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부_20 (20/41)

서봉이 옷을 차려 입고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듯이 사라진 후에, 번서는 다시 철창 문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 그래, 이래도 내가 고자로 보이나? "

" ... 고자는 아니었군. "

" 그럼 이제 내가 널 범하지 않는 이유도 알겟지? "

" 모르겠군, 왜 직접 말해주지 그래? "

번서의 주변 공기가 갑자기 얼어붙는 것을, 당여월은 느낄 수 있었다. 오랜 시간동안 생사를 넘나드는 실전을 겪어온 그녀는 비록 이런 지경에 처했어도 그것을 분명히 구분할 수 있었다. 그것은 분명한 살기였다. 그것도 차가운 경멸이 담긴...

" 너는 더러워. 비교하자면 이 비단 걸레나 다름없지. 비단은 비싸고 귀한 옷감이지만, 어떤 옷감이라도 걸레로 쓰면 걸레일 뿐이야. 똥으로 가득찬 네 몸뚱아리가 남자의 눈을 끄는 효험이 있다는 것은 나도 인정하지만, 보는 것과 범해주는 것과는 다른 문제야. "

" ... 개소리 하고... 히익!... "

용기를 짜내어 반박하려던 당여월은, 갑자기 철창 문을 열고 들어온 번서의 움직임에 놀라 뒤로 물러서면서 순간적으로 비명을 흘렸다.

" 그래, 입으로는 개소리라고 내뱉으면서도 이제 네 몸이 느끼기 시작하는거야. 내가 무섭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할 때 쯤 너는 내 다리에 매달려 애원하고 있겠지. "

" 말도 안돼는 소리!... "

아니면 왜 물러섰지, 왜 비명을 질러? 내가 무섭지 않다며? "

" 놀랐을... 뿐이야! "

" 오, 겨우 남자가 가까이 다가왔다고 놀라다니, 혀를 물면서도 눈하나 깜박 않던 당여월은 어디 달나라로 출장갔나? 어디 다시 한번 해봐, 내 앞에서 혀를 물어서 끊어 보라고, 이번엔 말리지 않고 네 더러운 몸뚱아리를 소백강 물고기 밥으로 던져 주지. " 

" ... "

" 못하나? 고통이라는 것을 이제 깨달은건가? 그렇다면 내가 한가지 더 가르쳐주지. 내가 방금 범한 계집의 이름은 서봉이야. 이동네 창천교의 간부였지. 너도 안면이 있을 텐데? "

" 부, 불망희 서봉이란 말이야, 그 여자가? "

바로 앞에서 범해지며 울부짖는 맨 얼굴을 보면서도, 전혀 알지 못했다. 서봉이라면 창천교 내에서 유망주로 불리우며, 당여월 자신과 비교해도 별로 손색이 없는 고수이다. 무공 실력 만큼이나 자존심도 높은 그런 여자가 가축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코뚜레의 착용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만들다니, 대체 무슨 수를 쓴것인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 그래, 그 계집이 그런 별명으로 불리던 때가 있었지. 하지만 지금은 그저 내 정액이나 받고 내 대신 칼을 받는 노예겸 애완 동물일 뿐이야. 너라고 특별할것 같은가? 게다가 서봉은 딱히 드러나는 악행을 저지른 적은 없어. 하지만 너는 악의 축이나 다름없는 쾌락당의 창지사이자 당주였지. 이러면 누가 더 애완 동물로써 가치가 있을까? "

번서는 당여월의 목에 걸려 있는 목걸이를 붙잡고 멱살을 잡듯이 해서 그녀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그와 시선이 마주쳤을 때, 당여월은 잠시 동안 버텼지만 결국 외면할 수 밖에 없었다.

" 그만해... "

" 무섭지 않다며? 어디한번 그 건방진 눈알로 나를 꼬나보는 시늉이라도 해 보시지 그래? "

" 우우... 우으윽... 그만해... "

당여월의 자존심은 무너졌다. 울기 시작하는 그녀의 멱살을 잡았던 손을 놓은 다음, 마루에 엎어져 울기 시작하는 그녀를 내버려 둔채, 번서는 자기 방으로 돌아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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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미안해요... "

다시 돌아왔을 때 당여월이 처음 한 말은 그것이었다. 실컷 울고 잠깐 잔 다음, 다시 깨어난 그녀는 철창으로 이뤄진 감금실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 그럼 이제 내가 모르는 이야길 해 볼 때가 됀거 같군. "

" 뭐...뭘?... "

눈물에 불어 있는 시선으로 올려다보는 당여월과 시선을 맞추며, 번서는 그녀의 턱을 손으로 받쳐 들었다. 겁먹은 표정이었지만 아까와는 달리 시선을 피하지는 않았다. 솔직해진 것이다.

