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file-21 업보를 갚는 최악의 방법
사우스 스네이크 사 자체는 가급적 혼닛츠 사에 크게 손대지 않는다고는 했지만, 그들을 고용한 다른 기업 연합의 업체들은 굶주린 맹수나 다름없었다.
히로시는 일단 회장이 삶의 목적을 잡을 수 있다면, 다른 미치광이들이 마음대로 돌아다니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했다.
히로시는 다시 현실로 되돌아온 뒤, 술 한 잔을 더 기울이며 혼잣말을 읊었다.
‘결국 두 번이나 감찰관이 다녀갔지. 그런데도 그 감찰관 사우스 스네이크 녀석들은 별로 밉지 않았다니 참 얄궂은 운명이지.’
히로시는 사우스 스네이크의 회장과 임원들이 반란 노동자들 중, 단순 가담자나 강성 노동자들의 협박에 억지로 협력한 이들을 아무 처벌 없이 풀어줬던 걸 떠올렸다.
그리고 반란과 상관없는데도, 도조 회장의 화풀이 때문에 죽을 뻔한 미성년 노동자나 노약자 등도 전부 다 구해낸 적도 있었다.
정확히는 사우스 스네이크의 도시로 이주시키는 것에 협력하는 조건으로, 회장과 비살상 대련을 한 번 했던 기억도 아직까지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그는 술을 목으로 넘긴 뒤 다시 생각에 잠겼다.
‘그때 사우스 스네이크의 회장이 스쳐 지나가듯 한마디 했었지. 내가 그걸 도조 회장님에게 전달해준 것 때문이었을까? 도조 회장님이 미쳐버리기 시작한 게.’
히로시가 다시 생각에 잠기고. 다시 혼닛츠 사의 회의실로 돌아왔다.
히로시는 혼닛츠의 미성년자와노약자를 사우스 스네이크로 이주하는 계획을 세울 때. 회장이 자신에게 해줬던 이야기를 지금 다시 도조 야스히코 회장 앞에 꺼냈다.
“혹시 회장님은 천황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히로시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노동자 반란 직후 미리 조사해뒀던 사실 한 가지를 도조 회장에게 꺼냈다.
그리고 그 자료의 대부분은 사우스 스네이크 사의 지원을 받아서 얻은 것이다.
그는 속으로 사우스 스네이크의 회장에게 감사를 표한 뒤, 도조 회장의 얼굴을 천천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도조 회장은 알 수 없다는 시선을 히로시에게 보냈고, 그것은 다른 임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천황? 그게 대체 무엇인가?”
도조 회장이 히로시에게 질문을 던지자, 그는 회장에게 옛날 국가라는 것이 존재하던 시절. 혼닛츠의 근본이 되었던 천황이라는 것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다만 회장의 의욕을 꺾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우스 스네이크에서 알려준 몇 가지 불편한 사실들은 적당히 집어넣은 채 설명했다.
그 덕분인지 도조 회장과 그 아래의 중역들은, 관심 없다는 투에서 슬슬 히로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으로 변해갔다.
“그래서? 자네는 대체 내게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가?”
도조 회장은 겉으로는 별 기대도 없다는 듯 말을꺼냈다. 하지만 그는아랫입술을 혀로 적신 뒤, 슬그머니 입안으로 말아 넣었다. 도조 회장이 맛있는 음식을 눈앞에 두거나, 좋은 사업 구상이 떠오를 때마다 보이던 모습이었다.
히로시는 이제야 혼닛츠 사가 안전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반란 진압 직후부터 미리 준비해뒀던 이야기를 꺼냈다.
“아마 제가 조사했던 사실이 맞다면 회장님이 바로 그 천황의 후손일 것입니다.”
히로시가 한 단어 한 단어끊어내다시피 힘을 준 한 마디에, 도조 회장을 포함한 혼닛츠 사의 전 임원들이 크게 놀라면서 일제히 히로시를 빤히 쳐다봤다.
“그게 사실인가? 자료는 숨기는 거 없이 전부 다 보여줄 수 있고?”
“예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습니다.”
히로시는 얼굴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즉시 대답했다.
만에 하나 도조 회장이 직접 자료를 열람할 가능성을 생각한 히로시는, 사우스 스네이크에서 제공한 과거사 정보의 일부를 미리 삭제하고 수정했다.
