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 (27/28)

 검은 무리들 몇몇이 랑스에게 휘둘러지는 동료에 맞아 나가 떨어졌다. 대열이 흐트러지는 틈을 타서 스탐블링거를 위로 치켜들었다.

 콰쾅!

 "꺅!"

 스탐블링거가 불러 낸 한줄기 눈부신 방전이 땅에 내리꽃혔다. 맑은 하늘에 번개가 내려치리라고는 예상도 못했던 몇몇은 전류에 감전되 몸을 부르르 떨었다. 랑스는 재빨리 날아올라 쓰러진 자들의 심장에 검을 꽃아넣었다. 윽! 아흑! 큭! 꽤엑...!

 나비유가 대열을 후퇴시켰다. 벌써 다섯의 인원이 죽었다.

 - 드래곤이란 소문이... 날만하군. 괴수의 힘과 번개까지 부리다니. 진지하게 상대해야 한다. -

 랑스는 마음을 가다듬는 나비유를 노려보았다. 

 "그만 하는 게 좋을 걸."

 - 무슨 소리지? - 

 "이걸 보라고. 난 공식적으로 너희 나라에 인정을 받고 있다고."

 랑스는 품안에서 꾸깃꾸깃 찔러넣은 사략허가증을 꺼내었다. 그곳에 국왕의 인장이 찍혀 있었고, 란디르 백작, 이데아 플로렌스 후작의 확인 서명이 적혀 있었다.

 눈매가 매섭게 변하는 나비유. 커다랗게 보이는 글씨를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3C랑스 클란츠를 에스파니아 국가의 사략 해적으로 임명한다.%3E

 "뒤쫓지 마. 나와 유희는 이제 너희 국가를 위해 해적으로 살아갈 테니까."

 나비유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붉은 복면 너머로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녀 또한 품에서 서신한장을 꺼냈다.

 - 나도 이걸 받았다. -

 그것은 다름아닌 란디르 백작에게서 보내져 온 서신이었다. 긴 장문이 적힌 끝에 반가운 문장이 또렷히 보였다.

 %3C나비유, 더 이상 유희 프랑디아, 랑스 클란츠의 죄를 묻지 마십시오.%3E

 랑스는 씨익 웃었다. 타락한 귀족들이 일을 잘해주고 있었다.

 "거봐. 날 쫓아서 좋을 게 없다니까."  

 하지만 나비유는 여전히 변화가 없었다. 

 - 검은 장미 결사대는 어떤 귀족의 명령도 받지 않는다. -

 그녀들이 명령을 받는 자들은 대주교의 직책을 받은 자들, 그중에서도 직속상관 뿐이었다. 나비유가 따르던 성녀, 비슈누는 이 빌어먹을 남자에게 차마 입으로 표현하지 못 할 일을 당하고 말았다.

 나비유의 눈빛에 살기가 맺히기 시작했다. 암기만 휘두르던 그녀가 드디어 검을 뽑아들었다.

 검붉은 검신. 블랙로즈라 불리는 레이피어였다.

 *

 랑스는 멀리 보이는 피카소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지금 보이지 않는 피치는 집으로 돌아가 랑스와 함께 떠날 준비를 꾸리고 있었다. 어느새 피카소가 딸에게 항해를 허락한 것이다. 하지만 랑스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사실 랑스의 가장 큰 목적은 피카소까지 항해에 동참시키는 것이었다. 해적의 삶을 보여주고 그곳에 숨어있는 철학과 영감을 심어줄 계획이었다.

 '젠장... 저들을 데려갈 여유가 없어...'

 랑스는 피카소를 향해 소리쳤다.

 "이봐! 피카소씨, 다음에 와서 데려갈게!"

 랑스의 입술이 말을 마치는 순간, 붉은 검끝이 목을 노리고 솟구쳐왔다. 짙은 장미향이 코끝을 스치며 살짝 살갖이 찢겼다.

 흘러내리는 피를 닦을 여유도 없이 나비유의 공격은 촘촘히 찔러들어왔다. 그리고 나머지 놈들이 등을 노렸다.

 힘겹게 나비유의 공격을 피하던 랑스는 검을 붙잡고 크게 휘둘렀다. 부우웅!

 재빠르게 물러난 나비유. 랑스는 그녀들이 다시 좁혀들기 전에 손에 움켜진 돌을 쫘악 뿌렸다.

 "잘있어!"

 나비유는 눈을 번쩍 뜨며 재빨리 옆으로 몸을 날렸다. 날아온 조약돌이 버버벅 바닥에 박히며 먼지를 일으키며 박혔다. 치사한 놈!

 또 다시 모랫가루가 날아들었다. 뿌연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나며 나비유의 시야를 가렸다. 그녀가 재빠르게 시야를 밝은 곳으로 옮길 때 쯤, 랑스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 나비유님, 도망갔습니다... -

 무표정한 얼굴로 생각에 잠긴 나비유.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등을 돌렸다.

 - 추적은 끝나지 않았다. 배를 준비해라. -

*

 "헥헥. 엔리코! 베로! 유희야!"

 배를 향해 힘겹게 달려가는 랑스. 그를 기다리던 부선장 엔리코는 이미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출항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배가 서서히 흘러갈 때 쯤, 랑스가 선착하고 큰 호흡을 몰아쉬며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아 ㅅㅂ 좇될뻔했엌."

 어느새 선원들과 친해진 유희는 선원들의 복장으로 갈아입은 채 랑스를 빼꼼 쳐다봤다. 아름답던 그녀의 이미지에 선원들의 활기가 깃들어 있어서 보기 좋았다.

 "나비유를 만났나보네?"

 "허우, 허우. 응. 그놈 더럽게 빠르던데. 도망치느라 힘들어 죽는 줄 알았네."

 %26#46042;이 펼쳐지고 조류의 흐름을 짚어나가기 시작했다. 선원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배의 프로펠라가 부우우웅 소리를 내며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불길한 기분이 남아있어 선원들을 재촉했다. 

 "전부 노를 저어라!"

 동력과 인력을 동원하는 방법은 조류와 바람을 거슬러 올라갈 때 쓰는 방법이다. 엔리코가 말했다.

 "뭐가 그리 초조하십니까? 나비유라는 여자 때문인가요?"

 "아니, 왠지 모르게 기분이..."

 아니나 다를 까 장루 위에서 망을 보던 베로가 소리쳤다.

 "선장니이임. 배가 한척 우리 뒤를 쫓고 있습니다요오오오!"

 "뭣!?"

 누가 뭐랄것도 없이 랑스는 망원경을 들어 멀리 바라보았다.

