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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화 〉file2-02 이건 소풍이 아니지만 도시락이랑 간식은 챙겨둬 (42/66)



〈 42화 〉file2-02 이건 소풍이 아니지만 도시락이랑 간식은 챙겨둬

제리는 한참 동안 회장과  밑의 직원들 눈치를 살피다가, 다들 지루한 표정을 지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말콤 루터 킹이라는 인권운동가의 호위 임무입니다. 그를 안전하게 아메리카 주의 폭스 방송국으로 모셔 와서, 평등과 평화에 대한 연설 방송을 하게 만들면 됩니다.”

제리가 임무 내용을 전달하자, 회장은 책상을 두들겨가면서 폭소를 터트렸다.

“하, 하하! 하하하하! 자, 잠깐? 다시 한번 말해봐! 그래!? 그래서 무슨 임무라고?”

“인권운동가 호위 임무입니다. 폭스 방송국에 도착할 때까지 말입니다. 확실히 굳혀두지만 이건 농담 따위가 아닙니다.”

“기업 연합에서 감찰관한테 호위 임무를 내렸다고?  하던 말살이나 전면전 임무가 아니라? 게다가 인권운동가? 폭스 방송국까지?! 하하하하! 이거 기업 연합도 완전히 맛이 갔구만! 대체 뭣 때문이지?”

회장뿐만 아니라 로날드와 사라. 심지어 평생 열 번 이상을 웃을 것 같지 않은 잭슨마저 배를 부여잡고 크게 웃어댔다.

다만 잭슨은 잠깐 웃다가 말콤 루터 킹 목사의 이름을 되뇌면서 차갑게 굳어진 표정을 지었다. 사라 역시 그걸 눈치채고 금방 웃음을 거뒀고, 로날드만 끝까지 웃다가 사라에게 발목을 걷어차이고 나서 웃음을 멈췄다.

잭슨을 제외한 세 사람이 웃었던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피비린내 가득한 집단인 감찰관 업체에 호위 임무를 맡기는 것부터가 넌센스였다.

게다가 하필이면 인권운동가의 연설 장소가 노조 말살과 거주지 차별. 실직자 혐오 등을 부추기는  2의 괴벨스라는 멸칭을 받는 아메리카 주 중앙 제일의 폭스 방송국이라는 것이었다. 이것만으로도 이 네 사람의 뭔가를 건드려 다들 폭발적인 웃음을 내게 된 것이다.

단 소녀만 처음부터 이 사람들이 왜 이렇게 한꺼번에 웃는지 알 수 없어, 두려움에 사로잡힌 표정으로 주춤거렸다. 그리고 잭슨 역시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소녀 옆으로 조용히 옮겨갔다. 그러자 제리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회장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게 자유 합중국 곳곳에서 인종차별 시위랑 인종차별에 대한 항의 시위가 서로 충돌하는 중인데, 인종차별 항의 시위대 쪽에 너무 힘이 실려서 말이죠. 거의 모든 사설 경찰 업체가 인종차별 시위대 쪽에 몰려버렸습니다.”

그리고 제리는 다른 모니터 화면을 바로 옆에 띄워 놓았다.

그 화면에는 대규모의 시위 충돌 현장이 그대로 전달되고 있었다. 한 쪽은 워커-B 타입의 시리즈 H 부대로  몸의 시위자들을 향해 기관총 탄환과 화염방사기의 불꽃을 퍼붓고 있었다.

심지어 몇몇 부대는 탄약도 아깝다는 이유로, 자동차나 돌. 시리즈 H의 파편을 들어 던지거나. 맨발로 시위대를 짓밟기도 했다.

그리고 이 워커-B 타입 시리즈 H의 어깨와 흉부에는 JAPS에서부터 하겐 크로이츠 마크. 동양인들의 주식과 비슷한 벌레인 LICE라는 멸칭. 심지어 초콜릿 모양으로 희화화된 흑인을 씹어 먹는  묘사된 스텐실 마크가 덕지덕지 들러붙어 있었다.

“인종차별 항의 시위대에 힘이 실린다고? 어이없군 그래.”

“게다가 돈 안 되면 도넛이나 빨면서 놀 사설 경찰들이, 인종차별주의자 편에 선다는 게 말이 되는 거야? 걔들 하나같이 개털 빈털터리잖아. 그따위니까 인종차별에 매달리지.”

