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1화 〉file2-01 불타는 목걸이 (41/66)



〈 41화 〉file2-01 불타는 목걸이

같은 시각. 아프리카 주의 실직자 지역에서는, ‘심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검은 피부의 젊은이들이 투실투실하고 기름진 백인 남자 두 명과, 젊은 여성 세 명. 그리고 어린애 다섯 명의 목에 타이어를 씌우고 있었다.

타이어에서는 액체가 찰랑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진한 석유 냄새가 백인들의 코를 강하게 찔렀다.

흑인들은 가스 토치를  채, 타이어를 목걸이처럼 걸고 있는 백인들을 향해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들은 백인들  제대로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벌벌 떠는 어린아이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일부러 보라는 듯 그의 눈앞에 가스 토치의 불길을 뿜어대며 씩 웃었다.

“너 목청 좋게 생겼는데? 비명이 아주 찰지게 감기겠는데.”

그러자 그 아이의 부모로 보이는 투실투실한 남자가 앞을 막아서면서 큰소리로 외쳤다.

“다, 다들 대체 뭐 하는 거야? 아르파트헤이츠 정권은 다 끝났잖아! 기업 연합에서 서로 화해하고 손잡고 나가자고 발표한 지 언제인데 아직도 이런 게 용납될 것 같아?”

그가 한마디  하려고 하는 순간. 가장 덩치가 크고 왼쪽 뺨에 세로 흉터가 난 흑인이 그의 타이어에 불을 붙여버렸다.

투실투실한 남자의 상반신이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고, 그 불똥이 어린애들에게도 튀어. 둘 다 나란히 석유 타는 불에 온몸이 타 들어가기 시작했다.

넥 레이싱. 자유 합중국 초기에 일자리를 잃거나 범죄 등을 저질러서 쫓겨난 백인들이, 아프리카 주에 들어오면서 백인 우월주의 정권을 세울 때. 이에 반대하는 흑인 과격파들에게 겁을 주기 위해 고안한 처형 방법이었다.

타이어 안에 가솔린을 가득 채운 뒤, 그걸 튜브처럼 목에 걸고 불을 붙이는 사적 제제였다.

살이 불에 녹아내리는 고통은 더 오래가고, 타이어가 탈 때 나는 유독가스 때문에 확실히 죽는 것은 물론. 만에 하나 살아난다 해도, 타이어의 유독물질을 뒤집어 쓴 채 피부가 녹아. 차라리 안락사를 하는  여러모로 인도적인 조치라고 하는 악질 처형법이었다.

하지만 기업 연합이 노동인구 확보를 위해, 타협 없이 백인 우월주의 정권을 무너트린 이후. 아직 도망가지 못하고 남은 백인들은, 정작 자기네들이 고안한 처형 방법을 그대로 맛보게 되었다.

그렇게 실직자 거주구에서, 하루에도 몇백 명씩 그릴로 구운 웰던 스테이크처럼 구워지고 있었다. 물론 이곳에 사는 흑인들 역시 권력에서 밀려난 백인과 다를바 없는 ‘실직자’였다.

두 사람이 타이어와 사람 살. 기름이 한꺼번에 타는 냄새 특유의 악취를 풍기며, 피부가 마치 썩어가는 것처럼 문드러지다가 바스러졌다.

그렇게 사람이 산채로 숯이 되는  본 젊은 여자들과, 어린애 두어 명은 목에서 피를 토할 정도로 울부짖으며 괴성을 질러댔다.

하지만 정작 온몸이 불길에 집어 삼켜진 두 사람은,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한  바닥에 기름기를 흘려가며. 새까맣게 탄 몸이 마른오징어처럼 오그라들고 있었다.

잠시  두 사람이 바닥에 엎어지며 고개가 푹 꺾이자, 그 참상을 지켜보는 백인 여성들이 더 크게 비명을 질러댔다.

“이 더러운 짐승들! 이런 어린 애가 대체 뭘 잘못했다고 이렇게 끔찍하게 죽이는 거야! 너희가 그러고도 사람이야!”

그 모습을 뚫어져라 지켜보고 있던 세로 흉터가 난 흑인이, 씩 웃으면서 바닥에 걸쭉한 침을 뱉었다.

