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file2-20 고층건물과 폐기물 처리장. 둘 다 쓰레기가 가득하다는 건 마찬가지지
“아 그렇지. 전부 다 이것 덕분이고 말이야.”
젊은 남자가 다른 모니터를 끌어와, 잠시 쉴 겸 웨슬레 사의 광고 영상을 감상했다. 광고 영상은 마침 다른 기업연합 소속의 대기업 회장 아들 겸. 자유 합중국 최고의 남자 배우가 출연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우선 남자 배우가, 다른 회사의 가공식품을 손에 들어 보이면서 설명을 시작했다.
‘당신이 먹는 음식 얼마나 오래가나요? 안 썩고 오래가는 음식일수록 당신의 몸은 빨리 부패해갑니다. 빨리 썩는 게 당연한 식품을 오래 보존하기 위해 들어가는 화학물질들. 위나 장은 물론, 당신의 간과 심장에까지 침투합니다.’
뒤이어 그래픽 영상으로 여러 회사의 가공식품들이 몸 안에 쌓이면서, 사람의 몸뚱이가 좀비처럼 썩어 문드러지는 모습이 흘러나왔다.
‘보존료를 듬뿍 섞은 음식을 먹고 암을 키워서 일찍 죽고 몸은 썩지도 않아, 자유 합중국의 귀한 땅을 오염시킬 겁니까?’
그리고 죽은 지 몇 년이 지나도 옷과 관짝만 썩고, 살아생전 그대로의 모습이 남아 있는 젊은 여성의 시체가 그래픽으로 흘러나왔다.
옷을 일부러 아슬아슬한 부분만 남긴 데다가, 그 여성의 모습을 아주 아름답게 만들어놓아 그냥 보면 광고 영상인지 포르노 영상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유통기한이 길지 않은! 원재료 그대로를 사용한 식품이야말로 당신의 삶과 자유 합중국을 아름답게 꾸며줍니다. 당신의 삶도 앞으로 웨슬레가 함께 하길.’
마지막으로 남자 배우가 다른 기업의 식품을 발로 밟아 뭉갠 뒤, 웨슬레 사의 식품을 먹는 것으로 광고 영상이 끝났다.
이 광고는 몸값이 비싼 배우 덕분인지, 아니면 광고 자체가 재미있는지는 몰라도. 어린아이들마저 맨트를 다 외울 정도로 대 히트를 쳤다.
그 이후로 다른 기업들 역시. 웨슬레 사를 따라 일부러 유통기한을 최소한으로 줄인 제품들을 생산하게 되었다.
그렇게 모든 가공 식품들이, 오히려 자연식품보다 더 빨리 썩어 빨리 버리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그 덕분에 저조했던 가공식품 소비량이 폭등하고, 당연히 ‘잘 썩는 가공식품’의 선두주자 웨슬레 사의 이익이 크게 늘어버렸다.
그리고 자연산 식재료를 조리하기도 귀찮아하는 노동자들에게 있어, 가공식품은 다른 대기업에서도 다루는 품목이며 자유 합중국 노동자들의 생명과 직결되는 물건이다.
또한 이것들이 웨슬레 사가 기업 연합의 5대 기업으로 발을 딛을 수 있게 만든 품목이기도 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지금도 이 품목들은 웨슬레 사의 주력상품이다. 다만 여기에 시리즈 H와 시리즈 H용 무기 파츠. 탄약.
크게는 핵미사일과 생화학병기. 노동 보조제 ‘발라드’와 전투 자극제 ‘헤비 메탈’까지 만들고 있다는 게 자유 합중국 이전 시대와의 차이점이다.
하지만 웨슬레 사의 회장이 앉아있는 테이블에는, 단순히 생과일만 잔뜩 갈아 넣은 주스 잔만 놓여 있었다.
이전만 해도 회장의 테이블에 홍보용으로 웨슬레 사의 제품을 몇 개씩 놔뒀지만, 광고를 찍은 모델이 몇 개월 뒤 간암과 위암으로 사망한 이후. 회장의 테이블에서 웨슬레의 음료수는 전부 다 치워버린 상태다.
