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file2-26 나의 아들이여 나 자본이 너에게 새 삶을 주겠노라
잠시 후. 자동차의 잔해 안에서 검은 손 하나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말콤 목사가 몸이 반쯤 찢겨나간 채, 복부와 얼굴 등에 자동차 부품 몇 개가 깊이 박힌 그대로 잔해더미를 걷어내면서 간신히 밖으로 기어 나왔다.
피가 흐르는 것도 있었지만, 제대로 뜰 수 없을 정도로 눈이 따끔거리는 탓에 주변이 흐리게 보였고. 폭발의 충격 때문에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데도, TV노이즈 같은 이명이 머릿속을 마구 헤집었다.
“어, 어째서?! 어째서 이런 짓까지 하는 거지? 나를 죽인다고 해도 분이 풀릴 리도 없는데?”
말콤 목사는 자기도 몸이 성치 않은데, 폭발 때문에 엉망진창이 된 손으로 이미 산산 조각 났을 운전기사를 찾아내려 했다.
하지만 손가락이 제대로 움직여주지 않아, 날카롭게 찢긴 자동차 부품에 손이 베여나갈 뿐. 운전기사의 살점이나 가죽 한 조각도 찾아낼 수 없었다.
“이런 어리석은 사람.왜 그걸 나한테 빨리 말하지 않고….”
말콤 목사가 한참 동안 자동차 잔해를 뒤지다가, 온몸이 싸늘해지는 감각을 느끼면서 서서히 눈이 감겨갈 때. 바로 코앞에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아주 작게 들렸다.
“여기 말콤 목사가 아직 살아있다! 죽기 전에 어서 회수해!”
고개를 들어 소리가 들린 곳을 올려다보니, 웨슬레 사의 유니폼을 입은 사설 경찰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게 흐릿하게나마 두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바로 머리 위에서 큰소리로 외쳐대고, 마구잡이로 몰려오는 흑인들을 향해 고무탄과 최루탄으로 진압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귀가 많이 망가져 버린 탓에, 그들이 목청껏 내지르는 소리가 소곤거리는 소리처럼 들렸고. 총성과 폭발음은 아예 들리지도 않았다.
그중 몇몇 사설 경찰은 몽둥이를 들고 흑인들의 머리통을 신나게 두들겨대고. 땅에 드러누운 흑인 몇몇을 산악 등반용 스파이크가 번득이는 신발로 밟아댔다.
사설 경찰들에게 얻어맞는 흑인들은, 고통에 겨운 비명을 지르고. 크게 화를 내면서 사설 경찰들에게 돌을 던지거나 몽둥이로 머리통을 후려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그 모습은 짙은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릿하게 보였고.그들의 비명과 괴성은 귀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말콤 목사는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도, 그들의고통이 자신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그만 두라고 다들!”
말콤 목사는 손을 뻗어 웨슬레 사의 직원들을 붙잡으려 했지만,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주변 소음에 묻혀버릴 정도로 작은 소리를 내뱉었을 뿐이다.
그동안 웨슬레 사의 직원들이 들것을 준비해오고, 그중 한 명이 말콤 목사를 향해 주사기를 든 손을 내 뻗었다.
잠시 후. 목덜미 쪽에 바늘이 들어오는 통증을 느끼면서, 말콤 목사의 정신이 흐려졌고. 그는 무겁게 감기는 눈을 억지로 버티려다가 그대로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다.
회장의 명령이 떨어진 직후. 잭슨은 복좌식 조종석 뒤쪽에 안전장치를 설치한 다음, 그 위에 깊게 잠든 말콤 목사를 앉혔다.
“옛날 생각이 나는군. 그때는 반대였지. 공연을 마치고 술에 잔뜩 취할 때나, 작곡하고 녹음작업 때문에 밤을 새고 올 때마다 매니저 대신 할아버지께서 날 이렇게 안아 들고 뒷좌석에 앉혀줬는데….”
그는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잠깐 옛날 일을 몇 개 떠올렸다. 그 사이 담배 한 개비가 잭슨의 입술 근처까지 타들어갔고, 잭슨은 화들짝 놀라면서 담배를 바닥에 떨어트렸다.
그는 담배꽁초를 주워 휴대용 재떨이에 집어넣은 다음, 담배 냄새가 적당히 가실 때까지 조종석 덮개에 기대 선 채 생각에 잠겼다.
“할아버지가 항상 사람이 뭔가를 하면 그대로 돌아온다고 했더니, 할아버지가 나한테 했던 게 이렇게 되돌아오는구나.”
잭슨은복잡한 표정을 지으면서 잠시 옛날 일을 되새겼다.
“공연을 마치고 뒷풀이 때문에 술에 취할 때나, 복잡한 일정 때문에 사흘 정도 밤샘을 하고 나면 항상 할아버지가 잠들어 있는 날 뒷좌석에 앉히고 집에 데리고 가 줬었지.”
