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File2-17 공구리 좀 쳐줄게 빨갱이 자식아!
“서로 아슬아슬한 상태군. 하지만내가 이겼다고 빨갱이.”
흙먼지가 걷힌 것과 동시에, 어느 정도 간격을 두고 멈춰 서 있는 라이노 비틀과 블랙 맨티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블랙 맨티스는 머리통이 절반쯤 찌그러져 있었고, 라이노 비틀은 철골 몇 개가 흉부에 박혀 앞으로 더 나가지 못한 상태다.
“체크메이트! 아니 왕이 아니라 룩을 잡은 거니까 체크메이트하고는 다르겠군. 하하하하!”
블랙 맨티스는 기둥의 무게에 머리가 더 납작하게 짓눌리면서도 앞으로 뻗어 나가, 오버 웨폰 개틀링 벙커를 라이노 비틀의 흉부에 더 깊게 처박았다. 동시에 라이노 비틀이 다시 한번 기둥을 높이 들어 올려, 블랙 맨티스의 머리통을 한 번 더 내리찍었다.
이걸로 블랙 맨티스의 머리는 형체도 남지 않을 정도로 납작해졌다. 하지만 그 상태에서도 블랙 맨티스는 머리가 잘려도 움직이는 사마귀처럼 앞으로 한 발짝 더 나갔다.
그리고 개틀링 벙커의 트리거를 꽉 눌러, 리노 비틀의 두껍고 단단한 장갑판을 잘게 다져버렸다.
개틀링 벙커가 날뛸 때마다 충격을 못 이기고 깨져나간 장갑판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튀어, 바닥에 무수한 불똥과 장갑판 파편이 튀면서 피난 중인 사람들을 순식간에 다진 불고기로 만들어버렸다.
당연히 무지막지한 기세로 갈려 나가는 라이노 비틀의 장갑판 파편은, 블랙 맨티스의 어깨와 흉부 장갑판까지 순식간에 스펀지처럼 만들어버렸다.
하지만 블랙 맨티스는 고속주행용휠을 더 빠르게 가속시켜, 탄도 미사일 크기의 파일 벙커를 앞으로 더 바짝 붙였다.
그러자 라이노 비틀의 장갑판 파편만이 아니라, 파일 벙커의 철골과 콘크리트마저 마찰열로 불타면서 깎여나가. 시가지 한복판이 지옥행 고속도로처럼, 불길과 비명이 넘실거리는 길로 변했다.
“생과일주스 좋아하나 블라디미르? 뚜껑 따진 주스 캔으로 만들어줄 테니까 기대하시라고!”
블랙 맨티스는 개틀링 벙커를 박아 넣어 장갑판을 갈아버리는 중에도, 무거운 개틀링 벙커를 든 두 팔을 세차게 움직였다.
채 1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블랙 맨티스는 라이노 비틀의 500mm나 되는 두꺼운 흉부 장갑판을 전부 다 벗겨내 버렸다.
그 탓에 라이노 비틀의 조종석이 드러나 버리고, 조종석 안에는 블라디미르 대신 사람의 뇌와 비슷한 형상의 컴퓨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컴퓨터의 정면에는 눈알처럼 생긴 두 개의 카메라가 붙어있었는데, 카메라는 조종석이 노출된 걸 확인하자마자. 조종석 근처에 스모크 디스차지 영상을 흘려, 중장비에 얻어맞은 흉부 장갑판이 멀쩡한 것처럼 박살 난 조종석이 드러나지 않게 위장해버렸다.
“저건 분명히?!”
잭슨은 뭔가 알고 있다는 듯, 회장이 탑승하고 있는 블랙 맨티스와 라이노 비틀을 번갈아 쳐다봤다. 한편 회장은 블랙 맨티스의 조종석 안에서, 이미 조종석에 앉아 있던 인공두뇌를 사진으로 남겨뒀다.
“하하하! 과연 네 녀석도 그렇다는 얘기잖아. 어쩐지 전부터 시리즈X에 헤비 메탈까지 사용하더니만, 나하고 비슷한 부류의 인간이었어!”
회장은 머리가 박살난 블랙 맨티스를 옆으로 빼면서 큰 소리로 웃어댔다. 그 다음. 발에 밟힌 음료수 캔처럼 납작해진 머리통을 잡아 뜯어버린 뒤, 블랙 맨티스를 헬기 형태로 변형시켜 건물 옥상에 올려뒀다.
“이거 비싼 1회용 장난감을 두 개 동시에 갖고 노니까 잠이 확 쏟아지네.”
그녀는 옥상 끝에 와이어를 걸어두고 그대로 뛰어내려, 건물 밑에 가볍게 착지했다. 그런 회장의 등 뒤에 X-38의 본체 장갑판과 부품 몇 개가 떨어져 나가면서, 기체 주변에 짙은 회색 흙먼지를 일으켰다.
블랙 맨티스의각 관절부가 엉망진창이 되어 변형도 간신히 시켰고, 그 와중에 관절이 몇 군데 뒤틀리고 각 관절부위마다 인공 근육이 터져 나와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한 번 변신시킨 이상 시리즈 H로 되돌리기도 힘든 상황이다.
이미 헬기 본체 곳곳에서도 전해질 용액이 새어 나오고, 엔진과 프로펠러가 꾸불꾸불하게 뒤틀린 걸 봐서, 근육은 죄다 끊어지고 관절은 휘어져 있을 게 분명했다.
여기서 다시 블랙 맨티스로 변형하면 팔다리가 싸구려 봉제 인형처럼 찢겨나가는 건 물론.X-38 자체로도 운용하기 힘들 게 분명했다.
