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file2-03 고향 내 고향
아프리카 주의 하늘은, 오늘도 파란 하늘 위에 큼직한 태양이 강한 열을 뿌렸다.
그리고 눈이 멀 정도로 강한 빛을 쉴 새 없이 뿜어내고 있었다.
다른 모든 도시들이 미세먼지와 매연때문에 항상 싸늘함을 유지하는 것과는 반대다.
가끔씩 기후조절용 수송기가 날아다니며, 하얀 구름을 뿌렸지만 강한 햇빛과 복사열 때문에 순식간에 증발해버리기 일쑤였다.
우기가 아닌 이상은 늘 이런 날씨인지라, 두꺼운 코트를 입은 잭슨의 온몸이 땀으로 가득 찰 법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이 상황에서도 마치 작업용 안드로이드처럼 차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반면 회장은 벌써 질린 모양인지, 온갖 불평불만을 끊임없이 늘어놓고 있었다.
“더럽게 더워. 차라리 러시아 주나 알레스카 아웃사이드가 훨씬 더 나은 것 같다고! 게다가 이런 데에 오래 있으면 피부가 죄다 새카맣게 타버릴 것 같단 말이야!”
피부색은 잭슨에게 다소 예민할 수도 있는 말이었다. 그러나 잭슨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모니터에 비치는 아프리카 주의 풍경을 조용히 쳐다보며 한마디 흘렸다.
“저는 이 더위가 맘에 듭니다. 게다가 오래간만이군요. 이곳도….”
잭슨이 꽤 옛날 일을 떠올리는 것처럼 입가에 미소를 띠면서 눈을 감자. 회장은 별일 다 있다는 투로 질문을 던졌다.
“뭐 그래 봤자네 고향은 아프리카 주가 아니라 인디에나 시티잖아. 아프리카 주에 특별한 감정이라도 있는 거야?”
잭슨은 회한이 가득한 한숨을 내뱉으며 회장의 질문에 대답했다.
“살아 있었을 때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아이들을 위한 라이브 콘서트 계획을 세웠습니다. 물론 지금은 이렇게 기업 연합의 용병 신세가 되었지만….”
잭슨은 기타 대신 기관총이 들어있는 기타 케이스를 만지작거리면서 한마디 더 내뱉었다.
“아직도 그 라이브 콘서트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합니다. 불가능한 꿈인데도 말이죠.”
“그래도 ‘살아있었을 땐’ 나하고는 다르게 제대로 된 목표도 있었잖아. 그런 모습은 나도 부러울 정도라고.”
회장 역시 입가에 쓴맛이 담긴 한마디를 뱉으며 잭슨을 칭찬하자, 그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 손을 내저었다.
“회장님의 목표야말로 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훌륭하지 않습니까. 비행기는 그만 태우셨으면 합니다. 회장님.”
회장은 혹시 잭슨이 비아냥거리는 건가 싶어, 가느다랗게 뜬 눈으로 그를 노려봤다. 그러다가 잭슨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을 곱씹으며, 회장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않았다. 회장은 몇 분 정도 침묵을 유지하다가, 조종석 해치를 열고 지시를 내렸다.
“뭐 좋아. 이제 착륙이니까 대공화기나 미사일 안 날아오는지 잘 봐두라고.”
다른 곳이라면 착륙지에 민간인이 얼쩡거리는 것이나, 일반 차량이 휘말리는지 등을 확인하는 게 먼저였다.
하지만 실직자 거주지에서는 헬기를 털어먹으려는 약탈꾼들이나, 그들이 사용하는 무장차량. 정크 시리즈 H가 주변에 있는지부터 먼저 확인해야만 한다.
잭슨이 붉은빛이 번득이는 큰 선글라스를 끼고, 귀에 거는 테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들겼다.
그러자 렌즈 근처에 작은 홀로그램 화면이 떠오르면서, 주변 풍경을 아주 자세히 보여줬다.
잭슨은 2~30초 정도 헬기 착륙지점 근처를 둘러본 다음. 역시 그렇다는 듯, 코트 깃을 살짝 열어 권총과 기관단총이 잘 채워져 있나 다시 한번 점검했다.
그리고 돌격소총과 여러 개의 탄창이 들어있는 기타 케이스를 어깨에 매고, 마치 산책이라도 다녀오겠다는 투로 한마디 했다.
