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file-18 불타는 칼과 독침을 쏘는 사마귀
회장은 곧바로 사무라이가 칼을 내리칠 것이라고 생각해, 소녀를 안아들고 피하려 했지만. 예상 외로 그녀의 눈앞으로 날아 들어온 것은 홀로그램 화상 통신이었다.
머리를 길게 기르고 수염까지 덥수룩한 채로 헬멧을 쓴 그는, 곧바로 헬멧을 벗고 자신의 맨 얼굴을 훤히 드러냈다. 그는 노기를 띤 눈으로 회장을 노려보며 크게 소리쳤다.
“그런 걸로 싸우겠다고? 사우스 스네이크의 회장! 조금 제대로 된 걸 들고 와서 싸워라! 적어도 마지막 전장은 싸움다운 싸움을 해보고 싶다.”
그 모습에 회장은 휘파람을 불면서 민스 미트 두 자루를 뽑아, 서부영화에서 하던 것처럼 패닝을 돌리다가 히로시의 얼굴을 향해 겨누는 시늉을 했다.
“응? 히로시 아냐? 오래간만이네. 첫 번째 노동자 반란 이후로는 얼굴을 못 본 것 같은데,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회장은 예전 혼닛츠의 노동자 반란 사태 때, 히로시와 서로 등을 맞대고 노동자 진압을 벌인 적이 있어. 가끔씩 연락하고 지낸 친구처럼 친한 척을 했다. 그러자 히로시 역시 그녀를 잘 안다는 듯, 칼을 검집에 꽂은 다음 회장의 질문에 대답했다.
“어쩌긴. 옳은 말을 하다가 주군의 분노를 샀지. 지금 나온 것도 마지막 임무일지도 모르고 말이야. 그런 상황이니 너 역시 시리즈 H를 타고 나와 싸웠으면한다.”
히로시의 요청에 회장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머쓱한 티가 나는 휘파람을 불었다.
“것 봐 내 말이 맞지? 그러니까 내가 스카웃 제의를 할 때 곱게 받지 그랬어.”
“그래서 시리즈 H에 탑승하지 않는 거냐? 사우스 스네이크의 회장?”
회장은 민스 미트 두 자루를 리볼버 패닝하듯 돌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쉽지만 지금 있는 무기가 이것밖에 없거든. 그런 말을 하려거든 반쯤 박살 난 워커-B 타입이라도 가져와달라고.”
그러자 히로시는 미리 준비해뒀다는 투로 질문을 던졌다.
“이걸 말하는 거냐?”
그는 컨테이너를 앞에 내려놓았다. 컨테이너 안에는 말끔한 블랙 맨티스 한 대가 오른쪽 무릎을 꿇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회장은 휘파람을 불면서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눈썹을 장난스럽게 일그러트렸다 펴는 걸 반복하면서 사무라이 조종사에게 질문을 던졌다.
“뭐냐? 적한테 소금을 주겠다는 거야? 난 분명 네놈 상처 자국에 소금을 뿌려줄 텐데?”
반백 수염을 길게 기른 히로시는 칼과 기타 근접 병기들을 잠금 상태로 고정하고, 시리즈 H의 전원까지 완전히 꺼 버리는 걸로 자신이 지금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렇다고 맨몸인 상대를 시리즈 H로 밟을 수 없는 게 아닌가? 아무리 서로 물어뜯고 피 흘리면서 죽어가는 전장이라도 나름의 법도는 지켜야지.”
회장은 담배를 끊어 씹으면서, 블랙 맨티스의 흉부 장갑판까지 순식간에 뛰어 올라갔다. 그 다음 흉부 해치를 열고 조종석에 탑승하면서, 히로시에게 한마디 던졌다.
“거 참. 자유 합중국에서 예법 같은 게 사라진 지 오래되었잖아. 알지?”
“다른 놈들이 무시하더라도 내가 지키면 그만이다. 자 어서 그 시리즈 X에 탑승해라 사우스 스네이크의 회장!”
회장은씩 웃으면서 조종석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곤충의 등딱지 같은 블랙 맨티스의 조종석 해치가 닫히자마자, 인간과 여러 종의 곤충을 섞은 것 같은 외형의 블랙 맨티스는 앞으로 빠르게 뛰쳐나왔다.
