게 서봉을 조수로 붙여 준 다음, 이 목록들을 정리하도록 시켰다. 무엇이 무림인에게 이득이 되는가를 보고 그 물목을 골라 내라는 것이었다.

" 설마 주인님... 대왕궁의 왕실 창고를 터실 계획이신지요? "

" 필요하다면. "

국무령은 놀라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번서의 노예가 된 이후로 백무련과는 완전히 인연이 끊어졌지만, 그래도 그녀는 백무련이나, 백무련이 추구하는 [정도]의 상징으로써의 황국의 대왕실에 대한 경외감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예하랑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녀는 원래부터 점점 대왕실과 유착해 가던 백무련에 염증을 느끼고 은둔하던 몸이라 충격(?)이 덜했다.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던 국무령의 허리를 붙잡아 끌어 당긴 후, 번서는 그녀의 엉덩이를 강하게 쥐면서 물었다.

" 아직도 백무련의 총사였던 기분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니, 좀 더 따끔한 조교가 필요하겠구나. "

" 아...아힉!. 아닙니다... 좀 놀랐을 뿐입니다!... 주인님... 아히앙!... "

공포와 쾌감이 뒤섞인 표정으로 국무령은 황급히 사죄했다. 번서는 그녀의 사죄를 받아들였지만, [따끔한]맛을 보여주기로 작심한 것은 바꾸지 않았다. 하여, 참으로 오래간만에, 국무령은 엉덩이를 맞게 되었다.

" 아앙!... 앙!... 아픕니다!... 아힉!...  "

" [저는 불순한 노예입니다] 라고 해봐. "

" 아힉!... 저, 저는 불순... 아힝!... 불순한 노예입니다!... "

다급하게 번서가 시키는 대로 복창한 다음에야, 국무령은 자신이 함정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 불순한 노예에게는 벌이 필요하지. "

" 아... 전 그저 주인님이 시키시는 대로... 아힝!... "

" 그래, 네가 불순한 노예인 것이 내 책임이라고? "

" 아, 아닙니다!... 아닙니다!... 제 책임입니다, 죄송합니다!... 아힉!... 아히힉!... "

짜악!...

첫 일격으로, 국무령은 아찔한 쾌감을 맛보았다. 눈앞에서 불꽂이 터진 듯한 아찔한 작렬감을 맛본 덕에, 그녀는 엉덩이를 맞았다는 사실조차 잊을 정도였다.

" 아... 아히이... "

금방 눈동자가 가로로 8자를 그리며 춤을 추고, 악다문 입술 사이로 군침이 흘러 내려 턱을 적셨다.

" 자 복창한다... [저는 불순한 노예입니다] " 

" 아...아그윽...저, 저는 불순한... 노예입니다... "

짜악!

" 히아윽!... "

" 다시 "

" 저는... 부... 불순한 노예... 입니다! "

짜악!

" 하악!...그, 아윽!... 으으아아아!!!... "

세번째는 결국 견디지 못하고, 보지로부터 성대하게 애액을 분사해 내며 눈을 까뒤집었다. 절정에 달한 것이다. 그러나 번서는 거기서 멈출 생각은 없었다. 항문 마개를 붙잡고 거칠게 한번 흔들어 주면, 사라졌던 눈동자가 제자리를 찾았다.

" 다시. 내가 말하지 않아도 반복한다.  "

" 그...아...아으으.... 저는...불순한... 노...으윽... 예... 아으...입니다... "

다시 정신줄은 수습했지만, 남아있는 쾌감이 육체에 가한 타격은 숨길수가 없다. 훈련된 노예라도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말을 하고 싶어도 혀가 꼬여서 발음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 지경이라 국무령은 필사적이었다.

짜악!

" 히이이이!!... 저는... "

잠시 후, 국무령은 번서의 무릎 위에 엎어진 채 간헐적으로 몸을 떨고 있었다. 엉덩이를 맞는 것만으로 반죽음 상태가 될 정도로 연속 절정을 당한 탓이었다. 허리 위로 걷어올려진 치마 아래 드러난 엉덩이는 발갛게 익었고, 그 사이로 드러난 보지로부터는 마치 오줌을 지리는 모양새로 애액이 줄줄 흘려내리고 있었다.

