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부_07 (7/41)

오락당을 기습하고 학살한 일에 대해서 국무령은 물론 다른 련도들도 함구했고, 너무나 깔끔하게 끝장을 냈기 때문인지 이 충격적이기까지한 기습과 학살은 한동안 알려지지조차 않았다. 하지만 겨우 살아서 다른 도망치는데 성공한 소수의 생존자들과, 오락당과 거래하던 상인들의 입을 통해 진상이 알려져 마침내 창천교의 대사막 분타도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서봉(瑞鳳)은 창천교의 대사막 분타의 부타주로, 여섯 척(尺; 6척은 약 2m)에 이르는 길이의 강철제 채찍 두자루를 양손으로 자유자재로 다루는 강마쌍편(降魔雙鞭)의 무공이 몹시 독보적이지만 그 무공 실력 보다는 색목인의 피가 섞인 이국적인 아름다움으로 얻은 별명인 봉미희(鳳美姬), 혹은 불망희(不忘姬)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었다.

붉은 기운이 강하게 도는 갈색의 체모, 잡티하나 없는 우윳빛 피부, 색목인의 혈통을 강하게 연상시키는 보라색 눈동자와 크고 서글서글한 눈매, 높고 곧은 코, 두드러져 보이는 입술과 하얗고 가지런한 이빨까지 거의 완벽하다싶은 미모에, 어지간한 황국 남자들을 압도할 정도로 큰 키에도 불구하고 전혀 위압적이지 않은 우아한 자태까지...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더 시선을 잡아 끄는 것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깊게 파인 상의의 옷깃 사이로 과감하게 드러나 보이는 커다란 가슴이었다.

그래서, 그 모습을 단 한번이라도 본 자는 결코 잊을수가 없다 해서 붙은 별명이 불망희(不忘姬)다. 그리고 이 불망희 서봉이 부재중인 타주(무능을 이유로 짤렸다)를 대신해 대사막의 창천교를 지휘하고 있는지도 어언 반년이 지나고 있었다.

서봉은 목욕을 좋아했는데, 어느 화창하고 기분좋은 날 아침, 여느때처럼 아침 목욕을 끝낸 상쾌한 기분으로 집무실에 도착한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오락당 멸문]이라는 소식이었다.

" 국무령 이년... 본때를 보여 주마. "

안그래도 타주가 공식적으로 정해지지 않고 있는지가 벌써 반년째라, 대사막의 창천교는 그리 기세가 오르지 않고 있었다. 서봉 본인도 은근히 차기 타주로 자신이 내정되지 않을까 하고 있던 상황에서 반년이나 지체되다 보니 윗선의 결정을 돕기(?) 위해서라도 슬슬 뭔가 실적을 올려야 하지 않는가 하는 조급함이 있었는데, 마침 오락당 사건이 터진 것이다.

" 이것은 우리 창천교를 깔보고 있는 것이다! "

" 옳소! "

서봉의 소집에 응한 창천교 방파들 대두분의 경우, 사실 밀수업이나 강도짓, 남 등쳐먹기 등 다양한 창천교의 사업(?)에서 강력한 경쟁자이던 오락당이 사라져 준 것에 속이 후련하고 심지어 백무련에 감사한 기분까지 들 정도긴 했지만, 다음 차례가 자신들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쯤에서 백무련의 기세를 꺾어줄 필요가 있다는 그들의 필요성과, 실적을 올려야 한다는 서봉의 이해가 맞아떨어졌다.

