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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화 〉file2-09 모두 폭력을 멈추시오! (49/66)



〈 49화 〉file2-09 모두 폭력을 멈추시오!

이미 잭슨의 워커-B는 두꺼운 장갑이 잔뜩 덮여 있는 양팔 하완부를 높이 올렸다.

그 덕분에 머리 위로 떨어지는 파편들을 거의 다 막아냈다. 하지만 남은  대의 T-117 분대원들은, 이미 카메라와 전자기기 대부분이 망가져 버려. 하늘에서 쏟아지는 기체 잔해를 고스란히 뒤집어썼다.

“이 정도면 충분히 못 움직이겠지만. 확실하게 끝내주지.”

잭슨은 한방에 끝장을 낼 생각으로, 오른쪽 페달 밑에 발을 걸어 확 올려 젖혔다. 조작이 입력된 워커-B는 오른쪽 발바닥 앞부분에 내장된 포격용 고정 말뚝을 지면에 깊게 박았다. 그리고 롤러를 회전시키면서 허리에 장착된 개틀링을 난사했다.

방금 불을 뿜은 것은, 시리즈 H의 장갑에 소음을 내는 게 전부인 대인용 개틀링이었다.

하지만 상대의 기체가 일부러 장갑을 제거하고, 인화 위험이 높은 부위의 방호능력까지 포기한 개조를 한  치명적인 실수였다.

 대의 T-117은 잭슨의 워커-B타입이 빙글빙글 돌 때마다, 본체가 스펀지처럼구멍이 뚫리면서 전부 폭발에 집어 삼켜졌다.

워커-B는 조종사 탑승자세로 몸을 낮게 숙여, 유폭으로 날아오는 파편들을 거의  피했다. 잭슨은 양쪽어깨를 가볍게 두들긴 다음, 불편한 기색이 잔뜩 담긴 신음을 내뱉었다.

“역시 조작감이 뻐근하군. 고철 더미를 긁어모은 물건이니 이건 어쩔  없는 부분인가.”

잭슨은 T-117 분대의 조종자까지 전부 다 사망한 걸 확인한 뒤, 다시 통신 회선을 열고 선글라스와 베스파에 연결된 위치 추척 시스템을 워커-B의 소프트웨어에 접속시켰다.

“이런. 상황이 영 좋지 않잖아!”

그는 회장이 뭣 때문에 고전하는지 훤히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늦지 않게 할 생각인지, 아무 정비도 받지 않고 워커-B 타입의 페달을 힘껏 밟아 X-38이 얻어맞고 있는 곳을 향해 전력 질주했다.

같은 시각. X-38의 조종석 안. 말콤 목사는 회장의 어깨를 붙잡으면서 창자가 끊어지는 것 같은 말투로 부탁했다.

“저 자들이 이대로 도시를 더 부수게 놔둬서는 안 되네! 어서 저들이 있는 곳으로 헬기를 돌리게! 한 사람이라도 더 죽기 전에 서두르라고!”

회장은 말콤 목사의 뜬금없는 부탁에 인상을 확 구기며, 수염 몇 가닥을 뽑힌 사자 같은 표정을 지었다.

“예? 그게 무슨 엿 빠는 소리죠?”

회장이 눈을 날카롭게 치켜뜨면서 열에 녹아버린 고무 가면처럼 얼굴을  구겼다. 그녀의 표정은 다른 사람이라면 눈을 슬쩍 피하면서 말을 돌렸을 정도로 위압감이 가득했다.

하지만 말콤 목사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더욱 단호한 투로 입을 열었다.

“내게  생각이 있네! 어서 헬기를 돌리게나!”

회장은 말콤 목사의 손을 쳐내면서 짜증 섞인 투로 대꾸했다.

“이대로 가면 우리  다 벌집이 되는데 그냥 알아서 죽으라고 목숨을 갖다 바칠 겁니까? 아무리 보호 대상이라고 해도  지시는 못 따라줘요!”

회장이 말콤 목사의 부탁을 거절하면서, 아무것도  들었다는 식으로 고개를 돌리려 했다. 그러나 묵묵히 자신을 노려보자, 눈알만 뒤로 살짝 굴려 그쪽을 흘겨본 채 한마디 더 던졌다.

“아니 당신이 보호 대상이니까 더더욱  지시는 못 들은 것으로 할 겁니다.”