자유 합중국에서의 인종차별주의자는, 대부분 실직자들이나 약탈자 같은 교양 없는 하층 노동자들.

아니면 이미 자유합중국에서 살 자격이 없다 싶은, 노동력을 지불할 수도 없는 구세대의 늙은이들.

또는 강제로 아웃사이드에 밀려날 위기에 처한, 최근의 실직자 후보군 젊은이들이 전부였다. 하나같이 사설 경찰 한 명을 고용할 돈도 없는 비렁뱅이들이었다.

“원래는 그렇지만, 자금줄이 몰래 이어지고 있던 모양입니다. 저희도 그 자금줄을 찾아보는 중입니다. 하지만 상대 쪽이 꽤 고단수인 모양인지 쉽게 드러나지 않는군요.”

제리의 대답에 회장은 웃음을 멈추고 깊은 진흙  같은 생각에 푹 잠겼다. 다른 임원들 역시 다들 기분 나쁜 표정을 지으면서, 모니터 화면이 아니라 테이블 쪽으로 시선이 옮겨갔다.

소녀는 갑작스러운 분위기 변화에 잔뜩 겁을 집어먹고 머리를 푹 숙인 뒤, 손으로 정수리를 감쌌다.

자유 합중국은 ‘노동’만 할 수 있다면, 인종이나 성별. 장애 종교 등의 차별 요소는 전부 배제하는  기본 방침이다.

그 탓에 기존 기득권 중 차별행위로 막대한 이익을 얻어오거나, 차별행위를 지지하던 이들은 전부 다 숙청당한 지 오래다.

그럼에도 지금 벌어지는 인종차별 시위에 이어, 인종차별을 하는 측에 힘이 실린다는 것은  그대로 자유 합중국의 근본을 뒤흔드는 대규모 사태나 다름없었다.

“이거 보통 일은 아닌 것 같네. 그러면 말콤 루터 킹 선생은 어디에 있지?”

물론 소녀와 잭슨을 제외한 나머지 직원들 역시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모니터의 제리를 보면서 두 사람의 대화에 집중했다.

회장이 웃음기 없는 표정으로 딱딱하게 질문하자, 제리는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 섞인 대답을 내놓았다.

“지금이라면아프리카 주 전체를 돌면서 전 인류 통합에 대한 연설을 하고 있을 겁니다.”

회장은 거의 비웃음에 가까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팔자도 좋군. 그런 흙탕물에 스스로 뛰어들다니, 한 발짝 뗄 때마다 약탈자 놈들한테 목숨이 노려지는  아는지 모르겠어. 좋아 그러면. 내가 모시러 가지.”

회장이 자리에서일어나려 하자, 소녀 쪽으로 옮겨간 잭슨 역시 따라 일어나면서 회장을 불러 세웠다.

“잠시만 회장님.”

“잭슨?”

“이번 임무 저도 동행하겠습니다.”

잭슨이 선뜻 앞으로 나서자, 사라는 물론 잭슨의 일이라면 항상 비웃음을 보내던 로날드 마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회장 역시  한마디 하지 않고 조용히 잭슨의 눈을 한참 동안 쳐다봤다.

그러다가 로날드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로날드는 어깨를 으쓱하며 흥미 없다는 듯 맛대가리 없는 녹색 크래커를 씹어댔다. 사라가 시선을 피하는 것까지 본 회장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좋아. 원래는 로날드를 데리고 가는 게 맞지만, 로날드하고 정찰팀 전체에 휴가를 줘야겠지? 세리울 복구 작업에 기술반인 사라가 빠지면 아무것도 안   분명하고.”

“그러게나 말입니다. 지금 저는 물론이고, 저희 팀 전부 다 쉬지 않으면 완전히 엎어질 겁니다. 이번엔 정찰팀 전부 쉬게  주시죠.”

로날드는 마치 배를 째라는  삐딱한 자세로 의자 위에 몸을 눕혔다. 사라 역시 로날드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한마디 던졌다.

“마침 도시 복구 인원도 한참 부족한데,  겸해서 세리울 복구 작업에 투입 시키는  어때 로날드?”

“하긴 그냥 순전히 놀기만 해도 다들 녹슬기만 하겠지. 적당히 굴리라고.”

둘은 그렇게 얘기하면서 서로 한쪽 눈을 찡긋했다. 그러자 회장은 한숨을  내 쉬면서 마치 강아지 부르는  같은 손짓으로 잭슨을 가리켰다.