물론 그 구성원이 다양한 덕분에 태생적으로 잘 뭉치지 못한다는 단점이 크긴 해도, 백무련에 대한 창천교의 최대의 강점은 그 숫자가 많다는 점이다. 대사막에서 그 휘하의 문도들의 숫자만 단순 비교해 봐도 두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휘하 방파들의 면면이 범죄자들, 도망자들, 그리고 유랑민들이 모여 만들어진 집단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파 중 하나인 오락당이 전멸하긴 했지만, 여전히 그 수적 우위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렇다고 무공이 딱히 약한것도 아니어서, 관부에게 공식적으로 인가받지 않은 (범죄)집단이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오히려 백무련을 압도하는 바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 서봉의 소집에 호응해 집단행동을 하게 되었으니, 유일한 약점이던 뭉치지 못한다는 단점까지 사라진 셈이다. 게다가 서봉은 인상과는 다르게(가슴 큰 미인은 머리가 나쁘다는 통념은, 어디에나 있는 편이다) 상당한 책략가이기도 해서, 국무령을 유인하기 위해 오락당의 생존자들이 모처에 숨어 지내고 있다는 정보까지 자산성 내에 흘렸다.

" 일이 재미있게 되어 가는군... "

번서가 창천교가 서봉의 지휘하에 뭉쳤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오락당의 생존자에 대한 소문이 처지기 며칠 전의 일이었다.

그동안 번서는 국무향 일행에게 빼앗았던 돈으로 자신이 낮에도 입고 활동할 수 있게 할 용도로 고안한, 머리와 얼굴을 가릴 수 있는 두건이 딸린 검은색의 장포와, 같은 색으로 물들인 녹피갑(사슴 가죽으로 만든 손장갑. 독을 차단하는 성질이 있다), 장화 등을 주문해 완성시켰다. 장갑이나 장화는 평범한 물건이었지만, 비단의 이중 구조로 만든 장포 곳곳에는 은밀한 주머니를 만들어 넣어 필요한 물건들(독이나 금침들)을 몰래 숨길 수 있도록 했다.

장포를 전달받고 나서 한데 뭉쳤다는 창천교의 세력과 소문이 자자한 불망희의 미모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진 번서는 창천교와 몰래 거래한다는 상인들의 무리에 섞여들어 한창 전쟁을 준비 중인 창천교의 대사막 분타(딱히 그 위치가 비밀은 아니었다)로 향했다.

여기도 상당히 번화하군...

도착한 창천교 대사막 분타는 큰 오아시스를 끼고 건설된 작은 요새였다. 잠깐 훝어보는 것 만으로 그 방어의 견고함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잘 요새화되어 있었고, 경비도 철저해서 숨어들어가기 어려워 보였다. 게다가 위치는 자산성에서도 보름은 족히 걸어야 하는 대사막 한가운데다. 거기에 맹렬하기 그지없는 창천교도들의 특성까지 합해지면, (토벌하기 위해서 드는 수고에 비해 잃을것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그 위치가 그리 비밀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관부의 토벌을 받지 않는다는 사정을 파악하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또한, 현재의 마왕인 마영달은 이런 무리의 토벌보다는 자신의 영달에 더 관심이 많은 작자이다보니 창천교의 움직임 따위에는 안중에도 없었다. 덕분에,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기 시작하고 있었지만 창천교의 이런 움직임에 대응할 적은 오직 국무령이 이끄는 백무련 뿐이었다.

한밤중이 되어 오아시스에서 피어오르는 안개가 사방을 덮었을 때, 번서는 거기에 자신의 안개의 술법을 더했다. 마침 그믐이기도 해서, 금새 사라진 달빛과 두터운 밤안개의 조합을 통해 번서는 한치앞도 확인할 수 없는, 그야말로 철벽같은 어둠의 장막을 두를 수 있었다. 

" 지독한 안개로군. "

" 오늘따라 더 짙은 것 같아. 내 발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니 이거야 원... "

경비를 맡고 있던 무사들의 푸념을 한귀로 흘리며, 안개와 야음의 도움을 받아 창천교 대사막 분타의 내부로 침입한 번서는 차분히 서봉의 소재를 찾기 시작했다. 