" 꿈의 다음 이야기 말이야. 너도 네가 완전히 가치 없는 쓰레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변명할 기회는 있어야지. "

" 아... 그 그것은... 그러니까... "

당여월(당시에는 예령이지만)은 닷새 뒤에 발견되었다. 그것도 그녀와 모친이 몸을 숨기려 햇던 토지신의 사당에서 하룻밤을 지내려던 초적(草賊)의 무리들이 발견한 것이다. 그들이 그녀를 발견했을 때, 뒤집어쓴 피가 말라붙어 무서운 형상이 된 소녀가 이제 슬슬 부패가 시작되고 있는 부친의 시신 앞에서 칼을 들고 이쪽을 보고 있는 모습이었다. 귀신인가 싶어 혼비백산한 그들이었지만, 곧 당여월이 그냥 소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모두 다섯명, 그녀를 거둔 것은 그 작은 산적 겸 강도의 무리였다. 한때 농사를 짓다가 "돈에 쪼달려 유랑 걸식하다가 결국은 도적짓을 하게 된 사람들이었고, 모두 한동네 출신이었다. 그들이 부친과 모친의 화장을 해 준 후, 예령은 그들을 따라다니며 밥을 짓고 빨래를 해 주면서 살았다. 그들은 그녀를 딸처럼 여겼고, 그녀도 그들을 진심으로 믿고 의지했다. 아마 그때가 그녀의 인생에 있어서 여덟살 이전의 인생과 가장 비슷했던 마지막 한때 였을 것이다.

그런 생활이 일년간 계속되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끝이 있는 법이다.

초적들은 부자를 싫어한다. 특히나 고리대를 하는 자들은 증오의 대상이다. 그들을 유랑하게 만든 것도 결국 고리대의 빚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강도 행각도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허름한 여행자 따위가 아니라 인근을 주름잡는 고리대 업자의 수금원들을 습격하는 일이 주가 되었다. 하지만 마지막 습격에서, 그들의 운이 다했다. 그들이 습격한 것은 고리대 업자의 수금원으로 가장한 백무련의 무림인이었기 때문이다.

다섯명이 한번에 죽고,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토지신의 사당에서 기다리고 있던 예령도 산적의 일원이라는 죄목으로 붙잡혔다. 그녀는 밥과 빨래밖에 해준 적이 없었고 아직 아이라 할 수 있는 나이였기 때문에 [선처]가 베풀어져서 산적을 퇴치한 무사의 장원에 하녀가 되었다. 그의 이름은 곽도(廓道)였고, 중주의 변두리에 작은 장원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자신을 돌봐주던 초적들이 그립고 그들의 죽음이 슬펐지만, 처우에는 불만이 없었다.

하지만 하녀 일은 고단했고, 정을 붙이고 살기도 어려웟다. 먼저 있던 하녀들은 그녀가 예쁘고 똑똑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녀를 괴롭혔고, 그녀의 뒤에 온 하녀들은 출신 때문에 그녀를 무시했다. 그리고 열네 살이 되던해의 가을, 열다섯살이 되는 생일을 이틀 남겨 놓고, 그녀는 곽도의 아들에게 강간을 당했다. 그때 겨우 열세살 되는 남자아이였다.

곽도는 사려깊고 공정한 인물이었다. 이 일을 알자 마자 그는 아들을 크게 꾸짖고 예령을 불러 자신의 친구의 장원에서 잠시 머물라는 말과 함께 적지 않은 돈을 여비로 쥐어 주었다. 아마 강간에 대한 보상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친과 아들은 곽도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의 친정은 마을의 유지 집안이었다. 그녀는 동구밖을 나서자 마자 습격한 자들에게 돈을 빼앗기고 윤간을 당한 후, 가슴에 단검이 꽂힌 채 논두렁에 버려졌다.

그녀가 살아난 것은 오직 천운일 뿐이었다. 단검이 심장을 살짝 빗겨나간 채 찔려 있던 덕분에 출혈과다로 죽는 일을 면했던 것이다. 논두렁에 버려진 그녀는 자력으로 기어나와 상처를 회복했다. 불가사의할 정도의 생명력이었다. 아마도 복수하고 싶다는 의지가 그녀를 살린 것일지도 몰랐다. 그녀를 윤간한 자들은 모두 아는 얼굴이었다.