그는 이제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때를 떠올리며, 담배 연기보다 더 짙고 쓴맛이 담긴 한숨을 토해냈다.
“앞으로 내가 벌여야 할 짓을 할아버지가 아예 못 보게 하는 건 확실히 회장님 아니면 생각할 수 없는 배려겠지.”
잭슨은 한때 손가락이 헤지고 굳은살이 잡힐 정도로 기타와 마이크를 잡았던 손을 내려다봤다. 지금 그의 손가락은 총을 여러 번 잡은 흔적이 뚜렷했다.
그리고 손바닥에는 시리즈 H의 레버를 거칠게 조작하는 사람 특유의 굳은살만 박혀 있었다.
“기타를 잡아야 할 손으로 총을 쥐고, 시리즈 H의 레버를 움직이다니. 이건 운명의 장난일까 아니면 시대의 장난일까?”
그는 잠시 눈을 감고 진짜 기타가 있는 것처럼 열 손가락으로 허공을 치며, 공기기타를 연주했다.
잭슨은 그때. 머릿속에서 전부 다 지워버렸을 법한 뮤지션 시절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하는 걸 느꼈고, 손가락은 진짜 기타를 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강약조절까지 맞춰가며 움직여줬다.
아마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면, 진짜로 기타를 치는 소리가 들리는 착각을 할 정도의 연주였다.
그리고 잭슨 역시 한참 동안 뒤로 미뤄뒀던 기타 소리와 드럼 소리. 베이스 연주음이 머릿속에서 다시 재생되는 느낌에, 목소리를 높여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잭슨의 노래가 전부 다 끝날 쯤. 화상 통신 알람이 울렸다. 잭슨이 오른손 검지 손톱을 두들겨 통신 회선을 열어보니, 8분 전부터 통신 메시지가 와 있었다.
하지만 그가 쭉 무음으로 해놓고 있다가 이제야 알람 소리를 틀어둔 걸 알 수 있었다. 잭슨은 누가 보냈는지 궁금해져, 모니터를 켜 봤다.
“오오 잭슨. 훌륭한 연주였어. 앵콜은 안 될까?”
홀로그램 모니터가 열리자마자, 회장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뼉을 치고 있었다. 잭슨은 그녀가 뭔가에 감격해 이렇게 손뼉을 치는 모습은 거의 본 적이 없었다.
가끔 보여줄 때가 있긴 했지만, 대부분 비아냥거릴 때나 적을 깔볼 때 보여주던 거라 신선한 기분이 들긴 했다. 하지만 잭슨은 가볍게 웃으며, 기타를 내려놓는 것 같은 투로 한마디 했다.
“농담하지 마시죠. 회장님. 제가 음악을 버리게 만든 분이 앵콜을 요청하다니.”
“그거야 난 그냥 너한테 여기로 들어올 거냐고 물어본 게 전부였어. 승낙한 건 잭슨 너잖아. 네가 스스로 관두고 싶어져서 그런 게 아냐?”
회장이 여전히 웃으며 핵심을 찌르자, 잭슨은 가볍게 넘어가려 했다. 하지만 이내 쓴맛이 담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실 저도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군요. 아직 가끔은 다시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드니까 말이죠. 특히 시리즈 H를 움직이거나 라이플을 들고 사람 대갈통을 날릴 때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고 있습니다.”
그의 푸념에, 회장 역시 쓴맛이 배인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시대가 시대잖아. 지금은 너도 나도 다 총을 들고 다녀야 하는 시대라고. 너만 특별하게 원하는 것 대신 총을 쥐는 게 아니니까, 그거로나마 위안을 가져.”
위로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막 나가는 말이었지만, 지금의 자유 합중국 시대에서 이것보다 더 확실하게 통할 위로는 없었다.
잭슨도 그 사실을 너무 잘 알아 딱히 뭐라고 딴지를 걸지 않고, 순순히 회장의 위로를 받아들였다.
“감사합니다.”
“아참 이제 출발 시간 다 되었으니까, 준비 다 되었으면 늦지 말고 빨리 나오라고. 난 이미 나와서 기다리는 중이니까. 나는 잭슨 널 여자를 험한 곳에서 한참 동안 기다리게 하는 매너 없는 남자로 키운 적 없다고.”
“알겠습니다.”
잭슨은 조용히 화상 통신을 종료한 다음. 무대 위에서 다이브하듯 뛰어내려 X-38의 앞좌석에 앉은 뒤, 조종석 해치를 닫고 X-38의 메인 엔진과 프로펠러를 작동시켰다.
엔진 소리와 프로펠러 소리가 마치 드럼과 기타 소리처럼 울려 퍼졌고, 잭슨은 그에 맞춰 다시 한번 노래를 부르며 하늘 높이 떠올랐다.
“언제라도 다시 노래를 부를 수 있을 때가 찾아올까? 만약 그렇다면….”
잭슨은 말을 다 끝맺지 못한 채 회장과 미리 약속한 장소를 향해 X-38을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