하지만 회장은 이미 마음을 굳혔는지  이상 말콤 목사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말콤 목사는 쥐어 짜내는 것 같은 목소리로 다시 한번 회장을 설득했다.

“나도 이런 곳에서 그냥 죽을 생각은 없네. 내게도 살아날 방법이 있으니까 이런 말을 하는  아닌가.”

말콤 목사의 목소리에 이상함을 느낀 회장이 돌아보니, 말콤 목사 역시 옆구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큰 부상은 아니지만 오래 놔두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없었다.

회장은 상황이 급하다는 걸 확신하면서 그에게 한마디 던졌다.

“그 살아남을 방법이 제게 보이지 않으니까 당신의 부탁을 들어줄 수…. 이런 젠장! 한 시도  시간을 안 주잖아!”

회장이 뭔가 말하려 하던 중에도, 무수한 건물 잔해들이 헬기 머리 위로 떨어졌다.

회장은 레버를 복잡하게 비틀어, X-38이 거의 건물 벽에 달라붙을 정도로 기울였다. 말콤 목사는 한숨을 내 쉬면서도, 여전히 차분한 표정을 잃지 않고 조용조용 말했다.

“그렇군. 아직 자네에게 내가 어떤 카드를 갖고 있는지 말하지 않았으니 그럴 만도 하겠어. 내가 말한 대로 헬기를 돌리면, 내가 갖고 있는 비밀을 하나 밝히겠네.”

그러자 회장은 ‘정말 할아버지나 손자나 둘 다 고집불통이라는 건 똑같군.’이라고 혼잣말을 흘린 다음. 잔해에 휩쓸리지 않는 곳까지 X-38을 움직였다.

“좋습니다. 우리는 후불제니까 일단 하고 나서 알려주시면 됩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서비스가 끝내주죠?”

회장이 짓궂게 웃으며, 다시 X-38의 본체를 정면으로 돌렸다.

하지만 그때. 붉은 T-117이 다시 한번 빌딩 버스터를 쐈다. 빌딩 버스터 탄은 X-38의 옆에 서 있는 건물에 직격했고, 폭발의 후폭풍에 휘말려 기체가 잠시 조작불능 상태가 되었다.

게다가 엎친  덮친 격으로 반으로 갈라진 건물 윗부분이 곧바로 X-38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자잘한 부스러기라면 피하거나 적당히 헬기 배면으로 받아낼 수 있었지만, 이렇게 커다란  받는 순간 건물 잔해와 함께 떨어져서 찌그러진 깡통처럼 변할 게 분명했다.

“이런! 말콤 목사! 당신이라도 먼저 탈출하세요! 저는 당신이 확실히 탈출하는 걸 확인하고 나가겠습니다.”

회장이 조종석 해치를 열고 긴급탈출 레버를 힘껏 잡아당기려는 순간. 위에서 시리즈 H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X-38의 조종석에서 흘러나왔다.

“회장님! 무사하십니까? 너무 빠르게 긴급탈출을 하려는  같습니다만?”

“잭슨? 너도  아슬아슬할 때 오는구나.”

회장이 코웃음을 치면서 비아냥거리자, 잭슨은 손에 들고 있는 건물 잔해를 가볍게 내던졌다. 그리고 건물 위에 올라서 있는 T-117을 향해, 허리에 장착된 개틀링 탄환을 퍼부어댔다.

T-117무리는 다시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잭슨의 워커-B 타입을 향해 머리의 메인 카메라 파츠를 회전시켰다.

“회장님! 여기는 제가 맡겠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 아니 말콤 목사께서 말하시는 대로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회장은 말콤의 뜬금없는 음성 통신 내용에, 귀를 두어  정도 후벼 파면서 비아냥거림이 잔뜩 담긴 질문을 던졌다.

“응? 대체 너까지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말콤 목사에게 결정적인 카드가 하나 숨겨져 있습니다. 방금 전 호텔에서 그걸 확인했기 때문에 잘 알고 있습니다.”

“흐응.  말콤 목사한테 뭔가 들어놓고는 나한테 숨겨두는 거구나. 우리 회사에서 나 몰래 뭘 숨기는 직원은 어떻게 한다고 그랬지?  이걸로 내 손에 두 번은 죽어야 해. 알아?”

회장이 반쯤 진심으로 잭슨에게 화를 내며 따지자, 잭슨은 회장의 항의에 대한 대답을 힘겹게 끄집어냈다.