예령은 곽도가 소개해 준 장원으로는 가지 않았다. 대신 경도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살기 위해 무엇이든 했다. 일부러 얼굴에 흙과 검댕을 묻힌 채 걸인과 소매치기를 넘나들며 일년간을 경도의 시장통 뒷골목에서 살아 남았다. 무슨일이 생기면 그녀는 자신의 가슴을 찔렀던 단도를 써서 자신을 보호했다. 첫 살인도 그때 벌어진 일이다. 한덩이의 차가운 밥을 배앗기지 않기 위해 휘두른 칼에 찔려 죽은 것은 그녀 또래의 남자아이였다.

그 첫 살인을 보고 그녀를 점찍은 것이 바로 경도에서 창천교 조직을 세우고 있던 당장천(當帳天)이라는 인물이었다. 다른 이름은 검령사자(劍領使者) 당시 창천교 제일의 검술 고수였다. 납치당하다시피 창천교에 입교하게 된 예령은 그날부터 무달천의 제자가 되었다.

당장천의 제자는 모두 네명이었다. 첫째 비홍(飛紅), 둘째 소옥(小玉), 셋째 문(文) 그리고 마지막이 예령이었다. 모든 제자는 그의 성씨인 당씨를 받았고 예령에게는 여월이라는 이름도 새로 주어졌다. 후에 대사막 인근에서 무명을 날리게 되는 오락당 당주, 여걸 당여월(唐呂月)의 탄생이었다.

당장천은 성까지 주어서 기르는 제자들에게도 몹시 냉정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호색가이기도 했다. 여월은 그에게서 무공을 배우는 동안 내내 그의 노리개 신세가 되어야 했다. 다만 이번에는 여월도 동의한 관계였다. 강해지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댓가로 자신의 몸을 제공한다는 일종의 계약이었던 것이다.

그럭저럭 그렇게 10여년을 보냈다. 그동안 사형제중 비홍과 소옥은 임무를 실패하는 일을 저질러 처단당했고, 당문은 검술 실력은 발전이 더뎠지만 지략이 있어서 내당의 사자(使者) 지위에까지 올랐다. 당장천에게서 배울만큼 배운 여월도 자립하게 되었는데, 당문처럼 내단에서 자신의 운을 걸어볼까 했지만 아부하는 실력이 모자랐던 관게로 그 목표는 깨끗히 그만두고 감찰사 수행의 직위로 전국을 떠돌아 다니는 생활을 시작했다. 그 일이 손에 잡힐 무렵, 그러니까 그녀가 25세가 되던 해 봄에 그의 스승인 당장천이 사소한 시비 끝에 벌어진 칼부림에서 죽었다. 경도에서 익주(翼州)로 통하는 관문 인근에 세워진 객잔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별로 스승의 복수를 하고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그녀의 감찰사로써의 첫 임무는 당장천을 죽인 흉수를 찾아 복수하는 일이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어렵지 않게 스승을 죽인 [흉수]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 이름은 곽방(廓邦). 그녀의 은인이라면 은인일 수 있는 곽도의 아들이었고, 15세의 생일을 이틀 남겨 두고 있던 그녀를 강간했고, 이후 윤간당해 쓰러져 있는 그녀의 가슴에 칼을 박은 13세의 소년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어느새 23세의 준수한 용모의 청년이 되어 있었고, 몹시 당연한 일일지 모르지만 그녀를 기억하지는 못했다. 별로 관심이 없었던 그녀의 스승의 죽음의 진상에 대해서라면, 다른이와 말다툼을 하는 도중에 뒤에서 기습적으로 찌른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뿐이다.

물론 당여월도 더이상 15세의 소녀가 아니었다. 숨겨두고 있었던, 윤간당한 그녀의 심장을 노리고 파고들었던 단검을 사용하는 것을 잠깐 미룬 채, 그녀는 자기 식으로 복수를 하기로 했다.

곽방에게는 창소(昌昭)라는 이름의 약혼자가 있었다. 무공과는 인연이 없는 대상인의 딸로, 근처에서 가장 돈많은 부친을 둔 덕인지는 몰라도 제법 청초한 미모를 가지고 있었다. 백무련의 젊은 후기지수와 대상인 집안의 영애. 잘 어울리는 한쌍이었고, 곽방도 창소도 서로를 마음에 들어 하고 있었으므로 그들의 관계는 꽤 가까워져 있었지만, 창소는 아직 마지막 선을 넘는걸 허용하지 않았다. 욕구불만의 곽방에게 접근해 그와 깊은 관계가 되는 것은 당여월에게는 쉬운 일이었다.

