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4화 〉file2-14 동무는 숙청할 수밖에 없겠군 (54/66)



〈 54화 〉file2-14 동무는 숙청할 수밖에 없겠군

“역시 사우스 스네이크의 전 직원은 싸움에 미친개였군. 이번 작전은 숙청 대상들을 먼저 내보내길 잘 했어. 그 자식들 싸움도 약한 주제에, 공을 세워 날 앞지르고 혁명을 완수한다느니, 당신의 방식은 구식이라느니 하면서 떠들어대며 내 말은 더럽게 안 들으니까.”

같은 시각. 블라디미르는 작은 건물 크기의 전차 포탑에 앉아, 쌍안경으로 잭슨과 T-117 부대의 전투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옆에는 감자칩과 얼음이 들어있는 콜라가 놓여 있어, 작전 진행 상황을 보는 게 아니라 한 편의 액션 영화를 구경하는 것처럼 보였다.

“대장! 지원 포격이필요합니다! 지금 상황이 매우 안 좋습니다.녀석은 낡아 빠진 워커-B 타입으로 우리 분대를 전부…. 으아아악!”

블라디미르가 감자칩 한 조각을 입에 넣을 때, 음성 통신으로 전투 중인 부하의 지원 요청이 들어왔다. 하지만 블라디미르가 통신 버튼을 꺼 버리기도 전에 격추당했는지, 비명과 폭발음이 한꺼번에 뒤섞이며 강제 종료되어 버렸다.

“그러게 상대를 우습게 보고 덤비지 말아야지. 옛날의 공산주의자들이 그런 식으로 앞뒤 생각 없이 달려드니까 혁명이 성공한 적이 없는 거라고.”

블라디미르는 잭슨과 T-117부대의 전투 장면을 모니터로 띄워, 다른 곳에 영상을 전송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모니터를 하나 더 띄워놓는데, 그 모니터에는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병사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블라디미르는 병사들이 얼어붙어 있는 모습이 나와 있는 모니터에 대고 큰 소리로 웃어댔다.

“혁명에 반기를 드는 놈들도 적이지만, 혁명을 실패로 몰아가는 놈들도 적이다. 적은 적으로 치는 법이라고 삼십육계에 나왔지 하하하!”

그가 내뱉은 말에, 병사들은 불편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딱히 그에게 말 한마디 던지지 않았다.다만 몇몇 병사들이 자기들끼리 눈치를 보면서, 불안한 기색을 드러내자. 블라디미르가 병사들의 머리를 툭 툭 치는  같은 말투로 다시 한번 주의를 줬다.

“잘 봐둬. 내 말도 듣지 않고 멋대로 사우스 스네이크놈들하고 교전 붙겠다고 하는 녀석들이 무슨 꼴을 당하는지.”

병사들은 자신의 전우가 단 한명에게 순식간에 죽어 나가는 꼴을 보면서도 블라디미르의 주의에 대답했다. 블라디미르는 조금 신경질적인 투로 나머지 주의사항을 병사들에게 전달했다.

“거기 놈들은 절대 너희들이 직접 건드리지 말고, 적당히 도망가면서 나한테 알리라고. 알았지? 특히 길고 검은 머리카락에 알몸 롱코트 여자는 눈에 띄면 죽었다고 생각하고, 시간 벌 생각도 하지 말고 내빼! 알겠냐?”

거기까지 부하들에게 주의사항을 남긴 블라디미르는, T-117이 딱 두 대가 남은 걸 보자마자. 부하들과의 통신 모니터를 전부  꺼 버렸다.

 다음 이제 자기가 나설 차례가 된 것처럼, 갑자칩과 콜라를  번에 다 먹어치우고 전차 포탑 안으로 들어갔다. 블라디미르가 포탑 해치를 닫기 전, 손목에 감겨있는 고급 디지털 시계를 쳐다보면서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좋아 이 기록도 봐둘  한데. 역시 사우스 스네이크에서 회장 다음으로 가장 많이 사람을 죽인 녀석답군. 다만 회장 녀석이 직접 모는  아니라서 전투가 너무 깔끔하다는 게 심심한 점이랄까.”

그는 재빨리 포탑 해치를 닫고 조종석 시트에 앉아 중앙 모니터를 켰다. 그 다음 목에 두르고 있던 붉은 머플러를 걷고, 목덜미에 감겨있던 케이블을 풀었다.

그리고 카메라와 위성 지도. 화기 관제 시스템과 연결된 중앙 컴퓨터의 접속 단자에 케이블을 꽂고 이제 막  대를 처리하려는 잭슨의 워커-B 타입을 노려봤다.

“위대한 혁명을 위해 죽어간 동지들을 위한 조포 대신 한  날려 줄 테니까, 기대하시라고 자본주의의 개새끼.”