“대충 봐도 헬기 밑에 숨어 있는 게 2~30명 정도입니다. 역시 예전이나 지금이나 이곳은 다를 게 없군요. 제가 내려가서 처리하도록 하죠.”
잭슨이 말을 마치기 무섭게,몇십 명은 되어 보이는 폭도 무리가, 마치 시체 주변을 빙빙 도는 대머리독수리나 하이에나처럼 X-38 주변으로 몰리고 있었다.
아마 자기네들이 보지 못한 특이한 전투 헬기라는 게, 그들의 입맛을 돌게 한 모양이었다.
“이거 블랙 맨티스는 가뜩이나 장갑이 얇아서 권총 한 발만 맞아도 치명타인데. 하나같이 중무장이잖아. 애먹겠군.”
잭슨이 약탈자 무리들을 다시 한번 선글라스로 확인하면서 한숨을 내 쉬었다.
회장은 살짝 기분이 구겨진 것 같은 잭슨을 힐끗 쳐다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잭슨은 헬기 서브 시트 뒤에 놔둔 탄창 뭉치를 꺼내 코트 안에 하나하나 끼워 넣었고, 회장은 자신이 늘 사용하던 로프 사출식 수갑을 잭슨에게 넘겨줬다.
“내가 무사히 내려앉을 수 있도록 깔끔히 정리해두라고. 지원사격도 신나게 퍼부어 줄 테니까, 생채기 하나도 남기지 마! 상처 한 군데에 석 달간 10% 감봉할 거야!”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는 약탈자들은, 최소한 기관단총과 산탄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화염방사기나 대전차 화기. 분대 지원용 유탄 기관총까지 있었다.
이 정도면 구시대의 정규군이랑 별로 다를 게 없는 무장 구성이었다. 상처 한두 군데가 문제가 아니라, 살아남을 수 있을지 없을지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잭슨은 별거 아니라는 듯, 옅은 미소를 지으며 회장에게 인사한 다음. 반쯤 열려 있던 조종석 해치를 활짝 젖혔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장님.”
잭슨은 와이어 수갑을 오른손에 찬 다음. 와이어 끝의 흡착판을 조종석 외벽에 붙였다. 그리고 와이어 사출 그립을 쥔 채 곧장 헬기 밖으로 뛰어내렸다.
“저기 봐! 헬기 밖에서 사람이 내린다!”
“쏴 잡아! 참새 새끼처럼 떨어트리라고!”
약탈자 무리들은 엄청난 속도로 내려오는 잭슨을 향해, 기관단총과 돌격소총 탄환을 마구 쏟아부었다.
십 수 개의 총구에서 일제히 주황빛화약 불꽃과, 매캐한 연기가 터져 나오면서 팔이 끊어질 정도로 격렬한 드럼 연주 같은 소리를 냈다.
하지만 잭슨 역시 코트 안에서 한 자루의 자동권총을 꺼내, 하늘 높이 던지고, 다른 한 자루의 권총을 뽑아 들어. 아래쪽의 약탈자 무리들을 향해 쏴 갈겼다.
동시에 X-38의 개틀링이 회전하면서, 약탈자 무리들을 향해 15mm 텅스텐 탄두의 비를 뿌렸다. 또한 잭슨의 머리 위로도 개틀링 탄피의 비가 사정없이 쏟아졌다.
엄폐물에 등을 맡기지 않고 어설프게 앞으로 나온 약탈자들은, 순식간에 X-38의 개틀링 탄에 얻어맞아 잘 다진 고기조각으로 변해버렸다.
엄폐물 뒤로 몸을 숨긴 약탈자들은, X-38과 잭슨을 떨어트리기 위해 총구를 위로 향한 채 마구 쏴 갈겼고. 잭슨은 마구 튀는 탄피가 눈 앞을 가리는데도 불구하고, 사격의 반동에 몸을 실었다.
그는 마치 스트립 댄서가 봉춤을 추는 것처럼 어지럽게 돌면서 약탈자 무리의 손이나 어깨. 발등이나 정강이 등을 정확히 노려서 쐈다.
잭슨의 큼직한자동권총이 번갈아 가며 불을 뿜었고, 순식간에 다섯 명의 약탈자들이 발과 어깨. 정강이 부위가 박살 난 채 썩은 지푸라기 인형처럼 엎어져 버렸다.