" 아으윽... "

거기까지 확인한 다음, 번서는 국무령의 머리채를 잡고 얼굴을 들어 올렸다. 절정에 절여져서 넋나간 얼굴조차 아름다운 그녀의 뺨을 얼르듯이 쓰다듬어 준 다음, 몸을 떠는 그녀의 귓전에 다시 속삭였다.

" 엉덩이를 맞으며 절정이라니, 변태 중에서도 상 변태군 너는. "

" 아... 네... 저...저는 변태입니다... "

어눌한 목소리로 번서가 원하는 말을 흘려내는 국무령. 그때 국무향이 선실 안으로 들어왔다.

" 냐~ 앙! "

번서 다음으로 친근한 국무령이 그의 무릎 위에 엎으려 애액 냄새를 풀풀 풍겨내며 떨고 있는 모습을 본 국무향은 자기도 그렇게 해 달라는 듯이 잽싸게 기어와 번서의 발바닥에 입을 맞추며 아양을 떨었다. 번서는 그녀가 국무향의 보지를 빨아 주는 것을 허락했고, 곧바로 달려든 국무향에 의해 국무령은 자지러지며 다시 눈을 까뒤집었다.

" 냠... 음음... 할짝할짝... 냠... "

" 아으윽!... 아힉!... 그, 무향, 안...아응!... "

기진맥진한 국무령를 번서의 무릎에서 끌어내린 국무향이 피가 이어진 자매의 몸에 탐닉하는 동안, 번서는 국무향의 엉덩이를 주무르며 그녀를 부추기면서 그녀들을 침대로 이끌었다.

" 아... 아아아... 그...이대로라면 저 미쳐버립니다. 망가집니다... 주인니이님... "

따지고보면 이미 망가진 여자지만, 어쨌거나 이미 국무령은 노예니만큼, 딱히 더 뜸을 들일 필요가 없다. 번서는 국무향의 엉덩이를 두드려 그녀를 옆으로 물러나게 하고(여전히 유방이나 얼굴에의 애무는 그치지 않고 있었지만) 국무령의 몸 위로 올라 한 손으로 그녀의 팔목을 붙잡아 머리 위로 쳐들어 올린 다음, 그대로 자신의 자지를 애액이 줄줄 흐르는 그녀의 보지 안에 삽입했다.

" 아아아아아!!!... 히아아아아아아아아!!!!.... "

감격에 찬 비명과 함께 전신을 격렬하게 경련하며, 국무령은 절정했다. 달아오른 아름다운 얼굴에서 눈동자가 사라지는 것을 내려다보던 번서가 한번 허리에 힘을 주어 찔러 넣자 다시 눈동자가 제위치를 찾았다. 쾌감으로 기절하면 쾌감으로 깨우는 것이다. 

삽입만으로 달해버린 여자의 달아오른 몸에서 후끈한 열기와 농후한 방향이 풍겨나와 침실 안을 채우며 분위기를 띄웠고, 번서는 본격적으로 국무령, 국무향 자매를 범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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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나 들보다는 적지만, 강에도 수적(水賊)이라는 이름이 붙은 강도들이 존재한다. 특히나 점점 치안이 나빠져 가고 있는 육로를 대신해 수로를 선택하는 상인들이 많아지면서, 이 수적 사업 역시 덩달아 활기를 띄어 가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생업의 일환이기에, 이 수적들 역시 손쉬운 먹잇감만을 노리는 경향이 있다. 배 여러척 보다는 배 한척을, 무장이 갖춰진 배 보다는 비무장 상태의 배를, 그리고 아주 큰 배 보다는 적당한 크기의 배를 노린다. 너무 작은 배를 노리는 것은 노력에 비해 수확이 적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금탑삼상의 호송선단은 수적이 피하는 상대다. 배 마다 적어도 사십여명의 무장된 위사를 태우고 있는 세 척 이상의 대형선으로 이뤄져 있는데다, 관부의 호송선이 아니면 장비가 금지된 금지된 대포까지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떤 수적이 금탑삼상의 호송선을 공격하기로 마음먹었다면 그건 그들이 죽기를 자원했던가, 아니면 무언가에 의해 내몰리던가, 아니면 몆몆의 목숨 정도는 내놓아도 좋을 만큼 대단한 가치의 물품이 호송선에 실려 있던가이다. 말하자면 아주 그 확률이 희박하다고 볼 수 있다.

