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file-20 손대서는 안 될 마약
야마토 혼 입자포의 포구에서 굵은 빛줄기가 뻗어 나가면서, 주변에 있던 모든 것들을 깔끔하게 증발시켜버렸다. 지면이 베어 문 사과처럼 확 패여버리고, 빛줄기가 지나가는 방향으로 건물과 차량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마지막으로 두께만 1미터 단위인 바리케이드가 녹아내리며, 사우스 스네이크 빌딩의 아랫부분이 열과 압력에 의해 터져나가며 밑둥 찍힌 나무처럼 부러졌다.
그리고 부러진 건물 윗부분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떨어지면서, 아직도 쭉 뻗어 나가는 입자빔의 빛줄기에 뒤섞여 버렸다.
모든 것을 깨끗하게 지워 버리는 하전입자포의 빛줄기는, 사우스 스네이크 본사 건물 윗부분까지 집어삼키고 말았다.
야마토 포가 단 몇 초 동안 강한 열과 빛을 뿜어냈음에도, 사우스 스네이크 사에 남긴 피해는 심각했다.
마그마처럼 변해버린 지면, 고열로 인한 아지랑이와 벼락이 떨어진 것 같은 스파크.
초고열과 강한 충격을 동반한 입자빔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당장에라도 폭우를 뿌릴 것 같은 먹구름이 뒤덮였고. 천둥 번개가 내리치는 것 같은 소리가 먹구름 안에서 새어 나왔다.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이 구역 전체에 독한 산성비가 뿌려질 게 분명했다.
다이다라봇치는 야마토 혼의 포신이 거의 녹아내릴 정도로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러자 즉시 건물 윗부분에서 새 포신을 하나 꺼내, 달아오른 포신을 내 던지고 재빨리 교체했다. 달궈진 포신은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면서, 길거리에서 죽어 널브러진 사우스 스네이크 사의 사람들을 구운 쥐포처럼 뭉개버렸다.
“좋아! 그 개 같은 년이 보면 아주 속이 쓰릴 거야! 하하하하!”
도조 야스히코 회장은 곧바로 직원들에게 다음 지시를 내렸다.
“포 각도 돌려! 이번에는 사우스 스네이크 년놈들이 숨어있는 벙커에 한 발 날리는 거다!”
기업 연합 법에 의하면 어떤 기업 항쟁이라도, 사설 경찰을 제외한 대기업 소속 노동자들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특히 핵무기나 하전입자포. 화생방 같은 무기를 곧바로 노동자들에게 겨누는 것은, 그 어떤 기업이라도 저질러서는 안 되는 불문율이었다.
하지만 혼닛츠의 엘리트 직원들은 아무 망설임 없이, 다이다라봇치의 포 각도와 위치를 다시 조정했다.
“시궁창 물을 똥구멍으로 퍼먹일 새끼들!”
입자포의 열과 빛이 사라진 직후. 사라는 쌍욕을 퍼부으면서 다이다라봇치를 향해 달려들었고, 잭슨은 이를 말리지 못해 그녀를 놓치고 말았다.
그는 늦게나마 후방 지원을 위해, 블랙 맨티스의 잔해더미에서 유탄 기관총을빼냈다.
“젠장. 저 눈 째진 놈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회장은 대체 언제쯤 오는 거지?!”
사라와 잭슨이 실랑이를 벌이다가 하전입자포의 빛을 피한 그 시각.
마지막으로 회장과 히로시가 서로 칼을 맞부딪치려는 순간에, 마치 새벽이 밝아온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강한 빛이 번득였다.
그리고 동시에 사우스 스네이크 본사 건물이 깨끗하게 사라져 버렸다. 회장과 히로시는 둘 다 칼을 내리고, 어떤 상황인지 확인하기 위해, 각자 위성 카메라의 영상 정보를 수신했다. 그리고 회장이 먼저 히로시에게 화상 통신을 보냈다.
“헛 참. 씨발. 방금 전에 나한테 뭐라고 했지 히로시? 쏘지도 않은 핵미사일을 보여줬던 나한테 뭐라고 했더라? 너희가 방금 쓴 것도 다 봤지!”
히로시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창자가 끊어지는 것 같은 투로 대답했다.
“할 말이 없다. 도조 야스히코 회장. 이 자가 미친 줄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기업 도시에 하전입자포까지 쏠 줄이야. 그리고 그 돈이면 분명히….”
히로시는 말을 다 끝맺지 못했지만, 회장은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전부 다 이해했다.
하전입자포 하나를 제작할 예산이 있다면, 그걸로 노동자들의 반란을 방지할 수 있게끔 급여를 올려주거나. 그마저도 싫다면 잠깐의 여흥을 베풀어주는 것으로, 노동자의 감정을 가라앉히는 수단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도조 야스히코 회장은 그 모든 걸 거부하고, 상대 기업을 먹어 치울 무기에만 모든 것을 전부 다 털어 넣은 것이다.
히로시의 사과에 회장은 더욱 크게 화를 냈다. 그리고 기분 다 잡쳤다는 듯, 손에 들고 있던 무기를 내던지고. 절단된 왼팔 부위에 들러붙은 금속 파편들을 억지로 잡아 뜯어냈다.
