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file2-24 여긴 자유 합중국이야 공짜밥 따윈 사양이라고
“그래서 말콤 목사를 잠재웠지. 말콤 목사의 능력이 지금 시점에서 너무 노출되면 곤란할 것 같았거든.양해는 구하지 않았지만 이해해줄 수 있겠지?”
“예 그 정도는 충분히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잭슨은 아직 약간의 미련이 남은 것 같은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잭슨? 우리 사우스 스네이크의 사훈이 뭐였지?”
회장이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잭슨에게 질문을 던지자, 잭슨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대답했다.
“막는 놈들은 전력으로 갈아버린다! 뭐든 손에 잡히면 다 때려 부숴서라도 목표에 도달한다! 자기 목숨 빼고 다 걸어라! 이상입니다.”
잭슨의 입에서 칼같이 대답이 튀어나오자, 회장은 씩 웃으면서 그의 어깨를 두들겨주는 투로 칭찬했다.
“그렇지! 그게 우리 사우스 스네이크의 방식이다. 알겠지? 잭슨!”
“알겠습니다.”
잭슨은 평소의 모습으로 되돌아온 회장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고. 회장은 회장대로 아직 잭슨이 이성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심했다.
“저 병신새끼. 지난번처럼 맛이 가서 미친 짓을 할까봐 조마조마했네. 저놈은 한 번 미쳐버리면 나도 말리기 힘들어지니까 곤란하단 말이야.”
그걸 끝으로 화상 통신이 끝나고, 회장은 X-38의 상태를 눈으로 대충 점검해본 뒤 곧바로 시트에 앉았다. 그리고 사우스 스네이크 측에 화상 통신을 전송했다.
잠시 후. 사우스 스네이크 임시 본사 건물에서 수신 메시지를 보내왔다. 회장이 왼손 새끼손톱을 눌러, 화상 통화를 열자 수건으로 얼굴이라도 닦았는지 조금 깔끔해진 사라와 함께. 이제 좀 그나마 주변이 덜 어수선한 사우스스네이크 사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사라? 사우스 스네이크의 상황은 어떻지?”
회장은 사라의 몰골이 약간 깔끔한 걸 봐서, 이미 어떤 상황인지 짐작하고 있었지만 사라에게 확실한 대답을 추가로 요구했다.
“이제야 기업 연합 측에서 식량을 보내주긴 했지만….”
사라가 모니터의 카메라를 살짝 돌려 뒤쪽을 비춰주자, 회장은 순간 이에 금이 갈 정도로 빡 갈면서 눈썹을 위로 높게 올리고 미간과 이마에 주름을 잔뜩 잡았다.
뒤쪽의 보급 상자들은 하나같이 웨슬레 사의 토끼 마크가 찍혀 있었다. 토끼 마크 밑에는 웨슬레 내부용 장기보존 야채 비스킷&스테이크 캔.
뜨거운 수프와 함께 먹는 얇은 오리엔탈 파스타. 이라는 제품명이 인쇄되어 있어, 바깥의 멍청이들에게 팔아치우는 ‘금방 썩고 사흘도 못 버티는’ [천연에 가까운] 가공식품이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이 개새끼들이 무슨 좆 같은 바람이 처분 거야? 성분 조사는 다 해봤어?”
사라는 한숨을 팍 내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성분 조사도 다 마쳤습니다. 그냥 자유 합중국 이전의 기법으로 만든 평범한 장기보존 식량입니다.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식량이 확실합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비스킷을 토끼가 당근 먹듯 갉아대고, 나이프로 스테이크 캔 안에 들어있는 고기를 잘게 썰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사라의 발밑에는 이미 텅 빈 스테이크 캔과 비스킷 종이상자가 몇 개 떨어져 있었고, 소녀의 입가에는 파스타 수프와 스테이크 소스가 잔뜩 묻어 있었다. 그걸 본 회장은 눈썹을 슬쩍 올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피를 토하거나 몸이 썩어 문드러지지 않는 걸 보면 안심하고 나눠줘도 되겠군.”
회장이 농담을 던지면서, 한마디 던지자. 사라는 그 농담에 웃지 못하고, 굉장히 심각한 표정으로 다음 이야기를 전달했다.
“일단은 식량이 보급되고 그 다음에 일의 성과를 봐서 복구 인력을 지원해준다고 하네요. 다만 전 세계적인 폭동 때문에 시키는 일만 하는 안드로이드들만 보낸다고 했습니다.”