“이번엔 잭슨 네가 따라오라고.”

확실히 로날드의 부상도 아직 완전히 치료되지 않았고, 정찰팀은 거의  괴멸당한 상태라 실직자들  일부를 다시 고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복구 작업 중인 민간인까지 다시 징집해야 할 상황이다. 잭슨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고, 눈치가 둔하지 않은 탓에 회장의 눈에 띄지 않게 두 사람에게 감사를 표했다.

“간식은 사흘치만 가져가고 나머지는 네가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으로 꽉 채워둬 알았지?”

회장은 잭슨에게 장난이 가볍게 섞인 지시를 내렸다. 마치 장 보러 가는데 어린 자식의 동행을 허락해주는 젊은 엄마 같은 말투였다.

평소 다른 사람들을 사납게 노려보거나, 적. 또는 협상 대상을 비웃을 때 보여주던 예리한 표정과 딴판이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잭슨은 별 이의 없이 자신의 동행을 허락해준 회장에게 공손히 인사했다. 회장은 슬그머니 미소를 지으며 잭슨의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는 투로 지시를 내렸다.

“그러면 괜히 시간 끌지 말고 바로 출발하자고. X-38 한 대하고 사이드와인더 네 대. 아직 수거하지 않은 시리즈 H 한 대 분량의 파츠도 준비해둬. 온전한 기체가 없으면 정크라도 짜집기해서 준비해달라고.”

“알겠수다 회장 나으리. 정크 부품 수거는 정찰팀이 좆 빠지게 구를 테니까, 정비반에도 지시를 내려 주십쇼!”

로날드에게 정비반 얘기를 들은 순간, 회장은 아차 싶은 표정을 지으면서 사라를 빤히 쳐다봤다.

하지만 사라는 이미 다 준비되었다는 듯, 스프링이 튀어 오르는  같은 기세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뻣뻣하게  채 거의 잘난 척에 가까운 당당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니콜라이 영감님의 개발  정비 설비는 일단 다 복구했으니까, 상태가 정말 안 좋은 부품이라도 다 구해오세요. 저하고 꼬마애 둘이서 수리해볼 테니까요.”

사라가 말을 마치면서 소녀를 가리키자, 회장은 적잖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라? 시리즈 H의 정비랑 제작도 가르치기 시작한 거야? 사라 너라면 몰라도 저 어린애까지 손대기에는 복잡할 텐데. 게다가 다른 데 관심 주지 말라고 게임이랑 장난감도 잔뜩 안겨줬는데 벌써 그런 것까지 배워?”

회장의 질문에 사라 역시 황당하다는 투로 대답했다.

“게임만 해도 순식간에 배워서 한 달  정도의 게임을 이틀 만에 볼  다 보는 수준이에요. 장난감은 어지간히 복잡한 놈도 이틀이면 다 분해해서 개조하거나 복제할 수 있을 정도로 손재주도 좋은 아이에요.”

“분명 정밀검사 때. 혀가 잘려나간 거랑 성폭행 흔적 외에는 특이사항이랄 것도 없었지?”

사라는 입술을 비죽 내밀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예 확실해요. 어쨌건 당분간 게임은   없어서 심심풀이로 정비를 가르쳐줬더니 말도 안 될 정도로 빠르게 배우고 있어요. 니콜라우스 영감님도 없는 지금 상황에서는 오히려 잘  게 아닐까 싶은데.”

회장은 소녀를 빤히 쳐다보면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소녀는 회장이 자신을 왜 그렇게 쳐다보는지 이해하지 못해, 약간 두려운 기색을 드러내며 뒤로 주춤거렸지만. 사라가 그녀의 손을 붙잡고 회장이 일부러 바보 같은 미소를 짓자. 그제야 약간 풀어진 모양인지  이상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흠 게임은 분명 반년 치를 넣어줬는데. 그걸 죄다 홀라당 해치우고 정비를 배웠다고? 좋아. 다음에는 3년 치 게임을 넣어 줄 테니까 가끔이라도 같이 즐겨줘. 알았지?”

사라는 소녀를 한참 동안 쳐다봤다. 소녀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흥미 없다는 듯 고개를 돌리며 차갑게 대답했다.

“뭐 저야 신작 게임 산더미 위에 올라앉으면 그만이니까요.”

회장은 사라의 코를 검지로 가볍게 찌르면서 소리죽여 웃었다.

