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3화 〉file2-23 이 똥통 바닥 같은 곳을 벗어나자. 그것밖에 방법이 없어 (63/66)



〈 63화 〉file2-23 이 똥통 바닥 같은 곳을 벗어나자. 그것밖에 방법이 없어

회장은 말콤 목사와 작은 테이블에 서로 마주하고 앉아, 큼직한 술병을 하나씩 놓은 채 서로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술병 외에는 병에 담긴 소시지와 통조림 햄과 콘비프. 레토르트 포장이 된 베이컨 등이 잔뜩 올라와 있었다. 하지만  짜고 기름진 안주들은 전부  회장의 뱃속에 처박힐 뿐이었다.

말콤 목사는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는 건 아무것도 손대지 않았다.

게다가 이 침묵이 꽤나 오래 지난 모양인지, 회장의 발밑에는  술병이 몇  더 놓여 있었고. 지금 테이블 위에 있는 술병도 절반 가까이 비워진 상태였다.

“도망가는 중에 이런 연회라니. 게다가 술이라는게 이런 건가?”

테이블 위에 올라온 술병은, 로날드의 팔뚝만큼 크고 굵었고 한가운데 붙은 라벨에는 ‘파이어 스피리터스’라는 자유 합중국 공용어가 인쇄되어 있었다.

말콤 목사는 술을 단 한 잔도 입에 대지 않았지만, 회장은 잔도 없이병에 그대로 입을 댄 채, 단숨에 남은 반병을 가볍게 비워버렸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인 널찍한 베이컨 육포  장을 집어 들어, 마치 원시인이라도 된 것처럼 곧바로 한 입 크게 베어 물어뜯었다.

척 보기에도 제법 딱딱해 보이는 육포가 한지처럼 뜯겨나가면서, 회장의 입안으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이 정도 마시지 않으면 취하지 않는 몸이니까요.”

회장은 기세 좋게 스피리터스 병을 내려놓은 뒤, 말콤 목사에게도 스피리터스를 병째 권했다. 하지만 말콤 목사는 회장이 벌이는 난장판에 가까운 연회 모습에 눈살을 찌푸리면서 한마디 흘렸다.

“이건  지나치다고 생각하는데?”

“미안하게 되었지만, 이게 제 방식입니다. 당신은 물론, 저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몸이니까요. 제게 호위를 받는 이상은, 저하고 좀 어울려주실 수밖에 없을 겁니다. 아무리 고고한 학이라고 하더라도 먹고 살기 위해서는 흙탕물에 발을 담근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회장이 그렇게 말하자, 말콤 목사는 한  얻어맞은 것 같은 표정을 짓다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면서 한마디 했다.

“그렇군. 나 때문에 굉장히 고생이 많았을 테니, 무작정 거절하는 것도 예의에 맞지 않겠지.”

말콤 목사는 그렇게 말했지만, 막상 순수한 알콜이나 다름없는 술을 눈앞에 두니. 쉽게 잔을 기울일 생각이 들지 않았다. 회장은 그 모습을 보며 소리죽여 웃은 뒤, 스피리터스 병을 자기 쪽으로 끌고 들어왔다.

“아 그렇군요. 이런 술은 다른 사람이 마시면 곧바로 급성 알콜 중독에 걸려도 이상하지 않겠군요. 그럼 잠시만 기다리시죠.”

회장은 냉장고를 겸하는 테이블 아래쪽의 홀로그램 버튼을 조작했다.

“이건 당신이라도 마실  있겠죠? 안주도 같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갈색 병에 이슬이 잔뜩 맺혀 있는 차가운 맥주와 서리가 잔뜩 낀 유리잔. 그리고 널찍하고 얄팍하게 썰어낸 햄과 치즈가 담긴 쟁반이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회장은 맥주를 유리잔에 천천히 따라낸 뒤 말콤 목사에게 건넸다.

