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file-25 폴 버니언!!
“와하하하! 으하핫! 뭐야? 블라디미르? 죽음 따윈 두려워하지 않는 인민의 빨갱이 전사가 저런 걸 무서워하나? 하하하! 이거 참 걸작인데?”
“이 미친년이! 너라고 여기서 핵이 터지면 무사할 것 같아?”
블라디미르가 다시 한번 큰 소리로 따지자, 회장은 미사일 앞부분을 가리키면서 폭소를 터트렸다.
“잘 보라고 하하하하!”
뒤이어 다른 미사일이 한 발 더 날아왔다. 그와 동시에 다이다라봇치에서 온갖 집중포격이 쏟아졌지만, 미사일은 유폭 없이 멀쩡히 다이다라봇치를 향해 날아들었다.
미사일이 다이다라봇치의 야마토 혼 하전입자포의 포구에 처박히기 전. 날아오고 있던 미사일 탄두의 외부 장갑이 벗겨지면서, 그 안에 굵고 뾰족한 금속 막대가 들어있는 게 모니터에 드러났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블라디미르는 할 말을 잃고 입을 쩍 벌렸다.
“뭐야. 순전히 사출식 착암기였다고?! 대륙간 탄도미사일 크기의 파일벙커? 그딴 물건을 분리도 시키지 않은 채로 다이다라봇치 요새에 꼴아박다니 완전 돈이 썩어 도는 놈들이잖아!”
“파하하하! 바보 멍텅구리 같은 녀석 핵이었으면 지금 이렇게 대화하기도 전에 터져서 다 증발했겠지! 하하하하!”
회장의 웃음이 간신히 그치자, 다시 한번 다이다라봇치 내부에 지진이 일어났다. 동시에 내벽이 계란 껍질처럼 여기저기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재차 충격음이 터지며, 이번엔 건물 전체가 기울어버렸다.
단순히 쇠말뚝만 앞에 붙인 게 아니라, 뒷면에 유압식 사출기가 붙어 있어. 착암기처럼 건물 외벽을 두들겨 부수며 반대편 벽까지 꿰뚫어버렸다.
그 탓에 박살나버린 시노비의 잔해와 정크를 이어붙인 블랙 맨티스 무리가 한데 뒤섞인 채격납고 안을 이리저리 나뒹굴었고.
한데 엉킨 두 시리즈 H의 잔해들은 격납고 내부의 생산 시설을 죄다 박살내 버렸다. 블라디미르는 얼굴이 삶은 문어처럼 새빨갛게 변한 채, 몸살이라도 걸린 것처럼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걸로 쌤쌤이라고 나야말로 그동안 너 같은 빨갱이 새끼가 겁먹고 쪼는 모습을 보고 싶었거든. 자 그러면 다음 한 발 나가신다!”
뒤이어 다이다라봇치의 하전입자포 고정부에까지 대륙간 탄도미사일 크기의 파일벙커가 한 발 더 꽂히면서, 다이다라봇치 건물 외벽 전체가 알껍질처럼 갈라지기 시작했다.
“좋아! 마지막은 한꺼번에 들이받으라고!”
회장이 마지막 지시를 던지자, 잠시 후 건물 크기의 미사일 수십 발이 한꺼번에 날아들었다.
다이다라봇치는 무지막지하게 크고 무거운 미사일에, 건물 외벽에 고슴도치 바늘 같은 대구경포로 요격했다.
하지만 그저 무거운 쇳덩이를 달아놓은 미사일은 유폭을 일으키지 않고, 그대로 다이다라봇치의 윗부분을 일제히 들이받았다.
사방이 뒤집힐 것 같은 격진과 연속으로 내리치는 것 같은 천둥소리와 함께, 결국 외벽 전체에 금이 간 채 다이다라봇치 전체가 썩은 나무처럼 넘어가기 시작했다.
“통나무 넘어간다!”
결국 다이다라봇치는 충격을 견뎌내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넘어가며 미사일이 여러 개 박힌 야마토 혼 포를 포함한 건물 절반이 끊어져 버렸다.
건물 윗부분이 곤두박질치듯 떨어지며 엄청난 충격을 남긴 탓에, 남은 밑둥도 멀리 날아가다가 다른 건물들을 네다섯 채 부수고 나서야 바닥에 처박혔다.
회장의 사이드와인더는그때 흉부에 붙은 한 쌍의 팔에서 후크 와이어를 사출했다.
와이어가 천장의 파이프에 걸리자마자, 엄청난 속도로 되감겼고. 회장의 사이드와인더는 천장의 파이프에 매달려서 충격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탓에 사이드와인더는 더이상 손쓸 수 없을 정도로 파손되었다. 와이어를 사출해서 매달린 오른팔은 물론, 파이프에 부딪치고 시리즈 H 잔해에 얻어맞은 흉부는 장갑 틈새로 연료가 새고 있었다.