복수의 날. 심야에 그를 객잔으로 불러들인 당여월은 그와 마지막 정사를 가졌다.

남자가 가장 약해지는 것은 사정하는 순간이다. 어떤 고수라도 그 순간만큼은 방어가 허술해진다. 하물며 입에발린 말로도 절정고수라고는 쳐주기 힘든 곽방이 사정할 때 그를 제압하는 일은 어린아이의 팔을 비트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었다.

침대 위에서 벌거벗겨진 채 꽁꽁 묶여서 옴쭉달싹 할 수 없는 상태로 재갈까지 물려진 곽방 앞에서 객잔의 벽장 문이 열렸을 때, 그 안에는 창소가 들어 있었다. 벽장의 문틈으로 곽방이 당여월과 신나게 즐기며 자신의 험담까지 하는 것을 다 들은 다음의 일이었다.

" 그는 너를 사랑하지 않아. "

당여월이 한 말은 그뿐이었다. 그리고 창초의 손에 자신의 가슴을 파고들었던 단검을 쥐어 주었다. 곽방이 그것을 알아 보았을 때 그는 모든 것을 깨달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창소는 너무나 선량한 여자라, 곽방을 찌르기 보다는 자기 가슴을 찌르는 쪽을 택했다. 그리고 당여월은 목숨을 구걸하는 곽방을 놓아 주었다. 충분한 복수가 되었던 것이다.

세월이 지났지만 창소의 가슴에 꽂힌 단검은 여전히 곽방의 것이었다. 검의 손잡이에 새겨진 곽씨 가문의 문장, 그리고 그 검을 직접 선물한 것은 부친인 곽도였다. 그가 위증할 이유도 없었고, 무능한 관아의 벼슬아치라지만 지역에서 가장 한다하는 집안의 딸이 죽은 사건이니 관원이 그 사실을 놓칠 리가 없었다. 곽방이 그것을 [잃어버린]것이라고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부친의 생일 선물로 소중히 간직하고 있어야 할 그 단검을 잃어버린 정황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가슴에 그 단검이 꽂힌 채 죽은 여자의 아버지 앞에서 말이다.

그리고, 당여월은 선량한 신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해 관아에 출석한 다음 그녀와 곽도의 관계를(물론 15살의 겨울에 벌어진 일은 빼고) 밝힘으로써, 그의 파멸에 완벽한 쐐기를 박았다.

" 내가 원망스러워서 그리 하였더냐?... "

" 아닙니다 어르신. 그저 저 여인의 가슴을 파고들었던 단검의 날이, 원래 제 가슴 안으로 파고들었던 적이 있었다고만 말씀드리지요. "

그 말로 모든 정황을 깨달은 곽도는 수치스러워 했지만, 그 수치를 피하지는 않았다. 그는 울며불며 무죄를 주장하는 곽방에게 남자답게 책임을 지라는 말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갔고, 부인과 이혼을 선언하고 자신의 본래 사문으로 되돌아갔다.

곽방은 그 모친의 절규를 들으며 구암도의 채석장으로 끌려 갔지만, 도중에 호송하던 형리를 죽이고 탈출해 도망자가 되었다. 하지만 도망자가 된 그를 기다리는 것은 지옥이었다.

무공이 뛰어난 자를 적으로 삼으면 적어도 도망칠 수가 있다. 적이 없는 곳으로 멀리 멀리 피신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돈이 많은 자를 적으로 삼으면 도망갈 곳이 없다. 가는 곳 마다 적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 목에 거액의 현상금이 걸려 있는 채로도 꼬박 일년을 쫒겨 다니던 곽방이 목만 남은 시체로 돌아온 것은, 공교롭게도 [예령]시절의 여월이 가슴에 칼을 맞았던 바로 그날이었다.

남편에게 버림받고, 이제 하나뿐인 아들까지 잃은 모친은 정신줄을 놓았고,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뿔뿔이 흩어지는 곽방의 어린시절 놀이 동무들 중에서, 그 동구밖에서의 윤간에 가담한 자들은 하나씩 하나씩 누구도 눈치채기 어렵게 느리고, 고통스럽고,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모두들 하나같이 발가벗겨지고, 그 자지의 뿌리부터 잘려 나간 참혹한 시신이 되어 발견되었던 것이다.