“미리 준비해뒀다는 건가?”

“이런 일 자체가 나중에 뭐가 벌어질지 모르거든요. 그러니 뭐든지 준비해둡니다.”

“그렇군.”

말콤 목사는 처음으로 회장의 너스레를 떠는 것 같은 태도를 보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잔을 들었다.

“그러면 자네의 임무가 무사히 끝나길 바라면서 건배하지.”

뒤이어 말콤 목사가 잔을 앞으로 내밀었다. 회장은 씩 웃으며 스피리터스 병을 말콤 목사의 맥주잔에 부딪친  그대로 쭉 들이켰다.

 병을 전부 뱃속에 들이부은 회장은, 남은 육포를 한 번에  털어 넣고 씹어 삼켰다.

말콤 목사 역시 이번만큼은 맥주를 단숨에 들이켠 다음, 회장이라도 된 것처럼 얄팍하지만 넓게 썰어낸 햄 조각을 입안에 넣고 거칠게 씹었다.

“하하 이거 젊었을 때처럼 한다는 게 쉽지 않…. 이거 벌써 취기가 도는  같군 그래. 잠이 이렇게 쏟아지다니.”

말콤 목사가 맥주를 쭉 들이마신 직후. 두어  정도 눈을 깜박거리면서 잠들지 않으려고  미간을 잔뜩 일그러트렸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버티지 못하고, 고개를 아래로 떨어트린 채 천천히 눈을 감았다. 회장은 말콤 목사를 검지로 두어  정도 가볍게 찌른 뒤, 어깨를 으쓱하며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뭐 설마 알고 마신 건 아니겠지? 말콤 목사 성격상 이런  알고 마셨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회장이 아직 남아 있는 스피리터스 병을 전부 다 마셔버린 다음, 접시에 담긴 햄까지 죄다 집어 먹으면서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아직 한  분량만 비워진 맥주병을 화분 쪽으로 가져가, 남아있는 술을 화분의 흙에다 전부 다 부어버렸다.

평소 같았으면 ‘안주’라고 하면서 죄다 마셔버렸겠지만, 이상하게도 그녀는 맥주를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았다.

회장이 맥주병을 버리고, 말콤 목사를 등에 업으려는 그때. 잭슨에게서 화상 통신이 도착했다는 알람이 들어왔다.

회장은 새끼손톱에 붙어있는 화상 통신 단말기를 켜고, 소파에 쓰러지듯 잠든 말콤 목사까지 화면에 넣은  잭슨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회장님? 찾아냈습니다. 응? 할아버지께서 어떻게  겁니까?”

회장은 별 것 없다는 투로 간단히 대답했다.

“말콤 목사는 깊이 잠들었다. 아마 사흘 정도는 잠만 잘 테니까, 그동안 수분하고 영양분만 제대로 보급하면 아무 문제 없어.”

잭슨은 회장이 자신에게 뭘 맡길 건지 대충 짐작했는지, 한숨을  내쉬면서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결국 이렇게 하는군요. 할아버지가 정신을 차리면 나한테 대체 뭐라고 할지 기대되는데요.”

“그냥 따끔하게 한마디 설교하고 끝내겠지. 잭슨 너는 그분에게 있어 소중한 손자면서, 유일하게  하나 남은 혈육이잖아.”

잭슨은 다소 불편한표정을 지으며 ‘할아버지가? 그럴  없어.’라는 말을 중얼거린 뒤,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회장마저  이상  말이 없어, 둘 사이에 잠깐 죽음 같은 침묵이 흘렀다. 그걸 견디지 못한 회장이 먼저 한마디 던졌다.

“그러고 보니 이번 폭동도 분명 웨슬레 사가 개입되어 있겠지?”

잭슨 역시 분위기를 읽고 회장이 먼저 던진 화제에 따라 대답했다.