“너 같으면 불알을 잘라놓고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짓 안 할 테니 옛날 상처 따윈 잊고 서로 힘을 합쳐 살아갑시다. 라고 하면 봐주겠냐? 똑같이 불알을 잘라버리지. 너희는 우리가 예전에 똑같이 애원했을 때 애들을 그냥 분쇄기에 처 집어넣고 갈아버렸잖아!”

세로 흉터 흑인의 비웃음에, 다른 사람들은 전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단 한 명만큼은 오히려 큰 소리를 지르며, 손발이 다 묶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목줄기를 물어뜯을 것처럼 달려들었다.

“이 더러운 살인자들!”

젊은 백인 여성 중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여자가 소리 지르면서 앞으로 나섰다.

손도 발도 쓰지 못해 턱으로 바닥을 기어가면서, 그들의 발을 물어뜯으려 했다.

하지만 세로 흉터 옆에 서 있던 마른 체형의 대머리 흑인이, 허리를 숙여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스 토치로 태웠다. 그녀는 타이어에 불이 붙을까 잔뜩 겁을 먹으며, 미친 사람처럼 머리를 흔들어댔다.

비쩍마른 대머리는 그 모습을 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미친 년. 너희 백인들이 먼저 시작한 거잖아! 이 더러운 자유 합중국도 전부 다 너희 백인들이 만든 국가고, 너희가 먼저 노예사냥으로 피부색 다른 사람들을 죽인 게 얼마인데.  정도 사소한 보복도 하지 말라는거냐?!”

백인 여성이 간신히 머리카락에 붙은 불을  다음 그들을 올려다보자, 약간 살이 투실투실하게 붙은 곱슬머리 흑인이 가스 토치를  채 아직 살아남은 백인들에게 소리를 질러댔다.

“너희 백인들은  세상을 지옥으로나 만들 추잡한 짐승들이야! 전부 다 없애버리고 우리 흑인들이 세상이 주인이 되는 당연하다고!”

물론 그렇게 말하는  흑인들 역시, 같은 흑인들의 기득권 경쟁에서 밀려난 인간들이다. 그들이 이런 식으로 백인들을 처형한다고 해봤자, 기득권을 쥔 흑인 ‘동지’들은 비웃음만 흘릴  분명했다.

그리고 흑인들이 남은 백인들의 타이어에 불을 붙이려는 순간. 작은 구식 승용차  대가 엄청난속도로 달려오다가 그들 바로  뒤에 멈춰 섰다.

백인들을 태워 죽이려고 했던 흑인 군중들은 일제히 차가 멈춘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뒤이어 차 문이 열리면서, 안에 간신히 구겨 탈 만큼 몸집이 큰 흑인 남성 한 명이 나왔다.

하얗게  머리와 수염. 그리고 이마와 뺨을 가로지르는 주름 덕분에, 다들 쉽게 그의 나이를 짐작할수 있었다.

거기에 이미 체격과 얼굴 전체를 덮은 수염만으로도 눈에 띄기 좋았지만, 특히 이제 더 이상 만들지도 않을 검은 뿔테 안경을 썼다는 게 가장 인상적인 노인이었다.

그 노인은 나이에 맞지않게 보일 만큼 빠르게 달려가, 공개 처형을 벌이는 이들의 손에 들린 가스 토치를 내리쳐 떨어트렸다.

“다들 그만두시오! 이게 대체 무슨 짓입니까?”

백인들을 공개 처형하는 무리의 중심에 있는 흑인들 역시 어디 가서 밀리지 않을 키와 체격이었다.

하지만  떡대들마저, 작은 차에서 나온 노인과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엄청난 체격에 단단해 보이는 노인을 보고 약간 주눅이 들었지만, 다시 한번 가스 토치를 주워 백인들을 태워 죽이려 했다.

그러나 거구의 노인이 백인들 앞을 막아서면서 다시 한번 조용히 그들을 노려봤다. 흑인 무리들은 그래도 가스 토치를 손에서 놓으려 하지 않아, 노인은 다소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조용히 호통을 쳤다.

“저 사람들이 여러분들을 직접 괴롭혔습니까? 아니면 뒤에서 당신들을 괴롭게 만들려고 나쁜 짓이라도 꾸민 건가요?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런 백인들은 이미 다 도망가거나 여러분들 손에 죽었던 걸로 압니다? 제가 잘못 알고 있습니까?”

