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file2-25 꿈이여 꿈이여 왜 그대는 나를 괴롭히는가.
한편. 말콤 목사는 이번에도 길거리 연설을 마치고 황급히 차에 올라탔다.
그런 말콤 목사의 등 뒤에는, 한 무리의 성난 흑인들이 온갖 욕설을 내뱉으며 그의 뒤를 쫓아가는 중이었다.
그들 중 몇몇은 아예 말콤 목사를 향해 쿠크리 나이프를 던지거나, 기관단총까지 쏴대는 이들도 있었다.
마구잡이로 총을 쏴 갈기는 탓에, 말콤 목사의 팔과 정강이 쪽에 총알이 스쳐 칼로 벤 것 같은 상처가 생겼고. 어깨에는 작은 투척 나이프 두어 자루가 꽂힌 상태였다.
말콤 목사가 차에 타는 순간. 그를 실은 작은 승용차는 엄청난 배기가스를 내뿜으며 재빨리 흑인 무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이런 일에 제법 익숙한지, 차 뒷좌석에 놔둔 구급상자를 꺼내, 나이프를 뽑고 대충 소독한 다음. 단백질 스프레이를 꺼내, 상처자국에 적당히 발랐다.
단백질 스프레이는 순식간에 굳어, 상처 자국 부위만 약간 하얀 자국을 남겼다. 게다가 상처를 급하게 메꾼 흔적은 절대 원래의 피부색과 섞이지도 않고 평생 남게 되었다.
“언제 써도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구만. 이러다가 흑인 인권 운동가에서 백인 인권 운동가로 바꿔도 되겠는데.”
말콤 목사는 하얗게 드러난 상처 자국들을 보며, 한숨을 내 쉬었다. 앞 좌석에 앉아 있는 운전기사는 백미러를 통해, 말콤 목사의 몸 상태와 자동차 뒤를 쫓는 흑인 무리까지 확인했다.
그때 차의 뒷 유리창 한가운데에 쿠크리가 깊게 박히고, 총알 자국 몇 개가 숭숭 뚫리는 걸 보고 가볍게 웃으며 한마디 했다.
“이번에도 또 토마토랑 계란 세례입니까? 다들 조금만 더 내려놓으면 될 것을….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득달같이 달려드는지 모르겠네요.”
오늘도 말콤 목사는 연설 도중 과격한 백인들이 던지는 쓰레기에 얻어맞았다.
그리고 그걸 시작으로 또 백인과 흑인들이 서로 갈라져서 싸우게 되었고, 그는 싸움을 말리려다가 백인들이 던지는 돌과 흑인들이 날리는 주먹에 얻어맞았다.
그 즉시 흑인들이 칼과 총을 뽑아 들면서, 말콤 목사에게 돌을 던진 백인들을 죄다 도륙내 버렸다.
심지어 말콤 목사가 백인들을 마구잡이로 죽이는 걸 말리자, 이제는 말콤 목사가 열성 유전자만 가득 찬 백인들을 옹호한다고 공격해. 지금처럼 흑인들의 폭동을 피해 도망가게 되었다.
다행히 그를 30년간이나 따라왔던 운전기사만큼은, 말콤 목사에게 등을 돌리지 않고 끝까지 묵묵히 그를 따라다닌 덕분에. 넓은 아프리카 주 전역을 돌아다닐 수 있는 건 물론.
이렇게 자주 맞딱트리는 폭동의 손톱과 송곳니를 피해 달아날 수도 있었다.
“그나마 수류탄이나 다이너마이트가 날아오는 것보다 훨씬 좋지 않습니까? 작년만 해도 여기저기에서 총을 쏴대느라고 난리도 아니었죠. 목사님이 아니었으면, 아마 핵폭탄이 떨어졌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습니다.”
운전기사는 휘파람까지 불면서 핸들을 검지로 툭 툭 건드렸지만, 말콤 목사는 온 몸에 듬성듬성 하얗게 변한 피부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 그게 나아진 걸까 정말로?”
말콤 목사는 작년에 연설이 끝나자마자, 난민으로 위장한 소년 테러리스트 때문에 입었던 흉터를 만지작거렸다.
테러리스트라고 해도 폭탄조차 아깝다는 이유로, 어느 동네의 조직폭력배들처럼 손에 칼 한 자루만 던져주고 찌르라고 보냈다.
그래서 부상이라고 해봤자 복부에 입은 흉터가 전부였다. 하지만 말콤 목사는 그때의 상처를 볼 때마다, 온몸이 폭발에 휘말려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원래 말 한마디로 세상 바꾸는 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요?”
운전기사는 그렇게 말하며 차량 안의 홀로그램 모니터를 조작했다.
그때 말콤 목사는 순간적으로 운전기사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걸 봤지만, 평소에도 가끔 뭔가 진지한 생각을 하는 모습을 자주 봐 왔기에 아무 말 없이 넘어갔다.
그 동안 운전기사가 모니터를 손끝으로 가볍게 건드리자, 모니터 너머에서 격렬하면서도 맑고 상쾌한 느낌의 락 음악이 흘러나왔다.
“법이나 처벌은 물론. 음악이나 소설. 영화로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게 사람이고 또 세상 아닙니까? 이럴 땐 신나는 음악으로 기분이라도 바꿔야죠.”