“확실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들이 뿌려둔 걸 사용하려면 핵전쟁도 마음대로 일으킬  있고,  핵전쟁을 넘는 짓도 얼마든지 벌일 녀석들이니까요.”

회장은 문득 웨슬레 사의 주력상품 중 하나가, 대규모 난민사태 때 사용할 비스킷이나 분유. 통조림 식품과 과자 사탕 종류라는 걸 떠올렸다.

‘그 녀석들이라면 충분히 하고 남을 이유가 가득하군.’

“분명 그것만이 아닐 겁니다. 그 녀석들이라면 이 상황에서도 우리한테  방 먹이려고 들 놈들이니까요.”

회장이 여러 가지 생각 때문에 머리가 복잡해질 때 잭슨이 한마디 더 덧붙이자. 회장은 확실히 감을 잡았는지, 이를 꽉 물면서 조용히 말을 흘렸다.

“그렇지. 그 목소리가 분명 큰 효과가 있었지만, 나같이 헤비 메탈에 찌들대로 찌든 사람에게는 효과가 반감되는 것 같았어.”

“그렇다면 할아버지. 아니 말콤 목사의 연설 이후에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분명….”

회장은 뭔가 불안한 기운을 느껴, 머뭇거리면서 말을 다 끝맺지 못한 잭슨에게. 한참 전부터 자신이 생각해뒀던 답을 내놓았다.

“세계 평화를 어지럽힌다는 구실로 제거당하거나 완전히 격리당한 뒤에 비스킷  조각도   먹고 천천히 굶어 죽겠지. 이게 녀석들이 노리는 수가 아니었을까?”

잭슨은 잠깐 뭔가 생각하는가 싶더니, 기력이 다 빠져나간 사람처럼 한탄했다.

“어떻게 되더라도 사우스 스네이크 사의 전 직원들. 아니 그밖에 모든 감찰관들에게는 목숨이 걸린 문제군요. 이번 일이 성공해도 굶어 죽을 판이고, 실패하면 순식간에 실직자 떨거지들이  판이니.”

회장은 다 내던진 사람처럼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잭슨의 불만에 한마디 덧붙여줬다.

“그래. 어떤 놈이 이 미친 짓을 시작하고우리한테 이런 일까지 던져준 건지 몰라도, 우리들을 엿 먹일 생각으로 벌였다면 아주 훌륭한 수를  거라고.”

“뛰어도 죽고  뛰어도 죽는다면 뛰라고 한 건 회장님이 하신 말입니다?”

잭슨이 농담하듯 한마디 던지자, 회장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광소를 터트리며 헤비 메탈을 목덜미에 꽂아 넣으려 했다.

그때 잭슨이 뭔가를 발견했는지, 화면을 다른 곳으로 돌리면서 모니터에 비춰진 풍경을 몇 배로  크게 확대했다.

 풍경은 호텔의 건물 잔해와 파손된 기물들이, 시체와 함께 뒤섞인 채 아무렇게나 내다 버려진 쓰레기장이다.

그리고 한 무리의 백인 실직자들이, 쓰레기가 아무렇게나 쌓여 만들어진 산을 타고 올라와. 곳곳에 숨겨져 있는 시체들을 끄집어내, 그들의 살을 유리조각이나 날카로운 쇠 파편으로 토막냈다.

뒤이어 썩어가기 시작하는 살을, 녹슬고 재가 잔뜩 묻은 꼬챙이에 꿰기 시작했다. 다른 실직자 무리들은 인육 꼬치를 넘겨받아, 그걸 모닥불에 올려놓고 굽거나. 다른 쓰레기들을 주워 담고 있었다.

그 와중에 실직자 무리가 파낸 시체 중 한 구의 팔과 가슴팍에, 서로 꼬여있는 뱀  마리가 머리부터 꼬리까지 칼에 꿰인 문신이 새겨진 걸 발견했다. 회장은 그 모습을 보며 별 감흥 없다는  한마디 했다.