 "에스파니아 배인 것 같은데...!?"

 엔리코도 화들짝 놀라 뒤쫓는 배를 살폈다.

 "걱정 마십시오. 적어도 나비유는 아닙니다. 우린 사략 허가증도 있으니 에스파니아 배들은 아무런 위협..."

 콰콰콰쾅!

 느닷없이 포격소리가 들려오며 선체가 흔들렸다. 엔리코가 황당한 웃음을 지었고, 유희는 꺄악 소리지르며 랑스에게 안겼다. 랑스가 이를 갈았다.

 "거봐. 내가 불안하다고 했지!"

 멀리서 당찬 여자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멍청한 해적들아! 항복해라. 내 물음에 대답하면 목숨을 살려주겠다."

 여자의 모습을 확인한 엔리코가 낙담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붉은 머릿결. 아름다운 몸매... 에스파니아 인들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그녀였다.

 "카탈리나... 해적에게 원한 많은 여자입니다. 그녀가 배를 탓군요... 이런일이..."

 다시 한 번 포격이 울려퍼졌다. 콰콰쾅! 선체의 뒷면이 송두리채 나가떨어질 판이다. 콰콰쾅! 

 "빌어먹을, 이배! 선회력이 너무 느려!"

 전속력으로 향하던 와중이라 선체의 각도를 기울이기 힘든 탓이다. 다시 포격이 울려왔고 이번엔 %26#46042;대가 부러져 나가며 배가 기우뚱 거렸다.

 유희가 발을 동동 굴렸다.

 "랑스! 우리 죽겠어! 벌써 엔딩이야?"

 "악!"

 카탈리나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퍼졌다. 

 "해적놈들아! 우칼딘의 행방을 말해라!"

 엔리코는 역시... 정도의 말을 중얼거렸고, 우칼딘의 악명을 잘아는 선원들은 술렁였다. 랑스와 유희는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었다. 

 "우... 우칼딘? 그게 누구지?"

 "간단히 말해 악명높은 해적입니다. 저 여자의 부모가 그에게 죽임을 당했지요. 어떻게든 교섭이 가능 할 것 같습니다."

 엔리코가 나서려는 그때였다. 남자의 목소리가 바닷바람에 실려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나를 찾는가. 여자."

 카탈리나가 눈을 부릎뜨며 소리쳤다.

 "우칼딘!"WTVSUCCESS=TRUE&WTV382229=1267328660&WTV1471013=512616604&WTV1392781=34384625&WTV1357910=273489&WTV1357911=3125711&WTV246810=164&WTV2571219=173&WTV124816=fantasy&WTV987904=1&WTV491322=불타는 바다&WTV9172643= 카탈리나의 곁에 서있던 실비아가 그녀의 팔을 꼭 붙잡았다. 실비아의 의미심장한 표정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실비아가 중얼거렸다.

 "언니 저 사람... 저 사람이에요."

 "알고 있어!"

 카탈리나는 랑스의 선박을 포격하느라 뒤로 우회하는 우칼딘을 어찌할 수 없었다. 

 우칼딘은 포격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여유롭게 팔짱을 끼며 소리쳤다.

 "부딪혀라. 백병전이다."

 우칼딘은 신데랄리를 바라보았다. 눈을 감은 신데렐라가 눈을 떴다. 

 "우칼딘... 실비아를 충실하게 길들였구나..."

 "그럼, 내가 누군데. 사람의 마음을 파고 드는 음유시인이란 걸 잊지 말라고."

 "음유시인들은 그렇게 잔인하지 않아."

 "방법이야 어떻든. 효과만 괜찮다면 그만이지 않은가? 무기는 사람에 따라 성격이 변하는 법이니까."

 신데렐라는 한숨을 몰아쉬며 바다위에 떠 있는 두척의 배를 씁쓸하게 보았다.

 "맞아. 저들은 네 뜻대로 될거야 우칼딘..."

 우칼딘이 바람을 맞으며 호탕하게 웃었다. 일말의 주저하던 기색조차 완연히 사라졌다. 우칼딘이 검을 빼들며 선원들에게 외쳤다.

 "위대한 예언자가 말했다. 모두 나, 우칼딘의 뜻대로 될 것이다!"

 "우오오오오오오!"

 "그러니 안심하고 싸워라. 여자를 잡고 남자는 죽여라. 전리품을 마음껏 취해라!"

 함성소리가 바다를 가르고 하늘을 찔렀다. 신데렐라. 그녀는 이들에게 있어서 성녀보다도 더 귀중한 존재였다. 앞일을 내다보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신데렐라의 눈에는 미래가 보였다. 심장이 꿰뚫린 랑스의 최후, 수장되는 남자들. 한때 성녀였던 유희 프랑디아와, 고귀한 붉은 여인, 카탈리나는 모두 하얀 엉덩이를 벌린채 신음을 흘리며 우칼딘의 멋잇감으로 전락하는 광경이었다.

 *

 랑스의 배는 거의 침몰 직전이었다. %26#46042;대는 부러졌고 포격한번 못해 본 채로 겨우 떠 있을 뿐이다. 

 포격에 능한 랑스였다. 그러나 기억을 잃은 상태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맞이했고, 카탈리나의 포격술이 뛰어나서이기도 했다. 

 뒤늦게 생각난 대처 방안에 혀를 씹을 지경이다.

 "멍청이! 뒤에서 포격하면 그냥 앞으로 직진하면 돼잖아! 왜 선회를 해가지고...!"

 그러나 카탈리나의 선박은 주춤거리며 더 이상 공격해오지 않았다. 새로 나타난 거대한 선박을 보며 랑스는 엔리코를 보았다.

 "어라, 저 배는 또 뭐래?"

 "저, 저것은... 우칼딘!"

 우칼딘의 선박이 카탈리나의 선박과 출동했다. 왼편에서 맴돌던 랑스의 선박은 촉수처럼 뻗어나온 갈고리에 걸려 우칼딘의 선박으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우칼딘의 배에서 능숙한 해적들이 커틀라스를 앞세우며 랑스의 선박으로 뛰어들었다.

 "이 이놈들은... 또 날 언제 봤다고!" 

 "우칼딘은 당신과는 비교도 안되는 진짜 해적이오. 초면이고 구면이고 가리지 않을뿐더러 같은 해적 조차도 공격하는 양반이지요. 긴장하는 게 좋을겁니다."

 엔리코는 겁먹은 사슴처럼 웅크려있는 유희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나머지 말을 건넸다.

 "우칼딘이라는 놈에게 유희님을 빼앗기기 싫으면 말이지요..."