“지금은 말할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알았어. 어차피 이번 상황이 끝나면 말콤 목사에게 모든 걸 들어두기로 했으니까. 더 이상 건드리진 않겠어. 하지만 또 나한테 뭔가 숨기는  있으면, 바로 대갈통을 날려 줄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으라고 알았어?!”

“정말 감사합니다. 회장님.”

“그래. 일단 말콤 목사의 말대로 할 거니까. 그가 무사히 헬기에서 내릴  있게 잘 엄호하라고. 아무리 내가 말콤 목사를 안전하게 내려준다고 해도, 포탄  발이라도 날아들면 말짱 꽝이라는 건 알지?”

“예. 알겠습니다.”

잭슨은 곧바로 정면의 T-117부대를 향해 질주했고, T-117부대는 연막이 걷히자마자 아래쪽에서 건물 사이를 어지럽게 빠져나갔다.

그리고 견제사격을 하고 있는 잭슨의 워커-B 타입을 향해, 열화우라늄 탄과 150mm유탄. 빌딩 버스터 탄을 퍼부었다.

이에 잭슨의 워커-B 타입은 열화우라늄 탄은 건물을 방패 삼아 피했고, 유탄. 로켓탄은 개틀링으로 요격하면서 T-117부대의 시선을 끌었다.

다만 회장은 잭슨이 단박에 T-117 부대를 사살하지 않고 발을 빼는 모습이 불만인지, 굵은 시가를 입에 물고 아니꼬운 기분이 그대로 담긴 것처럼 이마와 미간에 잔뜩 주름을 잡았다.

“헛 참 짜식. 자기 할아버지 앞이라고 착한 척 하는 것 보게.”

회장이 대놓고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자, 말콤 목사는 아주 잠깐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가 싶더니. 아무 일도 없다는 투로 회장에게 질문을 건넸다.

“여기 내 목소리를 더 크게 들리게 할 수 있는 물건은 없는가?”

말콤 목사의 질문에, 회장은 왼손 새끼손가락 부분의 손톱과 중지를 눌렀다. 그리고 오른쪽 눈동자를 한 바퀴 돌리자, 그을음과 탄흔이 잔뜩 남은 베스파 한 대가 회장과 말콤 목사를 향해 날아왔다.

회장은 낮은 속도로 날고 있는 베스파를 말콤 목사에게 넘겨주면서 씩 웃어 보였다. 다만 그녀의 입 끝은 위로  올라가 있지만, 눈꼬리는 전혀 움직이지도 않았다.

게다가 입 주변에 주름이 잡힌 것에 비해, 미간이나 이마는 아무 표정이 없는 것처럼 평평했다. 이 정도라면 신경이 공룡 피부 같더라도 오싹함을 느낄 정도였다.

“자 확성기 가져왔어요. 여기 이 녀석에 대고 크게 소리를 지르면 됩니다. 저 미친개들 앞에서 어떻게 할지 궁금해졌으니까. 한번 잘 달래보시죠.”

다른 사람들. 특히 잭슨과 로날드마저 그녀의 이런 표정을 보면 잔뜩 겁먹고 얼어붙거나, 또는 납작 엎드려서 없는 잘못까지도 싹싹 빌었다.

하지만 말콤 목사는 그녀의 시선이 자신을 따갑게 찌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T-117 부대의 시선을 끌기 위해 위협 사격만 하며 조금씩 거리를 벌리고 있는, 잭슨의 워커-B 타입을 묵묵히 쳐다봤다.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용이 불을 뿜는 것처럼 목이 터질 기세로 소리를 질렀다.

“모두 멈추시오! 이게 대체 무슨 짓입니까!”

회장은 코웃음을 치면서 잠깐이나마 방패막이용으로 쓸 생각으로, X-38을 원격조작하려 했다. 하지만 별 것 없을 것 같은 말콤 목사의 한마디로 상황이 급변했다.

“에?! 거짓말!”

T-117 부대가 일제히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기체를 바닥에 앉힌 뒤 조종석 해치를 열었다.

그와 동시에 이미 상황을 알고 있던 잭슨 역시 워커-B타입의 움직임을 멈춰버렸다.

회장은 베스파의 카메라를 통해 그 광경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면서도, 도저히 믿기지 않아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모두 총이나 시리즈 H 따위는 버리고 돌아가시오. 이곳에는 당신들의 목적과 상관없는 사람들도 있지 않습니까?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까지 예고도 없이죽여가면서 이뤄야 할 정도로 당신들의 목적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회장은 베스파 한 대를  불러들여, T-117조종사들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확인했다.