워낙 깔끔한 솜씨로 잘린 탓인지, 절단면 일부를 떼어내면 그래도 팔 파츠 하나를 우격다짐으로 끼울 수 있었다. 그녀는 곧바로 바닥에 굴러다니는 사무라이의왼팔 파츠를 집어 들어 적당히 끼워 맞췄다.
“저거라고 방사능이 안 남을 것 같나 친구? 난 단순 무식한 인간이라서 핵미사일이나 하전입자포나 뭐가 다른지 모르겠단 말이야.”
회장이 일부러 다 알면서도 비아냥거리자, 히로시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회장은 그 모습을 보자마자 눈살부터 찌푸리며, 곧바로 레버에서 두 손을 떼 버렸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사죄하겠다. 죽이고 싶다면 죽여라.”
회장은 블랙 맨티스의 조종석에서 일어나, 해치를 열고 사무라이의 조종석 근처에 민스 미트 몇 발을 쏴 날렸다.
“좆까! 네 목숨이 그렇게까지 비싼 줄 알아? 갚으려면 살아서 갚으라고! 아니 그 전에 너희 우두머리가 왜 저따위로 될 때까지 손대지 않고 놔둔 거야?!”
그녀는 히로시가 왜 그동안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고, 거의 자살이나 다름없는 식으로 자신과 싸움을 붙였는지도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쯤 화풀이로 말을 내던졌지만, 히로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는지 그저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회장은 이곳에도 폭격이 쏟아질 것이라는 생각에, 곧장 조종석 안으로 들어가 잔해더미에서 워커 B 타입의 부품을 뜯어내 블랙 맨티스에 장착시켰다.
주로 다리의 롤러와 주행용 제트 엔진과 대형 모터를 덧붙여, 변형을 포기하는 대신 지상에서의 주행 능력을 최대한 높였다.
동시에 등과 허리. 어깨와 흉부 일부의 장갑판을 제거해, 불필요한 중량까지 최대한 줄여버린 대신. 한 대만 스쳐도 두 동강이 날 것 같은 아슬아슬한 형상이 되었다.
가뜩이나 벌레처럼 생긴 외관에 몇몇 부위는 인공근육과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 마치 공포영화에 나올 것 같은 합성생명체 같은 몰골이었다.
하지만 회장이 바쁘게 블랙 맨티스를 수리하는 동안, 히로시는 사무라이를 바닥에 눕힌 뒤 조종석에 주저앉은 채 곰방대에 담배를 채워서 피우고 있었다.
그녀는 히로시를 마무리할 생각 따윈 없는지, 수리를 전부 다 마치자마자 다이다라봇치 요새가 있는 곳을 홀로그램 지도에 위치 표시를 새겼다.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이지?”
회장은 곧바로 다이다라봇치 요새를 향해 돌격하기 전, 히로시에게 화상 통신을 보냈다. 히로시는 그대로 주저앉은 채 고개를 내 저으면서 조용히 대답했다.
“나도 모르겠다. 한 조직의 우두머리이자, 스폰서 외에는 어디에도 얽히지 않을 너라면 모르겠지만. 조직에 몸담은 사람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자기 몸을 움직일 수는 없는 법이니까.”
하지만 회장은 그딴 거 알 바 아니라는 식으로 히로시에게 메시지를 던진 뒤, 페달을 더욱 힘껏 밟아 주변이 흙먼지로 뒤덮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달렸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생각을 바꾸는 게 좋을 거야. 너는 혼닛츠라는 조직의 사설 경찰 히로시만 있는 게 아니잖아?”
그녀는 담배를 조용히 조종석 밖으로 내 버리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사설 경찰 히로시가 아니라 인간 히로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돌이켜보라고. 내가 아는 인간 히로시는 잘못된 길을 걷기도 하고, 잘못을 막지도 못해서 쩔쩔맸지만. 적어도 자유 합중국 안에서 몇 안 되는 사람 냄새나는 녀석이었다.”
히로시는 회장이 화상 통신으로 보낸 메시지에, 어떤 표정 변화도 없이 아주 짧게 대답했다.
“그건 조금만 더 시간을 줘라. 곧 대답해주지.”
회장은 기다린다는 말도 하지 않고, 화상 통신을 조용히 끈 다음. 음성 차단까지 걸어버렸다. 그다음 공중에 떠 있는 베스파에 음성 명령을 내렸다.
“베스파 NO-69랑 NO-43 지금 위치를 전송해줄 테니. 그곳으로 미리 대기하고 있어. 히로시 그 녀석은 특히 감이 좋으니까 스텔스에 더 신경 쓰도록.”
회장은 베스파에 지시를 내린 다음. 다시 음성 통신 회선을 열었다. 하지만 주변에는 베스파를 제외하고는 음성 회선이 열려 있는 곳이 없었다.
“그럴 줄 알았어.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겠지. 그렇다면….”
그녀는 이미 다 알았다는 듯, 씩 웃으면서 여러 개의 홀로그램 모니터를 띄웠다. 그중에는 반파된 사무라이의 기체 내부까지 촬영한 영상이 있었다.