하필이면 모니터에서 나오는 음악이, 한때 잭슨이 가수 생활을 할 때 가장 히트를 쳤던 앨범의 대표곡이었다.
지금은 여러 가지 추문과 백인들의 크고 작은 테러활동. 그리고 잭슨 때문에 벌어진 대규모 인종 폭동사건 때문에, 두 번 다시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것 때문에 말콤 목사의 기분이 더 무거워졌다.
하지만 운전기사가 그 노래에 어깨춤까지 추며콧노래를 흥얼거리자, 그나마 조금이라도 먹구름이 낀 것 같은 마음을 덜어낼 수 있었다.
“마침 내 손자 녀석이 부르는 노래가 나오는군, 자유 합중국으로 합쳐지면서 락 음악이나 메탈 같은 음악 자체가 없어졌을 줄 알았는데.”
“제 딸아이가 좋아하던 노래였습니다.
말콤 목사는 운전사의 표정을 읽자마자 그녀의 행방에 대한 건 물어보려 하지 않았다.
자유 합중국의 치안 상태가 늘 그래왔지만, 특히 인종 갈등이 대놓고 번지는 중인 아프리카 주에서는 아침 날씨를 물어보는 정도의 질문이나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저 운전사의 딸을 위한 기도를 올린 뒤, 위로하는 뜻에서 어깨에 손을 얹고 한마디 했다.
“안타깝게 되었군. 세상이 좋아져야 그런 일이 더 벌어지지않을 텐데. 지금 내가 해줄 일은 같이 슬퍼하는 것밖에 없어서 미안하네.”
“별수 없죠.”
운전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음악의 볼륨을 높였다. 잭슨 특유의 거칠고 과격한 가사와 그로울링이 승용차 내부를 꽉 채웠다.
원래 특정 음악 장르가 사회 체제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라져버리던 건, 자유 합중국 이전의일부 공산국가나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않은 독재국가.
또는 전제왕권이 자리 잡은 소규모 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특징이었다. 하지만 자유 합중국으로 모두 하나가 되고, 전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로 체제를 획일화시키던 중.
락 음악과 메탈. 힙합 등을 포함한 몇몇 음악 장르와, SF장르 중에서 디스토피아 등을 다루는 장르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통합 이전부터 웨슬레 사가,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지구에 폭력적이고 음울하고 음산한 기운을 풍기는 물건들을 치우자는 캠페인과 광고를 꾸준히 자사 제품에 붙여넣었고.
여기에 종교계와 교사 단체. 학부모 단체에까지 불이 붙어, 과격하고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를 다루는 것들이 자유 합중국에서 완벽하게 치워지게 되었다.
그 와중에 락 음악 쪽에도 불똥이 튀어, 학부모 단체와 종교인들이 앞장서서 공연장에 난동을 부리거나 음악 앨범을 보는 족족불에 태운 끝에. 지금은 암거래로 구하거나, 화형식에서 살아남은 몇몇 정품 앨범을 미친 듯이 비싼 가격에 사는 방법밖에 남지 않았다.
운전사는 침묵이 흐르는 분위기가 싫었는지, 재빨리 이야기를 돌렸다.
“물론 락 음악 자체는 없어진 지 꽤 오래되긴 했죠. 다만 제가 팬이라서 몰래 녹음해둔 음반을 샀습니다. 좀 비싸서 구하는 데 애먹었지만요.”
운전기사의 한탄에 말콤 목사는 김빠진 웃음소리를 흘리면서, 지금은 아주 당연하다고 말하는 상식에 대해 한탄했다.
“이젠 음악까지 제값 이상으로 몰래 사야 하다니, 그것도 음악을 만든 사람이 아니라 몰래 파는 사람이 돈을 벌고 말이야. 기술은 발전하는데 어째서 생각은 이렇게 뒤로 물러나는 건지 모르겠군.”
“하나가 앞으로 나서면 다른 하나가 뒤로 들어가는 거니까요. 저도 그게 불만입니다. 누구나 살 수 있는 책이 갑자기 귀중품 취급받아서 부자들의 장식품으로 둔갑하다니 말이죠.”
“그러게 말일세. 책이라는 건 장식품으로 두는 게 아니라 읽어야 가치가 있는 건데.”
그 때 음악의 하이라이트 부분이 흐르는 것과 동시에, 운전기사가 들릴 듯 말듯한 소리로 혼잣말을 흘렸다. 그리고 말콤 목사는 그가 내뱉는 말을 아주 똑똑히 알아들었다.
‘당신이 싫은 건 아니지만…. 내 딸내미가 백인 양아치 놈들 손에 온갖 굴욕을 당하고 갈기갈기 찢겨졌습니다. 이게 다 당신 때문…. 남들에게는 다 내려놓으라고 하면서 어째서 당신은 아무것도 내려놓지 않는 겁니까.’
“잠깐 자네 지금 대체 무슨 소리를…?”
그리고 모니터에서 커다란 폭발이 일어나며 운전기사를 완전히 집어 삼켜버렸다. 뒤이어 말콤 목사의 눈앞에 오렌지 색 화염이 치솟는 걸 끝으로, 그의 시야가 새까만 칠흑에 뒤덮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