“역시 조준 사격도 없고, 총 좀 잘 쏘는 저격수 하나도 숨겨놓지 않았어. 약탈자 녀석들이 어디 거기까지 생각할 여유가 있겠냐만 말이지.”
총알이 뺨과 목덜미를 스치는데도, 잭슨은 지금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했다.
이윽고 큼직한 권총의 탄창을 전부 다 비워버리자, 그때 잭슨의 눈앞에 방금 던져 올렸던 자동권총이 떨어지고 있었다.
잭슨은 텅 빈 권총을 바닥에 내던진 다음, 머리 쪽에 체중을 싣고 빠르게 내려가면서 떨어지는 권총을 잡아 남은 약탈자 무리를 향해 쏴 갈겼다.
뒤이어 두 번째권총까지 탄창이 텅 비어버리자, 잭슨은 권총을 전부 다 버린 다음. 코트 안에 채워둔 기관단총을 뽑으면서, 엄청난 속도로 하강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아래쪽의 약탈자들은 지원군까지 불러내, 자체적으로 제작한 자동소총과 기관단총으로 잭슨에게 집중포화를 퍼부어댔다.
약탈자 무리가 쏴 날린 로켓탄과 대전차 화기의 탄두가, 잭슨이 대충 갈긴 기관단총 탄환에 얻어맞고 땅으로 떨어졌다.
그 탓에 애꿎은 약탈자 무리 일부가, 바닥에 떨어진 유탄의 폭발에 휩쓸려 하이에나가 먹다 남긴 찌꺼기처럼 산산조각 났다.
이에 약탈자들은 더욱 당황하면서 총의 반동도 제대로 잡지 못했고, 그럴수록 총알은 아무데나 날아가면서 빈 공기만 꿰뚫었다.
반면 잭슨은 한 손에 불꽃을 뿜는 기관단총을 쥔 채, 사방에서 날아드는 총알을 가볍게 피해 지상으로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그 모습은 마치 횃불을 들고 외줄 타기 묘기를 부리는 곡예사 같았다.
그렇게 잭슨이 거의 다 지상으로 내려갈 때쯤. 약탈자 무리 중 몇몇이 어디에서 주워왔는지도 모를 장갑차 한 대를 끌고, 차체 위에 장착된 대공화기를 X-38에 쏴 갈기려 했다.
그때 잭슨은 바닥에 막 발을 딛으며, 재빨리 케이스 안의 저격 소총을 조립했다.
그리고 무릎 앉아 자세로 장갑차 대공화기의 탄띠 케이스를 노려봤다.
그와 동시에 잭슨의 오른쪽 눈 동공에 저격 소총의 크로스헤어와 비슷한 도형이 드러났다. 뒤이어 소총의 스코프에 빛이 번득이면서 한 줄기 레이저가 장갑차의 탄띠 케이스를 맞췄다.
잠시 후 약탈자가 대공화기의 방아쇠를 누르려는 순간. 잭슨이 한발 먼저 방아쇠를 조용히 당겼다.
천둥소리 같은 총성이 한 발 크게 울려 퍼지며, 탄띠 케이스에 큼직한 구멍이 뚫렸다. 대공화기 사수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크게 놀라 대공화기의 방아쇠를 놓쳐버렸다.
하지만 탄띠 케이스에만 구멍이 난 걸 확인한 약탈자는, 이미 바닥에 내려온 잭슨을 보면서 포구를 X-38이 아니라 잭슨 쪽으로 돌려버렸다.
“토끼를 두 마리 잡으려다가….”
잭슨은 피식 웃으며, 라이플을 어깨에 걸터 맨 채 조용히 일어났다. 그리고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장갑차의 탄띠 케이스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잠시 후 불길이 탄띠 케이스의 탄약에까지 옮겨붙으면서, 대공화기 포탑이 폭발을 일으켰다.
당연히 대공화기를 사용하려던 약탈자는 그대로 폭발에 휘말려, 몸뚱이가 결혼식장의 축하 꽃가루처럼 조각조각 난 채 날아갔다.
뒤이어 장갑차까지 연쇄적으로 폭발에 집어 삼켜지면서, 윗부분의 장갑판이 날아가 버렸다.
“바삭하게 구워지는 수가 있다고.”
잭슨은 방금 쏜 총알의 탄피를 손가락으로 하늘 높이 튕겨냈다가 다시 붙잡았다. 탄피의 크기는 거의 에너지 드링크 병과 비슷한 크기였다. 탄피 바닥에는 미트 팝콘-스파이스 타입 장약1호 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크기대비 폭발력이 매우 뛰어난 원격조작 유탄 미트 팝콘탄이다.