전차의 중앙 홀로그램 모니터가 켜지면서, 꽤 먼 거리에서 맨주먹 싸움을 벌이고 있는 잭슨의 워커-B 타입에 조준점이 맞춰졌다. 블라디미르는 트리거에 가볍게 손가락을 갖다 댄 다음, 씩 웃으면서 꽉 눌러 인사 대신   날렸다.


“더 길게 상대할 가치도 없다.”

잭슨은 간단히 워커-B 타입을 조작해, 한 손으로 자동소총을  재끼는 T-117의 난사를 피해 자세를 낮춘 채 어깨를 앞세웠다.

탄환 중 몇 발이 어깨 장갑판에 맞고 튕겨 나갔지만, 크레모어 발사장치는 별 타격을 받지 않았다. 워커-B 타입은 거친 모터 소리를 내며, 겁에 질린  방어적으로 총알을 뿌리는 T-117을 향해 질주했다.

잭슨의 워커-B 타입은 낮게 숙인 상태에서, 어깨로 반파된 한 대를 들이받아 버렸다. 금속끼리 맞부딪치는 묵직한 소리가 폐허로 변한 도시  구석의 건물들을 진동시켰다.

동시에 옆에 서 있던 기체는 몸을 낮춰 어깨로 들이받은 자세 그대로 주먹으로 조종석을 내리 찍어, 터져버린 토마토 통조림 캔처럼 만들어버렸다.

그다음 바닥에 엎어져 버린 T-117의 조종석에 발을 얹고 그대로 고정용 말뚝을 박아 넣은 뒤, 금속제 오프로드 롤러를 꺼내 작동시켰다.

처음에는 금속이 갈려 나가는 특유의 불꽃이 튀겼지만, 잠시 후 비명 소리와 함께 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리고 워커-B 타입이 롤러 작동을 멈추고 발을 떼자, 발바닥이 도장에 인주를 묻힌 것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적 1개 분대 격파 완료. 그래도 이 정도 규모에 조종사 능력을 생각해보면 분명 정규 사설경찰답게 복병을 숨겨뒀을…. 말 끝나자마자 나오는군.”

T-117 분대를 전부 격파하자마자, 잭슨의 워커-B 타입 발밑에  발의 포탄이 떨어졌다.

포탄은 땅에 닿는 즉시 건물 하나 정도는 가볍게 집어삼킬 정도의 폭발로 변해, 잭슨의 워커-B 타입 기체를 더욱 너덜너덜하게 만들어버렸다.

폭발의 후폭풍과 파편에 얻어맞은  전부인데도, 잭슨이 몰고 있는 워커-B 타입은 녹슨 양철 인형 꼴이 되어버렸다.

리벳으로 대충 접합한 추가 장갑판이 떨어져 나가, 안쪽의 내연기관과 동력 공급 코드가 전부 다 드러나 버렸고. 오른쪽 어깨 위의 대형 크래모어 개패 장치가 파손되었다.

옆구리의 개틀링 역시 왼쪽 부분의 총신이 심하게 휘어져, 더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기습 포격이라니 제법 싸울  아는군.”

하지만 잭슨은 갑작스러운 초중전차의 공격에 당황하지 않고, 오른쪽 옆구리에 장착된 개틀링과 어깨 안쪽의 레일건을 전차의 바로 밑에 퍼부어댔다.

뒤이어 오른팔의 박격포 탄약이 전부  떨어지자, 그대로 떼어내 버리고 어깨의 레일건으로 전차의 양옆에 있는 건물들을 부숴 그 잔해가 주변에 흩뿌려지게해 일시적으로 바리케이드를 쳤다.

그리고 아까 격파했던 T-117의 잔해더미 쪽으로 워커-B 타입을 몰았다.

잭슨은 하반신이 박살난 T-117의 잔해를 오른쪽 옆구리의 대인용 개틀링으로 쏴 부쉈다.

T-117의 부품이 사방으로 튀면서 무기를 들고 있던 팔 역시 본체에서 떨어져 나가, 높이 날아올랐다.

보통 시리즈 H의 옵션 무장은 본체에 잠금장치가 있어, 이런 식으로 본체에서 파츠를 억지로 떼어내지 않는 이상. 손에서 놓칠 일이 거의 없었다.

워커-B 타입은 허공을 날아다니고 있는 T-117의 팔을 붙잡아, 그 손에 쥐어진 대구경 돌격소총을 뜯어냈다.  다음 워커-B 타입의 손에 강제로 장착시켜, 무기 정보를 확인했다.