서봉의 집무실 겸 침실이 있는 전각을 찾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눈에 뜨일 정도로 외장이 화려한데다 이층의 침실에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기 때문이다. 번서는 소리를 내지 않도록 조심해서 벽을 타고 올라간 다음, 침실 창 옆의 벽에 바싹 붙어서 안의 기척을 염탐했다.

" 흐응, 지금쯤이면 국가년이 소문을 들었겠지... 수적으로 불리하니 선수를 치러 들거야. 하지만... "

그것은 자연스럽게 교태가 묻어나는 여자의 목소리였다. 잠시 시간이 흐른 후, 다시 같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 이쯤에서... 선발대를 보내 놓고... 여기서 본대가 대기한다면 재미를 좀 볼 수 있겠군. "

거기까지 들은 후, 번서는 지붕으로 숨어들었다. 보다 더 가까이 다가가 몰래 확인해 보려면, 지붕에 구멍을 뚫고 내려다보는 편이 더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확실히 그 판단은 옳았다. 굳이 구멍을 뚫을 필요도 없이, 공기를 통하게 하기 위해 뚫어둔 천정의 틈새로 내부 상황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오, 대단하군...

번서를 마음속으로 감탄하도록 만든 것은 등잔의 빛을 반사해 은은한 붉은 빛을 띄고 있는 긴 곱슬 머리도, 우아하지만 반투명한 침의의 어께 부분에 붉은 수실과 금실로 화려하게 수놓아진 봉황 문양도 아니었다. 마치 사발을 엎어놓은 듯, 한눈에 봐도 훌륭한 크기와 모양을 하고 있는 그녀의 유방이야말로 남자의 시선을 한눈에 잡아 끄는 것이었다. 생각에 빠진 그녀가 팔짱을 끼고 어께를 천천히 흔들자, 팔에 의해 밀어올려져 한층 더 두드러져 보이게 된 그 하얗고 풍성한 유방은 마치 거대한 황금의 물방울 같이 출렁이며 확실하게 그 존재감을 과시했다.

가슴만으로도 국무령보다 더한 물건이군 그래.

서봉의 그 가슴이 번서의 마음을 바꾸었다. 원래라면 국무령을 잡을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백무련과 창천교의 싸움에서 백무련이 지게 만들 필요가 있었고, 때문에 서봉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국무령에 대한 정보(주로 국무향에게서 빼낸)을 제공할 생각이었지만, 이제 서봉과 국무령을 동시에 잡기로 마음을 바꾸어 먹게 되었다. 그러려면 두 세력이 정면 충돌하여 난전을 벌이고, 공멸하게 만들어야 할 필요가 생긴다. 공멸까지는 아니라도 싸움이 난전으로 흐르게 만드는 일은 필수였다.

머릿수를 포함한 객관적인 전력으로 따지자면 백무련 쪽이 불리하기 때문에, 번서는 오히려 서봉의 유인 작전을 국무령에게 전해주기로 했다. 한동안 골똘이 생각하고 있던 서봉이 작전을 정하는 것 까지 차분히 지켜본 다음, 번서는 조용히 지붕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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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으로 나온 백무련의 무인들이 모인 막사를 찾기는 제법 고생스러웠지만, 그럭 저럭 번서는 그들이 창천교와 충돌하기 전에 찾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국무령은 여전히 냉담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밤안개와 함께 등장한 그를 맞았다.

" 또 왔군. 무슨 용건인가? "

번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봉의 작전 지도를 베껴 그린 두루말이를 넣은 대나무 통을 국무향이 쉽게 받을 수 있도록 느리게 던져 주었다.

" 선물이다. "

" 선물? "

" 열어보면 안다. "

국무령이 그 내용물을 확인하는 동안, 번서는 안개로 몸을 감싸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 이것은... 설마? "

국무령이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번서가 사라지고 난 다음이었다.