잭슨은 에너지 드링크 병 크기의 탄피를 코트 주머니에 찔러 넣은 뒤, 라이플을 다시 분해해서 기타 케이스 안에 집어넣었다.
“오래간만에 라이브 콘서트 무대에 선 기분이군. 관객은 그저 시체뿐이지만.”
잭슨은불타고 있는 장갑차 쪽으로 걸어가, 담배 한 개비를 꺼냈다. 그리고 장갑차에 들러붙은 불에 담뱃불을 붙여 한 모금 깊게 빨아들였다.
그때. 작은승용차 한 대가 잭슨이 서 있는 곳 근처에 멈춰 서는 게 눈에 들어왔다. 잭슨은 혹시 있을 또 다른 공격에 대비해서, 아직 코트 안에 숨겨둔기관단총을 뽑아 들었다.
하지만 승용차 안에서는 비무장 상태의 덩치 큰 노인 한 명만 나왔다. 빈손인 건 물론이고 몸 어딘가에 무기를 숨겨둔 기척 같은 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의 손 역시 무기를 들고 사는 티가 전혀 나지 않았다. 잭슨은 총을 자주 사용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면서, 그가 평범한 일반인이라는 걸 다시 확인했다.
“신기한 일이군. 일반인이 이런 곳에 들릴 이유가 없는데. 일단은 숨어야겠군.”
덩치 큰 노인은 차 밖으로 나오자마자, 약탈자들의시체가 사방에 널브러진 광경에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엎드렸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이 사람들이…. 이제 약탈 같은 건 그만두라고 그렇게 얘기했건만…. 어째서 이런 일을 벌이는 건가!”
“이것 참. 실직자 거주지에서 시체 처음 보는…. 서, 설마?!”
잭슨은 재빨리 몸을 숨기려 했지만,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마치 그대로 돌이 된 것처럼 바짝 굳어버렸다.
회장은 갑자기 잭슨이 바짝 얼어붙은 채 몸을 숨기지 않는 걸 보자마자,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리고 바로 모니터를 확대했다.
모니터를 확대해보니 하필이면 이번 임무 대상. 인권운동가 말콤 루터 킹이 잭슨에게 달려가, 그의 어깨를 잡아 흔들고 있었다.
“베스파 2번. 무슨 얘기를 하는지 들을 수 있게 해줘.”
회장이 베스파에 지시를 내리자, X-38주변을 돌고 있던 소형 드론 중 한 대가 말콤과 잭슨의 머리 위로 날아갔다. 잠시 후. X-38의 스피커에 말콤 루터 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너 내 막내손자 잭슨 아니냐? 넌 분명 내 둘째 녀석이 절연한 뒤로 단 한 번도 직접 본 적이 없었는데. 여긴대체 무슨 일로 온 거냐?”
말콤은 놀라움 반 기쁨 반으로 잭슨을 맞이했다.
하지만 잭슨은 말콤 루터 킹의 얼굴을 보자마자, 크게 낭패를 봤다는 표정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관단총을 코트 안에 채워둔 다음, 조용히 회장에게 음성통신을 보냈다.
“여기는 잭슨. 보호 대상을 확보했습니다. 다음 지시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회장은 그 모습을 모니터로 보면서, 난처한 기색을 훤히 드러냈다.
그리고 지금 떠 있는 모니터 옆에, 다른 홀로그램 모니터를 하나 띄워 놓은 다음. 자유 합중국 네트워크로 몇 가지 정보를 검색했다.
그리고 말콤 루터 킹과 그의 아들로 보이는 중년 남성들의 사진. 맨 끝에 잭슨의 사진까지 나란히 늘어서 있는 걸 확인하고 기분 나쁜 신음을 흘렸다.
“잭슨 이 녀석. 이것 때문에 자진해서 책상 밖으로 나선 거잖아. 이거 꽤나 골치 아프겠는데. 이렇게 꼬인 상황이면,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로날드한테 연락할 수밖에.”
회장은 인터넷 모니터를 끈 다음. 곧바로 로날드에게 음성통신을 보냈다. 로날드와의 통화가 끝난 뒤, 그녀는 잭슨과 말콤 루터 킹의 앞에 헬기를 세우고 두 사람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