*

 카탈리나는 마음을 굳건히 먹었다. 계산치 못한 우칼딘의 등장이었지만, 당혹스러움 보다도 놈을 기필코 죽여버리겠다는 집념이 앞섰다.

 감이 부딪히는 소리. 비명, 바다에 수장되는 선원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피에 물든 갑판을 걸어오는 녀석. 뭐가 그렇게 좋은 지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붉은 머리 고운 참새가 드디어 독수리를 만났네. 이제 곧 잡아먹힐 시간. 깃털을 뽑아 벗겨먹을 시간."

 놈의 노랫소리는 비명소리에 묻혀질만 했으나 또렷하게 카탈리나의 귓가에 전해져오고 있었다. 카탈리나는 어지러움을 느끼며 노랫소리가 심상치 않은 것이란 걸 느꼈다. 

 카탈리나는 머리를 쓸어올렸다. 기가막힌 향기가 우칼딘의 코끝을 스쳤다.

 "호오... 대단한 향기군. 이 향기를 이용해서 환영을 거는 건가?"

 카탈리나는 자신의 힘을 알아보는 우칼딘을 노려보았다. 

 "당신의 노랫소리... 그것으로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는가 보군."

 "후후후후... 내 음악은 당신에게 통하지 않겠군. 나를 노리는 여자라더니 과연 대단하군. 그렇지. 사람을 매혹시키는 우리, 서로 비슷한 점이 있어."

 "너 따위와 닮고 싶지 않아!"

 까아아아앙! 빠르게 뽑혀나온 카탈리나의 검끝은 아직 뽑지 않은 우칼딘의 검집에 가로막혔다. 카탈리나는 어느 새 품에서 꺼낸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아앙! 

 "멋진 공격이었지만. 아쉽군..."

 총알은 우칼딘의 긴 머리를 몇가닥 태웠을 뿐이었다. 고약한 화약냄새에 인상을 쓰고 있었다.

 카탈리나는 긴장했다. 역시 우칼딘, 소문보다 훨씬 강하다.

 "이제 내 차례인가."

 우칼딘이 검을 뽑아드려고 했다. 그때 우칼딘은 움찍하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여자... 제법이군."

 우칼딘의 손목에 투명한 바늘이 박혀있었다. 카탈리나가 웃었다.

 "내가 이겼어!"

 바늘에 치명적인 독이 묻혀져 있다는 건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우칼딘은 침착했다.

 "독이라... 그렇군. 굉장히 위험한 상황에 처하고 말았어. 힘이 빠지기 시작하는 데."

 바늘을 뽑아낸 우칼딘은 전혀 안색이 변하지 않았다. 너무도 태연한 우칼딘 앞에서 카탈리나는 섣불리 덤벼들지 못했다.

 그러고보니 실비아!? 곁에있던 실비아는 어디로 간 것일까?

 "뭘 찾고 있지?"

 "...중독된 사람치고는 너무 태연한데..."

 "후후... 아니. 난 틀림없이 중독되있다 네가 지금 덤벼든다면 날 쉽게 제압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속임수."

 카탈리나는 생각했다. 자신은 충분히 유명하다. 그러니 자신이 사용하는 독의 종류를 얼마든지 적이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었다. 그것이 우칼딘이라면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청자고둥의 독. 놈은 그것의 해독제를 미리 복용하고 전투에 임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송장이 되고도 남았다.

 "후후... 덤벼들지 않는군. 역시 똑똑한 여자야. 맞아. 해독제를 복용하진 않았지만 난 독에 면역체를 지녔지. 동방이란 미지의 대륙에 살고 있는 허둔이라는 남자가 내 몸에 장난을 쳤거든. 덕분에 존슨은 거대해 졌고 독에는 면역력이 생겼지. 후후후..."

  

 카탈리나는 몸에 장난을 쳤다는 허둔이라는 자가 궁금했지만, 지금 그런 사치를 부릴때가 아니었다. 어느새 선원들은 적에게 제압당하여 절반가량으로 줄어있었고, 실비아는 어느 곳에도 보이지 않았다.

 "어서 덤벼!"

 "싫다."

 "뭐?"

 "너에게 힘을 빼지 않아도 충분히 제압했으니까."

 "그게 무슨 소리지...?"

 카탈리나는 여자가 가진 특유의 불안한 감을 느끼고 한발짝 물러섰다. 사실, 아까부터 신경쓰였다. 놈의 허리에 매달려 있는, 썩어가는 두개의 머리. 잔혹하게 일그러진 잘라진 사람의 머리. 적에게 위압감을 주려는 목적인 줄로 생각하고 있었다.

 카탈리나는 차마 그것을 묻지 못했다. 우칼딘이 먼저 말했다. 

  

 "이것이 누구의 것인줄 아는가? 크크큭."

 "...설마..."

 머리카락은 썩지 않았다. 잘라진 머리중 하나가 붉은 머리를 가졌다는 것은 엄청난 불쾌감을 다가왔다. 자신과 연관된 인물일 거라는 생각은 결코 하고 싶지 않았다.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기 시작했다. 우칼딘은 잔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나는 네 집의 집사, 벤이라는 놈이고... 또 하나는... 후후후."

 "그만!"

 "네 오빠의 것이다."

 카탈리나의 무릎이 바닥에 주저 앉았다. 충격 %26#46468;문이기도 하였지만 너무도 머리가 어지러워서 더 이상 몸을 가눌 수 없었다. 그녀는 어느 새 무언가에 중독돼 있었던 것이다.

 가녀린 목소리가 등뒤에서 들려왔다.

 "미안해요... 언니." 

 "너... 실비아..."

 우칼딘이 비열하게 웃었다.

 어느새 카탈리나의 선박은 점령되 있었다. 대부분 남자 선원들이었으며, 해적을 잡기위한 전투함이라 건질 것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카탈리나는 성녀와 비견되는 절세미녀였다. 전리품은 충분한 것이다.WTVSUCCESS=TRUE&WTV382229=1267328660&WTV1471013=515742480&WTV1392781=34384647&WTV1357910=273489&WTV1357911=3125712&WTV246810=165&WTV2571219=173&WTV124816=fantasy&WTV987904=1&WTV491322=불타는 바다&WTV9172643= "오, 오지마..."

 카탈리나에게 다가가는 우칼딘. 멀리서 비운의 여인을 바라보는 신데렐라의 눈동자 속에 과거의 모습이 드러났다.