번서는 경계하는 백무련의 련도들의 눈을 따돌리기 위해 거의 1리는 뒤쳐져서 따라갔다. 그리고 덕분에 국무령의 다음 작전도 쉽게 간파할 수 있었다. 그녀가 이끄는 백무련의 련도들이 서봉이 지휘하는 창천교의 선봉대를 공격하는 대신 그 본진을 급습하려고 낮은 산을 타넘는 동안, 그는 반나절 거리를 앞서가 있는 창천교의 선봉대를 찾았다. 그는 전령으로 가장해 선봉대를 지휘하고 있는 우마적(禹摩迪)이라는 자에게 달려갔다.

" 큰일입니다. 본대가 공격당하고 있습니다! 백무련 놈들의 급습입니다! "

" 뭐라고? 백무련 놈들이 우리 작전을 어떻게 알고?... 아무튼 당장 돌아가야겠다! "

급히 회군한 선봉대가 서봉이 이끄는 본대가 있는 장소에 도착했을 무렵엔, 창천교의 본대는 거의 괴멸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 목을 내놓아라, 창천교의 잡졸! "

" 흥, 네년 따위에게 당할 내가 아니다! "

전황은 불리했지만, 서봉은 마치 닭의 무리 속에 뛰어든 여우 같았다. 오히려 다른 창천교도들이 전열을 무너뜨린 덕분에, 그녀는 동에번쩍 서에번쩍 하면서 연이어 백무련의 무인들을 쓰러뜨리고 있었고, 마침내는 국무령이 뛰어들게 만들었던 것이다.

집단전투는 한두명의 무용으로 그 승패가 정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용의주도한 작전과 일사불란한 통솔을 바탕으로 한 전술이야말로 정말로 중요한 승리의 요소이고 또한 기세, 즉 승기를 타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승기를 타는 동안에도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숫적인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창천교도들을 죽이고 부상을 입힌 상태로 밀어붙이던 백무련의 무인들에게 승기가 머물렀던 때도 잠시, 백무련의 등 뒤에서 들이닥친 창천교의 선봉대로 인해 또다시 전세는 뒤집혔다. 앞뒤로 적을 맞은(앞쪽은 이제 거의 괴멸한거나 다름없었지만) 2차전은 백무련 쪽이 수세에 몰리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난전의 양상을 띄어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서봉과 국무령의 싸움은 단연 돋보이긴 했지만, 수백명이 뒤엉킨 싸움이었다. 그녀들의 외침은 어지러운 병장기 소리와 쌍방의  조직에 속한 무인들이 저마다 내지르는 기합성, 그리고 피어오르는 모래먼지 속에 묻혀버렸다.

반나절이 지난 후, 쌓이고 널브러진 시체들로 뒤덮인 모래 들판은 불그르슴한 빛을 띄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시체들의 피 때문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었다. 죽은 시신들 사이에서 아직도 심각한 부상을 입고 쓰러져 있는 자들의 신음소리가 간간히 새어나오고 있었다. 일견 전투가 끝난 것으로 보일 수도 있었지만, 그 한 가운데에서, 아직도 싸우고 있는 자들이 있었다.

물론 그들은 국무령과 서봉이었다. 반나절을 싸워도 승부가 나지 않을 정도로 두 여자의 무공은 호각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반나절이나 싸웠으니 멀쩡할 리는 없다. 국무령도 서봉도 똑같은 거지꼴을 하고 있었다. 머리는 아무렇게나 흩어져 산발이 되어 있었고, 입술은 바짝 말라 있었다. 군데군데 찢어지고 피가 배어나온데다 모래를 흠뻑 뒤집어 쓴 그녀들의 옷은 넝마라고 부르기 딱 좋은 상태였고, 필사적으로 방어한 얼굴도, 무기를 들고 있는 손도 마찬가지로 모래 투성이었다.

" 하악... 하악... "

" 하아...하아... "

마지막 한수를 교환한 후, 두명은 한참동안 서로를 노려보면서 멈추었다. 싸울 기력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고 다음 일격으로 승부를 내기 위해 숨을 고르기 시작한 것이다.