물론 자신도 이게 옳은 일이 아니고. 사우스 스네이크 사의 회장 역시 ‘불쾌한 부분이나 잘못을 저질렀던 사실을 쏙 빼놓는다면 뒤끝이 좋지 않을 것이다.’라고 경고했음에도 말이다.
그는 당장 도조 야스히코회장이 다시 일어날 발판만 마련된다면, 나중에 진실을 알려줘도 잘 적응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히로시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도조 회장의 입에서 튀어나온 한 마디는, 그의 기대를 무참히 으스러트리고 말았다.
“그게 사실이라면 우선 내가 천황의 후손이라는 것도 모르고 대들었던 노동자 놈들의 머리 위에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게 급선무군!”
“예?”
히로시는 도조 회장이 내뱉은 말에 등줄기가 싸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사우스 스네이크에서 사실상 반쯤 태업상태로 들어가 주지 않았다면, 노동자들의 씨앗이싸그리 말라버렸을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을 한 번 더 짓누르겠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던진 것이다.
“틀렸나 히로시? 결론만 말하면 그 어리석은 노동자 놈들이 내가 천황의 후손인지도 모르고 반란을 일으켰다는 것 아닌가? 그런 빨갱이 같은 놈들을 황국 신민으로 둘 수 없다고.”
도조 야스히코 회장의 뒤이은 대답에, 히로시는 입을 꽉 다물었다.
하지만 다른 임원들은 도조 회장의 열기에 전염되었는지. 앞뒤 가리지 않고 열심히 떠들어대면서 도조 회장의 주장에 더욱 힘을 실어줬다.
“그렇습니다! 도조 회장님이 바로 그 위대한 천황의 후손이신데. 그따위 보잘것없는 노동자들이 개길 수 있겠습니까?”
“이전의 빨갱이 같은 노동자들은 전부 다 쓸어버리고, 그 자리를 전부 도조 회장님을 공손히 모실 황국 신민들로 채우면 됩니다! 이제 우리는 기업이 아니라 ‘제국’으로 거듭나는 겁니다!”
히로시는 몰래 숨겨뒀던 불편한 사실들을 떠올리며, 속으로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 쉬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본질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는 건가.’
“그렇다면 노동자들을 전부 특수 시설에 수용해서 재사회화 시키는 겁니다.”
혼닛츠 그룹의 의약품 및 외과수술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부서에서, 자신들의 새로운 계획을 신나게 늘어놓은 뒤. 본사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말로 마무리 짓고 자리에 앉았다.
“아닙니다! 저희가 노동자들을 대신할 기계를 생산하고, 노동자들은 전부 소모가 빠른 사설 경찰로 빼 버리는 겁니다. 노동자들의 수가 늘어나고 교육 등급이 높을수록 반역을 일으킬 확률이 높으니, 재빨리 죽이고 새 인원을 받고 필요한 것만 배울 수 있는 사설 경찰 사업에 전부 몰아넣는 게 이득입니다.”
그러자 야스쿠니 사설 경찰 측에서 들고 일어나, 사설 경찰 체제를 단단히 굳힐 것을 주장했다.
뒤이어 그 주변에서 병기 개발과 유통 등을 담당하는부서들이 하나둘씩 자신들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결론은 본사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앞다퉈가며 꺼냈다.
“그래서 도조 회장님은 대체 어떻게 하실 겁니까?!”
히로시가 무겁게 질문을 한마디 던지자, 부서별 임원들이 일제히 도조 회장을 쳐다봤다. 그러자 도조 회장은 눈을 부릅뜬 채,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이 갖고 있던 생각을 직원들에게 털어놓았다.
“가장 먼저 할 일은 내 자손을 낳아야 할 그녀를 다시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내 후손들을 세워서 대대손손 혼닛츠 그룹이 아닌 ‘혼닛츠 제국’을 물려줄 것이다.”
끔찍한 이야기가 너무 많이 섞여 있는 한마디였다.
우선 자유 합중국이라고 해도, 이미 죽은 사람을 복제로 되살린다는 사실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너무 훤히 보였다.
게다가 기업 연합에서는 인간 복제에 대한 규정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어, 온전한 인간을 복제하는 즉시 기업연합의 감시 카메라가 이곳에 집중될 게 분명했다.
다음으로 자유 합중국에서 ‘기업’의 형태가 아니라, ‘제국’이라는 칭호를 다시 가져가는 행위가 문제다.
자유 합중국은 기업의 자유는 인정하지만, 국가와 국왕이라는 존재는 존재할 수 없다고 못박은 지 오래다.