아마 그 배우는 자신이 홍보한 식품처럼 ‘아주 빠르게’ 썩었을 테니, 웨슬레 사의 광고는 거짓말이 아니었지만.
가슴이 작은 젊은 여성은, 광고 영상 모니터를 치워버리면서 웨슬레 사의 회장에게 한마디 던졌다.
“어차피 저희가 적자를 기록할 일도 없긴 하지만, 이 정도까지 흑자를 얻어낼 이유가 있습니까? 게다가 다른 회사의 물건도 있었을 텐데?”
웨슬레 사의 회장은 왜 그런 걸 물어보냐는 투로 대답했다.
“몇 년 전부터 시험해보고 싶었던 거라서 만들어서 내보냈더니 돈이 알아서 굴러 들어온 걸 나더러 어쩌라고? 게다가 올림픽 덕분에 득 본 것도 많잖아.”
그는 새로운 홀로그램 모니터를 켜고, 작년에 개최된아프리카 주 올림픽 하이라이트 영상을 재생시켰다.
육상 100m 달리기 종목인데, 가장 선두에서 뛰고 있는 한 백인 선수의 가슴팍과 트렁크에 웨슬레 로고와 함께, 웨슬레 사의 초콜릿과 커피 브랜드명이 프린트되어 있었다.
그리고 몇 초 후. 웨슬레 사의 협찬을 받았다는 걸 노골적으로 드러낸 옷을 입은 선수가, 가장 먼저 결승선의 레이저 계측기를 통과했다.
“저 선수 그 이후로 우리 회사의 광고 모델이 되었지? 아프리카 주에서 흑인들이 신나게 싸댄 똥을 퍼 올려서 젠켐을 만들어 빨던 녀석이 지금은 부르는 게 몸값인 여배우의 젖꼭지랑 보지를 신나게 빨아대잖아.”
날씬한 여성이 웨슬레 회장에게 눈을 흘겼고, 웨슬레는 휘파람을 불며 이야기를 다른 데로 돌렸다.
“그놈도 인생 역전하고 우리 회사 이미지도 새로 쌓아 올리고. 나처럼 모두에게 큰 이익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어? 안 그래?!”
웨슬레 회장은 주스 잔을 단숨에 쭉 들이마신 다음. 마치 독한 술이라도 한 잔 한 것처럼 상기된 표정으로 잔뜩 들뜬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다가 아니라고. 동시에 경쟁사들을 야금야금 갉아먹어야만 우리만이 자유 합중국 최고의 분유. 초콜릿. 커피 생산업체가 되는 거니까. 나머지들은 그냥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찌끄래기들이라고 하하하하! 자유 합중국 최고의 기업 웨슬레. 이것 하나만으로도 다른 건 모두 쳐낼 가치가 있지 않아?!”
“그렇다면 이번에 벌어진 폭동하고 말콤 목사의 자유 합중국 종합 연설도 전부 다 웨슬레 사를 위해 계획한 겁니까?”
젊은 여성이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물어보자, 웨슬레 회장은 손뼉을 치며 어린아이 같은 표정으로 그녀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렇지! 말콤 목사에게도 저 선수처럼 빚이 가득한 삶에서 빛이 가득한 삶으로 변할 기회인데 이거면 모두가 다 이길 수 있는 사업이라고! 그걸 위해서 사우스 스네이크 사에 아주 큰 선물도 하나 보내줄 생각이라고.”
그때 모니터에서 아프리카 주의 작은 고철 산이 비춰지고, 그 안에서 몇 대의 중무장한 AP-16이 초 고도비만 환자를 떠올리게 하는 크고 뚱뚱한 폭탄 하나를 빼내는 게 떠올랐다.
폭탄에는 생화학병기 경고 마크가 붙어있고, 그 밑에 피 칠갑을 한 원숭이 그림과 ‘에볼라’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 고철 산 주변에는, 총탄에 걸레짝처럼 찢겨나가거나. 시리즈 H에 짓밟혀 내장과 뼈가 죄다 튀어나온 채 납작해진 시체가 고르게 흩뿌려져 있었다.