복수를 마쳤을 때, 당여월은 왠지 죽고 싶었다. 아무도 없는 대사막의 오지를 찾아가 죽기를 기다리고 있을 무렵, 여행자를 털고 있는 사막의 비적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당여월을 털려고 시도했지만, 당연하지만 거꾸로 모조리 제압되었다. 초적 시절이 떠올랐던 당여월은 그들을 무장해제시키고 풀어 주었지만, 그들은 그녀를 두목으로 모시겠다고 자청했다.

" 그래,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이면, 뭐 어때, 한바탕 놀아 볼까?... "

그것이 쾌락당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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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아아...제발...이제 죽이든지... 마음대로 하세요... 끝이에요...  "

두 손이 등 뒤로 돌려진 채 비단 끈에 묶이고, 같은 비단 끈으로 눈이 가려진 채, 당여월은 낮게 울먹이며 한숨을 쉬었다. 자신의 신세 이야기를 털어놓으니 왠지 후련해졌고, 이제 곧 죽게 될지 모른다는 기대감(?)도 억지로 누르고 있었던 그녀의 여자다운 모습을 표면으로 노출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지금 무릎을 세우고 몸을 동그랗게 만 자세로 등 뒤로부터 번서의 품 안에 안겨 있는 상태였는데, 이야기를 하는 동안 결박과 눈가림이 진행되었지만 반항을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 내내 번서에게 머리를 쓰다듬어지거나 귀를 깨물리거나, 유방을 희롱당하거나 하면서 욕정을 부채질당해 왔다. 하지만 그녀가 털어놓을만큼 털어놓고 나서도 그는 그녀를 범하지 않았다.

정말 내가 더러운 년이라고 생각하는구나... 하긴 나는 더러운 년이 맞지. 윤간을 당한 탓이라고는 하지만 아무놈 하고나 붙어 먹었으니까.

체념과 굴욕으로 마음을 채워 가면서, 당여월은 자기의 사연의 세부사항까지 모두 번서에게 털어놓았다.

" 아아아... "

먼저 요도에 박혀 있던 금삭의 마개가 열리며 오줌보에 가득 차 있언 오줌이 빼내어졌다. 후련한 쾌감에 몸을 떨며, 당여월은 번서 쪽으로 좀 더 몸을 기대었다. 등으로 느껴지는 남자의 넓은 품이 안도감을 주었지만, 그 품의 소유자는 자신을 인간이 아닐 걸레로 생각한다는 사실이 떠오르자 스스로가 한심해져서 주체할 수가 없었다.

" 제말... 흑...더이상 놀리지 말고 죽여요... 당신이 원하는 정보라면 뭐든 제공할테니... "

" 살고싶은 마음은 없나? "

" 난 내가 살자고 아빠를 찌른 살인자에요... 윤간이나 당하는 걸레에, 아무에게나 다리를 벌리는 창녀, 남의 인생을 쾌락의 불쏘시개로 쓰는 쓰레기기도 하죠... 나같은 게 살아서 뭐하겟어요... "

귓전속으로 파고드는 번서의 입김에 몸을 떨면서도, 당여월은 성실하게 대답했다.

" 하지만 걸레 답게, 죽기 전에 절정을 맛보고 싶지? "

차마 말을 하지는 못하고, 당여월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다시 한번 번서가 얼르듯이 턱의 아래를 쓰다듬자, 목을 졸렷던 기억을 떠올리며 한숨을 쉰 당여월은 할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 아아... 그래요.저는 걸레라서... 절정을 맞으며 죽고 싶어요!... "

말해버리고 나니 후련해졌을 뿐 아니라 행동도 바뀌었다. 당여월은 눅진눅진 음액이 배여 나오고 있는 보지를 번서의 다리에 비비려 애쓰면서, 적극적으로 그에게 기대어 갔다. 목 위에 그의 손가락이 올려지고 난 다음, 젖어 있는 보짓살을 가르고 그의 자지가 삽입되어 들어왔을 때, 그녀는 눈앞이 하얗게 작렬하는 느낌을 맛보았다.