보기 드문, 몹시 기량이 뛰어난 여자들의 흥미진진하기 그지없는 결투였고 마지막 승부의 결과가 궁금해지기도 했지만, 승부가 나서 누군가 죽어나가게 되면 번서에겐 손해였다. 그는 바람이 부는 방향에 있는 모래 언덕에서 마비독을 공기중에 풀면서, 안개의 술법을 일으켰다. 여자들은 서로에게 너무나 집중하고 있었기에, 이상을 알아챘을 무렵엔 완전히 안개 속에 갇힌 후였다.

" 으윽...뭐지?... 몸에 힘이...들어가지 않아. 흐윽... "

" 이 안개는... 설마!?... 흐으윽...  "

바람 부는 방향에 있던 서봉이 먼저 중독되어 쓰러졌고, 곧이어 국무령도 힘없이 땅바닥에 엎어졌다.

아마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아무리 안개의 술법에 독을 풀었다 해도 두 여자 모두 반격하거나 벗어날 정도의 여유는 있었을 것이다. 안개에 독이 섞여들기까지 시간도 걸리는데다, 아무리 안개가 퍼지는 속도가 빠르다지만 경공을 펼치는 무림인들의 속도를 따라잡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싸움중에 일어난 흙먼지 때문에 이미 시야가 제한되어 있었고, 서로 체력을 소진한 상태로 상대방에게 모든 주의를 집중하고 있었기에 번서의 술법이 먹혀들 시간이 충분했다.

안개 속에서, 번서는 유유히 쓰러진 여자들에게 다가갔다(그는 자신의 독에는 이미 면역이 되어 있었다). 여자들이 완전히 마비된 것을 확인한 다음, 그는 그녀들을 한쪽에 하나씩 들어올려 양 옆구리에 끼고 그 자리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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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막에서의 백무련과 창천교의 [결전]은 쌍방의 공멸이라는 참담한 결과를 낳았다. 그 결과 조차도 삼개월이나 지나서, 길을 벗어나 헤메던 행상에 의해 모래더미에 반쯤 파묻혀 썩어가고 있던 시체 무더기가 발견됨으로써 세상에 알려졌을 정도다. 싸움터의 발견이 있기 전부터 백무련과 창천교가 각자 지회와 분타의 연락 두절의 원인을 조사하기 시작하고 있었지만, 상황을 파악하는데는 이 발견이 결정적이었다.

백무련과 창천교의 조사관들이 도착했을 때, 현장의 상황은 참담하다고 한마디로 표현하기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조사를 시작할 당시에는 여전히 서로 자존심 때문에 분란이 있었지만, 너무나 엄청난 대참사였던 고로 관부에서 구체적인 정황을 캐묻기 전에 사건을 신속하게 덮어야 한다는 현실적인 필요에서 타협이 이루어져서 신속하게 공동으로 [발굴]에 착수하게 되었다.

남아있는 기록, 전투의 흔적과 시신들의 위치를 통해 어느 정도 구체적인 전투의 정황을 알수는 있었지만, 대부분의 시신은 누가 누군지 알아보기가 불가능했다. 결국 모두 한곳에 몰아넣고 합장을 한 후에, 백무련은 백무련대로, 창천교는 창천교 대로 각자 위령비를 세우고 천도제를 지냈다. 그리고 누구할 것 없이 이 사건에 대해서는 침묵하게 되었다.

이 대참사가 그런 식으로 어물쩡 마무리되는 동안, 번서는 자신이 계획한 일들의 마무리를 하고 있었다.