AP-16 부대는 막 빼돌린 폭탄을 빅 팻 캣의 견인용 와이어에 연결한 뒤, 마지막으로 고철 산에 대규모 네이팜 폭격을 퍼부으며 자리를 떠났다.
“그렇군요.”
“자 그러면 옐로 페이퍼 뉴스의 머저리가 다른 백인 해방조직 놈들한테도 말콤 목사에 대한 정보를 뿌렸으니까, 그 감찰관들이 어떻게 치고받을지 한 번 구경이나 할까? 아마 선물은 잭슨 그 친구가 쓸 것 같은데 말이야…”
웨슬레 사의 회장이 다른 모니터를 켜고, 영상을 재생시키자. 젊은 여성은 조용히 물러나면서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말콤 목사를 아메리카 주로 데리고 가는 게 목적이라고 했는데 어째서 굳이 저런 방해물을 계속 앞에 보내는 거지? 마치 싸움이 벌어지는 것 자체를 즐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설마 그게 목적인 걸까? 사실 웨슬레 사의 번영이나 자유 합중국 제일의 기업으로 만드는 것 따위도 전부 전쟁을 구경하기 위한 구실? 정말 알 수 없는 사람이야.’
젊은 여성은 밖으로 나가기 전, 곁눈으로 웨슬레 회장을 슬쩍 쳐다봤다.
웨슬레 회장은 그녀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여전히 여러 개의 홀로그램 모니터 영상을 한꺼번에 주시할 뿐이었다.
사우스 스네이크 회장을 닮은 젊은 여성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조용히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한편 로날드는 사이드와인더를 탄 채, 등 뒤에서 날아오는 T-117의 자동소총탄을 피해 건물 잔해 틈마다 숨어다녔다.
지금 그는 장갑판을 최대한 떼어내고, 추진장치도 제거된 사이드와인더에. 무기도 경장갑 차량용 15mm 기관총 MG-15 하나와 대 시리즈 H용 나이프에서 떼어낸 2.5미터짜리 경량형 세라믹 칼날이 전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날드의 등 뒤에는 무수한 실직자들의 시체와 시리즈 H의 잔해가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로날드는 건물 잔해 뒤에 숨어 있다가, T-117이 자동소총을 장전하는 틈을 노려 MG-15로 탄창을 쏴 맞춰 터트리거나. 과열된 호버 엔진을 잠시 식히기 위해 멈출 때마다, 대 시리즈 H용 나이프로 발목을 썰어 넘어트렸다.
“좋아 이 어리버리한 새끼! 땅바닥에 눕게 되면 이걸로 끝이라고!”
로날드는 자신을 노리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엔진 과열도 신경 쓰지 않고 달려오던 T-117 한 대의 발목 관절을 끊어 넘어트렸다.
그리고 사람 몸뚱이 위를 뛰어다니는 벼룩처럼, 레이더에도 잡히지 않을 정도로 어지럽게 돌아다니다가 다리 사이의 조종석을 발로 밟았다.
“겨우 이거 한 대 주워 먹으려고 목숨을 엿처럼 바꿔먹어야 하겠냐?! 아무리 비싸도 니 목숨값보단 쌀 거다.”
그는 곧바로 시리즈 H용 나이프를 들어, 조종사의 목이 있을 만한 부분을 노리고 깊게 내리찍었다. 짧게 콱 끊기는 비명과 함께, 검붉은 피가 조종석 외벽 바깥으로 튀었다.
로날드는 피가 잔뜩 묻은 칼날을 빼낸 뒤, 뒤이어 날아오는 총알들을피해 반쯤 무너진 건물의 지하로 숨어 들어갔다.
로날드가 탑승한 사이드와인더가 바닥에 내려앉을 때,다리 관절에서 녹슨 경첩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관절의 서스펜션이 약간 휘어져 버렸다.
“벌써 다리 관절에서 잡음이 생기다니. 역시 이놈의 내구도는 절대 믿을 게 못되는군. 단순하고 튼튼한 게 장점인 시리즈 H에 이상한 변형시스템을 구겨 넣으니까, 콘돔처럼 쓰다 버리는 물건이 될 수밖에 없지.”