“감찰관은 어떤 일이 있어도 감찰관 마크 외에는 다른 걸 몸에 새길 수 없지. 게다가 감찰관이라면  어떤 조직에서도 받아줄 수 없는 존재고. 마지막으로 감찰관은 아무리 도망쳐도 감찰관 마크를 지울 수도 없고 새로운 마크를 덮어씌우지도 못해.”

잭슨 역시 자신의 손등 쪽을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 그녀의 한마디에 납득 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확실하군요. 그렇다면 저건 블라디미르의 병사들이 아닙니다. 다른 건 숨길  있어도 이것만큼은 속일 수 없으니까요.”

회장 역시 망사 원피스 안으로 드러난 자신의 가슴을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폰테시티를 덮쳤던 녀석들은 블라디미르가 데리고 있는 전직 감찰관이 아니라는  확실해졌네. 그런데 저 문신은  어디 조직 거야? 말콤 목사가 일어나 있다면 분명 알려줬을 텐데.”

회장이 잭슨에게 물어보자, 잭슨은 예전에 잠깐 할아버지와 함께 아프리카 주를 돌아다녔을 때를 떠올렸다. 그리고 한참 동안 기억을 되짚은 끝에, 저 문신이 어떤 조직의 상징인지 찾아낼 수 있었다.

“백인 해방조직 ‘뉴 부두’입니다.”

“흑인 노예들이 기독교의 눈을 피해서 자기네 토속종교를 섞었다는 그거?”

“예. 그렇습니다.”

당연하지만 지금 아프리카 주는 기독교를 ‘백인들의 종교’라고 하며 탄압하고 있었다.

그리고 백인들은 이전에 흑인 노예들이 하던 것처럼, 흑인 토속종교의 형태를 덧씌운 상태로 기독교를 몰래 믿고 있었다.

회장은 백인과 흑인의 입장이 완벽하게 반전되어버린 상황에 코웃음을 치면서, 마리화나 한 개비에 불을 붙였고, 잭슨은 한 가지 문제점을 더 이야기했다.

“이미 백인 해방 조직에게 쫓긴다면, 흑인들에게도 이야기가 다 퍼졌을지 모릅니다.”

회장은 마리화나를 잔뜩 빨아들인 탓에, 다소 심드렁한 투로 잭슨에게 질문을 던졌다.

“즉 그 얘기는?”

아프리카 주의 입장이 뒤집혀, 흑인들이 백인들을 확실하게 찍어 누른 지 30여년이 넘었다.

게다가 아프리카 주는 다른 곳에 비하면 정보의 전파가 느린 고립지역이라, 다른 주에 비하면 아직 평화로운 편이긴 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말콤 목사에 대한 이야기가 널리 퍼지게 된다면, 아프리카  역시 자유 합중국의 다른 주와 마찬가지로 인종차별 폭동에 크게 휘말려버릴지 모를 일이다.

그렇게 되면 커피나 초콜릿. 설탕. 기타 농작물류의 대부분을 취급하는, 아프리카 주의 식량 공급이 끊어진다는 말과 다를 게 없었다.

회장은 이제 모든  다 알아차린 모양인지, 환하게 웃으면서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힘껏 내리치면서 잭슨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 자식들 뭘 노리는지는 대충 알 것 같군. 하루라도 빨리 말콤 목사를 아프리카 주 밖으로 빼낸다. 앞으로 전투는 내가 전담할 테니, 잭슨 너는 말콤 목사와 함께 아프리카 주를 빠져나가는 것만 생각해!”

말이 도망치는 것만 생각하라는 수준이다. 굴러온 돌이 되어버린 백인 해방조직과, 이미 오래 전부터 깊게 박힌 흑인 기득권 세력 양쪽에게 둘러싸인 이상.

보이는 건 미친개처럼 닥치는 대로 물어뜯지 않으면, 순식간에 대규모 병력의 해일에 휩쓸릴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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