  우칼딘의 사술에 홀린 실비아. 그녀는 카탈리나의 선박에 보관된 물에 약을 풀어넣었다. 그렇기 때문에 카탈리나는 고사하고 이배의 선원들은 아무런 힘도 쓸수 없었던 것이다. 신데렐라는 랑스의 선박을 바라보았다. 랑스와 숙련된 몇몇이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었지만 대다수의 선원들은 물에 빠진 채 익사하고 있었다. 자신의 예언대로 모든 것은 이루어져 가고 있었다. 저 남자... 랑스의 심장에 결국 우칼딘의 검이 꽂힐 것이다.

 "우칼딘... 난 남의 것을, 목숨을 빼앗는 건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아. 난 해적이 되고싶지 않아... 난 차라리 널 이렇게 만든 레이븐이라는 사람을 저주하고 싶어."

 아무리 작은 목소리라도 신데렐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우칼딘이었다. 범상치 않는 그 둘은 오랜 세월 지내오며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우칼딘은 신데렐라의 마음을 싸그리 무시했다.

 "남의 것을 빼앗는 것, 남을 지배하는 것. 힘을 얻는 것. 강자가 되는 것. 그것만이 정의가 될 수 있지. 세상은 참 간단해. 그치?"

 우칼딘은 허리에 메어둔 머리 두 개를 바다에 던졌다. 두 개의 영혼이 거친 파장을 만들어내며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카탈리나는 눈물을 흘릴뿐 아무런 저항을 할 수 없었다. 붉은 머릿결이 바닥에 주저 앉았다.

 "후후후... 신데렐라의 말 대로군."

 그녀의 예언은 절댈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운명이란 벗어날 수 없는 법이다. 먼 옜날 신데렐라는 우칼딘이 데려온 남자에게서 엄청난 운명을 보았다.

 '세계가... 당신의 발 아래 엎드릴 것입니다. 당신의 이름은... 레이븐입니다.'

 이상하게도 신데렐라의 힘은 레이븐과 만나면서 각성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레이븐의 거대한 운명이 신데렐라의 잠재력과 충돌했던 탓이다.

 우칼딘은 예전일을 떠올리며 카탈리나의 흐트러진 몸앞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누구도 정해진 운명을 막을 수 없었다. 카탈리나는 옷이 찢겨지고 숨겨진 음부가 늘어트리며 우칼딘의 먹잇감이 될 것이다. 

 "음?"

 우칼딘이 정해진 운명에 감사하며 받아들이려는 그때, 서늘한 기분이 몰려와 걸음을 우뚝 멈췄다. 그가 생각하던 미래가 부서지는 소리.

 콰아앙!

 "뭐... 이게 무슨...?"

 어디선가 무거운 무엇이 대뜸 날아와 우칼딘의 발앞에 굉음과 함께 처박혔다. 배의 갑판이 산산히 조각나며 거대한 나무기둥이 박혀 있었다.

 잠시 그것을 바라보던 우칼딘은 안색이 싹 바꿨다.

 "이것은... 배의 %26#46042;대가 아닌가?"

 무게가 엄청날 것이 분명한 이것이 하늘에서 뚝 떨어질리가 만무하다. 이성을 붙잡은 우칼딘이 고개를 돌렸다. %26#46042;대를 던진 남자를 발견했다. 그가 두손을 번쩍 들고 소리치고 있었다.

 "이봐! 네 놈이 선장이냐!? 너 유명하다면서!"

 "호오라..."

 "오늘 일진도 사나운데 한판 뜨자!"

 역시 호락호락 당할 랑스가 아니였다. 어느새 랑스의 선박을 공격하던 우칼딘의 해적들은 그의 발아래 쓰러져 뒹굴고 있었다. 

 우칼딘은 의아한 눈초리로 신데렐라를 보았다.

 '네 예언이 빗나가는 일도 있는가?'

 신데렐라는 쓸쓸히 웃을 뿐이다. 

 '우칼딘, 네 역할은 남아있어. 저 남자의 심장을 취하는 일. 저 남자에게 미녀와 보석이 있거든.'

 '역시 그런건가. 크크크.'

 우칼딘은 어지간하면 검을 뽑지 않는다. 상대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심리적으로 파고들어 절망을 안겨주는 방법. 그 절망의 무게에 짓눌려 세상을 포기하는 상대의 모습을 감상하는 것이 더욱 즐거웠기 %26#46468;문이다. 가족, 연인, 친구. 그 어떤 것이라도 상관없었다. 상대방을 절망시킬 수만 있다면. 우칼딘은 소중한 것에 대해 알지 못한다. 신데렐라는 항상 말하지만 그의 귀는 듣질 못한다. 

 '내가 있잖아 우칼딘. 넌 나를 소중히 여기고 있어.'

 우칼딘은 여전히 듣지 않았다. 우칼딘은 랑스를 노려보았다. 어딘지 모르게 자신과 흡사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자신은 하얀 백발과 왼쪽 백안. 랑스는 붉게 충혈 된 오른쪽 눈과 치렁한 흑발머리를 휘날리고 있었다. 

 카자파흐를 봉인한 랑스, 어린 시절부터 증오를 배워 온 우칼딘. 둘다 내면에 엄청난 괴물을 간직하고 있었다.

 상대를 알아본 우칼딘이 드디어 검을 뽑기 시작했다. 잔혹하게 물결치는 프람베르크. 삼점을 뜯어먹기에 안성 맞춤인 검이었다.

 랑스도 스탐블링거를 뽑아들며 오른손에 꼭 쥐었다. 우칼딘이 먼저 검을 허리쪽으로 당기며 허공으로 도약했다. 하강하는 가속도를 이용하여 거대한 은빛 물결을 휘둘렀다.

 랑스 또한 스탐블링거를 침착하게 휘둘렀다.

 푸카앙! 

 "큭!"

 "어윽"

 둘다 엄청난 반탄력에 주루룩 밀려 넘어졌다. 랑스는 하마터면 바다에 빠질 뻔했으나 가까스로 난간을 붙잡고 몸을 추슬렸다.  

 우칼딘이 이해할 수 없다며 말했다.

 "이상한 힘이군..."

 우칼딘의 팔에 짜릿한 전류가 남아있었다. 스탐블링거와 부딪힌 탓이다. 랑스 또한 근육이 뒤틀리는 느낌을 받았다. 우칼딘이 휘두른 검의 영향으로 랑스의 피가 약간 역류한 탓이다.

 우칼딘의 검. 물의 정령인 운디네라는 이름이 붙여진 검이었다. 운디네는 즉 물을 다룰 수 있는, 수속성으로 이루어진 검이었다. 