검은 독충 같은 시리즈 H는, 반쯤 박살난 건물 외벽 위로 올라탔다. 블랙 맨티스는 코코넛 크랩이 떠오르게 하는 오른손의 집게 팔로 건물 외벽을 찍어서 고정된 뒤, 기본으로 장비하고 있는 기관단총으로 사무라이의 등 뒤를 향해 무차별 사격을 퍼부었다.
“역시 총을 쓰는 건가. 일단 앞뒤 가리지 않고 총부터 갈기고 보는 건 그렇게 좋은 버릇이 아니라고 말했건만.”
히로시는 혀를 차면서, 사무라이의 홀로그램 계기판에 있는 버튼 몇 개를 조작했다. 동시에 사무라이의 주변 풍경이 순간적으로 흐릿해지면서 공기를 헤집은 것처럼 뒤틀리는 게, 블랙 맨티스의 메인 카메라를 통해 그대로 흘러들어왔다.
그리고 회장이 상대방을 탐색하기 위해 쏴 갈긴 기관단총의 총알은, 사무라이의 장갑판을 가리기도 전에 전부 다 썰려 나가면서 바닥에 흩뿌려졌다.
동시에 사무라이의 장갑판 곳곳이 열리면서 압축공기가 세차게 뿜어져 나와, 썰려 나간 총알들을 멀리 치워버렸다. 회장은 방금 저 상황을 모니터로 확인하면서, 예전에 시리즈 H 카달로그로 봤던 신형 방어 장비 하나를 떠올렸다.
“호오 정말로 총알이 안 먹히는 녀석까지 나오다니. 아무리 그래도 난 화약 냄새가나는 쪽이 더 좋은데 말이야.”
분말식 초음파 메스 ‘카마이타치’ 곱게 갈아낸 세라믹과 다이아몬드 분말을 강한 초음파와 함께 살포해, 실탄과 근접무기를 베어내는 혼닛츠 사의 최신작이다.
원래 이것 역시 고효율로 광석과 석재를 절단하거나, 말뚝 형태로 입자를 살포해 석유 시추 등을 하는 데 사용하려고 제작된 작업 도구였다.
회장은 아주 잠깐이나마, 평범한 공업용 도구나 장비가 자꾸 처음부터 살인 병기로 제작된 시리즈 H에 들러붙는다는 사실에 쓴 입맛을 다셨다.
“역시 이런 게 인간의 본능이지! 농기구에도 피를 묻혀야 하고, 톱과 망치로도 충분히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그거라도 들고 달려가는 게 바로 인간이라고! 하하하하!”
회장의 블랙 맨티스는 두 자루의 기관단총을 내 던진 뒤, 사무라이 앞에 정면으로 섰다. 동시에 베스파를 몰래 작동시켜, 추가로 사용할 수 있는 무기를 찾아냈다.
“기관단총을 버린 곳에서 10미터 뒤에 파손 정도가 적은 개틀링 한 자루. 그리고 앞에는 블랙 맨티스의 프로펠러 하나. 마지막으로…. 흠 이 녀석까지 안 쓴 건가? 이거 재미있겠는데.”
그러자 히로시는 모니터 화면으로 웃는 얼굴을 보내면서 수염을 쓸어내렸다.
“이런 것도 전장의 풍류가 아닌가. 먼 곳에서 총질만 하는 건 멋이 없지 않나?”
그렇게 말하면서, 사무라이는 허리춤에 고정시켜 놓은 기다란 검을 뽑아 들었다. 회장도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지으며 찌그러진 채 건물 잔해에 처박혀 있는 블랙 맨티스의 기다란 프로펠러를 떼어냈다.
그리고 일부러 과장된 동작으로 일본 무사 흉내를 내다가 한마디 던졌다.
“전장에 풍류 따윈 없다고 친구. 전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 피비린내와 화약 냄새. 시체 썩는 악취랑 지저분한 쓰레기가 다라고!”
회장은 곧바로 뒤틀린 프로펠러를 사무라이의 메인 카메라를 향해 부메랑처럼 냅다 던졌다.
찌그러지고 구멍이 숭숭 뚫린 프로펠러는 십자 수리검처럼 사무라이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사무라이는 어깨 장갑판을 앞으로 전개해서 날아오는 프로펠러 칼날을 막아냈다.
그때 블랙 맨티스는 다리 관절을 뒤로 크게 꺾어 본체를 브릿지 모양으로 접은 다음, 허리 아래에 붙은 제트 엔진을 작동시켜 한 바퀴 뒤로 굴렀다.