번서가 금여화의 초청을 받아 금탑삼상의 총회가 있는 외강탄(外江灘)을 방문할 목적으로 이 호송선에 탑승한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 그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벌어졌다.

보통 강 상인들은 안전을 위해 밤 항해는 꺼리는 편이지만, 금탑삼상의 호송선은 밤에도 화려한 조명을 밝힌 채 운항하기로 유명하다, 선상에 밝혀진 불빛은 몆리 밖에서까지 보일 정도다.

번서는 눈에 뜨이는 것을 싫어했지만, 금여화는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취향 만큼이나 떠들썩한 것도 좋아해서, 매일 밤마다 주연을 열었다. 배에는 번서 외에 다른 그녀의 [손님]들도 타고 있었기 때문에 오늘은 번서를 위해, 내일은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이런 식이었다.

주연의 주빈이다 보니 참석을 안할수도 없다. 번서의 호위역으로 따라온 예하랑과 국무령은 이런 상황을 불편해 했지만, 상대는 번서가 장차의 일을 도모하기 위해 꼭 가까이할 필요가 있는 인물이다 보니 울며 겨자먹기로 연회에 참석하고 있었다. 물론 참석한다고 해봐야 얼굴을 포함한 전신을 가리는 비단 장포를 벗지 않고 번서의 좌우를 지키는 정도였지만.

배의 승객들이나 선원들에게 있어 비단에 둘둘 감긴듯한 그녀들의 모습은 흥미를 끌긴 했지만, 정체를 확인하려는 무모한 시도는 없었다.

" 매일 이런 식이면 몸이 남아나지 않겠소이다. "

" 놀 수 있을때는 확실히 놀아야죠! 그리고 이 연회엔 다른 목적도 있어요. "

" 음?... "

" 아직은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제가 생각한 대로 일이 풀린다면 저절로 아시게 될거에요. "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듯이, 금여화가 그 말을 마치자 마자 앞서 가던 선도함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축포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는 화염의 기둥이 치솟으며, 불붙은 인간들이 하늘 높이 치솟는 것이 제법 떨어진 연회장에서까지 확연하게 보였던 것이다.

" 으아악!..."

" 적습이다!... "

연회장은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다. 번서는 우왕좌왕하는 인파에 휩쓸리기 전에 예하랑의 도움을 받아 대들보 위로 몸을 빼냈고, 금여화의 주변은 순식간에 숨어 있던 위사들로 뒤덮였다.

보아하니 수적을들 꾀어내려고 벌인 일인듯 한데... 대체 왜?...

궁금해 할 시간도 없이 배의 좌우로부터 검은 물옷을 입고 칼을 든 자들이 기어올라와 승객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 으악!... "

" 우아악!... "

순식간에 갑판은 피로 물들었지만, 그 광경을 보는 금여화의 얼굴에는 당황하는 기색이라고는 요만큼도 없었다. 갑판 위를 다 정리한 수적들이 연회장 주변을 둘러쌌을 때, 그 숫자는 백여명에 이르러 있었다. 도저히 수적으로 볼 수 없을 정도의 숫자와 일사불란한 조직령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 개개의 무공수위도 결코 시정잡배 수준이 아니었다.

상대는 상당한 규모를 가진 조직이었던 것이다.

" 오랜만이구나, 앙큼한 계집. "

위사들과 대치하고 있던 검은 물옷의 무리 중 한명이 앞으로 나오며, 복면을 벗었다. 혈색 좋은 뺨에는 검상의 흉터가 남아 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머리는 하얗게 새어 있었고, 장비처럼 뻣뻣하게 서 있는 수염까지 반백이었다. 당당한 풍체와 걸음걸이를 보아 하니 상당히 고강한 무인으로 보였다.