“참 솔직하지도 않은 녀석이네. 그렇게 귀여운 구석이 없으면 잭슨을 휘어잡을  없어요!”

그러자 사라는 얼굴빛이 잘 익은 토마토처럼 붉게 물들이면서, 확 풀어지는 표정을 억지로 감추느라 심하게 일그러진 채 회장에게 소리를 빽 질렀다.

“그런 소리는 그만두세요!”

회장은 실웃음을 입가에 남긴 채 사라의 머리를 살짝 두들기면서, 곧바로 등을 돌려 잭슨에게 출발 준비를 명령했다.

“알았어. 알았다고. 그러면 괜히  시간 끌지 말고 바로 출발하지. 잭슨? 나는 조금  쉬다가 출발할 거니까 미리 다 준비해둬.”

회장이 지시를 내리자마자, 회의실 자동문이 열리면서 허수아비 모양의 작업용 로봇  대가 큼직한 손수레를 밀고 들어왔다.

손수레 위에는 조립식 저격소총과 돌격소총. 기관단총 두 자루 권총 두 자루. 그리고 화약 냄새가 확 풍겨오는 긴 코트 한 벌과 큼직한 일렉기타 케이스가 올라와 있었다.

잭슨은 코트를 걸친 뒤, 코트 안에 채워진 홀스터에 권총과 기관단총을 꽂아 넣었다. 그 다음 손수레 아래 칸의 서류가방 안에 기관총과 돌격소총을 집어넣고, 마지막으로 기타 케이스 안에 들어있는 기관총과 탄띠를 간단히 점검했다.

“이미 다 준비했습니다. 이제 출발하시면 됩니다.”

회장은 걸어 다니는 무기고처럼 여러 가지 총기류를 잔뜩싸 짊어진 잭슨을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그녀는 잭슨의 어깨를 가볍게 치면서 피식 웃었다.

“역시 실직자 거주지에 갈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아는데. 가끔 같이 출장 가면 여러 가지로 재미있겠어.”

그러자 잭슨은 슬며시 웃으면서 대답했다.

“제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이니까요. 어딘 안 그렇겠냐만, 고향이 늘 화약 냄새랑 시체 썩는 내가 나는 곳이라는 사실은 영 불쾌하지만 말입니다.”

회장은 X-38의 상태를 점검할 생각으로 잭슨과 로날드. 사라를 전부 남겨둔 채 임시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회장이 나가면서 문을 닫는 순간. 로날드와 사라는 잭슨을 쳐다보면서 한 마디씩 던졌다.

“이봐 잭슨.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미  짐작하고 있지만, 적당히 하는 게 좋아. 너무  나가면 회장이라도 가만히 안 있을 거니까.”

로날드는 평소처럼 비아냥과 조롱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를 걱정하는 투로 한마디 했다.

사라 역시 잭슨의 바짓자락을 잡아당기며 울  같은 표정을 지었다.

“잭슨. 나랑 약속해.”

잭슨은 로날드는 무시한 채 사라를 돌아보면서 한마디 던졌다.

“무슨 약속?”

“돌아오자마자 바로 신작 게임 하자고. 무슨 뜻인지는 알겠지?”

그녀는 퉁명스럽게 대꾸했지만, 얼굴이 잘 익은 토마토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잭슨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지킬  있도록 최선을 다하지.”

 한마디를 끝으로 잭슨 역시 회의실 밖으로 나갔고, 사라는 잭슨의 등을 보면서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약속 지킬 수 있을까?”

로날드는 어깨를 으쓱하며 시원치 않다는 투로 한마디 했다.

“그랬으면 좋겠는데. 저 녀석 성질머리를 믿을 수 있어야지. 막 나갈  나보다 더 심각한 또라이 새끼잖아.”

평소 같았으면 사라가 로날드의 다리 사이에 킥이라도 한 방 먹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 역시 로날드가 내 던진 말을 부정할 수 없었는지, 입을 꽉 닫고 자리에 앉았다.

사라의 머리 크기만큼 작은 창밖에서는 하늘에 새카만 먹구름이 끼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먹구름 사이로 기후조절용 수송기 데메테르가 날아다니면서 하얀 구름을 먹구름 위에 덧씌웠다.

사라는 농업용 기후조절 장치 데메테르가 먹구름 속으로 숨는 걸 보자, 커튼을 닫고 그대로 책상에 엎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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