 우칼딘은 랑스에게 묘한 기분을 느꼈다. 이런 강자를 초면에 죽인다는 것이 약간 애석하게도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나 금세 고개를 저어으며 자조적인 미소를 짓는 우칼딘이었다. 크큭... 아니지. 강자일수록 당연히 죽여야 한다. 

 "후후... 간만에 심장이 뛰는 군. 이름이 뭔가?"

 "랑스 클란츠."

 "뭐?"

 우칼딘은 잠시 맘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틀림없이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인데... 그러나 곧 죽일 남자의 이름 따위야 어떻든 상관없다는 걸 알았다.

 "나는 우칼딘이다. 그리고 넌, 지금 내 손에 죽게 될 것이라고 운명이 정해졌다."

 음유시인의 음율이 섞인 우칼딘의 목소리. 랑스는 듣기좋은 음율이 어떻든 간에 후련하게 콧방귀를 뀔 뿐이다.

 "웃기시네!"

 랑스를 노려보던 우칼딘은 시선을 돌렸다. 방금 들려온 목소리는 랑스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부서진 갑판 아래서 고개만 빼꼼 내민 여인이 랑스를 응원했다.

 "랑스! 어서 끝내!"

 초록 머릿결이 바다색보다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바로 유희 프랑디아. 랑스가 화들짝 놀라며 다그쳤다.

 "야! 엔리코, 유희 좀 잘 숨겨두라고 했지!"

 "으으... 죄송하빈다!"

 "아이 참, 이거 놔요 엔리코, 난 랑스를 응원해야 한다고요."

 우칼딘. 음율과 노랫말을 생각하던 그는 갑작스레 나타난 유희를 보며 머리가 환해지는 걸 느꼈다.

 "크크크크... 내가 이겼군."

 "뭐? 아직 제대로 붙어보지도... 어!?"

 랑스는 말을 채 잇지 못했다. 우칼딘은 어느새 랑스의 옆을 빠르게 스치며 부서진 갑판아래로 몸을 던지고 있었다. 랑스가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아차!"

 아니나 다를 까 유희의 비명소리가 이어졌다. 꺄아아아. 랑스가 놈의 뒤를 쫓았다. 그곳엔 어둠이 꽉차 있었다. 랑스의 눈이 어둠에 적응하기 시작했을 때 가장 처음 발견한 것이 목이 잘려진 엔리코의 시체였다. 

 그리고 쓰러진 유희의 실루엣. 유희에게 다가서는 랑스의 등뒤로 빠르게 휘둘러지는 잔혹한 은빛이 있었다.

 우칼딘의 목소리가 예언의 끝을 장식했다.

 "죽어라."

 랑스의 몸에서 뜨거운 피가 %26#50161;아져 나왔다.  

 "쿨럭..."

 내려다 본 심장에 우칼딘의 검이 깊게 박혀있었다.WTVSUCCESS=TRUE&WTV382229=1267328660&WTV1471013=518868690&WTV1392781=34384691&WTV1357910=273489&WTV1357911=3125715&WTV246810=166&WTV2571219=173&WTV124816=fantasy&WTV987904=1&WTV491322=불타는 바다&WTV9172643= 랑스는 통증조차 느끼지 못했다. 자신의 가슴에 왜 검날이 튀어나와있는지, 왜 평소 느끼지 못하던 심장소리가 이렇게 크게 들리는 것인지. 왜 눈에 맺히는 모든 것들이 안타깝게 느껴지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마치 눈을 감으면 영원히 사라져버릴 것처럼.

 눈을 감으면 자신이 사라져 버린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서서히 눈을 감았다. 쓰러지는 랑스. 그의 심장에서 운디네를 뽑아낸 우칼딘이 웃었다.

 "크크크큭..."

 이변은 없었다. 심장이 갈라진 인간은 결코 살아날 수 없는 법이다. 신데렐라 또한 자신의 예언이 적중한 것을 깨닫고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저주받은 능력. 미래를 본다는 것은. 그 잔혹한 미래를 말한다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우칼딘이 전리품을 품에 안고 걸어오고 있었다. 유희 프랑디아. 한때 성녀였던 그녀는 랑스에게 범해졌고, 이제 또 다른 남자의 멋잇감이 되어갈 것이다. 타락한 천사의 최후치고는 너무도 문란한 운명이었다.

 "너... 끝이 아니야... 언젠간..."

 카탈리나가 더러운 밧줄에 포박된 채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끝까지 자존심을 버리지 않고 중얼거렸지만 세상은 자비가 없었다. 

 "언제나 처럼... 오늘도 이렇게 되는구나. 수고했어 우칼딘."

 "후후... 수고할 일은 앞으로도 많다. 최상급 전리품을 두 년이나 건졌으니 말이지."

 저런 우칼딘의 말을 한 두번 듣고 사는 신데렐라가 아니었다. 우칼딘의 뒤에는 랑스의 선박에서 금괴를 발견한 선원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불을 질러라."

 우칼딘에게 잡아먹힌 두척의 선박이 불에 타기 시작했다. 우칼딘은 부서진 배를 조선소에 팔아넘기지 않는다. 그렇게 벌지 않아도 돈은 충분히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는 단순한 쾌락을 쫓았다. 남의 것을 빼앗고 범하는, 마음을 후벼파서 절망시키는 쾌락만을 추구했다.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우칼딘이 유희 프랑디아의 얼굴을 보았다. 기절해 이쓴 그녀. 한 동안은 깨어나지 못할 것이다. 우칼딘은 그녀의 투명한 피부, 부드러운 살결을 음미했다. 곧 있으면 이 살결들이 자신의 몸에 뒤엉킬 것이다.

 이를 깨문 카탈리나를 보며 말했다.

 "후후... 아름다운 향연이군. 안그런가?"

 %26#53879;. 카탈리나가 침을 뱉었다. 우칼딘은 그녀의 침을 살짝 피한 후 발에 힘을 실었다. 카탈리나의 복부가 우칼딘의 발에 차였다. 퍽!

 "으으..."

 우칼딘은 유희를 내려놓았다.

 "네 차례를 미루려고 했는데 안되겠군... 지금 당장..."

 신데렐라는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렸다. 우칼딘은 검을 뽑아 카탈리나의 가슴을 향해 휘둘렀다. 카탈리나의 하얀 브라우스가 찢겨지며 하얀 속살이 드러났다. 카탈리나의 얼굴이 희게 바꿨다.

 "아아... 너 무슨 짓을...!"

 "후후후... 지금 이 자리에서 먹어주마."

 "시, 싫어!"