그리고 두 다리는 바닥에 서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찌그러져 있어, 이대로 착지하면 회장의 몸뚱이가 엉망진창으로 박살 나 쓰레기더미에 섞일 게 분명했다.
“살아는 있나?”
그 때 블라디미르에게 통신이 날아들었다. 회장은 블라디미르의 질문에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대답을 대신했다.
“아주 멀쩡하군 그래. 뭐 그러면 난 이만 물러나지. 이 빚은 나중에 반드시 받을 테니까 미리 계산해두는 게 좋을 거야. 네 모가지면 딱 좋을 테니까 목 씻어두는 것도 괜찮겠지.”
“응 그래. 목 대신 온몸을 깨끗이 씻어줄게. 네 동지들 상대하기 전에 너부터 날 즐겨주면 영광이라고!”
“헛소리 마!”
그렇게 블라디미르는 짐승처럼 이를 갈며 통신을 끊어버렸다.
회장은 이미 더 이상 쓰기 힘들 것 같은 사이드와인더의 상태를 점검하며, 남은 게 거의 없는 상태에서도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환한 얼굴로 휘파람을 불었다.
“좋아. 아쉽게 되었지만, 이제 맨몸으로 나서는 수밖에 없겠군. 이걸로 마지막 내 애마까지 전부 내다 버리게 되었네.”
회장은 한숨을 내 쉬면서 홀로그램 모니터 뒤에 있는 검은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사이드와인더는 복좌석 조종석을 뱉어내듯 사출하며, 그대로 도살장 천장에 매달린 짐승 시체처럼 축 늘어졌다.
조종석은 격납고 바닥을 한참 동안 구르다가 멈췄고, 잠시 후 조종석 윗부분이 열리며 회장이 먼저 튀어나왔다.
“젠장! 여전히 에어백은 안 튀어나오는군. 조종석 안에서 짓이겨지고 갈려 나가서 스무디가 되는 줄 알았다고.”
회장은 뒤이어 세컨드 시트가 있는 좌석을 골판지 상자 열듯 잡아 뜯어냈다.
그와 동시에 에어백이 튀어나오고, 그녀는 에어백을 뜯어내서 터트린 다음. 조종석 안에서 멀미 기운을 보이는 소녀를 끄집어냈다.
“이봐 괜찮아? 정신 드냐고?”
회장은 그녀를 가볍게 흔들어대며 상태를 물어봤다. 소녀는 회장이 두세 번 정도 부르자, 정신을 차리며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러면 마무리 지으러 가야지. 가자고 혼닛츠의 맨 꼭대기로 말이야.”
회장은 소녀를 등에 업은 채, 바이크에 밀리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달려갔다.
그녀는 무너진 건물의 잔해를 산양처럼 타고 다니면서 밖으로 나가, 넘어진 건물의 절반이 있는 곳을 향해 검은 머리카락이 깃발처럼 휘날릴 정도로 달렸다.
한편. 넘어진 다이다라봇치의 절반은 원형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 나 있었다.
다만 맨 꼭대기의 중앙 제어실이 있는 곳만큼은 어지간히도 튼튼히 만든 모양인지, 무너져 내리지는 않았다.
다만 완전히 엎어져 버린 채, 천장과 벽면 사방에 클론 직원들의 피와 고깃덩이가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가끔 클론 직원들이 쓰던 무기까지 나뒹굴고 있어, 마치 전쟁터 한복판을 떠올리게하는 풍경이었다.
“젠장! 이 미친년! 핵미사일인 줄 알았더니 그저 단순한 착암기라고?! 요격할 것까지 다 예측하고 저런 걸 준비했단 말이야?”
도조 야스히코 회장이 땅을 치며 울부짖고 있을 때, 그의 눈앞에 기다란 사람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도조 회장이 재빨리 자기 코앞에 있는 권총에 손을 뻗으려 했지만, 사나운 총성과 함께 그가 손에 쥐려던 권총이 박살 나 버렸다.
“자. 이제 다 끝났네. 참 쉽지? 너무 커서 이렇게 어이없이 끝날 거라는 생각은 안 해봤나 예전에도너희들의 공룡 같은 초거대기업들이나, 잘나신 거함거포주의의 상징 야마토도 병신같이 가라앉았잖아. 워낙 역사 왜곡이랑 인연이 깊어서 모르고 계셨나 도조 회장 나으리?”
회장이 민스 미트를 쥔 채 도조 야스히코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도조 야스히코는 눈앞에 있는 반나체에 코트 하나만 걸친 여성이 사신처럼 보였다.
회장은 도조의 코앞까지 걸어가, 그의 이마에 민스 미트를 겨눴다. 도조 회장은 이제 다 끝났다는 걸 알아차리고, 회장을 노려보며 한탄 섞인 한마디를 흘렸다.
