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file2-11 너나 나나 다 모순덩어리네 그렇지?
폰테시티 호텔 전투로부터 두 시간이 지난 새벽. 발가벗겨진 채 온몸이 꽁꽁 묶인 병사는, 인중과 손톱 밑. 눈꺼풀 등이 난도질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독기 품은 눈으로 회장을 노려봤다.
그의 발밑에는 피와 손톱. 이빨 몇 조각 외에도, 밀가루 풀 냄새를 풍기는 하얀 액체가 몇 방울 떨어져 있었다.
한편 회장은 이제 지긋지긋하다는 듯 나이프를 바닥에 패대기치며, 다리 사이에 잔뜩 묻은 하얀 액체를 손가락으로 찍어 입에 넣었다. 그리고 억지로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갠 다음, 혀를 밀어 넣어 하얀 액체를 그의 목구멍에 넣어버렸다.
“으음 진해. 역시 젊은 건 좋은 거네.”
회장은 일부러 그에게 굴욕을 주기 위해, 고급 크림치즈라도 먹은 것처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입술을 혀로 핥았다.
남자가 고통과 모욕감에 얼굴이 더 심하게 일그러지자, 회장은 여유가 가득한 미소를 띤 채 그의 턱을 잡아 채 올렸다.
“자. 이쯤 되면 뭔가 말할 기분이 들지 않아? 그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이건 거의 중증 마조히스트 급인데? 아까보다 더 짜릿하고 더 즐겁게 해줄까?”
회장은 그렇게 말하면서, 평상시라면 절대 휴대하고 다니지 않을 스턴건을 꺼내 그의 아랫도리에 갖다 댔다. 그리고 전원 스위치를 누를락 말락 하면서 천천히 겁을 줬다.
“원래대로라면 진짜 지지지 않고 겁만 줄 생각인데, 내가 손에 힘이 빠져서 바삭하게 구운 호두를 달고 싶지 않으면 하나라도 털어놓으시지?”
하지만 그는 여전히 똑같은 말만 반복했다.
“나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그래. 그렇다면 역시 이게 최고지.”
회장은 스턴건의 전원 스위치를 누르려다가 바닥에 내던지고, 코트 칼라 부분에 숨겨둔 주사기를 하나 꺼냈다.
“갓 짜낸 싱싱한 헤비 메탈이라고. 지금처럼 꽁꽁 묶여서 꼼짝도 못한 상태에서 이걸 맞으면 어떻게 될지는 잘 알지?”
식욕. 성욕. 파괴 충동과 폭력성. 등을 한꺼번에 증폭시키는 효과 때문에, 가끔 헤비 메탈을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고문을 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예를 들면 손발을 못 쓰게 막아둔 다음 포르노 영상을 틀어주거나, 벌거벗은 여자를 들여보내 성욕을 자극하는 방식.
또는 이틀 정도 굶겨둔 다음, 눈앞에서 피가 뚝 뚝 떨어지는 스테이크를 먹는 모습을 보여주면. 몇 수십 배나 증폭된 욕망 때문에, 잘 훈련되고 세뇌된 병사라도 원하는 걸 술술 불게 만드는 식으로 사용해왔다.
특히 회장이 지금 들고 있는 주사기의 색으로 봤을 때, 회장 본인이 사용하는 90%농축액인 것 같았다.
이 정도면 부처 가운데 토막이라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효과가 강했다. 간단히 말하면, 전두엽 마비나 절제수술을 받더라도 끓어 넘치는 욕망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는 강력한 마약이다.
젊은 병사는 회장이 진한 농도의 헤비 메탈 주사를 자신의 목덜미에 찔러 넣으려 하자, 코웃음을 치면서 한마디 던졌다.
“그렇다면 그 전에. 영영 입을 다물어주지. 무슨 수를 쓰더라도 내 입에서 네년이 원하는 게 나올 일은 없을 거다.”