 아무리 도도한 카탈리나도 이 순간 만큼은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멀리서 보이는 얼굴. 실비아의 입술이 비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도와줘 실비아...

 실비아가 말했다.

 "맛있게 드세요. 우칼딘."

 카탈리나는 충격을 받아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 우칼딘의 손이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안 돼...!"

 우칼딘의 부하들이 기대감에 부풀어 그들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벗겨지는 고귀한 붉은머리 여인이 처참하게 능욕 당할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다.

 우칼딘의 바지가 벗겨지며 사람같지 않은 성기가 우뚝 솟았다.

 "싫어... 싫어!"

 고개돌린 신데렐라. 그녀의 눈동자는 불타는 선박을 보았다. 굳이 현실을 지켜보지 않아도 된다. 사실 신데렐라는 이러한 광경을 언제든 찾아 볼 수 있는 예언가였다. 더러운 장면들은 충분히 감상할 만큼 감상했다.

 현재를 벗어나기 위해 미래를 찾기 시작했다. 

 "어...?"

 신데렐라가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이건...! 우칼딘?"

 카탈리나의 옷을 찢던 우칼딘이 멈칫했다. 묶여진 카탈리나는 훤히 드러난 가슴을 가릴 수도 없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았지만 완벽한 탄력을 지닌 유방이 훤히 드러나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핑크색 유두는 잔득 긴장하여 단단해져 있었다.

 "왜 그러는가 신데렐라. 이 행위에 동참하겠다면 기꺼이 끼워주도록 하지."

 "그게 아니고 우칼딘..."

 "음...?"

 주저하는 신데렐라를 살피던 우칼딘은 다시 고개를 돌려 하던 일을 마저 하려했다. 그러나 이어서 들려 온 믿을 수 없는 말에 눈을 부릎떴다.

 "내 예언이 빗나갔어 우칼딘..."

 우칼딘 뿐만이 아니었다. 카탈리나의 유방을 보며 히히덕 거리던 선원들 마저 턱을 쩌억 벌렸다. 

 단 한번도 빗나가지 않았던 예언. 신의 목소리처럼 완벽하기만 하던 신데렐라의 예언이 덜덜 떨리며 불타는 선박을 가리켰다.

 "저, 저게...?"

 활활 타오르는 불길 안에 검은 사람의 형상이 보였다. 그 모습은 마치 연옥에서 거슬러 올라온 악마의 형상과 같았다. 언젠가 보았던 여자 악마, 베나로즈 보다도 더욱 악마의 형상을 닮아있었다.

 불길 안에서 자신을 주시하는 뱀처럼 갈라진 눈동자가 모두의 가슴에 새겨지며 엄청난 공포를 안겨줬다. 존재의 정체를 알아 본 우칼딘이 떨리는 손으로 프람베르크를 잡았다.

 "죽지 않았던 것인가..."

 틀림없이 심장을 찔렀다. 인간이라면 죽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랑스는 지금 인간이 아니었다. 랑스의 육신을 지배한 무언가. 신데렐라가 먼저 그것을 알아보았다.

 "카자파흐...?"

 우칼딘은 그제서야 랑스 클란츠라는 이름을 기억해냈다. 잊혀진 세계에서 건너온 세 명의 인간. 그중 두 명은 레이븐이 붙잡아 두었지만, 나머지 한명은 주인을 잃고 미쳐 날뛰는 카자파흐를 봉인하며 기억과 힘을 모두 잃었다고 들었다. 그러니 구태어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인물이라고 소식을 전해들은 바가 있었다. 가만히 놔두면 혼자 깝치다 뒤질것이라고 베나로즈는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목숨의 위기를 느낀 랑스는 본능적으로 살아남는 법을 갈구했다. 무엇보다 랑스가 죽는다면 그 안에 봉인된 카자파흐도 죽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기 때문에 카자파흐도 마음껏 힘을 랑스에게로 주입했다. 랑스의 부서진 심장은 카자파흐의 마력이 깔끔하게 치유해버렸다.

 불길 속에서 적들을 노려보던 랑스가 크크크큭 웃었다. 죽음에 직면했던 랑스, 기억을 잃은 상태에서 엄청난 힘을 받아들이자 자아가 붕괴 되어버린 것이다. 미쳐버린 랑스가 검을 휘둘렀다. 

 "피햇!"

 우칼딘이 소스라치게 소리쳤다. 엄청난 화염이 한 마리의 뱀처럼 길게 요동치며 날아오고 있었다.

 푸카아아앙! 엄청난 위력이었다. 순식간에 배의 절반이 날아가 버리며 기울어졌다. 포박당한 카탈리나의 머릿카락도 불에 그을렸으나 덕분에 밧줄이 불에 타 끊어졌다. 우칼딘을 노리려 했으나 카탈리나의 시야에 밟히는 여자가 있었다. 쓰러져 갑판을 뒹구는 유희 프랑디아를 껴않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풍덩.

 카탈리나를 본 우칼딘이 이를 갈았다.

 "빌어먹을!"

 또 다시 엄청난 화염이 날아왔다. 이번엔 우칼딘도 물을 다루는 프람베르크를 사용하여 거대한 파도 장벽을 만들었다.

 푸카앙! 우칼딘은 잠시 여유가 생긴틈을 타 신데렐라에게로 다가갔다.

 "우칼딘... 우린 저 남자를 상대할 수 없어..."

 "네 예언이 그렇게 말하는 건가!"

 "아니, 네 마음이 공포에 떨고 있거든."

 우칼딘의 턱에서 바드득 소리가 났다. 패배라는 것 단 한번도 맛보지 못한 굴욕이었다. 그러나 눈앞의 남자는 도저히 자신이 상대할 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우칼딘은 랑스를 찾았다.

 "없다...!"

 "하늘!"

 놀랍게도 랑스는 하늘 위에 둥둥 떠 있었다. 마치 불에타 죽어가는 기생충을 보는 것처럼 사늘한 얼굴이었다.

 랑스의 뺨에서 흘러내린 핏방울이 바다에 뚝뚝 떨어졌다. 랑스의 오른쪽 눈은 잔혹한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랑스가 웃었다.

 "낄낄낄낄낄..."

 그리고 스탐블링거를 위로 치켜들었다. 먹구름 낀 하늘이 번쩍이며 바다를 눈부시게 후려쳤다. 콰아아아아아앙!

 마치 천벌을 내리는 것처럼. 랑스의 발아래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산산히 부서졌다.WTVSUCCESS=TRUE&WTV382229=1267328660&WTV1471013=521994572&WTV1392781=34384713&WTV1357910=273489&WTV1357911=3125716&WTV246810=167&WTV2571219=173&WTV124816=fantasy&WTV987904=1&WTV491322=새장 안의 파랑새&WTV9172643=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보고받은 란디르 백작의 격앙된 목소리가 홀을 가로질렀다.