“내가 억지로 뜯어서라도 길을 열게 해 주지. 각오해두라고 사무라이.”
회장은 먹잇감을 혀로 핥는 맹수처럼 입맛을 다신 뒤, 다이다라봇치를 향해 더욱 빠르게 질주했다.
히로시는 곧바로 화상 통신을 꺼 버린 다음, 출전 때 직원을 시켜서 몰래 숨겨둔 술 한 병을 꺼냈다. 그리고 작은 잔에 술을 따라 한 모금씩 마시면서 옛날 일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그때에는 그래도 나쁘지만은 않은 사람이었는데. 대체 언제부터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뭣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흘러갔지?”
그는 과거의 기억들을 안주 대신 곱씹어가며, 술의 쓴맛이 혀에 오래도록 남을 때까지 입안에 머금다가삼켰다.
혼닛츠 본사의 임원 회의실 안. 그때까지만 해도 회의실 안에 야마토 혼이라거나 혼닛츠 1억 총옥쇄. 옛 국가 시절 천황의 상징이라는 3신기 등이 걸려 있지 않았다.
그냥 어느 주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대기업 회의실 그 자체였다.
하지만 지금 여러 사람이 둘러앉을 수 있는 긴 테이블은 절반 정도만 채워져 있고, 나머지는 각자 자리 앞에 국화꽃 한 송이가 들어있는 꽃병이 올라와 있었다.
그리고 가장 상석에 도조 회장이 앉아 있었는데, 그의 옆에도 국화꽃 꽃병이 올라온 상태였다.
도조 회장은 회의실에서는 회장도 가져와선 안 된다는 술병을 든 채, 잔에 따르지도 않고 그대로 뱃속에 들이부었다. 당연히 다른 임원들의 표정이 밝을 리가 없었고, 몇몇 임원들은옆자리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도조 회장. 상심이 크겠습니다.”
다들 이성을 잃어가거나 테이블을 눈물로 적시고 있던 중, 히로시가 먼저 일어나서 흐느껴 우는 소리만 가득한 회의장의 분위기를 깼다.
그는 도조 회장에게 위로를 건네면서, 눈짓으로 술을 그만 마시고 회의를 진행 시키자는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도조 회장은 아내로 보이는 젊은 여성 한 명과 함께 찍은 사진을만지작거리며,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다른 기업보다 더 많은 걸 주려고 마음먹었고, 또 노동자들도 함부로 대하려고 하지 않았는데. 대체 노동자 녀석들이 뭐가 아쉬워서….”
도조 회장의 창자를 끊는 것 같은 목소리에, 히로시마저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자리에 도로 앉을 뻔했다. 하지만 그는 입안에서 비린 맛이 돌 정도로 입술을 꽉 깨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건 조사하고 있습니다. 회장님께서도 기운을 차려서 선두 지휘를 하셔야, 이번 노동자 반란의 배후를 알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사실 히로시를 비롯한 전원이 제 1차 노동자 반란 사태의 이유를 알아낼 수 없었다. 혼닛츠 사의 그 누구도 짐작조차 하지 못한 사태인 탓에, 사설 경찰 부대와 기업 내부의 방호 시스템조차 작동할 틈이 없었다.
제압 자체는 빠르게 이뤄졌지만, 그 와중에 도조 회장은 가장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걸 땅에 묻는 결과를 맞이하고 말았다.
거기에 하나 더해 노동자 반란을 빌미로, 인력 관리 부실과 노동 반란 확장 방지를 위해. 기업 연합에 소속된 대기업들이 혼닛츠 사의 지분 일부를 회수해버렸다.
그 탓에 임원들마저도 수입이 반 토막이 되었고, 혼닛츠 사에서 많은 노동자가 실직자로 전락해. 혼닛츠 사 주변의 치안 상태가 굉장히 열악해졌다.
“그녀도 잃어버렸는데, 더 이상 살아갈 의욕이 나지 않아. 내버려 둬. 회의 같은 건 나중에 언제라도 할 수 있잖아.”
히로시는 테이블을 내리친 다음, 도조 회장에게서 술병을 빼앗아 테이블 밑으로 내려놓았다.
다른 임원들도 자신이 맡던 부서나 지분을 상당수 뺏긴 것은 물론, 그 탓에 자살한 이들도 적지 않아 다들 도조 회장 못지않게 울분을 품은 상태였다.
“그래도 회장님에게는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 회장님께서 주저앉으면 분명 노동자 반란 사태를 빌미로 기업 연합에서 직접 감찰관을 한 번 더 보낼 겁니다. 감찰관이 다녀간 자리는 어떻게 되는지 충분히 아실 겁니다.”
감찰관이라는 말에 모든 임원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굳어졌다.
검은 코트의 미치광이가 돌아다닌다는 소문과 함께, 그녀가 한 번 다녀간 자리는 10년 동안 풀도 안 날 정도의 황무지가 된다는 소문.
그리고 감찰관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기업 연합 소속의 다른 업체들이 고르게 나눠 먹는다는 얘기까지 나돌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이미 한 번 그렇게 잡아먹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