그 병사는 말을 마치자마자 이를 꽉깨물었다. 회장이 아차 싶어 그의 입안에 고문용으로 쓰던 널찍한 고무판을 입에 물리려 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미세한 스위치 특유의 잡음이 새어 나오는 게 훨씬 더 빨랐다. 그가 어금니에 숨겨둔 스위치를 누른 것과 동시에, 그의 온몸이 빨간 페인트가 들어있는 물풍선처럼 터져버렸다.
“이런 빌어먹을!”
그 남자의 몸뚱이가 산산조각 나면서 잘게 다진 고깃조각으로 변해버렸고, 회장의 온몸에 피와 뇌수. 살점과 뼛조각 등이 잔뜩 들러붙었다. 회장은 얼굴에 묻은 뇌수 쪼가리를 손으로 훑어내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이런 젠장맞을 새끼들!. 이것들은 목숨이 아홉 개라도 되는 줄 아나. 다들 이따위로 아무 의미도 없이 픽픽 죽어대고 있어? 하여튼 이 광신도 같은 놈들이라면, 분명 그자식이 데리고 다니는 부하가 맞다니까.”
“잭슨?
회장은 곧바로 잭슨에게 화상 통신을 걸었다. 잭슨은 말콤 목사와 대화하던 중이었는지, 따로 마련된 방 안에서 기타와 악보를 늘어놓은 채 말콤 목사와 마주 보고 있던 상태였다.
그는 잠시 방 밖으로 나가, 방공호 밖에서 회장과 다시 한번 화상 통신을 열어 대화를 시도했다.
“무슨 일입니까 회장님? 또 처리할 일이 있습니까?”
회장은 잭슨이 눈치 빠르게 밖으로 나가준 것에 소리죽여 웃으며, 사람 시체인지 칠리소스인지 모를 물건을 가리켰다.
“고기 하나 치워야겠다. 말콤 목사가 눈치채면 귀찮아지니까 피비린내 안 들통 나게 향수도 잔뜩 가져오고, 약품도 몇 개 챙겨둬. 그리고 나중에 말콤 목사한테 한 번 더 물어봐야겠어.”
잭슨은 화상에 드러난 시체를 보면서 한마디 던졌다.
“지금은 말콤 목사에게 비밀을 듣지 않겠다는 건 이것 때문이었습니까.회장님? 게다가 갖고 노는 것도 정도껏 해야죠. 다진 고기에서는 아무 정보도 나오지 않습니다.”
잭슨은 아주 정성스럽게 으깨진 시체를보며, 회장에게 웃음 섞인 한마디를 건넸다. 회장은 큰 소리로 한참 동안 웃다가, 고깃덩이가 된 남자의 시체를 발끝으로 툭툭 건드렸다.
그녀는 시체의 뼛조각을 발로 걷어차더니, 고양이가 그르릉거리는 투로 대답했다.
“아 그렇지. 내가 먼저 약속을 어겼으니까 수지가 안 맞잖아. 그리고 이건 내가 다진 게 아니라고, 몸 안에 파핑 캔디를 잔뜩 심어놓고 씹었단 말이야.”
“그것 참 아쉽군요. 별 정보는 얻지 못한 것 같으니 바로 시체를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잭슨은 한숨을 내 쉬면서 통신을 끄고 바로 움직이려 했다. 그때, 회장이 평상시와 다른 말투로 잭슨에게 한마디 던졌다.
“건물 안에서 벌어진 전투 봤지?”
“예 봤습니다.”
“저 녀석이 왜 이런 꼴이 났는지도 알아?”
잭슨은 평소대로 회장이 헤비 메탈에 취해 일을 저지른 것이라는 식으로 몰아가면서, 그녀의 의중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슬그머니 도망치는 것처럼 대답했다.
“그건 모르겠습니다. 고문하는 모습은 보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회장은 그런 잭슨의 속내 정도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
“비밀을 불지 않으려고 자기 몸 안에 폭탄을 박아 넣었더라고. 아까도 얘기했던 것 같은데 말이야?”
회장이 비웃음 섞인 투로 한마디 하자, 잭슨은 뭔가 걸리는 게 있다는 투로 시선을 돌렸다.
“내가 왜 이런 얘기를 두 번이나 하는지 눈치채지 못할 만큼 멍청하지 않다는 건 잘 알아.그래도 다시 한번 얘기할게.”