그가 탑승한 사이드와인더는 상반신이 피와 윤활유. 냉각수와 화약 연기를 잔뜩 뒤집어 써, 몇 년은 쉬지도 않고 굴린 것처럼 지저분한 모습이다.
물론 멀쩡한 X-38에서 막 빼낸 따끈따끈한 신품이지만, 워낙 험한 곳을 마구잡이로 돌아다니다 보니 순식간에 시간의 찌꺼기를 한꺼번에 뒤집어쓴 것처럼 변한 것이다.
로날드가 로날드의 사이드와인더는 건물 지하까지 날아드는 총알을 피해, 다시 한번 메뚜기처럼 높이 뛰면서 어지럽게 움직였다.
그는 한참을 뛰어다닌 끝에, 실직자들이 사용하는 정크 시리즈 H의 레이더와 카메라 밖으로 완전히 벗어났다.
그는 실직자 구역의 끄트머리까지 달아난 뒤에야, 어느 정도 여유를 갖고 X-38을 수리하는 데 쓸 예비 파츠들을 찾기 시작했다.
“최대한 무게랑 크기를 줄여놓은 사이드와인더 한 대 갖고 실직자 구역을 돌아다니라니. 이거 무슨 잭애스도 아니고.”
로날드는 지나치게 좁아터진 조종석에서, 담배를 꺼내려다가 가죽조끼 주머니 지퍼에 손등 털이 씹혀 몇 가닥 뜯겨나갔다.
그는 욕설과 함께 주머니에서 손을 뗀, 뒤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레버를 붙잡았다.
회장도 여자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키가 크긴 했지만, 로날드는 옆으로도 상당히 널찍한 체격이었다.
방탄이나 방검 성능도 없는 평범한 가죽조끼에 청바지를 입고, 헬멧 대신 해골 무늬의 두건을 머리에 둘렀으면서도. 조종석에 앉은 모습이 마치 통조림 캔 안에 꽉꽉 채워진 스팸 같은 꼴이 되었다.
“씨발. 이딴 식이면 담배 한 대도 맘대로 못 피우겠네.”
로날드가 만약 무사히 담배를 꺼낸다고 해도, 분명 불을 붙이려다가 코털이나 머리카락을 태워 먹었을 것이다.
담배에 불을 붙여봤자 담배 연기 때문에 제대로 숨을 쉬지 못했을 게 뻔했다. 그는 아주 잠깐이지만 조종석 해치를 열고밖에서 담배를 피울까 생각했다.
하지만 훼이첸 주의 실직자 구역은, 마스크 없이 숨도 못 쉴 만큼 공기가 더러웠다. 미세먼지와 유릿가루. 그리고 온갖 발암물질과 독극물 칵테일.
어디는 안 그러겠냐만 이곳의 실직자 구역의 공기는, 사람을 삽시간에 썩은 고깃덩이로 만들 정도로 역겹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아직 주변에 널려 있는 실직자 무리가 다 정리되지 않았기에 함부로 조종석 해치를 열지 않았다.
“예전에도 많았지. 그저 담배 한 번 피운다고 하거나, 워낙 갑갑해서 바깥바람을 쐬려다가 저격수한테 머리를 들이밀고 박살 난 친구들 말이야.”
예전에 사우스 스네이크에 들어오기 전을 떠올렸다.
사우스 스네이크 사에서는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는 부하나 친구들은 없었다.
하지만 그 전에 몸담았던 곳에서는, 무겁다는 이유로 탄약도 제대로 챙기지 않아. 맨몸으로 싸우다 죽는 녀석들이 한 트럭 넘게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멋모르고 어리버리한 병사들이 가득한 곳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로날드보다 먼저 자유를 향해 날아가 버렸다.
로날드는 문득 그때의 친구들 중, 오로지 자기만 여전히 땅바닥을 기어 다니면서 썩은 고깃덩어리를 줍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좋아 조금만 더 둘러보고 이 구역을 벗어나는 게 먼저다.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고 해도 내가 마음에 안 내키면 때려쳐야지. 물론 지금 같은 삶을 때려칠 순 없지만….”
로날드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사이드와인더의 메인 카메라를 통해 주변에 널려 있는 파츠들을 하나하나 살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