하지만 예비 기체가 하나 더 있고, 반파되긴 했지만 X-38도 방공호에 하나 놔둔 덕분인지. 회장은 그 일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기색이다.
정말 별수가 없다면 그냥 길거리에 적당히 널브러져 있는 워커-B 타입만 주워 써도 문제 될 게 없다는 게 가장 클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이봐 블라디미르! 이미 볼 거다 본 상태인데 더 싸울 거냐?!”
회장이 확성기나 통신장비도 없이 큰 소리로 외치자, 라이노 비틀은 움직임을 멈추고 다리 기둥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잠시 후. 스모크 디스차지 영상을 꺼버리고, 기분 나쁜 표정을 지으며 걸어 나왔다.
“씨발 방금 전부 다 본 거냐?”
붉은 머플러와 아이보리색 코트를 휘날리며 기체 밖으로 내려온 블라디미르는, 곧바로 회장을 향해 한마디 내 던지며 당장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로 노려봤다.
“왜? 지금 바로 싸우려고? 이길 자신 있어?”
하지만 회장은 와이어를 통해 건물 밖으로 내려온 뒤, 오히려 당당하게 블라디미르의 앞에 빵 반죽처럼 크고 탄력 있는 가슴을 드러내 보이다시피 몸을 앞으로 쭉 뺐다.
블라디미르는 그런 회장의 코에 한 방 내지를까 라는 생각으로 주먹을 꽉 쥐었지만, 얼마 안 가 죄다 털어내듯 두 손을 높이 올리면서 한탄 섞인 말을 흘렸다.
“졌다! 내가 무슨 수로 네 녀석이랑 대등하게라도 싸울수 있겠냐?”
“잘 아네. 그러면 포로 취급해도 괜찮겠지?”
회장은 블라디미르의 아랫도리를 보면서, 일부러 입맛을 다시는 시늉을 냈다. 블라디미르는 질렸다는 듯 회장의 목을 딸 것처럼 날카로운 눈으로 노려봤다.
“미친년. 아까 내 본모습을 보고서도 여길 쳐다볼 생각이 드냐?”
그녀는 모르는 척 하며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 블라디미르의 아랫도리가 뚫어질 정도로 빤히 쳐다봤다.
“어라? 성기능 같은 건 장착하지 않은 거야? 요즘 안드로이드에 성기능과 임신 기능이 없는 모델이 어디 있다고?”
회장이 다시 한 번 입맛을 다시며 능청을 떨자, 블라디미르는 진짜 인간이라도 된 것처럼 인상을 확 구기면서 짜증을 부렸다.
“전투용에 그딴 걸 왜 다는데?”
그러자 회장은 다시 한 번 블라디미르의 아랫도리를 쳐다보며 코웃음을 쳤다.
“딱 내 취향의 힘세고 강한 남자인데 고자라서 아쉽네.”
“알고는 있지만 기분 나쁘니까 그만 두라고. 그리고 그딴 기능이 있어도 너같은 암퇘지랑은 붙어먹을 생각도 없으니까.”
블라디미르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처럼 입을 꽉 닫자, 회장은 표정을 싹 바꾸면서 장난기가 전혀 담기지 않은 말투로 질문을 던졌다.
“좋아 그러면 진지하게 물어보지. 혁명으로높은 놈들을 다 갈아 마시려는 블라디미르 네놈이 뭣 때문에 인권운동가에게 총을 겨눴지?”
“당사자한테 그것도 듣지 않고 일을 떠맡았냐? 하여튼 이러니까 대기업의 개는 다 똑같단 말이지.”
블라디미르가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생각도 없이, 비아냥거림으로 받아치자. 회장 역시 뒤통수를 야구방망이로 후려치는 것 같은 비아냥거림으로 받아쳐줬다.
“그 개한테 아랫도리 한 번 물려볼래? 난 지금 말콤 목사가 아니라 너한테 질문했어.”
그러자 블라디미르는 코트 안에서 큼직한 리볼버를 꺼냈다. 회장 역시 민스 미트 두 자루를 꺼내, 블라디미르의 이마에 겨눴다.
두 사람이 당장에라도 치고받을 것처럼 날카로운 분위기를 풍기던 도중, 응급처치를 하고 있던 잭슨이 두 사람의어깨를 붙잡으며 한마디 던졌다.
“정 그렇다면 삼자대면을 하는 게 어떻습니까?”
“삼자대면?”
“예 제 할아버…. 아니 말콤 목사와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하는 게 훨씬 빠르지 않겠습니까?”
“과연 그렇군. 말콤 목사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겠다는 말도 했으니, 한 번 더 막아냈으니까 지금이면 들어도 충분하겠지?”
회장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슬며시 웃었다. 블라디미르는 두어 번 눈을 깜박거리다가, 잭슨을 가리키며 회장에게 한마디 했다.
“의외인데 너희 직원. 이렇게 평화적인 방법도 다 내놓고.”
“뭐 이상하냐?”
회장이 눈을 두어 번 정도 깜박이며 블라디미르에게 물어보자, 블라디미르는 코웃음을 치면서 그녀의 질문에 대답했다.
“아니 싸울 때 보면 너보다 훨씬 미친개 같았거든, 게다가말콤 목사가 있을 때랑 없을 때 싸우는 모습이 아주 딴판이던데.”
“아 우리 직원들은 다 그래. 그 정도는 애교라고 생각해.”
블라디미르는 회장의 대답에 피식 웃으면서 두 손을 머리 위에 얹었다. 회장은 그런 블라디미르에게 총도 겨누지 않고 그를 앞세운 채 적당히 방공호 쪽으로 끌고 갔다.
잭슨이 보기에 두 사람은 방금 죽어라 싸운 상대라기보다는, 그냥 서로 의견 차이가 심한 악우를 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