잭슨은 마른 침을 삼키면서 회장의 입에 시선을 집중했다. 회장은 어울리지 않지만, 다소 엄숙한 투로 평소랑 다른 말을 꺼냈다.
“너는 저런 녀석들처럼 목숨까지 내다 버리지 마. 특히 이번 호위 대상은 네 할아버지잖아. 내가 무릎 꿇고 네 할아버지 앞에서 사과하는 모습 보이게 할 생각은 아니지?”
회장이 어머니 같은 잔소리에, 잭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로날드가 일일이 말대꾸를 할 때보다 더욱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녀는 잭슨의 머리를 토닥이면서 한숨 섞인 투로 한마디 했다.
“위험할 것 같으면 바로 나한테 얘기하고 뒤로 빠져. 난 저렇게 쉽게 죽을 생각으로 달려드는 건 용납 못 하니까.”
“알겠습니다.”
“우리들은 전부 살아서 해결해야 할 목표가 있잖아. 아무리 좋은 목적이고 다른 녀석들을 살린다 해도 네가 죽으면 다 끝나는 거라고. 알았어?!”
“예. 문제가 생기면 바로 빠져나가겠습니다.”
“그 얘기 들은 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고. 말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실천해 잭슨.”
“예 알겠습니다.”
잭슨이 대답을 마치자마자, 회장은먹잇감이 내는 발소리를 들은 모양인지 눈을 가늘게 뜨면서 한마디 했다.
“잭슨? 네가 탈취한 워커-B 타입 아직 격납고 안에 고스란히 모셔뒀지?”
“예 그렇습니다. 곧 블랙 맨티스의 수리용 파츠로 전환하려고 했습니다.”
“다행이군. 곧 로날드랑 사라한테서 추가 보급이 올 때니까, 잠깐만 시간 벌어둬. 너라면 쓰레기장에서 막 건진 고철덩어리라도 큰 문제는 없겠지?”
“당연합니다. 그 정도쯤은 로날드랑 농담 주고받는 수준입니다.”
“좋아. 그러면 나는 말콤 목사를 다른 곳으로 빼돌린 다음 추가 보급을 받지. 그동안 잘 버티고 있어.”
“알겠습니다.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귀여운 녀석. 로날드한테 없는 이런 맛 때문에 늘 개기고 말도 안 듣지만 옆에 두고 싶어진다니까. 그러면 열심히 살아남으라고. 금방 돌아올게.”
회장은 아이를 집에 놔두고 외출하는 엄마처럼 말하면서 통신을 끊었다. 잭슨은 워커-B 타입의 조종석 해치를 닫은 뒤, 벙커 밖으로 빠져나왔다.
한편. 같은 시각. 아프리카 주 최대 규모의 식료품 생산 및 유통업체. 파사리 본사의 회의실 안에서는, 이디 아민 회장과 네다섯 명 정도 되는 임원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었다.
그들은 홀로그램 모니터를 통해 자료들을 읽어보면서, 폰테시티 호텔과 네덜란드의 풍차. 주변을 촬영한 영상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었다.
이디 아민 회장은 그대로 밀어버리면 굴러갈 것 같은 비대한 몸집에, 얼굴에는 기름기가 줄줄 흐르고 있었으며. 깔끔하게 벗겨진 알머리도 기름을 먹인 가죽처럼 보일 정도였다.
거기에 조금만 아래로 내려가면 얼굴을 절반이나 가릴 것 같은 주먹코. 흰자위도 거의 보이지 않는 실눈에 입술까지 크고 두툼해. 멀리서 보면 코와 입술밖에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특히 코와 입이 큰 탓에, 우악스럽게 밀어붙이고. 눈에 띄는 건 죄다 먹어 치울 것처럼 보여. 처음 보는 사람들이라면 귀중품이나 먹을 것을 뒤로 숨길 것 같은 외모였다.
그의 옆에는 젊은 백인 여성이 목줄을 매고 입과 눈을 가린 채, 짐승처럼 엎드려 있었다.