 "그게 정말인가!"

 "예. 안타깝게도 집사 엔리코는... 사망을..."

 "그건 그렇다 치고 말이다. 정말 우칼딘의 배가 가라앉는 것을 보았는가!"

 "제가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틀림 없습니다. 바로셀로나 인근에 황금 상어상이 발견되었습니다."

 황금 상어상이란 오직 우칼딘이 달고 다니는 선수상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칼딘의 배를 가라앉힌 사람이 바로 자신이 고용한 랑스 클란츠라는 소문이었다. 그러나 랑스에게 빌려주었던 함선도 불에 탄 채 발견됐다. 둘다 격렬한 전투 끝에 자폭하였다는 소문이었지만, 이러한 결과는 대단한 것이었다. 랑스에게 지급했던 배는 단순히 추진력만 좋은 카락급. 그것으로 우칼딘의 최상급 전투 겔리선과 겨루었다는 사실이다.  

 비록 금괴를 잃었다지만, 란디르 백작은 그보다 더, 우칼딘에 맞설만한 대단한 인재를 잃었다는 사실이 더욱 아쉬울 따름이다. 

 "아아... 진작 안목을 알아보았더라면..."

 랑스가 범상치 않다는 것은 첫 눈에 알아보았다. 그러나 이렇게 빨리 막을 내릴 줄도 몰랐다. 아쉬운 맘에 잠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가 살아 있었라면 영국에 대항하는 비밀함대의 총사령관을 맡겼을 법한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인근 해안을 뒤져보거라."

*

 이름없는 해안. 그곳의 푸른 물결에 붉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거친 호흡과 함께 물보라가 일어나며 물에 흠뻑 젖은 여인이 파도에 쓸려 해안에 쓸려왔다.

 "콜록, 콜록."

 유희까지 안고 해안까지 헤엄쳐 온 카탈리나였다. 유희가 기절한 탓에 발버둥을 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그녀였다. 그러나, 장시간 수영을 하고 온 터라 유희의 폐에 물이차고 기도가 막혀있었다.

 카탈리나는 서둘러 인공호흡을 시작했다.

 "우푸!"

 콜록, 콜록. 능숙한 인공호흡 끝에 유희가 물을 뱉었다. 카탈리나는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유희의 어깨를 흔들었다.

 "정신이 들어?"

 "콜록, 콜록. 으음... 당신은...?"

 "카탈리나. 당신... 유희 프랑디아 맞지?"

 유희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혹시 자신을 노리는 장미결사대의 일원인지도 모른다. 카탈리나는 아름다웠기 때문에 자신을 잡으러온 성녀들의 종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었다.

 "후후... 소문은 들었지. 너... 멋진 짓을 저질렀던데? 걱정하지 마. 나는 성녀가 아니니까. 너를 살린것도 나야."

 유희는 기억을 되짚었다. 랑스가 백발머리 남자와 싸웠고, 자신은 랑스를 응원을 하다가... 정신을 잃었다.

 "랑스!?"

 "...그 해적 말이구나."

 "랑스는요? 랑스 어디갔어요?"

 카탈리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도 눈에 선했다. 불길 속에서 노려보는 눈동자. 검에서 불을 뿜어내는 괴수. 

 "나도 잘 몰라. 나는 그저 널 데리고 도망치느라고..."

 카탈리나는 그대로 해변에 몸을 대자로 눕혔다. 유희를 데리고 바다를 수영하느라 완전히 녹초가 되어버린 탓이다. 유희는 그녀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신성력을 끌어냈다. 눈부신 빛이 카탈리나의 몸에 닿자 기분이 말끔해지는 것을 느꼈다.

 카탈리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유희를 바라보았다.

 "어... 굉장해..."

 그 동안 셀 수 없이 성녀직을 제안받은 카탈리나였다. 그러한 성녀의 힘이 몸에 닿자 회복된 기운은 둘째치고 묘한 기분을 느꼈다. 

 몸을 일으켰지만 해는 저물고 있었다. 오늘은 이 해안에서 밤을 지새기로 하고 해안을 둘러보았다.

 "동굴이다!"

 "오늘은 일단 저기서 자자. 내일은 마을을 둘러보지 뭐."

 동굴은 여자 둘이 하룻밤을 지내기에 적당했다. 뱃사람이 간혹 머물던 곳이었는지 건초더미가 잘 깔려있었다. 피곤에 찌든 둘은 모닥 불을 피워 젖은 옷을 벗어 말렸다.

 "유희, 먼저 자."

 카탈리나는 아직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들을 서로 번갈아가며 불침번을 서기로 하였다. 유희가 먼저 자리에 누웠다.

 "저기 카탈리나...?"

 "응?"

 자리에 누운 유희는 자신의 품을 뒤졌다. 속치마를 훤히 걷더니 가려린 허벅지를 내 놓았다. 하얀 다리에 작은 금색 권총이 매달려 있었다.

 "이거 받아요."

 "이건...?"

 카린소섬에서 랑스가 건네준 보물. 인페르노였다.

 "저보단 당신이 어울릴 것 같아서요. 그걸로... 저 좀 지켜주세요."

 카탈리나의 무기는 가느다란 세검류와 약초. 암기와 권총이었다. 탄환과 장전이 필요없는 인페르노는 카탈리나가 쓰기에 안성맞춤인 것이었다. 인페르노의 내력을 단숨에 알아본 카탈리나가 중얼거렸다.

 "굉장한 물건인데... 어디서 구했니?"

 "랑스가 줬어요."

 카탈리나가 고개를 끄덕이자 유희는 조용히 카탈리나에게 전음하였다.

 - 제게는 미스틸테인이라는 지팡이가 있어요. 걱정마세요... -

 전음은 카탈리나에게 그리 익숙치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전음이라는 것은 성녀들의 기술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카탈리나가 전음하는 유희의 의도를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알았어. 걱정마."

 유희는 금새 잠이 들었다. 잠든 유희의 얼굴을 보던 카탈리나는 권총을 어루만지며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유희... 성녀라고... 성녀가 해적하고 함께 다니다니. 다들 고지식하지 않구나.'

 카탈리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우칼딘을 쫓으려다 가족, 형제, 심지어는 벤까지 잃었다. 그리고 결국 얻은 것은 그토록 자신이 거절하던 성녀라는 이름의 여자. 한때 성녀였던, 유희를 바라보던 카탈리나는 문득 친구라는 이름이 떠올라 당황하고 말았다.