" 정말로 낚이는군, 늙은 너구리. "

" 낚아?,... 네가 날?... 그거 참 재미있는 농담이구나. 니 주변에 있는 위사들을 믿고 있는거라면 내 한마디 해 주지. 니쪽의 머릿수는 스무명이지만, 이쪽은 백명이야. "

선두선을 불타오르고 있었고, 후위의 장선이 접근하려면 아직 멀었다. 정말로 위기에 빠진 것 처럼 보이기에 충분한 상황이었음에도, 금여화의 얼굴에서는 자신감있는 미소가 떠나지 않고 있었다.

" 그래 이것만으로 네놈을 낚기에는 모자라지. 그래서 준비한게 있어. 부디 즐겁게 즐겨 주길 바래. "

금여화가 그 자리에서 강하게 발을 굴렀다. 번서는 본능적으로 그것이 어떤 기관장치를 발동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챘고, 입고 있던 장포에 딸린 망토를 펼쳐 스스로를 가리며 예하랑을 끌어당겨 안았다. 동시에, 국무령에게도 배를 벗어나도록 신호를 날렸다.

화르륵!...  퍼버버벙!!...

" 으아아악!!!... "

" 끄아아악!... "

금여화와 그녀를 지키는 위사들이 서 있는 좁은 누각을 제외하고, 배 전체가 순식간에 불덩어리로 바뀌었다. 단순히 불만 붙은 것이 아니라, 불길로 인해 새빨갛게 달궈진 철환이 폭음과 함께 사방으로 튀어 날아 올랐다. 전후좌우를 채우는 불길에 휘말린 검은 물옷의 무리들은 속절없이 불타오르고 철환에 벌집이 되어 쓰러졌다. 폭풍과 화염은 번서가 숨어 있던 대들보까지 훝으며 지나갔다. 다행히도 그의 망토는 불길을 막을 수 있도록 약품처리가 되어 있어서, 선상을 한차례 훝고 지나간 불길에서 그와 예하랑을 지켜 주었다. 국무령도 늦지 않게 거룻배로 뛰어내릴 수 있어 별일 없었다.

" 이제 내가 널 낚은게 맞겟지? "

" 끄아아아... 귀... 귀신 같은 년... "

아까의 자신만만하던 수적 두목은 몸의 절반은 구멍 투성이고, 나머지 절반은 숱덩이가 되어 있었다. 그가 자랑하던 백명의 수하들도 모조리 도륙된지 오래다. 방금 전까지의 자신감은 온데간데 없이, 고통과 공포와 절망, 그리고 곧 다가올 죽음이 그 그을은 얼굴에 떠올라 있었다.

" 내가 말했지 않느냐. 꼭 네놈에게 복수하겠다고... 그리고 이제 네놈의 수채를 찾아 모두를 죽일 것이다. 네놈의 아내, 아이, 그리고 친척과 친구들까지. 모조리리 욕보이고 나서 죽여 주마. "

금여화가 쓰고 있는 안경의 유리 너머로 보는이의 간담이 서늘하게 만들 정도의 한기가 풀풀 풍겨 나왔다. 그 선언을 끝까지 듣고난 후, 노인의 눈에서 생기가 빠져 나갔다.

대들보에서 뛰어내린 번서 일행을 보고 금여화는 다시 평소의 명랑한 얼굴로 돌아 가 있었다.