이디 아민 회장은 젊은 백인 여성이 엎드려 있는 고기 의자에 앉으면서, 자신과 피부색이 같은 흑인 임원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허여멀건한 반동분자 놈들한테 선물은 잘 보냈나?”
흑인 임원 중 한 명이 실실 웃으면서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지금쯤이면 모든 백인 해방단체들이 하이에나처럼 달려들 겁니다. 백인 녀석들 참 쉽더군요. 프락치로 심어둔 중간 관리인들한테 정보랑 돈만 주면, 동족을 사지로 몰아넣다니.”
흑인 임원은 자신의 위로 몇 세대 거슬러 올라간 조상이, 같은 식으로 동족을 팔았다는 사실도 모르고 지금 같은 짓을 하는 백인을 조롱했다.
파사리 사의 임원들은 갑작스럽게 들어온 외부 정보에 다들 들떠 있는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게 거의 고립된 거나 다름없는, 아프리카 주에 정보 하나 들여오는 거도 힘들고. 들여온다 하더라도 파사리 사 같은 기업이 아니면 쓰기도 힘들었다.
아프리카 주 내의 다른 기업들은, 이걸 퍼트리거나 사용하는 방법도 모르는 게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이게 파사리 사가 아프리카 주의 백인 차별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면서, 다른 자유 합중국의 기업 대부분에게 외면받은 탓이었다.
이디 아민 회장은 반쯤 쭉 빨은 굵은 담배를 백인 여성 의자에다가 적당히 비벼버렸다. 담배 냄새와 함께 살타는 소리가 기어 올라왔지만, 그 여성은 비명이나 신음도 흘리지 않고.
“그게 정보 출처가 옐로 페이퍼 뉴스 사라고 했던가? 그 새끼들 백인이 세상에서 제일 잘났다고 떠들어대던 놈들이잖아.”
그들은 백인 우월주의와 네오나치 사상. 그리고 극단적인 민족주의와 자본 절대왕정 등을 대놓고 지껄이는 언론사가, 아메리카 주의 언론 지분 30%를 점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웃음을 터트렸다.
자유 합중국은 기본적으로 ‘노동만 할 수 있다면 외계인이나 괴수도 국민이다.’라는 이념을 깔고 가는 형태이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인종차별이라는 것 자체를 굉장히 금기시하는 분위기를 갖고 있다.
특히 영화나 드라마. 만화랑 애니메이션 같은 미디어 매체에서, 노동을 신성시하며 인종과 재산 격차. 종교와 이념 등으로 서로 내분을 일으키는 내용에 대해서는 굉장히 강하게 규제하고 있었다.
또한 한편으로 노동에서 소외되는 장애인. 대기업 중역으로 오르기 힘든 여성. 수가 적은 소수인종 등을 지나칠 정도로 높이 띄워 올리는, 정치적 올바름이 유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의 단합을 막고, 노동자들이 서로에게 강한 경쟁의식을 품게 만들기 위해.
각 기업이나 직종별로 급여나 기업 복지 수준 등이 완전 ‘다른 계급’ 수준으로 보이게끔 조정되는 모순이 동시에 벌어지는 곳이기도 했다.
당연히 언론에서도 종교나 지역. 이념이나 민족 등으로 교묘히 이간질하고, 자유 합중국의 기본 이념에 거슬리는 사람들을 걸러내기 위한 ‘어용 진보 언론’ 등도 같이 운영하는 게 자유 합중국 언론의핵심 ‘표현의 자유’다.
“헛 참 역시 이익만 된다면 자기들끼리도 총구를 겨누는백인 놈들답군. 그에 비해서 우리 흑인은 얼마나 서로 단합이 잘 되어 있는지 보라고.”
그런 극우 언론사가 ‘흑인 우월주의를 내세우며, 백인 하층민 노동자들을 사용하는’ 식품 유통기업 파사리 사에게, 아프리카의 보석이라 불리는 말콤 루터 킹 목사에 대한 정보를 흘린 것이다.
그리고 파사리 사의 이디 아민은 여성의 항문에 다 피우고 남은 담배꽁초를 쑤셔 넣으면서, 눈을 감은 채 천천히 담배 연기를 내 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