그들은 T-117을 갑작스럽게 세운 것은 물론, 기관총과 로켓런처 등의 무기를 전부 해체한  조종석 해치를 열어버렸다.

회장은 그들의 뒤를 쫓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좀비처럼 비틀거리면서 걸어 다니는 조종사들을보며 크게 놀라 입을 쩍 벌렸다.

“거짓말. 자유 합중국에서 저런 일이 벌어진다고? 적이  죽지도 않았는데 총 한발도 안 쏘고 그냥 다 도망간단 말이야?”

잭슨은 회장이 서 있는 건물 옆까지 워커-B 타입을 움직였다. 그리고 잭슨 역시 시리즈 H에서 내려, 회장의 의문에 대신 답했다.

“거짓말 같지만 충분히 가능합니다.”

“잭슨! 네가 지금 그렇게 생각 없이 내릴 때야?! 대갈통에 요구르트가 들어있냐?! 뒤를 끝까지 밟아서 죽여야지! 뭐해! 불알이라도 떨어졌냐?! 이 개자식아!”

회장은 전투를 중지해버린 잭슨에게 온갖 욕을 퍼부으면서, 그를 밀쳐내고 조종석 해치 위로 올라탔다.

그다음 아직 중앙 제어 프로그램이 꺼지지 않은 워커-B 타입의 시트에 앉았다. 뒤이어 느릿느릿 기체에서 내리고 있는 조종사들 머리 위로, 개틀링 탄이라도 화풀이 삼아 퍼부어 버리려고 했지만….

“자네도 이쯤에서 그만하시게나! 지금 임무 때문에 하는 일인가? 아니면 단순히 살인을 즐기는 건가! 이미 항복한 사람들을 죽이는 게 사람이 할 짓이라고 생각하나!”

말콤 목사가 회장에게 귀가 멍멍해질 정도로 크게 소리를 지르자, 그녀의 몸이 맘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회장은 마치 온몸이 마비된 것처럼 딱딱하게 굳어지는 걸 느꼈고, 머릿속으로 지금 저들을 죽인다는  잘못된 일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계속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평소 같았으면 피를 보는 것과 인간의 몸뚱이가 산산조각 나는 모습.

사람들의 처절한 비명과 공포에 질린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한 사람 한 사람 정성 들여 죽이고. 그들이 찢겨 죽는 모습을 모니터 화면으로 크게 확대해서 봤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도망가는 사람을 굳이 쫓아가서 죽여야 하는가?’라는 생각에 몸이 저절로 움직여져, 워커-B 타입 조종석 시트에서 일어날 뻔했다.

“이, 이게 바로 그 카드라는 건가? 말 한마디 했다고 나까지 못 움직여?! 게다가 쓸데없는 생각까지  머릿속을 어지럽히잖아.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늙은이!”

말콤 목사는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 채 부들부들 떠는 회장을 놔둔 채 연설을 계속했다.

“아무리 이곳이 자네들에게 원망받을 만한 짓을  사람들만 있는 곳이라고 해도, 이런 식으로 무차별로 짓밟아도 된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네. 그러니 전쟁터에서나  법한 그런 물건은 전부 내버려 두고 각자 가야 할 곳으로 돌아가게 어서!”

말콤 목사의 연설이 끝나자마자, T-117의 조종사들은 전부 자기 기체를 버리고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잭슨은 이에 회장이 앉아 있는 워커-B 타입의 조종석으로 걸어가, 그녀를 조용히 일으켜 세워주려 했다.

“회장님. 상황은 끝….”

잭슨은 시트에 앉아있는 그녀의 모습에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회장은 호신용 나이프를 뽑아 허벅지를 찌른 뒤, 목에 헤비 메탈 주사기 두 개를 꽂아 넣었다.

그리고 천둥이 연속으로 내리치는 것처럼 폭소를 터트리며 조종간을 꽉 잡았다.

“지금 적을 앞에 두고 어디서 도망이야!  건드린 이상 전부  아프리카 주의 먼지로 만들어버리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다고!! 전부 다 죽여버리겠어!”

회장의  눈이 헤비 메탈 용액처럼 붉게 물들면서, 얼굴이 녹아내린 고무 가면처럼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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