" 어머, 무사하셨네요. "

" 미리 말씀해 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거요. 최소한 다른 손님들은 죽지 않았겟지. "

" 하지만 일행 중에서도 이놈의 첩자가 있었는걸요. 그러지 않았다면 이 습격 자체가 없었겠지요. 어쩔 수 없었어요. "

" 나도 그 [어쩔 수 없는] 대열에 합류하지 않아 다행이긴 하지만, 다시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소저를 위해 일하고자 하던 졀정을 재고하게 될거요. 그리고 확언하건데, 그렇게 되면 그리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지진 않겠지. "

" 미안하다는 말이 듣고 싶으신 거라면, 죄송하기 그지없네요. "

" 뭔가 잘못 아신 듯 한데, 나한테 필요한건 사과가 아니라 정보요. 먼저 이자와 소저와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하는 것이 어떻소? "

사과를 받는 대신 그런것을 물어보리라고 예상하지는 않았는지, 금여화의 눈에 잠깐 이채가 돌았다. 한동안 무슨 말을 할까 고민하는듯이 침묵을 지키던 그녀는, 마침내 결심한 듯이 번서를 마주보았다.

" ...이자의 이름은 철병리(鐵兵吏)이라고 해요. 철씨가의 가주죠. 철씨가는 중주의 각 관부에 무기를 제외한 철 제품을 납품하는 일을 하는 대장장이 가문이었죠. "

이어진 설명에 따르면, 철병리는 금탑삼상과도 오랫동안 거래를 트고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철병리가 가주가 된 이래로 철씨가는 대장간 일 보다는 벌어들인 돈을 이용해 땅을 사들이고 고리대를 하는 것에 더 재미를 붙여 갔다. 그러다 본업보다 그쪽이 더 크게 되어 버렸고, 중주의 대지주 중의 하나가 된 철병리는 굳이 더이상 대장장이 일을 하는데 매력을 느끼지 못해 대장간 사업 자체를 금탑삼상에 팔았다.

" 그러다 3년을 연속으로 흉년이 터졌어요. 기록적인 흉년이었죠. 소작과 고리대로 재미를 보던 철씨가는 순식간에 거지꼴이 났지요. 자연스럽게 과거에 하던 대장일을 되찾는데 관심을 보이게 됐어요. "

원래의 대장간을 되사는 협상을 개시했을 때만 해도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가격 협상에서 서로의 격차가 줄어들지 않았다. 이대로는 안되겟다고 생각한 철병리는 극단적인 방식을 취했다. 비적들과 손을 잡고 원래의 대장간 - 지금은 철기방이라는 이름이 된 - 을 급습한 것이다. 당시에 집안일(당연하지만 장사)를 배우기 위해 철기방을 둘러보고 있던 금여화는 비적들에게 포로로 잡혔다. 그 때 그녀는 겨우 열네살의 소녀였다. 그 기억을 떠올리자, 금여화의 담담하던 목소리에 증오가 절절히 묻어 나오기 시작했다.

" 이버지는 협상을 거부했고, 보름동안 난 비적들의 노리개가 됐어요. 못을 갈아 만든 꼬챙으로 날 범하던 이놈의 아들인 철희간(鐵嬉干)의 머리와 배를 찌르고 도망쳐 나오고 나서, 금탑삼상에서 고용한 보복부대가 비적들을 모두 잡아 죽였을 때도 이놈만은 결코 붙잡히지 않았죠. 그리고 얼마 전에 저는 이놈이 소백강의 수적들을 규합하고 있는 막후의 실력자라는 소문을 입수했어요. 그 후로는 심공자님께서 보시던 대로의 일이에요. "

" 음, 괜히 내가 미안해지는구려. "

" 아뇨, 생각해보면 죽을뻔 하셨으니 이보다 더한 일이라도 해드려야죠. 생각해보니 이놈 하나 잡자고 너무 많은 사람이 죽게 만들었으니, 제 죄가 크네요... 그나저나 아버지께서 이놈의 머리에 금편 100개라는 현상금을 걸었는데, 이제 그현상금이 내 차지가 됐네요. "

말을 마친 금여화는 위사에게 명해서 목을 자르고 나머지는 물에 버리게 했다. 다른 수적들의 시체도 마찬가지로 강에 아무렇게나 버려졌다. 그리고 전서구가 날려지는 것으로 보아, 이제 그 수적들의 본거지에 대한 소탕 작전이 시작될 모양이었다. 그리고 적의 가족까지 모두 죽이고 불태우는 방식은 번서도 좋아하는 형태의 복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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