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2화 〉file2-22 동화속 나라는 무슨! 여긴 다 지옥 밑바닥이라고! (62/66)



〈 62화 〉file2-22 동화속 나라는 무슨! 여긴 다 지옥 밑바닥이라고!

“그거야 이번 스폰서가 이 동네를 꽃과 동물들이 가득한 낙원으로 만들어도 된다고 했으니까 온 거죠. 그게 아니면 이런 매연이랑 화약 냄새 가득하고, 귀여운 동물들이랑 싱그러운 꽃 한 송이 없는 지옥 같은 동네에 발을 들이지 않아요.”

남매 중. 남자 옷을 입은 여자아이 치르치르가, 다리에 실을 묶어놓은 파란 새를 날리면서 소리죽여 웃었다.

자세히 보니 파랑새의 다리에 묶인 실 끝이 여자아이의 새끼손가락에 매여 있는 건 물론, 평범한 참새에 파란 페인트를 칠한 모양인지 군데군데 엉성하게 참새 깃털이 드러나 있었다.

게다가 페인트가  굳은 곳에서 어색한 광택을 내고 있었다.

“우리가 발을 딛는 곳은 어디까지나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요정과 귀여운 새들. 토끼와 다람쥐가 뛰어다니는 동화 속 마법의 세계에요. 차가운 기계나 욕심만 가득하고 추잡한 사람들이 사는 곳은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잖아요.”

로날드는 그때, 치르치르와 미치르 남매의 목적을 떠올렸다.

‘자유 합중국을 동화  풍경 같은 모습으로 바꾸는 것.’ ‘자기 둘을 제외한 모든 인간들을 제거한 뒤, 동화속 왕자님 공주님같은 안드로이드들과 귀엽고 아름다운 동물들만 가득한 세상을 만드는 것’

그는 파랗게 칠해진 채, 다리에 실까지 묶여서 제대로 날아다니지도 못하는 참새를 보며 코웃음을 쳤다.

‘미친 새끼들. 사람 하나 없고  뻗을 집도 없는 곳에 만들어놓은 인공 정원을 열심히 동화 속 마법의 나라라고 우겨봐라.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라도 지옥이지만, 사람이 없는 곳이라고 지옥이 안  줄 아나?’

로날드는 당장에라도 저 파랑새 남매에게 그렇게 외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그걸 곧바로 지적했다가는, 저 거대한 전차로 자신을 짓뭉개려고 달려들 걸 생각하자마자. 말을 다시 목구멍 안으로 넘겨버렸다.

‘AP-16이라도 있었으면 쉽게 도망이라도 갔을 텐데. 지금 이따위 걸로는 일만 더 부풀리겠지. 참자. 참아 로날드! 옛날 일 따위는 술 한 잔에 털어 넣는 거야 로날드.’

하지만 파랑새 남매는 로날드에게  한마디 더 하지 않고, 시선도 주지 않은 채. 자기들끼리 서로 쳐다보며 웃어댈 뿐이었다.

결국 로날드는 참다 참다 못해, 두 사람에게 최대한 꾹꾹 눌러 담은 한마디를  던졌다.

“씨발. 좆같은 애새끼들. 애새끼들은 니 애미 보지나 빨면서 처 자러 갈 시간이야 알아?!”

로날드가 한마디 던지자 치르치르는 전차 조종석에서 새장을 하나 꺼내, 그 안에 파랑새를 집어넣은   팔을 활짝 펼치면서 환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미치르는 ‘니 애미’라는 얘기에 불편한 기색을 확 드러내면서, 권총을 채운 허리춤에 손을 뻗었다.

“뭐 당신의 목적은 이제 끝난 것 같지만, 저희는 이제 시작했습니다. 아직 잘 시간이 아니라는 얘기죠. 사우스 스네이크 사의 로날드 아저씨.”

치르치르가 미치르의 손을 잡아 내린 뒤, 다시 로날드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는 당신은 이런 쓰레기장에 뭐 하러 온 거죠? 물론 당신이나 당신 회사 사람들하고 아주  어울리는 곳이지만 말이에요.”

“회장님 욕하다가는 니들 똥구녘에 티 본 스테이크가 박힐 거다. 병신들.”

로날드가  기분 나빠진 표정으로 그 남매를 자세히 쳐다보니, 두 사람의 상의에는 웨슬레 사를 상징하는 갈색 토끼 마크가 붙어있었다.

그는 더욱 화를 내면서 모니터에 떠오른 두 사람의 얼굴에 대고 욕설을 내뱉었다.

“웨슬레?! 이런 개새끼들. 여긴 뭐하러 처 기어왔어? 왜? 너희들도 고철 주우러 왔냐? 자유 합중국 최대 규모의 기업께서 그렇게 하라고 시키냐? 아니면 동화 속 요정에서 웨슬레 딱갈이로 갈아치운 거냐?”

로날드가 바닥에 널브러진 워커-B 타입의 잔해들을 가리키며 비웃자, 치르치르는 오른손을 들어 하늘 위를 가리키면서 대답했다.

“아닙니다. 로날드 씨 당신하고 사우스 스네이크 사에 전달할 선물이 하나 있어서 보냈습니다. 위를 보시죠.”

로날드가 고개를 들어 위쪽을 쳐다보니, 파랑새 남매의 머리 위에 빅 팻 캣 무인헬기 밑에 큼직한 폭탄 하나가 컨테이너 박스에 담긴 채 와이어에 매달려 있었다.