자산성은 그리 높지 않은 마천령 산맥의 계곡에 해당하는 위치에 지어진 성으로, 황국의 중주(中州)에서 대사막으로 향하는 관문 역할을 하는 성이기도 했다. 성의 동서를 차지하는 산맥에는 많은 계곡이 있고 오색림 등 경치가 좋은 곳이 많기로도 이름이 나서, 풍광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했다. 또한 이 계곡들은 황국에서 가장 비옥한 땅인 상주(象州), 중주(中州), 경주(京州)의 평야지대를 지나는 소백강(少帛江)의 발원이기도 해서, 여기서부터 수로를 통해서 황국을 여행할 수도 있었다.

여자들을 납치한 직후에 그녀들의 본거지에 침입해서 제법 많은 돈을 털어낸 번서는 그 돈으로 누선(樓船)을 하나 샀다. 거룻배보다는 크지만 짐이나 손님을 싣도록 만들어 진 커다란 판옥선보다는 훨씬 작은 그 배는 상하 두개의 갑판을 가지고 있었고, 고물에는 침실과 부얶까지 있어서 혼자서 장거리의 배 여행을 하기에 딱 좋도록 만들어 져 있었다. 여기에 번서는 배목수를 고용하여 심철로 배 바닥을 덧대고 아래 갑판의 선실을 나누고 내벽을 보강하는 등의 개조를 했다.

배의 개조가 끝나고 나서, 번서는 납치된 여자들과 자신의 소지품들을 차례대로 배로 옮겼다. 그동안 완전히 조교된 국무향까지 포함한 모든 여자들을 약을 먹이고 침술을 베풀어 깊이 재워 두었는데, 배에 감금하고 나서도 한동안은 그 상태를 유지했다. 아직 짐을 다 옮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혼자서 그 모든 일을 처리해야 했기 때문에 이사는 몹시 더디게 진행되었다. 마침내 사막의 은신처들을 모두 비우고 나서야, 번서는 비로소 여자들을 조교할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원래 번서는 그리 급한 성격도 아니고 여자들도 얼마든지 오래 재워둘 수 있었기 때문에 그녀들을 조교하는 일도 차근차근히 하게 되었는데, 그가 처음 조교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서봉이었다.

" 유방을 더 크게 만들 필요까지는 없겠군... 아니 약간 더 키울까?...  "

깨어날 수 있도록 침 몆개를 빼고 약을 먹인 후, 번서는 발가벗겨진 서봉의 나체를 찬찬히 감상했다. 이미 납치하기 전 옷 위로 보았어도 감탄한 바가  있는 그녀의 유방을 거의 눈에 닿을 듯한 가까운 거리에서, 그것도 실제로 손으로 만져 가며 감상하는 것은 확실히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보지를 검사했을때 번서는 약간 실망을 느꼈다.

보지의 모양도, 깨끗한 붉은 색도 모두 마음에 들었고, 검사를 위해 집어넣은 손가락을 따스하게 감싸오는 보지의 감각은 몹시 좋았지만, 손가락의 뿌리까지 집어넣었음에도 아무것도 걸리는 것이 없었다. 처녀가 아니었던 것이다. 뭐 결혼할 것도 아니고 그냥 범하고 지배할 것인데 처녀면 어떻고 아니면 어떠리. 서봉의 아름다운 얼굴을 한번 더 감상한 번서는 아무래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며 그녀의 보지에서 손가락을 빼냈다. 

" 하긴 이런 좋은 여자를 내버려둔다면 그거야말로 범죄겠지. "

서봉이 아직 의식이 없는 동안, 번서는 그녀에게 대나무로 만든 재갈을 물린 다음 목과 손목을 한꺼번에 고정하는 칼을 씌웠다. 그리고 그녀의 두 다리에도 각각 바닥에 딸린 사슬 족쇄를 채워 다리를 모아 닫기 어렵게 만들어 둔 다음, 그녀가 깨어나는 것을 좀 더 기다렸다. 마침내 그녀가 깨어나서 몆번 눈을 깜박여 보인 후 자신의 처치를 깨닫고 그를 향해 분노와 놀라움이 섞인 시선을 보내 오자, 그의 입가에는 비로소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 드디어 깨어났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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