그와 함께 블랙 맨티스의 꼬리날개에 붙은 프로펠러를 뜯어 사무라이의 오른손을 향해 던진 다음. 다시 한번 기관단총을 주워서 허리에 장착했다.
다음은 다시 한번 뒤로 한 바퀴 돌아서 뛰어가며 잔해더미에 묻힌 개틀링까지 뽑아내, 폐건물 잔해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뒤를 향해 멀리 뛰어올랐다.
블랙 맨티스는 공중에 떠오른 채 폐건물 잔해에 기대면서 죽 끌려 내려왔다. 장갑판과 아스팔트와의 마찰 탓에, 눈이 따끔거릴 정도로 짙은 흙먼지가 일었다. 동시에 목이 타들어가는 것 같은, 금속 용접 냄새가 확 퍼지는 불똥을 일으켰다.
블랙 맨티스는 그 상태에서 제트 엔진의 힘을 빌려 뒤로 높이 떠오른 채. 사무라이의 흉부 조종석. 어깨와 팔의 하완부. 허리와 정강이의 카마이타치 사출구. 그리고 이동식 장갑판을 조작하는 보조 팔을 개틀링으로 노리고 쏴 재꼈다.
개틀링의 총신이 새빨갛게 달궈진 순간, 블랙 맨티스가 지옥의 망치처럼 붉게 변한 개틀링을 내던진 다음. 기관단총 두 자루를 뽑아 개틀링의 탄창 부위를 두들겨 터트렸다.
오렌지빛의 폭발이 연막처럼 넓게 퍼지면서, 사무라이를 집어삼켰고 블랙 맨티스는 폭발이 걷히자마자 바로 기관총을 쏴 갈긴 다음. 어깨에 장착된 프로펠러를 부채처럼 휘둘러 흙먼지와 연기를 사무라이 쪽으로 보냈다.
그러자 이번에는 폭발로 인해 벌어진 안개 사이로 강한 불빛이 번득였다. 블랙 맨티스는 곧바로 본체를 옆으로 반 바퀴 회전하면서 날아오는 빛을 피했다.
하지만 왼팔이 건물 잔해와 함께 어깨의 프로펠러째로 잘려나갔다. 특히 용접한 것처럼 절단면이 녹아내린 채 들러붙어, 새로운 파츠로 교체할 수조차 없었다.
연기가 전부 다 걷히자, 어깨 장갑판이 두 동강 나고 카마이타치의 사출구가 닫히지 않은 채 장갑판이 뒤틀리고 찌그러진 사무라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사무라이가 제트 엔진의 플라즈마가 솟구치는것 같은 칼을 들고 있는 오른손만큼은 별 탈 없이 멀쩡했다. 회장이 자세히 살펴보니, 폭발에 휩쓸린 사이에 몸을 왼쪽으로 빠르게 틀어. 왼손 손목 부위에 블랙 맨티스의 꼬리날개가 깊숙이 박힌 상태다.
“역시 보통 칼은 아니었군. 아까 봤던 초음파 메스도 그렇지만, 역시 프로토타입이다 보니까 별의별 의미도 없는 장난감을 잔뜩 붙였어?”
회장은 사무라이의 오른손에 들려 있는, 불꽃을 뭉친 것 같은 칼을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지금 사무라이의 오른손에는, 칼 손잡이라고 하기에 너무 크고 비대한 물건이 들려 있었다. 거의 블랙 맨티스의 기관단총 총신과 맞먹는 ‘복잡한 기계덩어리’로 보일 정도다.
그 손잡이 끝에는 굵은 금속 와이어가 본체의 백팩에 연결되어 있었다. 방금 블랙 맨티스의 팔을 잘라낸 무기는 시작형 테르밋 블레이드. ‘비전 오사후네’다.
산화철과 알루미늄 분말을 가열한 채 강한 압력으로 내뿜어, 고열로 녹은 금속을 칼날처럼 사용하는 원리의 작업 공구에서 시작한 물건이다. 지금은 시리즈 H의 두꺼운 장갑을 단번에 잘라낼 초 고열과 긴 사정거리를 획득한 격투 무기였다.