“72mm 파열유탄 라이플 드라그노프-5 200발 들이 예비 탄창  개가 추가 장착. 현재 탄창 안에 들어있는 잔탄수 120발. 이 정도면 거의 쓰지도 않았군. 이런 식으로 박살 날 거면 뭐 하러 이런 걸 몰고 싸움에 나섰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제대로 된 공격을 하기도 전에, 잭슨이 먼저 손을 써둬서 고철 덩어리가 되었지만. 그는 이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 모양인지, 쓴웃음을 지으며 라이플의 안전장치를 수동으로 조정해서 해제시켰다.

이걸로 잭슨의 워커-B를 향해 탄환을 퍼부어댔던 드라그노프-5는, 무기를 거의  잃어버린 잭슨에게  도움이 되었다.

“아주 고맙군. 소중히 쓰도록 하지.”

잭슨은 아예 널브러져 있는 걸 최대한  생각인지, 워커-B 타입의 남은 한 손으로 T-117의 상반신을 들게 조작했다.

워커-B 타입이 들고 있는 T-117의 잔해는 경장갑에 가벼운 재질이라 내구도가 형편없었다.

하지만 눈앞에 쏟아지는 무차별 포격의 파편과 후폭풍을 막아내는 데에는 충분했다.

뒤이어 성능이 그리 썩 좋지 않은 워커-B 타입의 카메라와 색적장치가, 포격을 뿜어대는 전차의 정보를 조종석의 모니터로 전송했다.

“다포탑 초중전차 T-REX인가? 고립 때문에 기술과 자본이 떨어져 있는 아프리카 주에서는 정말 보기 힘든 타입이군.”

다포탑 초중전차 T-REX 역시 T-117과 마찬가지로 구 공산권 국가에서 거점 제압용으로 제작한 물건이다.

가뜩이나 험지 돌파력이 좋지 않은 전차의 단점을 더욱 극대화 시킨 애물단지다. 자유 합중국으로  세계가 통합한 이후에는 더더욱 쓸 일이 없었다.

사설 경찰들의 전투가 벌어지는 배경인 도시나, 잔해가 가득한 실직자 거주구의 전투에서 제대로 써먹을 수 없었다.

덕분에 각 주의 전시관에 관상용으로 놔두거나, 무기 수집 취미가 있는 부자들이 소장용으로 갖고 있는 게 전부였다.

“그래도 저렇게 둔한 다포탑 전차라면 내가 시리즈 H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지.”

시리즈 H가 지나치게 높은 전체높이에, 그리 두껍지 않은 장갑 탓에 전차의 먹이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였다. 구세대의 일반 전차를 사용했을 때에는, 높이와 장갑의 단점이 있으면서도. 험지 돌파능력과 건물 장악능력으로, 구세대 전차를 충분히 능욕할 수 있었다.

게다가 건물 및 시설파괴용으로 제작된 최근의 초중전차 역시, 시가전 기동력과 돌파능력에서 시리즈 H를 따라오기 힘들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시리즈 H가 형상기억 플라스틱 재질의 근육과 세라믹 재질의 내부 부품 덕분에 생각 이상으로 ‘가벼웠다.’라는 부분이다.

같은 크기라면 시리즈 H 쪽의 중량이 전차의 절반 이하. 전투기의 70% 정도인 가벼운 중량 탓에, 여러 가지 중장비를 한꺼번에 걸치면서도. 전차가 따라오기 힘들 정도의 운동성까지 갖추고 있었다.

지금 워커-B를 향해 포격을 날린 T-REX 역시, 건물 잔해와 반파된 도로에 걸려가면서 질주하는 탓에 조준도 잘 맞지 않고 움직이는 속도 역시 심히 느려 터졌다.

방금 잭슨의 워커-B가 대구경 포탄에 직격당하지 않은 것도, 아마 복구가 다 끝나지 않은 아프리카 주의 다소 거친 도로 사정이 큰 영향을 미친 모양이다.

반대로 잭슨의 워커-B는 가끔 탄약을 아끼기 위해, 발로 건물 잔해더미를  날리거나 높이 뛰어올라 포탑 윗부분을 라이플과 박격포의 집중사격으로 신나게 두들겨댔다.

“회장님의 스테이크만큼 두꺼운 장갑이군.  정도로는 포격을 멈추게 할 수는 없겠는데.”

잭슨의 워커-B는 지면에 착지하자마자, 자동소총의 사격 조정을단발로 놓고 내장형 조준장치를 외부로 꺼냈다.

조준용 스코프의 케이블을 머리의 통신장비에 장착한 뒤, 조준과 격발을 수동으로 조작해. 여러 개의 포탑에서 일정 간격으로 퍼부어대는 포탄을, 라이플 탄환 한 발 한 발로정확히 맞춰 떨어트려 가며 앞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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