" 히아아아앙!... 하으앙!... 히아으아앙!...  "

이미 거부의 빛이라고는 없었다. 처음의 반항하던 기세가 거짓말같이 여겨질 정도로 감격과 교태가 흐르는 콧소리가 섞인 비명을 흘리며, 당여월은 몸과 마음을 모두 쾌감의 파도에 맏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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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응... "

" 소리를 죽여. 그래, 그리고 혀에 좀 더 힘을 주고... 그래. 그렇게 혀의 끝으로 맛있는 사탕을 감싸듯이. 부드럽게... 옳지. 잘 하고 있어. 음... 좋군. "

이 시대의 여자들에게 있어 구음은 생소하면서 굴욕적이기 그지없는 잠자리 기교 중 하나다. 그 구음의 기교를 가르쳐지는 동안, 당여월은 무방비나 다름없는 번서의 자지와 불알, 심지어는 항문까지 입술과 혀를 이용해 샅샅이 핥아 올리고, 빨고, 혀를 끼워넣었다. 그녀가 구음에 열을 올리는 동안, 번서는 잠깐 그녀의 목에 감겨 있던 비단 끈을 잡아당겨 그녀를 숨막히게 만들었다. 이미 그녀의 손목을 묶은 비단끈은 형식적인 것일 뿐이고,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물론 번서만이 아는 안전장치가 있었지만, 당여월이 그것을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 그녀는 완전히 자의로 복종한 채로 그의 잔인한 처루를 받아내고 있는 셈이다. 캑캑거리고 괴로워하면서도 한치의 반항조차 보이지 않는 그녀를 내려다 보던 번서는 마침내 손의 힘을 빼고 그녀의 겨드랑이에 손을 집어넣어 그녀를 끌어올렸다.

아직 방금 맞은 절정과 가벼운 질식의 여운이 다 가시지 않아 발갛게 홍조가 오른 채 땀과 눈에 젖어 있는 얼굴이 보였다. 입가로는 군침까지 흐르고 있어 그야말로 색에 미친 백치의 얼굴이다. 그동안 그녀를 알던 자가 본다면 알아보기 힘든 것은 둘째 치고, 이럴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처참한 몰락의 모습이었다. 자신의 승리를 축하해주는 듯한 그 비참한 얼굴을 감상하면서, 번서는 손을 뻗어 그녀의 항문 마개를 뽑아 냈다.

아으...

항문 마개가 뽑혀나가자, 묽은 액체가 항문으로부터 다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쓴 냄새를 풍기는 허여멀건한 그 액체는 그녀의 엉덩이로 들어간 약액의 잔재였다. 물론 오랫동안 항문 마개로 제어되어 있었던 덕에 항문이 느슨해졌다고는 해도, 결과적으로는 남자 앞에서 똥을 싸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번서에게 예전에도 비슷한 광경을 보이고 심지어는 진짜의 똥을 싸기도 했지만, 그때는 같잖은 반항이라도 하던 때였고, 지금은 완전히 정신적으로 무장 해제된 상태다. 수치라는 것을 알게 된 상태였던 것이다.

수치를 알게 된 상태에서 이런 일을 당하니 그 타격이 남다르다. 망치로 여러번 머리를 두들겨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으면서, 다시한번 당여월은 자신을 향해 쓰레기같은 걸레년이라고 자학하고 있았다.

" 확실히 너는 쓰레기같은 걸레야... 하지만 나는 관대한 남자지. "

" 아... 아?... 아앙... "

유두를 희롱당하면서도 번서의 말을 이해하려 애쓰는 당여월의 모습은 비참했지만, 희망의 끝자락을 잡은것 같이 절박함이 드러나 있었다. 번서는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 나를 섬겨라, 노예로, 그리고 애완동물로. 그것이 너의 속죄의 방법이다. "

" 아...용서해 주시는 건가요? 정말... 나같은 걸레도 받아 주시는 건가요?... "

" 그래, 너같은 걸레라도 받아 준다. 네 충성과 헌신이 확실하기만 하다면, 네가 과거에 저지른 모든 잘못을 내가 용서해 주마. "

" 아아아... 아아아아아!... 나, 나는 죽지 않아도 되나요, 걸레라도... 살 수 있는 건가요?... "

" 네 가치를 증명하기만 한다면. "

절망과 체념, 그리고 공포에 짓눌려 있던 당여월의 마음 속에 비로소 서광이 비치었다. 살아남을 수 있다. 탈출구가 생겼던 것이다. 그녀는 눈물을 쏟으며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아아아...섬기겠습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주인님... 주인님... 주인님!... "

다시 허리르 숙여 정신없이 번서의 자지에 입을 맞추고, 이어서 그의 발가락에 입을 맞추는 당여월. 그녀는 진심으로 환희하고 있었다. 진심으로 그에게 자신을 노예로 받아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자신의 발가락 사이로 혀를 집어넣고 있는 당여월을 내려다보며, 번서는 웃었다. 그의 말대로 되었던 것이다. 노예가 되기를 자청하며 그의 다리에 매달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번서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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