노인이 그렇게 따져 묻자,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잠시 동안 침묵이 이어지던 중, 노인이 이미 불에 타서 타이어와 한데 뒤섞인 구의 시체를 가리키며 지시했다.

“어서 소화기를 가져오시오. 이미 죽은 사람들은 어쩔 수 없지만, 불이라도 꺼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서!”

노인이 안 그래도 주름 가득한 얼굴을 확 구기며재촉하자, 백인 남성과 아이에게 불을 붙였던 남자가 재빨리 어딘가로 달아났다.

잠시 후 그는 손에 소화기를 들고 아직도 기름기를 내뿜으며 타들어 가고 있던 시체에, 소화기 분말을 뿌렸다. 노인은 공개 처형식을 벌이던 무리를 천천히 죽 둘러본 뒤, 근엄한 표정으로 폭도들에게  있는 질문을 던졌다.

“모두들 이런 식으로 보복하면 전부 다 끝날 거라고 생각했습니까? 저들이 다시 힘이 강해져서 돌아오면 어떻게 될 건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나요?”

그들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몇 분 정도 서로를 쳐다보며 정적을 유지하던 중, 세로 흉터  흑인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다른 흑인들 역시 고개를  숙이면서 사죄를 대신했다. 거구의 노인은  팔을 쫙 펴면서 다음 지시를 내렸다.

“우선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풀어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곳에 잡아둔 사람이 있다면 그들도 풀어주고 사과하세요. 여러분들은 이미 이런 보복을 벌였기 때문에, 훗날에 저들과 같은 일을 당하게 될 빌미를 주게 되었습니다. 반성해야 합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언제 죽을지 몰라 불안에 떠는 여성들과 어린 아이들을 전부 다 풀어줬다. 그리고 목에 걸린 타이어도 조심조심 벗겨줬다.

심지어 몇몇 사람들은, 몸에 묻은 석유를 닦아낼 천과 갈아입을 옷을 주고.이미 숯덩이가 되어버린 시체들까지 조용히 치우기 시작했다.

보통은 시체가 전부 먼지로 될 때까지 그대로 방치하거나,  위에 돌을 던져 가루로 만들어버렸던지라. 이들은 그나마 복 받은 편에 속했다고 볼 수 있었다.

“다 정리되었습니까?”

상황이 적당히 정리된 직후. 흑인 노인이, 사람들을  둘러보며 질문을 건네자, 모두 자리에 앉아 그를 올려다봤다.

노인은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설교를 시작했다.  노인은 지금 당신들이 무엇을 잘못했고, 당신들이 이런 일을 벌여 봤자 해결될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이야기했다.

‘결국 남는  살육과 파괴뿐이고, 당신들 아들 손자 세대에 똑같은 업보를 받게 될 것이다.’ 라는 식으로 연설을 했다.

그들은 진지하게  노인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기 시작하다가, 그의 연설이 끝나자마자 무릎을 꿇고 울부짖었다.

아프라키 주의 실직자 거주지. 아니 어떤 실직자 구역이라도  모습은 굉장히 드문 일이었다. 사실 어느 실직자 지역이라도, 무기나 호위 인원 없이 빈손으로 호통치는 사람의 말을 고분고분 듣는 일은 없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돌아오거나 석가모니와 함께 설교를 해야만 벌어질 기적이다.

보통 맨몸으로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가르치려 드는 사람에게 돌아오는 건, 무수한 납탄과 화염방사기의 불길. 혹은 칼과 산성 약품 등이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시체가 장대에 빨래처럼 매달리는  운이 좋은 편이고, 최악의 경우 매달 시체도 없이  자리에서 ‘증발’해버리는 경우도 흔했다.

“제가 할 얘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이름은 말콤 루터 킹입니다. 여러분 중에 가난과 배고픔에 시달리는 분이 있다면 찾아오시기 바랍니다. 남의 것을 빼앗는 일보다 더 가치 있고 보람있는 일로 살아갈 수 있게 할 것을 약속하겠습니다.”

말콤이 말을 끝마치자마자, 사람들을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말콤은 다시 한번 조그만 싸구려 승용차에 몸을 구겨 넣고 어딘가로 떠났고, 사람들 중 일부는 맨발로 그의 뒤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은, 마치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해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기적을 본 사람처럼 넋을 잃고 말콤이 몸을 실은 승용차를 멍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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