 '실비아...'

 실비아가 자신을 배신 한것은 오빠의 죽음과 맞물려 실로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마음 속을 가까이 파고드는 유희 프랑디아가 거북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 차가운 감촉이 목에 닿았다.

 '아차!'

 카탈리나는 이를 꽉 깨물었다. 피곤과 번민에 사로잡혀 뒤를 걸어오는 발자국을 감지하지 못했다. 신음이라도 내서 유희를 깨우려는 이때, 전음이 들려왔다.

 - 쉿. -

 전음은 유희의 것이 아니었다. 

 - 말하면 죽인다. 내 목적은 단 하나. 유희 프랑디아의 목이다. -

  카탈리나는 두손을 들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자신을 위협하는 여자를 살폈다.

  짧은 단발머리. 유희와 자신보다도 작은 키를 가진, 검은 복장의 여자였다. 카탈리나는 목에 닿은 붉은색 검을 보며 중얼거렸다. 

 '검은장미 결사대... 나비유...'

 나비유의 명성은 일반인들에게도 유명했다. 하물며 우칼딘을 노리는 카탈리나의 정보력은 대단한 것이라 눈앞에 보이는 여자의 이름 정도야 쉽게 알아낼 수 있었다.

 - 카탈리나 엔시아. 존귀한 기사 가문의 아가씨는 관심 없다. 방해하지 마. -

 카탈리나는 권총을 들어보였다. 나비유의 블랙로즈가 카탈리나의 목젖을 눌렀다. 그러자 카탈리나는 권총을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 다른 것도. -

 후두두둑 떨어지는 독묻은 바늘, 한자루의 검. 치명적인 향기를 품은 붉은 머리카락은 줄을 꺼내어 질끈 동여매었다. 모든 무기를 털어낸 카탈리나는 유희를 돌아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당신을 방해하지 않겠어.'

 동굴 밖으로 걸음을 옮기는 카탈리나. 유희 프랑디아는 무방비로 방치되어 있었다. 유희에게 다가가는 나비유. 숭고한 뜻을 이루기 위해 검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직접 입술을 움직였다.

 "유희 프랑디아. 네 죄값을 받으러 왔다."

 유희의 가냘픈 피부로 휘둘러지는 검. 그럼에도 유희는 아무것도 모른 채 눈을 감고 있었다. 피부가 날카롭게 갈라지며 피가 한방울 흘러내렸다.

 "성녀였던 과거의 영광을 생각하여 고통없이 끝내주겠노라."

 동굴 밖으로 몸을 옮긴 카탈리나는 묵묵히 팔짱을 끼고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유희, 미안하지만 당신의 목이 잘려도 나비유를 막아서지 않겠어. 그게 당신이 원하는 일일테니까. 

 "죽어라."

 나비유의 검이 유희의 목을 향해 단호히 휘둘러졌다.

WTVSUCCESS=TRUE&WTV382229=1267328661&WTV1471013=525120624&WTV1392781=34384746&WTV1357910=273489&WTV1357911=3125718&WTV246810=168&WTV2571219=173&WTV124816=fantasy&WTV987904=1&WTV491322=새장 안의 파랑새&WTV9172643= 웅장한곳, 따라서 장엄한 곳. 장엄한 탓에 엄숙하고 위계질서가 철저한 이곳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뭣이!"

 배가 볼록한 귀족중의 귀족. 높은 곳중에서도 가장 높이 우러러 봐야만 겨우 이름을 말할 수 있는 남자가 씩씩 거리며 도열해 있는 대신들을 향해 손가락질 했다.

 "빌어먹을 놈들아!"

 "왕이시여... 부디 자중을..."

 "야이 씹쌔야 니 같으면 자중할래!?"

 귀족들은 갑작스레 화가 터져버린 왕앞에서 입을 열지 못했다. 도대체 침착한 왕이 왜 이토록 화를 내는 것인지 정황을 알아내지 못한 탓이다. 머리좋은 대신들은 머리를 굴려보았다. 아마도 해적보다 더 날강도 같은 영국의 무적함대 때문일 것이다. 

 이제까지 정의로운 척 아양떨던 그들이 드디어 오늘, 사략행위를 선포했다. 오스만과 성실히 교역품을 실어나르던 포르투칼로서는 해적과 더불어 영국의 무적함대까지 신경을 써야 할 판이었다. 

 인근의 에스파니아는 해적 우칼딘을 침몰시켰다는 소문이 떠돌 정도로 강대한 힘을 손에 넣은 듯 했고, 네델란드와 이탈리아는 노르웨이의 바이킹과 연합하여 대비책을 구축해 있는 상황이었다. 오스만 또한 삼각%26#46042;대라는 거대한 해군력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제 아무리 영국의 무적 함대라 해도 %26#49461;불리 건들 수 없었다. 그러므로 영국의 무적함대는 포르투칼의 교역선들을 제 1표적으로 삼고 있다. 

 "영국의 문제라면... 에스파니아의 이데아 후작과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 중입니다만..."

 "시벌아.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느냐."

 "아, 그게 그렇습니까?"

 "아후. 이 답답아. 지금 우리 곁에 없는 자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평소 같았다면 이같은 무적함대의 문제로 대신들을 불러 보았겟지만. 오늘은 더욱 중요한 문제로 불거져 있었다. 우리 곁에 없는자라고? 대신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포르투칼 왕국의 모든 대신들이 영광의 홀을 장식하고 있었다. 모이지 않은 귀족들은 없다. 

 왕은 멍청한 귀족들의 얼굴을 보며 하소연했다.

 "짐에게서 가장 소중한 것이 도망갔다."

 "헉... 설마..."

 대신들은 그제서야 눈치를 채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지간하면 헤프닝으로만 끝나던 장난이 오늘로 그 시작을 장식한 것이다.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공주님이 없다...'

 모두들 숨죽인 탓에 중얼거린 목소리마저 크게 울렸다. 왕이 그를 찌릿 째려보았다. 한 마디 하려던 왕은 애써 침착을 되찾았다. 신하들이 기억하는 원래의 왕으로 돌아와 침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프리실라를 찾아라. 누구든 프리실라를 찾아온다면 최상의 선물을 약속하겠다!"

 왕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조아리며 복종을 외쳤다. 그러나 그때, 이들과 다른 마음을 품고있는 여자가 있었다.

 '후후후후후... 계획대로 되가는군.'

 남몰래 웃음을 짓는 여인. 바로 포르투칼의 여왕, 오필리아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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