“말도 안 돼! 어째서 내가 이런. 별의 별 개 같은 수작을 부리는 년한테….”
도조 야스히코가 주먹을 꽉 쥐면서 바닥을내리치자, 회장은 코웃음을 치며 일부러 들으라는 듯 큰 소리가 나게 민스 미트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멍청이. 자유 합중국에서 이 정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남으라고? 애초에 멀쩡하거나 상식 지키고 사는 놈들은 다 죽어 없어진지 오래 되었잖아!”
도조 야스히코 회장은 모든 걸 다 포기하고 눈을 감으려 했다. 그 때 회장의 뒤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소녀를 발견했다.
“너, 너는?! 네가 왜 저 미친년하고 같이 붙어 다니는 거지? 어째서?!”
회장은 아주 잠깐이지만, 소녀 쪽을 쳐다보면서 그녀의 표정을 확인했다.
그녀는 마치 코브라나 타란튤라 거미 같은 게 몸 위로 기어 올라가는 걸 본 것처럼,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회장은 조용히 소녀를 뒤로 물리면서 여전히 바짝 긴장한 채 도조 회장의 이마에 총을 겨누고 있었다.
“이리 오련. 오로지 너 때문에 내가 이런 짓을 벌여왔다. 그러니까 저 년은 놔두고 제발 나한테 오란 말이야!”
소녀는 도조 야스히코가 천천히 기어오자, 뱀 앞의 개구리처럼 굳어버렸다.
회장이 빈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건드리자, 완전히 그녀의 뒤로 돌아들어 숨었다. 그리고 회장은 그때 도조 야스히코 회장의 목에서 뭔가가 번쩍이는 걸 발견했다.
“어라? 이건?”
회장이 발견한 건 로켓 목걸이었다. 안에 들어있는 사진은 도조 야스히코 회장과 소녀와 꼭 닮은 여성이 나란히 서 있는 부부사진이었다.
‘혹시나 했는데 그 혹시나가 역시나였군.’
회장은 아주 잠시나마 민스 미트를 거둘까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내 저으며 천천히 방아쇠를 쥔 손가락에 힘을 줬다.
“그러면 슬슬 끝장…. 윽.”
갑자기 회장의 코에서 한 줄기 피가 흐르기 시작하더니, 눈과 귀 입에서 피가 마구 쏟아지기 시작했다.
“버, 벌써 금단증상이. 젠장!”
회장은 손에 묻은 피를 대충 털어낸 뒤, 떨리는 손으로 민스 미트를 뽑아들었다. 하지만 도조 회장을 제대로 겨누지도 못한 채 총을 떨어트리고,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하, 하하. 하하하하! 하하하하!네년도 기업 연합에서 금지하는 헤비 메탈 장기 복용자였군. 게다가 지금 마침 약이 다 떨어지고 말이야. 하하하하! 어디서 범법자 주제에!”
도조 회장은 쏟아지는 피를 막아내고 있는 그녀의 복부를 힘껏 걷어찼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채를 갓 사냥한 짐승 꼬리처럼 휘어잡은 뒤,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이제 이걸로 입장이 역전되어 보니까 어때?”
그러나 회장은 고통 속에서도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받아쳤다.
“기업 연합 법을 어긴 건 네놈도 마찬가지였잖아. 노동용 클론의 대량 생산 및 노동 현장 대규모투입 금지. 그리고 클론들의 뇌를 활용한 인공지능 시리즈 H. 선전포고 없이 도시 지역 공습. 거기에 기동요새 제작과 타 기업 영역 침범. 책 한 권을 써도 된다고 하하하하!”
“이 개 같은 년이! 전부 다 네년 때문에 벌인 짓이란 말이다!”
도조 야스히코는 회장을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친 뒤, 바닥에 금속이 들어간 무겁고 딱딱한 구둣발로 온몸을 걷어차고 짓밟아댔다.
그럼에도 회장이 실실 웃으면서 그를 도발하자, 끝내 그녀의 풍성하게 부풀어 오른 가슴을 발로 콱 밟은 채 칼을 뽑아 들었다.
그 모습에 회장은 오히려 씩 웃으면서 느긋하게 한마디 던졌다.
“이봐? 어차피 곧 죽일 거 아냐 그건 없나?”
도조 야스히코가 그녀의 가슴을 더 세게 밟으면서 노려보자, 회장은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은 얼굴로 능글맞게 말을 건넸다.
“왜 목 치기 전에 그거 있잖아. 혼닛츠 식으로 무릎 꿇고 앉아서 배부터 가르는 거. 내 소원이 죽기 전에 전 세계의 머저리 같은 짓거리를 한 번씩 당해보는 거라서 말이야.”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