회장은 그게 어디냐는 식으로 어깨를 으쓱했지만, 사라가 뒤이어서 하는 얘기에 이마와 미간. 입가와 코 옆에 잔뜩 주름을 잡으면서 눈을 부릅떴다.
“덧붙여서 가끔 직원이 폭주하는 거랑 불손한 언행을 하는 게 있지만, 이번 일만 제대로 잘 처리할 수 있다면 눈감아줄 수 있다. 라는 말도 했습니다.”
회장은 주변을 죽 둘러보다가, 작은 파리 한 마리가 근처를 얼쩡거리는 걸 봤다.
아무리 아프리카 주의 위생상태가 나쁘고, 시체의 산이 여기저기 쌓여있는 곳이라 파리 한 마리 날아다니는 건 별 것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곧바로 민스 미트를 뽑아 파리를 향해 겨누고, 격발을 단발로 조정한 뒤에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은 정확히 파리의 몸뚱이를 맞춰 박살 냈고, 파리는 작은 폭발음과 함께 부스러졌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근처를 기어 다니는 거미. 바퀴벌레. 그리고 쥐까지 민스 미트로 쏴서 박살 냈다.
총에 맞아 터져나간 쥐 시체는, 뼈와 살점 대신 인공 근육과 금속제 골격이 쏟아졌고. 피 대신 부동액과 냉각수가 흘러나왔다.
회장은 쥐 시체. 아니 쥐로 위장한 감시 로봇을쓰레기통에 처박으면서 한마디 흘렸다.
“우리가 그동안 한 걸 다 듣고 지켜 보는 걸로 자동보고가 되었다는 얘기군. 좋아. 그래서 그 아이 게임 실력이 얼마나 좋다고 했지?”
회장이 별 것 아니라는 식으로 흘려 넘기자, 사라는 억지로 표정을 펴면서 천천히 대답했다.
“예 그동안 회장님이 세운 기록을 아주 미세하게 앞서고 있습니다.”
사라의 대답에, 회장은 윤기 있고 기름진 털의 피둥피둥 살찐 초식동물을 노려보는 호랑이 같은 미소를 지었다.
“좋아. 그 시스템을 준비해둬. 아직 3년 전에 니콜라우스 영감이 띄운 조작전파 전송 위성은 사용하는 데 문제없지?”
회장의 질문에 사라는 질린 표정을 지으면서도, 곧바로 회장에게 성층권을 떠다니는 위성 영상을 보여줬다.
위성은 군데군데 레이저에 피탄 당하거나, 레일건에 날개가 뚫린 흔적이 남아 있지만. 별 문제 없이 상공을 날아다니면서 안테나 끝에서 붉은빛을 번득이고 있었다.
“예. 저번에 혼닛츠 때 너무 많은 시리즈 H를 동시 조작하느라고, 과부하가 걸리긴 했습니다. 하지만 두 번에서 세 번 정도는 더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아. 그 정도면 한 번쯤은 더 과부하를 먹여도 된다는 얘기지?”
“예? 그건…. 사용자에게도 같은 과부하가 들어간다는 얘기인데요?”
회장은 씩 웃으면서 사라의 질문을 단번에 잘라버렸다.
“자유 합중국에 사는 이상 공짜 밥을 얻어먹으면 안 되잖아.”
“괜찮을까요? 헤비 메탈 하나 정도는 투약해야 할 것 같은데.”
사라는 다시 한번 회장의 생각을 확인하기 위해 물어봤고, 회장은 눈썹을 슬쩍 위로 올리면서 약간 신경질적인 투로 대답했다.
“그건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먹이지 마. 그냥 적당한 흥분제랑 자극제만 사용해.”
“알겠습니다.”
사라의 대답을 끝으로 화상 통신이 종료되었다. 회장은 마리화나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면서 이죽이죽 웃어댔다.
“그 녀석한테도 슬슬 피 맛을 보여줘야지. 자유 합중국은 생고기와 생피를 즐겨 씹는 맹수가 아니면 살 수 없으니까.”
한 번에 마리화나 한 개비를 다 빨아들인 회장은, 꽁초를 대충 밖에 내 던진 뒤 X-38의 조종석 덮개를 내리고 기체를 천천히 공중에 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