제국이라는 칭호를 걸어봤자 인정해줄 사람들은 없고, 기업 연합에서 온갖 제제가 들어오고 가뜩이나 자원이 부족한 혼닛츠 사에는 치명적일 게 분명했다.
마지막으로 대대손손 물려준다는 얘기가 히로시에게 불안을 안겨줬다.
물론 자유 합중국에서 자기 자식에게 기업을 그대로 물려준다는 것은, 어떤 반도국가의 규정에 따라 불법으로 두지 않았다.
하지만 경영 능력과 수많은 노동자들을 먹여 살릴 수익을 낼 수 있는 사람이 앉아야 할 대기업 회장 자리에,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아들. 딸을 앉힌다는 사실은 따가운 눈총을 피하기 힘든 짓이었다.
하지만 히로시는 그에 대해서 아무 말도할 수 없었다.
심지어 다른 중역들 역시, 예산을따내기 위해 날뛰던 것들이. 이제는 점점 진짜 광기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다른 기업 측에서 들으면, 국가주의자로 몰릴 발언들이 쏟아져 나왔다.
“우리가 그렇게 강하고 위대한 민족이었는데, 지금 기업 연합에 발이 묶여서 기업이라는 작은 틀에 갇힌 겁니다!”
“아메리카 주를 전부 점령해서 전 세계를 혼닛츠 제국으로 만들고, 백인들을 혼닛츠 황국 신민의 노예로 삼아야 합니다!”
중역들의 얘기를 들은 히로시는 착찹한 감정을 숨기기 위해, 얼굴에 잔뜩 힘을 주고 표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도조 회장이 활기를 띤 모습에, 잠깐 마음이 흔들려서 사실을 말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래. 지금은 거짓말이라도 좋아. 그리고 위험한 길을 걷더라도 괜찮을 거야. 당장이라도 조금 더 움직여줄 수 있다면 그 이후는 어떻게든 내가 해결해야지.’
히로시는 중역들과 도조 회장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어, 조용히 회의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리고 회의실 벽을 주먹으로 힘껏 치면서 탄식했다.
“젠장! 어째서 그런 이야기가 되는 거냐고! 이래서는 또 한 번 비참한 꼴을 맛볼 수밖에 없는데. 애초에 잘못된 이야기를 뿌린 내 죄야! 내 죄라고!”
히로시는 자신의 실수에 그대로 배를 가르고 싶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칼을 칼집에 꽂고 천천히 등을 돌렸다.
그리고 히로시는 현실로 되돌아와, 얼마 남지 않은 술병을 들어 마지막 한 방울까지 잔에그대로 따라냈다.
“결국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스스로 낭떠러지를 향해 걸어가다니. 이 무슨 터무니없는 운명인가.”
그는 마음을 굳힌 듯, 마지막 한 잔을 기울였다. 그리고 잔을 조용히 내려놓은 뒤, 한숨을 내 쉬며 술병과 같이 숨겨둔 솜을 꺼냈다.
그리고 코와 항문 등을 틀어막고, 실로 다리 사이의 중요한 물건을 꽉 묶었다. 그다음 화상 녹화 기능을 켜 회장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다.
“미안하게 되었군 회장. 내 대답은 어느 쪽의 손도 들어줄 수 없으니까. 저래 보여도 나는 도조 회장과 함께 혼닛츠 사를 일으켰고, 그는 내 친구이자 은인이니까. 대신 이걸로 해결할 수 없겠지만, 내 죄에 대한 심판은 스스로 내리겠어.”
히로시는 허리춤에 꽂아뒀던 칼을 빼 들고 두 손으로 자루를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칼날의 방향을 자기 몸쪽으로돌린 뒤, 그대로 배에 내리꽂은 다음 죽 그어 내려갔다.
“겨우 이런 짓으로 사죄라고 하긴 힘들지만, 도조 회장을 막지 못한 것은 내 목숨으로 갚겠다. 그러니 부디 핵만큼은 사용하지 말아다오. 그 참상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지 않다.”
히로시는 뱃가죽과 창자가 썰리는 고통을 참으면서, 마지막 한마디를 남겼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감으며 다가오는 죽음을 조용히 맞이했다.
히로시의 몸뚱이가 조종석 바닥에 엎어졌고, 배에서 흘러나온 피가 히로시의 몸과 조종석 바닥을 축축하게 적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