단점이라면 바람의 방향과 기온. 우천 같은 기상 조건의 영향을 심하게 받는 것과, 세차게 분사되는 금속 분말을 흩뿌리듯 휘두르는 탓인지. 거리만 가까우면 거의 맞는 게 확실한 격투 무기임에도, 정작 난전 중에 제대로 된 명중률을 보장하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히로시는 이런 무기를 휘둘러, 빠르게 회피중인 블랙 맨티스의 오른팔을 잘라낸 것이다. 특히 근접전투에 특화된 사무라이의 조종석은, 넓은 공간 안에 조종사가 온몸의 신경계를 직접 기체에 연결하는 방식이다.
그런 식은 순간적인 반사신경과 동체시력이 따라주지 않으면, 이런 덜떨어진 무기로 먼 거리에서 상대방의 팔을 깔끔하게 잘라내는 짓을 할 수 없었다.
“평범한 쇠몽둥이 같은 칼로는 시리즈 H의 장갑판을 베어낼 수 없으니까. 효율이 떨어지고 불필요한 겉멋이 많다는 건 인정하지만, 명필은 붓을 타박하지 않는 법이지.”
히로시는 혼잣말을 던진 뒤, 곧바로 다음 공격을 연속으로 날렸다. 사무라이의 발목 위에 장착된 1회용 니트로 부스터를 하나씩 터트려, 지면과 벽을 넘나들면서 검기와 같은 뜨거운 쇳물 칼날을 그물처럼 빼곡하게 날려댔다.
이에 회장은 오른손에 달린 집게로 건물 외벽을 뜯어내, 거미줄같이 쳐진 뜨거운 칼날을 덮어버린 뒤. 그대로 뛰어올라 조각 조각난 건물 벽을 발판삼아, 니트로 부스터도 없이 빠르게 앞으로 접근했다.
그리고 사무라이의 오른쪽 어깨 장갑을 집게로 잡아 뽑은 다음, 사무라이가 대응을 하기도 전에 흉부에 힘껏 처박아 장갑판을 깨 부숴버렸다.
사무라이의 조종석이 드러나는 것과 동시에, 회장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맹수가 적의 목덜미를 물어뜯는 것 같은 기세로 더 가까이 달라붙어 사무라이의 왼팔을 사마귀의 낫 같은 무릎으로 찍어 올려 차서 잘라내 버렸다.
추가로 날카로운 발끝을 예리하게 세워, 허리의 동력선 하나를 끊어냈다.
그러자 사무라이와 블랙 맨티스 둘 다 동시에 뒤로 멀찍이 떨어졌고, 사무라이는 너덜너덜한 왼팔을 잡아 뜯은 뒤 카메라가 장착된 헤드 부분을 두어 번 흔들었다. 블랙 맨티스는 이소룡의 풋워크를 흉내 내다가 다리를 높이들어 올려 보였다.
“대단한 실력이군 사우스 스네이크의 회장. 마치 인간이 아닌 것처럼 말이야.”
그 한마디에 회장은 순간적으로 움찔했지만, 다시 사무라이를 향해 달려들어 흉부 조종석 근처에 집게를 깊게 꽂아 넣었다.
하지만 히로시는 높이 뛰어올라 조종석 천장에 달라붙은 뒤, 그대로 뛰어내리면서 미리 입에 물고 있던 장갑 관통 나이프로 집게팔의 관절 부위를 찔러서 망가트렸다.
히로시가 심리전으로 잠깐이나마 시간을 벌지 않았다면, 집게는 그대로 히로시를 포도알을 씹듯 뭉개 터트렸을 것이다.
그리고 히로시의 사무라이가 발을 높게 들어올려, 블랙 맨티스의 흉부를 걷어차는 것과 동시에. 니트로 부스터를 켜서 블랙 맨티스의 하복부를 꿰뚫어버렸다.
사무라이의 엄청난 각력에 그대로 얻어맞은 블랙 맨티스는, 흉부 장갑판에 잔뜩 금이 가고 플라즈마 제트에 복부가 뚫린 채 한참 뒤로 밀려났다.
그리고 뒤이어 날아오는 초 고열의 칼날이, 블랙 맨티스의 오른손 집게를 뒤덮었다. 동시에 블랙 맨티스는 팔 하완부에 장착된 집게가 녹아서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블랙 맨티스는 뜯겨나가다시피 떨어진 집게를 바로 잡아 들어, 사무라이의 메인 카메라가 집중되어있는 헤드 파츠를 향해 덩크슛을 넣는 것처럼 꽂아버렸다.
그 상태에서 둘 다 한껏 거리를 벌렸는데, 블랙 맨티스는 주변에 시노비가 쓰던 무기들이 널브러져 있었다.