로날드는 컨테이너 박스에 바이오 하자드 마크가 큼직하게 붙은 걸 보고, 컨테이너 안에 든 폭탄이 무엇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뭐야 이건. 화생방 폭탄을 우리한테 주겠다고?”

로날드는 영문을 알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치르치르에게 따져 물었고, 치르치르는 요정처럼 생긋 웃으면서 대답했다.

“어차피 회장에게 X-38과 추가 장비를 보급할 생각이었죠? 정확히는 이것까지 회장이 있는 아프리카 주에 보내주셨으면 합니다.”

“뭐야. 웨슬레가 이런 보낼 이유가 어디 있다고.”

로날드는 마치 1년 동안 어두컴컴한 변소 안에서 진득하게 묵은 똥을 보는 것처럼, 화생방 폭탄과 치르치르를 노려봤다.

그러자 치르치르는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로날드에게 한마디 했다.

“웨슬레 사에서 구한 물건이지만, 보낸 분은 다른 곳입니다.”

로날드는 더욱  수 없다는 표정을지으며 물어봤다.

“거기가 어디인데?”

치르치르는 동화속 요정은 결코 지을 것 같지 않은 섬뜩한 미소와 함께, 웃음기 섞인 대답을 던졌다.

“옐로 페이퍼 뉴스. 아시다시피 아메리카 주 최대의 언론업체입니다.”

치르치르의 대답에 로날드는 헛구역질을 하며, 나지막하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씨부럴. 그 또라이 레드넥 새끼 앉아 있는 곳 말하는 건가.”

그런데 치르치르는 어떻게 그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전혀 비아냥거림이 섞이지 않은 천진난만한 어린애 같은 투로 말을 던졌다.

“그렇게 말하는 당신도 레드넥 아닙니까? 게다가 흑인들 때문에 험한 꼴도 많이 보셨는데그런 말이 나오다니. 신기하군요.”

그 모습에 로날드는 아주 잠깐 무거운 표정을 지었지만, 두 사람이 여전히 웃고 있는 모습에  역시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병신.  새끼는 흑인들하고 크게 얽히지도 않았는데도, 자기 자리 굳히려고 그 지랄을 하는 거고, 나는 험한 일을 겪었어도 그냥 넘겨 버리는 거다. 이건 아주 큰 차이라고 알아?!”

치르치르는 로날드의 대답에 배가 찢어져라 웃어댄 뒤, 손을 흔들면서 TOPO-1의 해치에 걸려 있는 잠금장치를 풀었다.

“그 점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앞으로도 바쁘게 뛰어다니셔야  테니, 지금은 이만 물러나죠. 다음에  구역을 아름답게 꾸미면 한번 놀러 오시길.”

로날드가 그의 인사에 반응조차 하지 않자, 치르치르는 한마디 더 덧붙이면서 해치를 활짝 열어젖혔다.

“아참 웨슬레 사의 회장님께서 이 폭탄은 아무래도 잭슨이라는 흑인 분께서 쓸 테니, 미리 한마디 더 전해두라고 얘기를 들었습니다.”

로날드가 이마와  미간에 주름을 잡자, 미치르가 처음으로 입을 열면서 전차의 해치 안에 하반신을 넣으며 말했다.

“본성을 숨기지 마라. 네 욕망에 충실해지는 게 좋다. 라고 했습니다. 저희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웨슬레가 ‘신선한 비료’를 잔뜩 준다고 해서 전해주는 겁니다.”

로날드는 파랑새 남매가 어떤 걸 비료로 쓰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10년 전. 그의 친구들과  번째 아내. 첫 번째 아내에게서 나온 딸과 아들까지 저 둘이 사용하는 분쇄기에 들어갔다가 밭에 뿌려진 과거가 있었다.

그는 그때의 참상을 지금도 잊지 않고 선명하게 떠올릴 있다.

아마 치르치르의 표정을 봐서는, 그 사실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 일부러 로날드의 속을 긁기 위해 말을 던진 것 같았다.

“그러면 저희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그 말까지 마친 뒤, 치르치르와 미치르가 재빨리 전차 안으로 들어간 다음. 재빨리 해치를 닫아버렸다.

잠시 후. 잠금장치가 다시 작동되면서 압축 공기가 세차게 뿜어져 나왔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TOPO-1은 다시 땅을 파고 들어가, 땅 밑을 마구 헤집으며 앞으로 나갔다.

파랑새 남매가 로날드의 눈앞에서 사라지자, 로날드는 걸쭉한 침을 뱉으면서 허공을 향해 권총을 몇   갈겼다.

“이런 개새끼들! 아주  같은 짓들만 골라서 하는군. 웨슬레 이 새끼들 네놈들 눈앞에 꼭 저 두 남매의 모가지를 갖다 던져주지. 얼마나 큰 손해가 났는지 며칠 내내 계산기를 두들기게 만들어주고  거라고  같은 놈들!”

그는 우선 파랑새 남매가 사라진 구멍에 가운데손가락을 내밀었다. 그 다음 웨슬레 본사가 있는 방향으로도 중지를 올려세운 뒤, 손목에서 와이어 훅을 뽑아내 빅 팻 캣의 랜딩 기어에 걸었다.

로날드가 다시 와이어를 걷어   캣에 올라타자마자, 뚱뚱한 도시 비둘기 같은 몸집의 수송헬기는 사우스 스네이크 방향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갔다.

로날드는 실직자 구역을 벗어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파랑새 남매가 사라진 구멍을 한 번  쳐다보다가 그곳을 향해 다시 한번 진한 가래침을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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